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꿈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2> *-

paxlee 2010. 12. 22. 21:11

 

                     마낭(Manang, 3,540m)의 가을  

 

아침 6시, 산행 시작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처음에는 더위와 따가운 햇볕과의 싸움으로 시작됐다. 밤에는 선선하지만 해만 뜨면 땀이 등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한여름부터 한겨울 날씨를 겪어야 한다. 둘째날부터 작전을 바꾼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지않고 세면도 하지않은 채 해뜨기 전까지 두시간 정도 열심히 걷기로 했다. 새벽에 두시간을 걷고 아침 먹고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정도 진행하면 계획한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많아서 더위를 느낄 때 쯤 길가에 베낭을 벗어두고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다. 두시간 걷고 처음 만나는 롯지에서 아침을 먹었다. 밀크차 한잔에 마늘 수프, 달걀과 함께 볶은 '달밧(Dal Bhat)'을 주로 먹었다. 달밧은 네팔 다락논에서 수확한 쌀로 만든 밥이다. 네팔 사람들의 주식이나 다름없는데 월남쌀처럼 찰기가 없고 모래처럼 쉽게 부서졌다. 여러번 먹다보니 달밧도 입맛에 맞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햇볕에 말린다. 아침식사가 끝날 쯤이면 바짝 마른다. 이렇게 식사 시간때마다 신발을 말렸다. 나와 한나절을 동행했던 일본 트레커는 베낭 뒤에 빨래집게로 양말과 속옷을 메달아 말렸다. 트레킹 시작 4일째가 되면서 고도가 3,000m를 넘는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추위가 느껴졌다. 구룽족들이 주로 산다는 람중 지역이 끝나고 티벳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낭(Manang)지역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작은 비행장이 있는 훔데를 지나면 가파른 산길을 만난다. 이 비탈길이 끝나면 야크와 염소 무리가 풀을 뜯는 넓은 초원지대가 나온다. 동쪽으로는 첨탑처럼 뾰쪽하게 솟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서쪽은 마르샹디 계곡을 따라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가 역시 바위산에 막혔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고목나무 아래에는 서낭당처럼 돌탑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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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4일째는 두쿠리포가리(3060m)에 묶었다. 두쿠리포가리(3060m)에서는 '안나푸르나Ⅱ'의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낭 아랫동네인 브라가(Braga, 3,360m)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브라가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경이 바뀐다. 침엽수림과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 작은마을 브라가가 멀리 보이면서부터 키가 높은 나무숲은 사라지고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안나푸르나의 산꼭대기 빙하가 녹아 폭포를 이루며 거침없이 쏟아져 내려오던 마르샹디강의 계곡물도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곳이다.

 

마낭의 가을 풍경

 

마낭(Manang, 3,540m)까지 가려던 계획을 바꿔 브라가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 햇살에 주변풍경도 카메라에 담고 내일 아침에는 마낭으로 가면서 아침 햇살을 받은 풍경들을 찍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낭까지는 1시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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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롯지를 잡아 짐만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브라가 주변에는 트레커들을 위한 롯지 몇개를 빼고는 티벳에서 중국의 핍박을 피해나온 난민들이 모여사는 전통적인 티벳마을들과 바위산위에 곰파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봐도 퇴락한 마을과 전원적인 풍경과 달리 그 속에서 팍팍한 삶을 꾸리는 난민들의 생활이 들여다 보인다.

 

산에서 땔감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들과 마을 앞에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우리의 어릴 적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나는 옴짝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히말라야의 대자연속에 포개진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지금 얼마나 아늑함을 느낄까? 편안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도 지금 그들의 공간에 몰입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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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이른 아침 브라가를 출발했다.

마낭으로 향하면서 뒤돌아본 브라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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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가를 출발해 마낭까지 오는 길은 경사가 없고 넓은 신작로 같았지만 숨이 가파왔다.

 

비로소 고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상적인 트레킹이라면 마낭에서 하루를 쉬어 고소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마낭(3,540m)에서부터 야크카르카(Yak Kharka, 4,018m)까지는 거리는 멀지 않지만 본격적인 고소적응의 관건이 되는 구간이다. 최대한 속도를 줄이고 쉬는 시간을 늘렸다. 하루도 쉴 수 없으므로.

 

제법 크고 고풍찬란한 롯지들이 줄지어 서있는 마낭의 가운데 골목을 지나 급한 경사로를 오르니 마낭이 한 눈에 보이고 마르샹디 강의 흐름도 한 눈에 잡힌다. 마을 아래로 밭뙈기들과 목장 울타리도 보였다.

 

안나푸르나의 일부인 '룽다'와 '타르초'

 

그러나 마낭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을 전체를 뒤덮은 '룽다'와 '타르초'였다.

 

'룽다'란 바람이란 뜻의 룽과 말(馬)이란 뜻인 다가 합쳐진 티베트 말로 말 갈퀴가 휘날리는 모습을 의미한다. 긴 장대에 깃발을 매달아서 집집마다 지붕위로 서너개의 룽다가 펄럭인다. 

'타르초'는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발을 줄줄이 이어놓은 것으로 만국기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룽다와 타르초는 우주의 다섯 가지 원소를 상징하는 청, 백, 홍, 녹, 황색의 천에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만트라 경문이 가득 씌어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히말라야의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에 퍼져 모든 중생이 고통없는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히말라야의 기원이 담긴 것이다.

 

안나푸르나에서는 언덕위에서나 마을의 지붕위 어디서나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나푸르나 사람들에게 룽다와 타르초는 삶의 한 부분이며 신앙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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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는 향수(鄕愁)같은 게 있어"

 

"안나푸르나에는 향수(鄕愁)같은 게 있어"

"한 번이라도 안나푸르나에 발을 들여 놓으면 또 가지 않고는 못 견디지"

 

혼자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해보겠다는 나를 보고 벌써 다섯번이나 안나푸르나에 갔다 온 산 선배가 마낭의 가을 풍경을 회상했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반사하며 꿈처럼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 본 사람이라면

어찌 그 향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네팔 사람들이 마낭을 왜 진정한 '샹그릴라의 땅'이라고 불렀는 지 알 것 같았다.

 

- /바람처럼/ - 카메라와 길을 가다 / blog.chosun.com/tellme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