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명품(名品) 이야기 *-

paxlee 2011. 2. 16. 13:18

 

          보통 사람은 모르는 名品의 세계

 

 

현재 국내에서는 10억원짜리 손목시계도 판매되고 있고, 수천만원대의 가방과 옷도 즐비하다. 수년 전만 해도 유명 패션디자이너가  “모피나 보석 같은 특수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의류 단품은 아무리 원가와 수공비를 높게 잡아도 소비자 가격이 1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청담동의 명품매장에서는 1000만원이 넘는 재킷이나 코트 종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샤넬이나 루이비통ㆍ프라다ㆍ구찌ㆍ디올 등이 이른바 ‘명품’ 브랜드로 이름을 떨쳤지만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이런 브랜드들은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도 아니고, 예전처럼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마르틴 마르지엘라ㆍ꼼데가르송ㆍ앤 드뮐미스터ㆍ낸시 곤잘레스ㆍ마놀로 블라닉ㆍ체사레 파조티ㆍ이자벨 마랑ㆍ필립 림ㆍ발맹 등 일반인에겐 생소한 브랜드가 부유층의 공략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들 브랜드의 가격은 구두 100만~200만원, 바지 150만~250만원, 재킷 300만~800만원 선으로 보통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벅차다. 가죽이나 모피 또는 보석 장식을 이용한 의류의 가격은 100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작년 가을에는 여성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어깨 부분이 뾰족하게 솟은 재킷을 입고 나타난 적이 있다. 이 재킷은 프랑스 브랜드 ‘발맹(Balmain)’이 2009년 컬렉션에서 선보인 것으로 언론에는 ‘발맹 재킷’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워낙 생소한 브랜드라 ‘발맹 재킷’을 패션용어로 오해하거나 발맹을 신생 브랜드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발맹은 크리스찬 디오르와 함께 1950~60년대 프랑스 최고의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던 피에르 발맹이 만든 브랜드다. 어깨 부분이 솟은 스타일의 발맹 재킷은 소재와 디테일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격대는 400만~800만원이다. 한 연예인이 드라마에 입고 나왔던 발맹의 보석 장식 청바지는 598만원이었는데, 국내 수입된 물량이 모두 팔려나갔다.
 

                          명품 매장이 밀집한 청담동 거리.


 
  에르메스 버킨, “웨이팅도 아무나 못 해요”
 
  전 세계적으로 셀러브리티(celebrity·유명인ㆍ상류층)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방은 에르메스의 버킨(Birkin)이다. 에르메스의 CEO가 영국 배우 제인 버킨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서 버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련미의 대명사인 탤런트 김남주조차 최근 낸 책에서 ‘카드를 내밀면서 눈앞이 아득했지만 볼수록 입꼬리가 올라간다’며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고 말한 바로 그 백이다.
 
  버킨의 가격은 소재별로 다르지만 최저 15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악어가죽 버킨은 5000만원 전후로 판매되고 있으며, 특수소재를 사용한 버킨은 1억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르메스에는 ‘웨이팅’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각 백화점과 도산공원 앞 등 여러 매장이 있지만, 매장에서 바로 버킨을 살 수는 없다. 버킨을 사려면 매장에서 신청을 해두고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스타들도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통 비인기 색상의 경우 6개월~1년, 인기색상(블랙, 에토프 등)은 1년반 이상 걸린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예 웨이팅을 받지 않는다. 매장 측은 “이미 받은 웨이팅 리스트만으로도 생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돈을 갖고도 버킨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이런 경우는 ‘초보’일 뿐이다. 가끔 “부산 모 백화점엔 웨이팅 받아주는 데가 있다더라”는 등의 정보가 돌기도 하지만, 초보가 방문했다가는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개인병원의 여의사 A씨는 최근 타조가죽으로 만든 버킨을 구입했다. “얼마나 기다려서 구입했느냐”는 질문에 “단골이라 기다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A씨는 이미 10여 개의 버킨과 20여 개의 ‘켈리’(에르메스의 백 이름으로 그레이스 켈리가 든 이후 생긴 애칭)를 갖고 있고, ‘볼리드’, ‘린디’ 등 에르메스의 다른 백과 지갑, 스카프 등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에르메스 매장에서는 VIP 고객으로 등록돼 있다. 사고 싶을 때 언제든 버킨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신상품이 들어올 때면 점원들이 전화를 한다. 물론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골은 아니지만 버킨을 꼭 갖고 싶다면 약간의 공을 들여야 한다. 에르메스를 비롯한 많은 명품 브랜드들은 구매 시 고객으로부터 나이와 주소, 휴대폰번호 등 개인정보를 받는다. 명품매장의 고객리스트에 오른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부터
그 고객이 무엇을 사는지 집계가 된다. 이 구매리스트는 브랜드가 고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A씨는 “버킨이나 켈리가 아닌, 바로 살 수 있는 다른 백을 몇 개 사면서 매장 직원과 친해져야 한다”며 “몇 가지를 사고 열쇠고리나 스카프 등을 직원에게 선물하기도 하면서 친해진 후 버킨을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웨이팅을 받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르메스의 스카프 가격은 최저 40만원대부터다. 또 VIP인 지인과 함께 가서 부탁하면 웨이팅을 받아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에르메스는 절대 세일을 하지 않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재고가 있어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아예 태워버린다는 소문마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세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에르메스는 2010년 6월 초 10일간 세일을 실시했다. 물론 매장에 세일한다고 써붙이지는 않는다. 단골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인기가 높은 가방이나 스카프 등 소품류는 세일에 포함되지 않고, 의류만 20~30% 해준다.
 

        한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 매장. 번잡한 일반 매장과 달리 한적하다.


  
  부유층 상대로 ‘나이트 파티’ 여는 백화점도
 
  신세계백화점 전국 지점 중에서도 부유층 고객이 많은 강남점과 본점, 부산센텀시티점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연 1~2회의 ‘나이트 파티’를 연다. 한때 일부 재벌이나 톱 연예인들이 ‘백화점 문 닫아놓고 쇼핑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백화점 측에서 아예 이를 양성화한 것이다. ‘명품백화점’을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갤러리아도 이 같은 나이트 파티를 연다.
 
  백화점은 VIP 고객에게만 초청장을 보내고, 초청장을 가지고 와야 입장을 시킨다. 파티는 백화점 영업시간이 끝난 후 보통 저녁 8~10시에 열리며, 뷔페음식과 주류가 제공된다. 최고급 샴페인인 돔페리뇽이 제공되기도 한다. 참석한 손님들은 몇백 명만이 입장한 한가로운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긴다. 지난 10월 말 열렸던 신세계 강남점 파티에 참석했던 한 참석자는 “몇몇 브랜드는 세일이나 백화점카드 할인혜택, 사은품 증정 등 행사에서 철저하게 제외되는 ‘콧대 높은’ 브랜드였는데, 그 브랜드들이 나이트 파티에서는 사은품도 제공하고 비인기제품에 대해서는 약간의 할인도 해주더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신상품을 선보이는 대형 패션쇼 외에도 VIP 고객을 위한 소규모 패션쇼를 여는데, 장소는 주로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이다. 식사나 다과가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다. 참석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해 브랜드 고객끼리 사교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H호텔 스위트룸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에 참석했던 중견기업 오너의 며느리 B씨는 “참석자는 대부분 알 만한 기업이나 고위직 집안 여성들”이라며 “다들 원래 아는 사이이거나 한 명만 거치면 알 만한 사이”라고 설명했다.
샤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구입하는 ‘클래식 미디움’ 백의 가격은 400만원대 초반이다. 다른 백은 대부분 5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원피스나 정장 한 벌은 500만~1000만원 선이다. 이런 백이나 옷을 계절별로 몇 개(벌)씩 구입해야 VIP 대열에 들어설 수 있으니 ‘대한민국 0.01%’가 따로 없는 셈이다.
  
  한 마리씩 욕조에 넣어 키운 악어로 만든 가방은 최하 2000만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서울 신라호텔 매장에서 프랑스 장인이 ‘버킨’백 제작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B씨는 “그러나 최근에는 샤넬보다 다른 브랜드로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워낙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은 브랜드이다 보니 샤넬을 입으면 어느 해 어느 시즌 상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까지 남들에게 다 노출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사람과 같은 옷을 입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최근 부유층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브랜드가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인 ‘낸시 곤잘레스’다. 낸시 곤잘레스는 악어뿐만 아니라 각종 파충류와 양서류의 피혁으로 가방을 만들고 있는 디자이너다.
 
  과거 악어가죽은 경제력 있는 중년ㆍ노년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젊은 여성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부의 상징’과도 같은 악어가죽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서는 악어가죽 전문 브랜드인 ‘콜롬보’와 ‘콴펜’의 클러치(손에 들 수 있는, 장지갑보다 조금 큰 백)나 지갑을 든 여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콴펜과 콜롬보의 가방은 가격이 2000만원 이하인 것이 거의 없다. 클러치도 최소 400만원 이상이다. 콜롬보는 이탈리아 브랜드로 콴펜보다 가격대가 좀 더 높으며, 콴펜은 싱가포르 브랜드다.
 
  한 패션계 관계자는 “콜롬보나 콴펜, 에르메스에서 사용하는 악어는 상처를 서로 내지 않도록 한 마리씩 욕조에 넣어 키운 것”이라며 “악어가죽 백은 제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공임 비용이 높은 것은 물론, 사육비용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악어가죽 백의 단점은 지나치게 고가이며 다소 무겁다는 것이다. 또 전통적인 디자인의 경우 나이 들어 보인다는 단점이 있는데, 낸시 곤잘레스는 이 단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악어가죽을 사용한 숄더백이 700만~1000만원대로 기존의 브랜드보다 가격을 낮췄고 특수 기법을 사용해 무게를 줄였다.
또 핫핑크와 형광색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컬러를 사용하고 스트링(가방 위를 조이는 끈) 등 젊은 감각의 디테일을 사용, 20대들도 선호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로고 없어도 브랜드 쉽게 파악
 
 
루이비통의 대표적 시리즈인 ‘모노그램(갈색 바탕에 L과 V가 줄지어 새겨져 있는 무늬)’ 백을 요즘 청담동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모노그램은 100만~300만원 수준의, 명품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고, 따라서 중산층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로고가 새겨진 백은 이제 ‘촌스러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로고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브랜드를 숨기는 것은 아니다. 아예 ‘온몸으로’ 브랜드를 나타낸다. 납작한 끈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듯한 외관이 특징인 가방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는 이미 청담동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사용해 본 사람들은 “가죽이 부드럽고 가벼워 이제 다른 가방은 들 수 없을 정도”라고 평한다. 이 브랜드의 가방은 400만원 이하가 거의 없다.
 
  ‘플라스틱 가방’을 메고 가는 여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린이용 블록을 하나하나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제품은 일본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내놓은 브랜드 ‘플리즈 플리츠’의 가방이다.
보테가 베네타나 플리즈 플리츠의 가방은 로고가 새겨져 있지 않아도 가방 자체가 브랜드를 표시하고 있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명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패션 분야 3대 대기업인 제일모직, LG패션, 신세계인터내셔널이 잇따라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를 수입하고, 이를 판매하는 편집매장(특정 아이템에 관한 모든 브랜드를 갖춰 놓은 매장. 주로 수입 브랜드로 이뤄진다. 국내 편집숍이 본격화한 것은 2004년 신세계인터내셔널 분더샵이 오픈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을 냈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의 ‘분더샵(boon the shop)’, 제일모직의 ‘10꼬르소꼬모(corso como·패션거리의 번지수를 넣어 작명했다고 한다)’, LG패션의 ‘라움(RAUM)’이 그 주인공이다. 각 회사가 직접 수입하는 브랜드로 채워져 있는 세 매장을 돌아봤다.
 
  청담동 언덕 위에 위치한 분더샵은 국내 최초로 문을 연 편집숍이고, 규모도 가장 크다. 400여 평 규모에 60여 개의 브랜드가 채워져 있다.
알렉산더 왕, 마르틴 마르지엘라, 드리스반노튼, 발맹, 요지야마모토, 로저 비비에르, 크리스찬 루부탱 등이 있으며, 이탈리아산 초고가 명품 슈트 체사레 아톨리니도 입점해 있다. 고자세의 직원들이 많은 명품 단독매장에 비해 직원들이 친절했다. 특이한 문양의 티셔츠 한 장을 집어들었다가 95만원이라 찍힌 가격표를 보고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분더샵에서 몇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10꼬르소꼬모는
북스토어와 갤러리, 카페 등이 함께 있는 복합공간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 등에게 문턱을 다소 낮춘 분위기였다. 꼼데가르송, 발맹, 톰 브라운, 릭 오웬즈, 준야 와타나베, 탑샵 등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들이 들어차 있다.
 
  성수대교 사거리 LG패션 빌딩의 라움은
해외 유명 브랜드와 LG패션 브랜드를 함께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이자벨 마랑ㆍ레오나드ㆍ바네사 브루노ㆍ질 스튜어드 등 비교적 알려진 수입 브랜드 외에 처음 접하는 브랜드가 많았다. 화려한 무늬의 천 소재 여행용 가방이 눈에 띄어 가격을 문의하니 195만원이다. 가죽가방류는 가격을 물어볼 엄두도 안 났다.
 
  편집숍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본토는 물론 홍콩ㆍ일본에서도 대형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들이다. 국내에도 상당수의 고객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왜 국내에서는 편집숍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편집숍 관계자의 이야기다. “이들 브랜드는 국내에 극소량만 수입합니다. 사이즈별로 3~4점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많이 안 팔려서가 아니라, 고객들이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보통 재킷 등 상의 한 벌에 200만~500만원인데 이런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층은 국내에서도 소비수준이 0.1% 안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에게는 ‘흔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바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이들 편집숍은 외관상 청담동에 즐비한 명품 브랜드 매장에 비해 문턱이 낮아 보이지만, 일반인이 실제 구매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티셔츠 한 장에 5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고, 극히 평범해 보이는 바지 한 벌이 보통 150만원 선이다. 
  
  “이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싫어”


  

한 백화점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패션쇼.


  편집숍이나 청담동 명품거리와 별개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명품 세계’가 있다. 바로 초고가 남성정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고위급 정치인이나 기업인, 톱스타 연예인들만이 입는다는 양복 브랜드로 키톤(kiton), 브리오니(Brioni), 로로피아나(Loro Piana),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olini) 등이 있다. 이 브랜드는 모두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기업인 중에서도 대기업 오너일가 수준은 돼야 입는다는 이들 브랜드는 일반 백화점에 매장이 별로 없다. 고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신라호텔 아케이드와 하얏트호텔 아케이드다.
 
  사실 신라호텔 아케이드는 국내 VIP 고객들이 조용한 쇼핑을 즐기는 명소다. 언제 방문해도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적하지만, 고객 한 명이 방문하면 한 번에 수천만원을 쓰고 갈 정도로 상류층만이 즐겨찾는 장소다.
 
  이곳에 입점해 있다면 ‘최고 중의 최고 명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신라호텔 장우종 홍보팀장은 “신라 아케이드 입점은 ‘국내 최고의 명품’을 기준으로 한다”며 “상류층이 즐겨찾는 브랜드만으로 채우고 있으며,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명성이 쇠한 브랜드는 퇴출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입점한 여성 의류 브랜드는 ‘에르메스’, ‘이세이 미야케’, ‘지안프랑코 페레’, ‘아크리스’, ‘하츠’, ‘피아자 셈피오네’가 전부다. 이세이 미야케와 하츠는 30~50대 부유층 여성이 선호하는 브랜드이며, 지안프랑코 페레는 수천만원대의 모피를 판매한다. 남성복은 ‘키톤’, ‘브리오니’, ‘로로피아나’가 있다. 핸드백 브랜드로는 악어가죽 브랜드 ‘콜롬보’와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가 있다. 콜롬보는 악어가죽 제품으로 이미 유명하고, 가방 하나에 기본 500만원 이상인 고가 가죽브랜드 발렉스트라는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함ㆍ신혼여행가방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이곳에서 옷 한 벌 사 입고 핸드백 하나 사면 수천만원이 쉽게 넘어간다.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 아케이드도 마찬가지다. 키톤, 브리오니, 에르메네질도 제냐, 라르디니 등 초고가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이들 브랜드는 갤러리아 명품관에도 입점해 있지만, 실제 고객층인 40~60대 남성은 번잡하지 않은 호텔을 더 선호한다.
정장 한 벌 가격의 경우 가장 저렴한 것은 700만~800만원대도 있지만 이 매장을 찾는 사람의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대략 10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1000만~2000만원대의 정장이 주력이며, 비싼 것은 3000만~4000만원짜리도 있다.
  
  
  명품은 왜 비싼 것일까?
 

명품 남성복 브랜드 ‘브리오니’의 모델. 정장 한 벌 가격이 1000만원 이상이다.


  한 남성 브랜드 관계자는 “잘 알려진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휴고 보스’ 등은 명품 슈트에 갓 입문한 사람이 선호하는 브랜드이고, 어느 정도 명품 슈트에 익숙해진 사람은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키톤과 브리오니 등 최고급 슈트에 대해서는 “한 번 입어보면 가벼움과 부드러움, 편안함 때문에 다른 슈트를 입을 수 없다”며 “옷장을 키톤이나 브리오니로 채울 수 없는 일반인에게는 아예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명품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국내에서 처음 ‘명품’이란 말이 유행하던 1990년대~2000년대 초, 국내 최초의 명품전문 백화점이었던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프라다 핸드백은 60만~100만원, 휴고 보스 남성정장은 150만원 선이면 살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도 조금 무리하면 가능하던 금액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품 옷 한 벌 값이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을 훌쩍 넘을 정도다.
 
  한 수입 브랜드 관계자의 이야기다. “수입 명품 브랜드라서 비싼 게 아닙니다.” “백화점에 나가 보면 국내 브랜드도 정장 한 벌에 100만원 전후고, 디자이너의 이름이 붙은 브랜드라면 150만~200만원 하는 게 보통이에요. 원가는 얼마 안 하면서 유통비용 때문에 비싸진다는 것도 낭설이에요. 예전엔 일부 브랜드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선 중저가인데 여기 와서 비싸게 판다’는 소문이 난 적도 있는데, 요즘은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요즘은 소비자들이 외국을 밥 먹듯이 드나들 듯하는데, 그리고 인터넷으로 해외매장 가격이 다 오픈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요. 명품의 가격은 유통이 아닌 생산 공정에서 형성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명품 브랜드 제품의 미국ㆍ유럽 매장가와 우리나라 매장가의 차이는 10~20% 이내라고 한다.
 
  디자인과 소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여성복 대신 비교가 쉬운 남성복의 가격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국내 1위의 남성복업체인 제일모직에 문의했다.
 
  제일모직의 최고급 양복 란스미어는 가격대가 300만원부터 2000만원까지 다양한데, 일반 양복보다 비싼 이유는 원단 때문이라고 한다. 란스미어는 ‘170수’ 원단으로 만든다. 170수란
양모 1g으로 170m의 실을 뽑아낸다는 의미. 그만큼 가늘고 부드러운 실로 원단을 직조한다는 것이다. 제일모직 노재용 홍보팀장의 설명이다. “170수는 제일모직이 2002년 세계 최초로 생산에 성공한 제품으로 실 굵기는 머리카락의 1/7이고, 최고급 양의 어깨부위 털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양복 한 벌을 만드는 데 2500마리분의 양털이 들어갑니다.”
 
  란스미어 한 벌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양모의 품질 개발을 위해 호주의 한 목장과 10년 이상 유대관계를 맺고 품종 개선-이 중 가장 품질이 좋은, 다른 양에 비해 200배 이상 비싼 양을 구매-최고급 양의 어깨부위 털만 선정-특화된 10가지의 핵심기술을 적용해 170수 실을 뽑아 원단 직조-디자인-재단-바느질까지 전문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이뤄진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한결같은 설명은 상위 0.01%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생산원가 자체가 비싸다는 것이다.
  
    낯선 이름의 명품 사기 사건 떠올라
 
  취재 중 계속 2006년의 ‘빈센트&코’와 ‘지오 모나코’ 사건이 떠올랐다. 빈센트&코는 2006년 처음 국내에 선보인 브랜드로, 100여 년간 유럽 왕실에만 납품해 온 스위스산 명품시계라며 서울 청담동에 화려한 매장을 열고 연예인들을 초청해 론칭행사를 열기까지 했다.
 
  미디어 PR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지오 모나코 역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명품시계라며 입소문을 탔다. 이들 두 브랜드의 시계는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최저 300만원, 최고 수천만원에 팔려나갔다. 그런데 이게 모두 사기였다. 경찰이 경기도 한 업체를 덮치니 그곳에서 ‘명품 브랜드의 시계’가 대량 만들어지고 있었다. ‘낯선 이름의’ 명품이 국내에 물밀듯이 상륙하던 시기와 맞물려 사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졌고 대기업들이 신용을 걸고 명품 유통에 나서면서 그런 위험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말 그 비싼 값을 제대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20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이 정말 괜찮은 10만원짜리 가방의 200배 효용이 있는 것일까.⊙

 

                  - 글 : 權世珍 月刊朝鮮 기자  -

 

-> 월간 조선에서 위의 글을 읽고 블로그님들은 명품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이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명품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제 되로 알아야 한다는 이끌림에 따른 것입니다. 이 글이 여기에 자리하기엔 어쩐지 좀 망서리면서도 정보이기 때문에 공유하고저 합니다.     - 소 나 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