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에 아내를 묻고 온 사내
안나푸르나 라운딩 9일째
'안나푸르나 라운딩
이제 마지막 고비인 푼힐(Poon Hill 3,193m)만 오르면 긴 여정이 끝난다.
묵티나트에서 나르중까지 하루, 나르중에서 타토파니까지 하루를 걸었다.
정상적인 트레킹 속도라면 나흘 거리다. 푼힐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리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내려오다 가사(Ghasa 2,010m)에서 포터인 기리를 기다리는데 세시간이 지나도록 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사까지 오는 길은 산사태로 무너져 내려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위험한 구간이었다. 걱정이 됐다.
베낭을 가게에 맡기고 포터를 찾아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한 시간 쯤 거슬러 올라갔을 때 멀리서 기리의 모습이 보였다. 기진 맥진한 기리가 그래도 나름 열심히 내려오고 있었다. 갈 길이 바쁜데 중간에서 뒤에 쳐진 포터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사히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개념도. 베시사하르에서 출발하여 마낭, 토롱라(5,416m)를 넘어 나야풀까지 안나푸르나 산군을 돌아오는 약 250km의 트레킹 코스이다.
타토파니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지나서였다.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둘이서 별만 총총한 어두운 길을 걸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9일째 밤은 타토파니에서 보냈다. 온천이 있어 트레커들이 노천 온천탕에서 피로를 풀고 가는 곳이라고 했지만 온천에 몸을 담그려던 꿈은 접었다.
푼힐에 해가 떠올라 붉게 물들었다. 멀리 다울라기리 산군이 펼쳐진다.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푼힐에서 내려오는 길. 풀잎과 나뭇가지에 이슬이 얼어붙어 맺혔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10일째.
새벽에 일어나 미리 예약한 아침을 먹고 고라파니(Ghorepani 2,869m)를 향해 출발했다.
아침 6시.
포터 기리는 버스를 태워 베니로 내려보냈다. 다음날 오후에 나의 트레킹 종착점인 나야풀(Nayapul 1,070m)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리는 드디어 무거운 짐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나는 타토파니에서 고라파니, 푼힐까지 2,000m를 올라 갔다가 다시 2,000m를 내려와야 한다. 고라파니 가는 길은 끝도 없는 오르막과 더위 때문에 괴로웠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고라파니는 포카라에서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연결되는 트레킹의 요충지여서 제법 붐볐다. 큰 길과 가까운 롯지는 벌써 만원이었다. 푼힐은 왼쪽으로 다울라기리(Dhaulagiri 8,172m) 산군에서 오른쪽 안나푸르나 산군까지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라 비교적 짧은 여행일정을 잡은 트레커들에게 인기였다. 특히 마차푸차레(Machapuchhre 6,997m)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나야풀에서 이틀 올라가고 하루면 하산이 가능하다.
롯지를 잡고 해지기 전에 푼힐로 오른다. 고라파니에서 한시간 거리지만 고도가 3,000m가 넘어서 숨이 막히는 오르막이다. 푼힐은 보통 새벽에 오른다.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봉우리에 붉게 떠오르는 일출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질녁의 푼힐도 운치가 있었다.
구름에 가린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가 어렴풋이 보였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11일째. 마지막 날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벌써 밖은 푼힐로 오르는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작은 베낭에 카메라를 넣고 어제 갔던 길을 다시 오른다. 정상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푼힐 전망대는 벌써 계단까지 발 디딜 틈도 없다. 우모복을 입고 털모자를 써도 몸이 떨렸다.
일출은 아주 천천히 시작된다. 보통 일출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에서 해가 올라오면서 시작되지만 푼힐에서의 일출은 독특하다. 맨 먼저 다울라기리 꼭대기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곧이어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차례로 붉게 물든다. 마차푸차레는 마지막이다. 푼힐에 햇살이 들어올 때 쯤에는 붉게 물들던 봉우리들은 하얀 설산으로 변한다. 푼힐에서의 일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
고라파니 롯지에서 아침을 먹고 8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체력이 다하고 다리에 힘이 빠진 상태에서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더 힘들다. 끝도 없는 돌계단이 계속됐다. 울레리(Ulleri 1,960m)에서 힐레(Hile 1,480m)까지 500m 내리막은 혼까지 쏙 빼버린다. 이 길을 오르는데 사흘 걸렸다는 트레커도 있었다. 어지간히 단련이 된 산꾼이 아니면 죽음의 오름으로 기억되고도 남으리라.
트레킹의 종착점인 나야풀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반이었다. 기리가 버스타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먹을 기력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독일에서 온 대학생 두 명과 같이 비용을 나누어서 포카라 가는 택시를 탔다.
포카라의 생명인 폐와 호수. 호수에 비친 안나푸르나의 일출.
뾰쪽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물고기의 꼬리(Fish Tail)로 불리는 마차푸차레(6,997m)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인들이 신성시해 히말라야 봉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미등정 봉우리로 남아있다.
폐와 호수. 호수 한 가운데 사원이 있고 호수 주변은 레이크 사이드라고 해서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 등
휴양시설이 몰려있다.
포카라(POKHARA 820m)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마당에 먼저 자리를 잡은 한국 여행객들이 있었다. 루크라가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위한 전초기지라면 포카라는 안나푸르나의 전초기지와 다름없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한국 베낭 여행객들이 많이 묵는 곳이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와 쉬는 사람들과 이제 곧 미지의 땅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트레킹을 마친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트레킹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긴장을 하고 이야기에 열중한다.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를 하기도 한다.
그 속에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있었다.
카트만두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같은 게스트 하우스로 찾아가던 중년의 사내와 시간만 나면 오지여행을 떠난다는 회사원 아가씨였다. 카트만두 공항에 마중 나온 안내원을 따라 나선 건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젊은 총각 한 명은 일주일 만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내려오는 숨가쁜 일정을 택해 벌써 귀국했을 것이고, 나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나머지 둘은 푼힐(Poon Hill 3,193m)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4,130m)까지 가는 비교적 여유있는 코스를 택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포카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혼자서 안나푸르나를 찾아왔다는 공통점 밖에 없었지만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금방 친구가 된다.
열 하루 동안 걷기에 지친 나를 이들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포카라에서 시간은 하룻밤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이동해야 한다. 먼저 포카라에 도착해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선배들에게 이 짧은 시간에 포카라에서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호수에서 한 시간 보트 타고 삼겹살 먹으러 가면 돼."
"삼겹살?"
"여기도 삼겹살 있나요?"
"한국 삼겹살 보다 맛있어. 소주도 있다니깐."
"좋습니다! 오늘 하산주는 제가 쏩니다."
포카라에도 한국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값도 싸고 음식도 좋았다. 요리사들도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베테랑들이란다. 그 날 먹은 삼겹살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삽겹살 랭킹 투. 랭킹 원은? 일본 고베 지진(한신 대지진) 취재 갔을 때이다.
일주일 동안 컵라면으로 연명하다가 차이나타운으로 들어 갔는데 그 지진 와중에도 길거리에서 삼겹살 구워서 팔았다. 한 점에 500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중국인들의 비지니스 마인드에 혀를 내두르면서 삼겹살을 허겁지겁 삼켰던 기억. ...
1995년 1월. 결코 잊을 수 없다.
같이 삼겹살 테이블에 앉았던 스님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을 마치고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던 스님이었는데 우리 일행이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나서자 스님이 뒤따라 나선 것이다. 오랜만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려고 나섰는데 스님과는 좀 어울리지 않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됐다.
"스님. 사실은 저희들이 삼겹살 먹으러 가는데 스님이 드실 만한 것이 있으면 따로 시키겠습니다."
스님 왈,
"탁발은 원래 주는 사람 마음이지요. 얻어먹는 탁발승이 메뉴를 따지겠습니까?. 허허."
"ㅎㅎㅎ”
언젠가는 꼭 다시 안나푸르나로 돌아 오자며 건배를 했지만 날이 밝고 ‘
먼 그 곳’ 샹그릴라의 땅을 떠나면 기약이 없는 마지막 밤의 의식이었다.
포카라 호수를 끼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이 있었다. 포카라 폐와 호수(Phewa Tal)는 안나푸르나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다가 포카라에서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이다. 이 호수가 없었다면 포카라는 그저 평범한 마을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포카라 호수는 포카라의 보석과 같은 곳이었다.
호수가 벤치에 셋이 나란히 앉아 불빛을 반사하는 호수를 한참 바라보는데 젊은 처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솔로니까 혼자 여행하지만 아저씨들은 왜 혼자 산에 다녀요?"
"그러니까... 나는 기러기라서 혼자 올 수 밖에 없었고 다음엔 꼭 가족이랑 같이 오고 싶어."
"아저씨는요?"
젊은 처자가 중년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사실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아내를 묻고 왔어."
“......”
"지난 봄에 안나푸르나에 꼭 같이 가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거든. 이제야 그 약속을 지키게 됐어."
"아내를 베이스캠프에 묻고 왔는데 너무 추우면 어떡하지?”
사내는 한번도 호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취기가 확 달아났다.
사내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기로 아내와 약속을 했었다.
둘이 다 산을 좋아해서 결혼 후 첫 여행을 안나푸르나에서 보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주말이면 주변 산을 같이 올랐다. 체력이 약했던 아내는 더 열심이었다. 사내가 시간이 없으면 혼자 산악회를 따라 다녔다.
그의 아내가 사고를 당한 건 지난 여름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산악회를 따라 나섰다. 그의 아내는 희양산 암릉을 오르다 실족하고 말았다. 바로 앞에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암릉을 오르는 그녀에게 스틱을 내밀었고 스틱이 빠지면서 바위에서 추락했다. 등산용 스틱의 구조를 몰라서 당한 초보적인 실수였으나 운명은 그 실수를 피해가지 않았다.
사내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화장하기 전 아내의 머리카락을 잘라 보관하고 있다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묻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떻게든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흐를 뿐. 언어라는 것은 얼마나 열등한가. 이 상황에서 그 사내에게 해 줄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다니.
사내가 아내의 머리카락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 묻던 날 밤, 사내는 갑작스럽게 심한 고소증에 시달렸다. 잠든 젊은 처자를 깨워 부축을 받으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로 철수했다고 한다. 천천히 내려와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밤새 기어서 내려온 것이다. 아내와의 이별 의식이었을까?
폐와 호수의 아침. 안나푸르나에서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닿아있다.
하늘에 떠있는 해가 삶이라면 호수에 비친 해는 죽음일까?
마차푸차레. 마차푸차레 오른쪽 봉우리는 안나푸르나 2봉(7,937m)
- /바람처럼/ - 카메라와 길을 가다 / -
-> '카메라와 길을 가다' 바람처럼님의 블로그에서 빌려온 글입니다. 히말라야 산군, 안나푸루나 산군의 트레킹을 다녀온 분들의 글을 읽으면 누구의 글이나 감명과 감동을 느끼게 해 준다. 그 만큼 고산의 매력은 우리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가고싶어 하는 트레킹 코스이다. 요즘은 체력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갈수있는 코스들이다. 이 글을 읽어주신 블로그님들과 함께 공감하면서 산행의 매력을 배울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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