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 *-

paxlee 2010. 10. 9. 18:03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

 

알레산드로 멘디니 그가 디자인하면 가구도 말을 한다
사람 얼굴의 와인 병따개 상어·개구리등 형상화한 형형색색의 바닥재…
제품에 스토리를 입혀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남친' 있는 병따개, 족보 있는 의자… "내 디자인은 이야기 보따리"
와인 병따개 실제 모델은 내 여자 친구와 나…
병마개·후추통 등에 응용 아예 '자매'까지 만들어 줘
내 창의력의 비결은 남의 얘기 잘 듣는 것…
난 완벽하지 못해 항상 불안, 내가 최고라고 여기면 끝...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셔츠의 윗단추까지 꼭 채운 그는 “일은 항상 책상에서만 한다”고 말했다. / LG하우시스 제공

 

세계 디자인 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78·사진)를 인터뷰하러 간다고 했더니 동료 기자가 "멘디니?"하고 되물었다. "거 있잖아요, 얼굴 모양을 한 와인병 따개, 그걸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멘디니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병 따개를 본 기억은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방용품회사 알레시(Alessi)가 생산하는 '안나 G.'라는 이름의 깜찍한 와인 오프너는 전 세계에서 1분에 1개꼴로 판매되면서 1000만개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멘디니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31년생. 팔순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가 한국을 찾았다. 이탈리아 사람, 게다가 디자이너라고 하면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머리 모양과 차림새부터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과 외모가 자유분방하다는 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멘디니는, 재킷 속에 받쳐 입은 셔츠의 맨 윗단추까지 꼭꼭 잠근 채, 공무원처럼 단정한 차림이었다. 여덟 살 아래인 동생 프란체스코 멘디니(Francesco Mendini)도 함께 왔다. 두 형제는 밀라노에 있는 디자인회사 '아틀리에 멘디니'를 공동 운영한다.

"우리 형제는, 아마도 자유분방한 나라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에서 제일 정리정돈을 잘하는 두 사람에 꼽힐걸요. 창의적인 일을 한다고 지나치게 로맨틱하거나 약속도 잘 안 지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정확한 걸 좋아하고 시간 허비하는 걸 싫어합니다. 양치질하는데 영감이 떠오르거나 기발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은 어디까지나 책상에 앉아 합니다."

그는 필립스, 까르띠에, 스와치, 에르메스, 알레시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디자인 컨설팅을 해주었다. 최고의 품질과 기술, 디자인을 자랑하는 이 브랜드들도, 자신들의 제품에 플러스 알파의 가치를 더하기 위해 이 거장을 찾는다. 19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한 밀라노의 사무실에서, 지금도 컴퓨터 대신 종이와 연필로 스케치하고, 이메일 대신 편지를 쓴다는 이 '아날로그 세대'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빌리는 것이다.

 

 

인터뷰는 서울 강남에 있는 LG하우시스 매장과 그가 묵고 있는 하얏트 호텔의 1층 커피숍에서 장소를 바꿔가며 진행됐다. 이번에 방한한 이유는 바닥재, 창호, 벽지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LG하우시스가 보통의 바닥재보다 1.5배 비싼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디자인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상을 주로 쓰는 멘디니가 바닥재를 디자인하다니, 바닥이 벌떡 일어나서 춤추는 게 아닐까' 하고, 처음엔 좀 냉소적인 생각으로 갔었다. 정말로 넥타이나 스카프로 만들어 한 조각만 둘러도 100m 전방에서 눈에 확 띌 것 같은 색채의 파도였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음, 한국 사람들은 차분한 색을 좋아하는 편인데, 과연 이렇게 화려한 바닥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처음엔 깜짝 놀랄지 몰라도 한 번쯤 그 공간을 생각해 보겠지요. 그리고 이걸 바닥 전부에 깔아야 할 필요도 없어요. 하얀 바닥의 한쪽만 써도 되고 소비자들이 마음껏 색상과 패턴을 골라 재구성할 수 있지요."

1994년 선보인 독일 하노버의 버스 정류장.

 

멘디니의 디자인 개발 이야기를 들으며, 고정관념을 벗지 못하는 범인(凡人)으로서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가령 '멘디니 바닥재'는 정사각형, 마름모 등 5가지 기본 패턴이 있다. 기자 눈에는 그냥 사각형이요, 기하학적 무늬에 불과한데, 각각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가오리, 농어, 가자미, 상어, 그리고 개구리를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45개의 기본 색상이 제시돼 있다. 이 패턴과 색상을 이리저리 조합해 총 1만3000종의 다른 바닥을 만들어낸다.

또 개구리 패턴을 노랑-연보라색으로 반복한 바닥에는 '왈츠', 회색-베이지 계열로 반복한 바닥에는 '스윙'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자미에서 따온 마름모 패턴과 상어에서 따온 정사각형 패턴을 섞은 바닥에는 '탭댄스', 가오리 패턴을 노랑-빨강-분홍-하늘색 등으로 조합한 바닥에는 '플라멩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와인 병따개에도, 바닥에도, 의자에도 감정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세계적 히트 상품인 와인오프너 '안나 G.'를 저도 좋아합니다. 어떻게 사람 모양의 와인오프너를 생각해냈나요?

"(팔을 들면서) 어릴 적에 삼촌이 팔을 이렇게 높이 들면서 와인 따는 걸 볼 때마다 꼭 발레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는 순간이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졌지요. 그래서 와인오프너에 그런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생명이 없는 오브제(물건)에도, 사람을 보는 것처럼 얼굴 표정을 넣는 걸 좋아한답니다."

멘디니는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연결시키는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해왔다. 세계에서 제일 예쁜 와인오프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안나 G.'를 보면, 집에 혼자 있어도 마치 친구랑 있는 것 같은 친근감을 준다.

멘디니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집은 보다 보호받는 곳이어야 한다"면서 "나는 보다 감정이 드러나고 느림의 미학(美學)을 자극해주는 오브제들로 채워진, 그런 집안 공간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멘디니의 디자인 철학에서는, 가구도, 생활 소품도 각각 자신의 스토리를 가진 완결된 건축물과 다름없다.

―'안나 G.'는 여자친구 안나 질리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면서요?

"네. 지금도 밀라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지요. 아~. 내 동생이 옆에서 다 듣고 있으니까 더 깊은 사연은 못 들려주겠고…(웃음).

1994년에 선보인 '안나 G.'는 원래 네덜란드 전자회사 필립스가 기자 회견을 준비하면서 기자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으로 만든 것이었어요. 이탈리아의 주방용품회사인 알레시가 만들었는데, 기념품을 열쇠고리로 할까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좀 색다른 와인오프너로 정하고 제가 디자인한 것이지요. 5000개 한정품으로 생산했는데, 너무 반응이 좋아 더 살 수 없겠느냐는 문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알레시가 아예 제품화해서 내놓게 된 것이지요."

알레시는 '안나 G.'의 성공에 힘입어 와인 병마개, 후추통, 양초꽂이, 주방용 타이머 등에도 '안나' 이름을 붙인 '안나 자매'들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멘디니는 "안나가 대가족을 이뤘다"고 표현하면서 껄껄 웃었다.

'안나 G.'에게 남자 친구도 생겼다. "안나의 짝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멘디니는 3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2003년 자신을 형상화한 '알레산드로 M.' 와인오프너를 내놨다. 안나보다 키도 작고, 짧은 머리를 한 모습이 영락없이 멘디니 자신이다.

대가족을 이룬 '안나 G.'와 달리, '알레산드로 M.'은 똑같은 형태의 와인오프너에서 계속 옷을 바꿔 입는 후속 제품을 내놓는 식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멘디니는 "알레산드로 M.은 여행 가고, 일하고, 파티 가는 등 계절과 장소에 따라 멋지게 보이고 싶어하면서 옷을 자주 바꿔 입는 남자"라고 제품의 이야기 보따리를 펼쳤다. 가령 2005년에는 각각 다른 옷을 입혀 뮌헨, 베이징 등 도시 이름을 붙인 한정판을, 2006년에는 요리사, 호놀룰루, 시에나 등의 이름을 달고 각각 다른 옷을 입힌 제품을 내놨다. 2008년에 '선 드림'이라고 부제를 단 제품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브라질몽골의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데 쓰인다. 얼굴에 베니스 가면을 쓰고 어릿광대 복장을 한 제품은 물의 도시 베니스의 재건을 돕는 데 쓰인다.

제품에 이야기를 덧입히고 감동을 주면서 소비자의 감성과 영혼에 호소하는 게 최신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멘디니의 내공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의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축적한 예술적 안목

―형제가 함께 일하면서 비슷한 길을 걷는 걸 보니,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신 건가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예술가 집안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앤틱 가구를 수집하는 게 취미였어요. 어머니도 그림 모으는 걸 좋아하셨지요. 엔지니어였던 할아버지도 그림 수집을 좋아하셨고, 그 영향으로 삼촌 역시 엔지니어였지만 그림을 수집해서 아예 개인박물관까지 열었어요. 그 덕에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많이 보고 자랐어요. 이탈리아에는 그처럼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도 예술을 좋아하고 예술품 수집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알레산드로 멘디니(오른쪽)가 동생 프란체스코(왼쪽)와 함께 자신이 디자인한 베스트셀러 와인 오프너 ‘안나 G.’와 ‘알레산드로 M.’의 대형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진한 기자

 

―왜 그렇게 생동감 넘치고 화려한 색채를 좋아하시나요?

"20세기 초 큐비즘(입체파)을 비롯한 아방가르드(다다이즘 등 20세기의 혁신적 예술 운동)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그 작품들의 색깔이 무척 강렬하지요. 어린 시절부터 그런 그림을 좋아했고, 쭉 보면서 자라다 보니 제 작품에도 색상을 넣기 시작한 것이죠. 테크놀로지는 색상이 없지요. 하지만 자연에 가까운 알록달록한 색상을 넣으면서 물건에 온기를 불어넣고,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되지요."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1978년 작)도 마치 가구에 그린 그림처럼, 강렬한 색상이 인상적입니다(프루스트는 앤틱 의자의 틀에, 형형색색의 점묘화로 그려진 천을 씌우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붙인 1인용 안락의자다). 비슷한 의자를 여러 개 봤는데 지금까지 몇 개나 만들어졌나요? 매번 만들 때마다 색채가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나요?

 

"수제품으로는 50~60개 정도 만들어졌어요. 흰 바탕으로 된 18세기풍의 앤틱 의자 틀을 가져다, 그 위에 점묘화를 그리듯 손으로 붓 터치를 하면서 색상을 입힙니다. 주문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검은색과 노란색이 더 섞이기도 하고, 매번 색감(色感)이 달라지지요. 점묘 작업은 미술을 전공한, 프란체스코의 딸 클라우디아가 합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제가 전체 마무리를 합니다. 곧 프루스트 의자에 대한 '족보책'을 만들 작정입니다. 누구에게 팔려가서 현재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를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그걸 청자(靑磁)로 만들고 있고, 이탈리아 베니니사(社)에서는 유리로 만드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수제품과는 별도로, 이탈리아 가구회사 카펠리니사(社)에서 인쇄한 천을 이용해 더 많이 생산도 하고 있습니다."


1 와인 오프너 ‘안나 G.’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주방용품에까지 응용돼 대가족을 이룬 알레시사(社)의 안나 시리즈. 2 앤틱 의자의 틀에, 형형색색의 점묘화를 덧입힌 멘디니의 1978년 작 ‘프루스트’ 의자.

 

멘디니는 기존에 존재하던 오래된 '기억'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입혀 재표현해내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이 같은 리디자인(redesign)을 통해 낡고 오래된 것들이 영혼과 감성(感性)을 부여받고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프루스트 의자 역시 점묘주의와 결합하기 전까지는 여느 가구들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멘디니는 리디자인을 통해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가족 같은 조직을 유지

―21세기는 창의력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창의적 교육'이나 '창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곧 브랜드가 되는 최고의 '창의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다 창의적이라면 세상이 정말 아름답겠지요. 하지만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 자유가 중요하겠지요."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것에 비해, 또 세계적 기업들과 일하는 것에 비해 20명 남짓한 회사 규모는 너무 작지 않나요?

"우리 사무실은 큰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해내는 공장 같은 곳이 아니라, 일종의 연구소 같은 콘셉트입니다. 어떤 디자인 회사에는 100명의 디자이너가 있어 트렌드를 잡아내고, 마케팅하고, 또 기존에 했던 걸 변형해서 새 프로젝트를 해내지만 우리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요. 트렌드를 '창조'하고, 또 제시하려고 노력하지요. 우리가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있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늘 한 가지 자재만 쓰는 게 아닙니다. 매번 프로젝트마다 다른 자재를 쓰고, 그렇게 다른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회사 규모를 더 키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100명이 있으면 서로 얘기하게 되질 않아요. 명령 체계가 작동하는 피라미드 조직이 되고 말지요. 저희는 20여명 중에서도 정직원은 12명에 불과합니다. 서로 가족 같아요.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한 시간은 아침에 직원들과 함께 커피 마시는 시간입니다."

―아침에 티타임을 가지면서 회의를 하는 건가요?

"아니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아침 몇 시라고 정해진 시각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어요.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자유롭게 출퇴근해도 하루에 7~8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각자 맡은 일을 해내지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젊은 디자인 감각과 창의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얘기하고 있다. 뒤쪽 벽면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알록달록한 바닥재가 걸려 있다. / 이진한 기자

 

―재충전은 어떻게 하시나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말에는 건축 잡지, 디자인 잡지를 특히 많이 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신기술이 세상을 많이 바꾸지 않았나요?

"저는 그렇지만, 동생은 아주 일찍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는 작업도 있지만, 아직도 절반은 전통적 방식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디자인이란 세상을 품격 있게 바꿀 수 있는 것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디자인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되, 품질을 갖춘 것. 어떤 제품은 기술만으로 개발할 수 있지만, 와인오프너 같은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다르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가 있지요. 좋은 디자인이란 시(詩)와 같습니다. 어떨 때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어떨 때는 미소와 로맨스를 줍니다. 물론 하이테크 제품 중에도 애플사의 제품처럼 기술과 디자인을 고루 갖춘 제품이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창의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전 궁금한 게 무척 많아요.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기를 좋아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나이 들면 자기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남의 얘기 듣는 걸 좋아합니다. 오늘은 내가 인터뷰를 당했지만 다음 번엔 내가 기자님 인터뷰를 할 거예요."

―디자이너들은 대개 자유분방하게 살고 기발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들 생각하는데, 잘 정돈된 책상 앞에서 일을 하신다고요?

"일이란, 우리가 체력 단련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해보고, 문제점이 뭔지를 발견하면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다시 해보고 그럽니다. 대신 저는 일을 다 끝낸 후에는 지나친 자아비판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절대 완벽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내가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걸로 끝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이 있겠지만, 저는 늘 완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 나가 강의하는 것도 잘 하지 않습니다. 혹시 강의 중에 잘못된 것을 전달할까봐…."

얼마 전 위클리비즈가 인터뷰한 '실패학의 대가' 잭디시 세스(Sheth) 미국 에모리대 교수는 "좋은 기업이 병들어가는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자기 파괴적 습성이 '오만'이라고 했다. 그에 비춰보면 멘디니는 실패로 치닫는 자기 파괴적 습성을 원천적으로 경계하는 성격이었다.

―요즘은 어떤 기업과 일을 하고 있나요?

"20개 남짓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보석업체 까르띠에의 의뢰로, 전 세계에 순회 전시할 보석 기둥도 만들고 있지요."

―평생 현역으로 일하실 계획인가요?

"내가 디자인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50세였습니다. 그 전엔 잡지 일을 주로 했지요.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건축 및 디자인 잡지 세 곳에서 각각 5년씩, 15년간 일했습니다. 기사만 쓴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기획도 하고 프로젝트도 맡았지요. 늦게 시작했으니, 늦게까지 일하는 게 당연하지요."

창의적 DNA 앞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현대 디자인 흐름 뒤바꾼 강렬한 색채의 마술사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누구인가?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밀라노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부터 1985년까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잡지인 '카사 벨라(Casa Bella)' '모도(Modo)''도무스(Domus)' 편집장을 지냈다.

멘디니는 특히 1979년에 '스튜디오 알키미아', 1980년대에는 진보적인 디자인 그룹 '멤피스'의 일원으로서 급진적인 디자인 운동을 주도, 디자인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멤피스 디자인 그룹'은 그전까지 디자인의 주류를 이뤘던 기능주의에 맞서, 보다 장식적이고 다양한 형태와 강렬한 색상을 강조하면서 현대 디자인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1978년작 '프루스트' 의자, 1994년에 내놓은 알레시사(社)의 와인 오프너 '안나 G.'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영구 소장돼 있다. 가구, 생활용품, 인테리어용품 등을 디자인한 것 외에도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의 리노베이션, 일본 히로시마 항구의 기념탑, 네덜란드 그로닝겐 미술관 등의 건축 작업도 했다.

1979년과 1981년에 최고의 디자인에 주어지는 이탈리아의 황금콤파스(Compasso d'Oro)상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기사 작위를, 미국 뉴욕건축연맹에서 명예훈장을 받았다. 지난 1989년부터 밀라노에서 동생 프란체스코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회사 '아틀리에 멘디니'를 운영하고 있다.

                        - 글 / 강경희 조선일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