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스위스 산악 열차 [4] *-

paxlee 2011. 2. 12. 13:50

 

                            스위스 산악 열차 [4]

 

얼음궁전 터널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입구가 나온다. 어디로 나가는 문인지도 모르고

행렬에 밀려 어떨결에 문 밖으로 나서니 눈이 부셔 뜰 수가 없다. 선글라스를 쓰자

비로소 눈 안에 들어오는 풍경!  아 ~~!!!! 

 

 

융푸라우봉.jpg

 

내 발은 어느새 하얀 설원 위에 있고 만년설을 방금 뚫고 솟은 듯한

금방이라도 어깨 위의 눈을 툭툭! 털 것만 같은 검은 화강암 봉우리 하나가 저만큼

우뚝 서 있다. 해발4,158m 알프스의 영봉 융푸라우(Jungfrau)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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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3453m, 플라토(Plateau) 전망대 -

 

낯가림이 몹시도 심하다는 융푸라우. 어떤 이는 구름병풍 뒤에 숨어 얼굴도 내밀지 않더라

하고 어떤 이는 베일을 두르고 앉아 수줍어만 하더라 했다. 왜 아니 낯가림을 할 것이던가.

융푸라우라는 이름은 처녀(Maiden)라는 뜻이라 한다.

 

인터라켄에 살았던 어느 수녀를 기리어 이름을 붙였다는 그런 융푸라우가 오늘 만큼은,

아니 내게만큼은 흔쾌히 얼굴을 보여주며 반긴다.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내가 만난 융푸라우는 영화,사운드오브뮤직에서의 밝고 명랑한 마리아 수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한 줌 집어 악수하듯 뭉치니 융푸라우가 내 손을 맞잡아 오듯 잘 뭉쳐진다.

조금 차갑지만 촉촉한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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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바로 왼쪽, 융푸라우와 뭰히봉(Monch/4107)사이로 거대한 설강(雪江)이 흐른다.

길이 24Km의 알프스에서 가장 긴 빙하, 맑은 날은 프랑스와 독일까지 볼 수 있다는

알레취(Aletsch) 빙하다. 천년 전에도,만년전에도 흘렀을 유장한 시간만큼이나 

휘감고 돌며 도도히 흐르는 그 앞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에 살꽃이 핀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일개 잠시 스쳐 지나갈 풍경이라 해도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 때는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서서 바라보게만 되는 것이다.

 

Jungfrau-sphinx-observato-001.jpg picture by youngsphoto

 

플라토 전망대에서 내려와 108m를 25초만에 주파하는 초고속 승강기를 타고

융푸라우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스핑스(Sphinx /3571m)테라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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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571m, 융푸라우에서 사람이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건만

더 높은 곳에 닿아보려 하는 사람들은 발돋움하거나 손을 뻗으며 사진을 찍는다. 

 

 Zipline.jpg picture by youngsphoto

                                                       

 

전망대 아래에는 산악장비 없이도 만년설을 밟으며 알프스를 하이킹 해 볼 수 있는

하이킹 코스와 스키,스노우보드 ,Tyrolienne(Zipline)등의 겨울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웃통을 훌훌 벗어던지고 눈 속에 뛰어들어 젊음을 과시하는 싱싱한

장면들에 눈웃음도 주며 하이킹 코스 따라 미끄러지며 걷다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이제 올라가서 라면 먹읍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이 말했다.

전망대 위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점심 때라 자리를 잡을 수 없을만큼 북적였다.

뭰히봉이 보이는 창가에 겨우 자리를 잡은 나는 남편에게 뜨거운 물을 사오라 하고

배낭에서 인스턴트 쌀국수를 꺼냈다.

 

갑작스레 스위스 여행을 준비할 때 융푸라우에 올라 먹은 라면이 너무 비싸긴 했지만

(한그릇에 9 유로라 했던가? 스위스는 물가가 많이 비싸다.) 그 맛이 기가 막혔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준비성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융푸라우 정상에선 라면을 꼭 먹어보아야 한대! 근데 그게 무지 비싸대!

남편이 라면을 먹지 않아 라면 대신 집에서부터 신주단지 모시고 오듯 싸들고 온 쌀국수였다.

 

남편이 뜨거운 물 한잔에 1유로를 주었다며 다섯 잔의 뜨거운 물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왔다.

오마나~! 세상에~ 물 한잔에 1유로란말야? 그래도 라면으로 사 먹는 것보단 올매나 싼거야?

잘했지? 잘했지? 자찬을 해가며 먹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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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of Europe  Glacier Restaurant 에서-

 

라면 먹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고 옆 테이블에선 퐁듀에 샴페인까지 터트린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나무 젓가락까지 가지고 와 후루룩거리며 인스턴트 국수를 먹는

그것도 남편이란 사람은 두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이 동양인 부부를 모두가 힐끗힐끗 훔쳐 본다.

숫제 어린 아이들은 눈을 우리에게 고정시켜 놓고 제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다.

 

`원 참내~ 동양인 처음 보나?` 그나저나 라면 먹는 한국사람은 왜 하나도 안보이는 거야?`

나는 속으로 갸우뚱 갸우뚱하고 남편은 아이들에게 카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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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프라우의 우체통 -

 

그런데 아래층으로 내려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가장 높은 우체국은 에베레스트

중턱 5000m에 있다) 빨간 우체국에 가서 카드를 부치고 돌아서서 보니

 라면을 파는 간이식당이 옆에 있는 게 아닌가. (식당이 5개나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이런~ 이런~)

   

며칠 후 이태리 여행중에 만난 라면을 좋아한다는 미국인에게 이 얘기를 하니,

돈이 없어 그런 줄 알았을 거라며 깔깔 웃는다. 꽂히는 시선 의식하느라 유럽의 지붕,

융푸라우에서 먹은 쌀국수 맛이 기가 막힌지 어쩐지도 모르고 먹긴 했지만 두고두고

불러 올 추억거리 하나는 얻은 셈이다.

 

어느덧 오후 2시. 올라올 때 마음 먹은 하이킹을 하려면

아쉽지만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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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네샤이덱에서 갈아탄 기차는 아이거북벽으로 더 유명한 아이거(Eiger)의 허리를

끼고 달린다. 아이거 북벽(Eiger, North Face)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옷의 상표

'North Face'의 상징인 세계 3대 North Face(마테호른, 그랑드 조라스, 아이거) 중의 하나다.

 

 북벽 맨 바닥에서 정상까지의 1800m. '하얀 거미(White Spider)'라 불리는 루트는
거미 모양처럼 펼쳐져 있는 상습적인 눈사태 지역이지만 정상에 오르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한다. 



 

등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곳. '산악인의 공동묘지'라고 불리는

아이거 북벽(North Face)은 그럼에도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오르고 싶어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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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이거 북벽엔 오르지 못하지만 아이거가 보이는 곳에서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 하는 바람처럼, 햇살처럼 그렇게 걸어라도 보아야지!

 

간이역이라고도 할 수 없을만큼 작은 Brandegg역, 기차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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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푸라우엔 기찻길 따라 76개의 트래킹루트가 있고 그 트래킹 루트마다 예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 지름길도 있다고 사진속의 트래커가 살짝 귀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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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물 달려가는소리, 소들의 워낭 소리, 닭들의 꼬꼬댁 소리 

우리네 시골과 별반 다름 없는 시골마을인데, 어찌 이곳은 이리도 단정하고

정갈한 것일까. 정갈함은 그들을 보다 더욱 윤택하게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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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종이 넘는 야생화가 서식한다는 알프스. 6월의 알프스에 가장 많이 피어 있는 건

-Globe Flower(Trollius europaeus)- 라는 앙증맞은 노란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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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을 걸어내려 가는 동안 가까이서 멀리서 끊임없이 워낭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다 문득, 지나며 잠간 듣는 나야 즐겁지만 고개를 흔들 때마다 댕그렁거리는

소리가 소 귀에 시끄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스위스 소의 목에 다는 트라이첼(Trychel)이라는 워낭은 대장간에서 직접 때려 만든 각진

종으로 크기도 제법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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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라켄 카우 축제 / (빌려온 사진) -

 

하기야, 봄에 소가 산으로 올라가는 날과, 늦가을, 소가 마을로 내려오는 날이면

동네마다 성대한 카우훼스티발이 열리며 머리에 울긋불긋 화관을 쓴 소들이 행진을 하고

가장 예쁜(?) 소를 뽑기도 한다는 그들이니 잠간 지나가는 이방인 만큼 보다야

자기네 소를 더 사랑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니 다소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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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짓자로 요래조래 해찰하며 걷는 중에도 장난감 같은 기차는 열심히 오르고 내리며 ...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의 그 험한 산을 줄기차게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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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땀이 솟을 즈음 내리막에 무릎이 아파올 즈음 눈 아래 그린델발트

(Grindelwald)가  내려다 보인다. 저 곳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스위스 산악열차 여행의 여정을 마쳐야 하는 시간도 가까워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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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꿈을 꾸고 환상을 갖기도 한다. 비록 저 혼자 상상하고 만들어 낸  

환상일지라도 우리가 가졌던 그 꿈이나 환상들이 우리를 배반하는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내가 환상하고 꿈꾸었던 스위스는 적어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남아 있는 스위스!
작지만 저력 있는 큰 나라로 새롭게 인식된 스위스를 향해 나는 다시 여행가방을 꾸리는

꿈을, 노랗고 빨간 산악 기차에 몸을 싣는 꿈을, 내가 아직 이곳을 떠나지도 않은 채

또 꿈 꾼다.                  - 자운영 -

 
                         - 글 최영옥 - 내 마음의 풍경소리 -      

 

Margret Almer - Kuckucks-Jod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