등산의 다양한 문화

-* 12월의 길 산사<山寺>의 '천년 불심<佛心>길' *-

paxlee 2010. 12. 3. 21:50

 

          12월의 길 산사<山寺>의 '천년 불심<佛心>길'

 

"한 해를 보내는 발걸음… 들뜬 근심 다 지우네"

 300년 세월 견딘 돌다리 승선교 지나 산사<山寺>의 '천년 불심길' 사색과 명상의 산책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색과 명상을 즐길 만한 고즈넉한 산책로가 어디 없을까? 단풍잎 지는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평탄한 길보다는 조금 땀을 흘리면서 걷는 길이 제격이 아닐까 한다. 전남 순천의 조계산 도립공원 양옆으로 천 년 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로 접어드는 길은 둘 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대상을 받은 족보 있는 길이다.

조계산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됐다가 효율적인 문화재 관리를 위해 송광사와 선암사 경내는 사적으로, 두 사찰을 둘러싼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은 명승지역으로 재분류됐다. 절을 포함한 산 자체가 사적 2곳(제506호와 507호), 명승 1곳(제65호)으로 지정된 곳은 몇 군데 없다. 그만큼 유서 깊고 경관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하늘 높이 시원스레 뻗은 편백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늦가을 햇빛이 찬란하다. 순천 조계산‘천년 불심길’에서, 발걸음은 가볍고 생각은 깊어간다.
성(聖)과 속(俗)의 공간은 돌다리로 구분된다. 수백년 세월을 굳건하게 버틴 승선교 덕분에 고즈넉한 고찰 선암사와 그 아래 세속은 서로의 세상을 유지하며 공존하게 되었다.

순천시에서는 최근 '남도 삼백리길'을 조성했다. 남도 삼백리의 제9코스가 조계산의 선암사~송광사에 이르는 8.4㎞ '천년 불심길'이다. 이전에는 '조계산 굴목재길'이라고 불렀다. 길을 안내한 순천시 도립공원 탐방관리소 박태현씨는 "선암사만 걸어도 좋고 조금 부족하다면 조계산 능선 중간 지점을 거쳐 송광사까지 내려간다 해도 배낭 없이 빈손으로 출발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길이 바로 이 길"이라고 말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명종 때 '입만 열면 시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는 김극기(金克己)의 시 '선암사'가 있다.

'적적한 골짜기 안에 절 / 쓸쓸한 숲 아래 스님 / 세간 정분 다 떨치고서 / 슬기로운 물만 정히 맑게 고였네 / (중략) / 나 여기 와서 구슬 단지의 얼음을 마주하듯 / 들뜬 근심 다 지우네'. 2010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들뜬 근심 다 지우기 위해' 김극기가 노래한 선암사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길옆에 우뚝 선 장승을 만났다. 이곳 장승은 특이하다. 둘 다 남성 모양을 하고 있다. 중성일까? 마을에 있는 장승과 차별하기 위해 만들었을까? 아마 장승이 마을 어귀에 있듯이 이제부터 절로 들어온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장승에서 불과 10m 위로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昇仙橋)가 있다. 작은 승선교는 1700년 전후 건립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300여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선계로 오르는 전설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신선이 내려서고 신선이 승천하는 신비경의 그 전설을. 조계산 일대는 선암사·승선교·강선루·임선교 등 선계 일색이다.

문화해설사 조인숙씨는 "선암사는 초봄엔 시각이, 늦가을엔 후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고 표현했다. 초봄엔 천연기념물 제488호인 선암매를 비롯, 왕매화가 경내를 가득 채워 장관이고, 늦가을엔 은목서와 금목서의 꽃향기가 조계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풍긴다. 초겨울이 내린 지금, 모든 화려함은 사라지고 채도 낮은 낙엽들이 길을 수놓고 있다.

낙엽은 무더웠던 여름의 사연을 전하는 동시에 겨울을 알리는 증표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서로의 사연을 주고받는다. 이젠 가지에 달린 잎도 거의 없다. 조계산은 단풍이 무성한 활엽수가 군락을 이룬 대표적인 산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손꼽히니 낙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참나무를 지나면 대규모 편백나무숲이 기다리고 있다. 편백나무는 항암작용이 있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방출하는 수종이다. 몇 년 전 실험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편백나무숲 사이로 들어섰다. 활엽수와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침엽수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한다.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편백나무숲의 피톤치드를 즐겼다.

편백나무숲이 끝나자마자 당단풍·쪽동백·층층나무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인 소나무를 오히려 찾기 힘들 정도다. 길 자체는 등산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길을 따라 송광사로 간다. 큰굴목재까지는 조금 가파른 길이지만 이 고갯길만 지나면 무난하다. 조계산 여러 곳에 굴목재가 있다. 큰굴목재에서 10여분 걸어가면 조계산의 명물 보리밥집이 나온다. 굳이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이 보리밥집 때문이다. 조계산을 빈손으로 올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보리밥집의 사연은 이렇다.

투병생활을 하던 사내가 완치와 함께 큰돈을 벌게 된 보리밥집.

수십여 년 전, 최석두라는 사내가 암이 발병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조계산 자락에 올라 움막을 짓고 투병과 치병을 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움막에서 물을 찾았다. 그냥 건넸다. 최씨는 심심하던 차에 등산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밥도 나눠 먹었다. 물을 원하던 등산객들은 요깃거리도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두부와 막걸리에 보리밥까지 가세했다. 등산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말엔 한 손에 돈, 다른 손에 빈 그릇을 들고 줄을 설 정도였단다.

그 보리밥집 주인이 바로 최석두씨다. 산에서 병도 고치고 돈도 번 인물이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맛도 일품이다. 하긴 등산 후에 먹는 음식이 무엇인들 맛있지 않으랴.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전형적인 늦가을 풍취를 즐길 수 있다. 이 길부터는 참나무 군락이 서서히 적어지고 소나무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송광사가 가까워질수록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눈에 자주 띈다.

송광(松廣)이란 이름도 소나무가 널려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발상지이며, 한국 선(禪) 수행의 본산으로 불린다. 그 길은 사색과 명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의미를 되찾는 12월이다.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겨보자. 

여 행 수

탐방가이드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이고, 송광사는 조계종의 본산이다. 어디서 출발해도 상관없다. 선암사는 올라가는 길에 보물 승선교를 볼 수 있고, 선암사를 지나 편백나무숲도 즐길 수 있다. 송광사는 한국 조계종의 발상지인 동시에 선종의 본산이다. 그런 사찰답게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거치는 곳은 선암사 부도→삼인당 연못→선암사→편백나무 군락지→큰굴목재→굴목다리→조계산보리밥집→배도사 대피소→송광 굴목재→토다리→송광사 등이다. 총 8.4㎞ 거리에 소요시간은 3시간30분~4시간 정도.

교통(서울 기준) 손수운전은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선암사까지 15분 거리. 고속버스는 서울 [호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10분부터 30~40분 간격으로 순천까지 운행. 편도 우등 3만400원, 일반 2만400원. 4시간 30분. 순천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선암사까지 시내버스 30~40분 간격으로 하루 25회, 송광사까지도 17회 운행.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택시비 3만원 내외. 송광개인택시 (011)601-6633, 선암개인택시 (061)754-5683.

          - 글 / 순천 / 박정원 월간 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