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스위스 산악 열차 [2] *-

paxlee 2011. 2. 10. 11:46

 

 

 

스위스 산악 열차 [2]

 

옛날 기차 흑백 사진.jpg

 

 .

"神은 그들을 눈 덮힌 알프스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프스에

기차를 놓아 그것을 극복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신(神)도 눈감아 허락해 준

알프스의 기차! 그 기차에 오르려고 여행가방을 꾸렸다.

  

남편의 학회에 맞추어 이탈리아의 투스카나 지방에 머물며

여유롭게 돌아보려던 건데 출발 두주 전 우연히 스위스에 대한 책자를 읽다가

저 멋진 문구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차여행, 그것도 눈 덮힌 알프스 산등성을 기차를 타고

유럽의 지붕(융프라우)에까지 오를 수 있다니!! 

"칙칙폭폭 칙칙폭폭" 가슴 속에서 유년의 기차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 미국도 아니고 유럽인데 멀면 얼마나 멀겠어?"

학회가 열리는 곳에서 차로 다녀오기에는 너무 멀다는 남편을 부추겨

부랴부랴 첫 3일간의 계획을 수정했다.이태리, 피사에 예약해 두었던 호텔을 해약하고

스위스 알프스 산 자락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렌탈카도 장거리에 나은 조건으로 재예약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네비게이션을 빌릴까 말까 남편이 망서리자

" 엄마 아빠~! 두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여행을 위해서는

네비게이션은 필수입니당~~!" 딸이 조언을 했다.

과연 딸아이의 말은 여행 내내 진리였다!^^

 

b7b4efcf.jpg picture by youngsphoto

  

뉴욕,JFK 공항에서 이태리, 피사(Pisa)까지는 8시간 50분쯤 걸린다고 한다.

아무리 자주 타도 몸이 익숙해지지 않는 비행기 여행.

이리저리 뒤틀며 졸멍 깨멍 하다보니 어느덧 눈덮인 알프스가 보이고

해발 10,368m, 영하 54도라는 안내 화면이 나온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알프스 영봉들을 비행기 창 너머로 본 적이야 몇번 있지만 

이번엔 더 각별하다. 들짝 눈꺼풀에서 잠이 달아나며

`알프스야~! 안녕? 네게 가는 길이야.기다려 주렴~!` 인사를 하게 된다.

  

드디어 착륙 안내방송이 나온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Pisa 다.

지금이야 쇠락한 도시지만 비옥한 평야와 지중해를 끼고 있어 중세부터

해상무역과 해군으로 막강했던 곳이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하강하며 머리를 돌리자

앗~!

붉은 도시 사이로 피사의 사탑 같은 모양이 멀리 보인다. 콩닥콩닥!

비로소 여행의 실감이 나며 이방인의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d9979bfd.jpg picture by youngsphoto

`갈릴레이 국제공항`

                      

갈릴레이 국제공항을 나와서 렌트카를 하려고 보니 모두 소형이다. 게다가 자동이 아닌

스틱 쉬프트였다. 스틱을 운전해본 지 20년이 넘었으니 어쩌랴, 이번 여행은 남편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한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때 맞춰 "오라잇~ 빠꾸빠꾸~" 만 하면 되는 것이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인 스위스, 인터라켄을 입력시키 소요시간 5시간 50분으로 나온다.

이태리 중부의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밀라노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였지만 달리다 점심을 먹기로 하고 우선 출발을 하였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한시간쯤 달리다 점심을 먹으려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시가지로

들어갔다.

 

어렵사리 주차를 시키고 아무리 돌아다녀 보아도 문을 연 식당이 없는 게 아닌가.오후 2시가

넘으면 이태리의 식당들은 문을 닫는다는 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중국식당 만은 열었겠지..

멀리 간판을 보고 갔지만 이태리에선 중국식당도 이태리 식당이었다. 갈 길은 먼데 이래저래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공항에서 산 물로 배를 채우고 다시 달렸다. 이태리의 고속도로에서는 작은 차들도 어찌나 쌩쌩 

달리는지 급경사길에서는 나는 겁이 나 오금이 다 저리는데 남편은 이내 익숙해져 150Km/h로

달리고 있었다. 유럽의 고속도로엔  모퉁이에 숨어서 과속차량을 잡는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

표지판도 없다.

 

물론 앞 차를 추월하려고 지그재그로 들락날락 거리며 차선을 바꾸며 운전하는 난폭 운전자도

볼 수 없다. 빨리 달리는 차들에게 추월선을 내주며 모든 차들이 흐름을 끊지 않고 마치 물결

흐르듯 달리는 유럽의 아우토반이  의외로 속도에 비해 사고율이 낮은 이유를  이해 할 수 있

었다. 차츰 속도에 익숙해지자 이태리 투스카나 지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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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밀이 익은 들판과 산등성은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초목들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다.

하늘에 닿으려는 의지로 자라는 사이프러스를 고호가 "흙속에서 피어 오르는 검은 불꽃"이

라고 표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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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천에 피어 있는 이태리에선 농작물로 재배한다는 반가운

개양귀비꽃(Poppy)들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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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나 산 위엔 붉은 지붕을 인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이 있는 곳엔 반드시 종탑이 있다. 지금은 종탑에 시계를 붙이지만 유럽인들은 이미

천년전부터  종을 쳐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과 주민들의 경조사를 알렸다고 한다.

 

그랬기에 "사람은 섬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로 시작하여

"그러므로 종이 울려도 사람을 보내 알려하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종은 바로 당신을 위하여 울린다" 로 끝나는 영국의 사제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유명한 詩우리에게 남겨졌을 것이다.

 

 차창 밖 이국의 풍경을 감상보다 보니 "오라잇~ 빠꾸빠꾸~"

 조수 역활 한 번 해 볼 기회도 없이 어느새 스위스 국경 검문소 앞이다.

 

Gotthard_Road_Tunnel_Switzerland_(from_nord).jpg

 

스위스는 유럽의 국가들 중 유일하게 입국심사를 하는 나라다. 여권을 대충 확인 한 뒤

통관비로  차 한대당 30유로를 내야 한단다. 남편은 비싸다며 불만스러워했지만

밀라노에서 스위스의 인터라켄까지 구불구불 산길에 40개도 넘는 터널을 지나며

(그중에는 11년에 걸쳐 완공된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길이 17 Km의 고타드(Gotthard)

터널도 있다.)좁은 터널들을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은 안중에도 없고 "이것들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30유로 받을만 하네 뭐~!"  터널만 세며 팔자 좋은

소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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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으니 주변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산세가 높고 깊어지며

모든 게 이태리와는 사뭇 다른 그냥 한폭의 그림이어 그 그림 앞에서는 

왠지 귓속말로 조용조용 말 해야 할 것 같은안온하고 차분한 풍경들이 나타난다.

스위스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2ec1bbf9.jpg picture by youngsphoto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를 오르는 산악기차의 거점지인 인터라켄(Interaken)에서 조금

떨어진 아델보덴. 알프스 산 자락에  스위스 전통가옥인 샬레 스타일로 지어진 호텔에 도착

했을 땐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지만 알프스의 밤은 더디 왔다. 어둠과 빛이 그제서야

은밀히 몸을 섞고 있었다.

 

알프스에 밤이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알퐁스도데의 단편,<별>이 생각났다. 그 밤엔 나도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 되어 목동의 어깨에 내려 앉아 고이 잠든

주인집 아가씨가 된 꿈을 꾸어보고 싶었다.

 

                                       - 글 최영옥 - 내 마음의 풍경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