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한국등반사
2007년 66세 남자·59세 여자 최고령 등정자도 나와
21세기 새 천년을 맞은 2000년 들어서면서 한국 산악인들에게 에베레스트는 이벤트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더욱이 1990년대에 비해 에베레스트를 찾는 상업등반대가 많아짐에 따라 등정률 또한 높아졌다. 이는 셰르파들이 아이스폴 구간뿐만 아니라 옐로밴드, 제네바스퍼, 힐러리스텝에 이어정상에 이르기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하면서 안전뿐 아니라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해 봄 대한산악연맹은 한 해 동안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다는 목표 하에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손중호)를 파견하고, 충북연맹(대장 윤홍건)과 울산연맹(대장 김영문), 대구연맹(대장 장병호) 역시 새 천년을 기념해 세계 최고봉 도전에 나선다. 등반 결과 봄시즌 대산련 원정대 대원2명이 등정에 성공하고, 가을시즌 충북연맹 팀(3명 등정)과 울산연맹 팀(2명 등정)은 로체 등정에도 성공해 한 시즌 2개 고봉 등정을 기록했다. 이렇게 네팔 쪽으로 정상을 공략한 원정대들이 모두 등정에 성공한 반면 대구연맹 팀은 해발8,500m까지 올랐으나 강풍에 밀려 더 이상의 등반을 포기해야 했다.
베레스트 등반은 2001년 한 팀도 나서지 않아 멈칫하는 듯했으나 2002년 봄 다시 불붙었다. 그 해 봄 대구산악연맹 팀(대장 김보열)이 북릉~북동릉 루트로 2명 등정하고, 월드컵성공기원 원정대(대장 엄홍길)는 남동릉 루트로 4명이 등정했다. 그 해 가을 시즌 등반한 충남연맹 팀(대장 이세중)과 2003년 봄 등반에 나선 건국대산악회 팀(대장 임종하)은 실패로 막을 내리고, 2003년 봄 서울시연맹 원정대(대장강태선)가 북릉~북동릉 루트로 엄홍길 등반대장을 비롯한 3명의 대원이 등정하는 등, 등정의 성패가 반복되더라도 큰사고 없이 이어지던 에베레스트 원정은 2004년 봄 인명사고로 충격을 준다.
2004년 봄에는 세계 각국에서 무려 63개 팀이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그중 남동릉 루트에 27개팀, 북릉~북동릉 루트에 32개팀이 도전하는 등, 90% 이상이 노멀루트에 몰려 대원 377명 중 165명이 노멀루트를 통해 정상에 올라서는 기록을 세운다. 한국 팀들의 성적도 좋았다.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원정에 나선 인하대 팀(대장 천병태)은 남동릉으로 대원 2명이 등정에 성공하고, 계명대 원정대(대장 배해동)역시 북릉~북동릉 루트로 2명이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계명대 팀의 박무택 등반대장은 정상에서 보안경을 벗고 캠코더를 촬영하던 중 설맹에 걸린 직후부터 등반이 어려워졌다. 결국 박무택 등반대장은 하산길에 탈진해 설사면에 쓰러진 채로 목숨을 잃고, 홀로 하산하던 장민 대원은 실종됐다. 여기에 마지막 캠프(C5·8,300m)에서 대기하다 사고소식을 듣고 구조에 나선 백준호 부대장마저 제5캠프 출발 20시간 뒤 “박무택과 함께 하산 중”이라는 무전을 보낸 뒤 실종되고 말았다. 엄홍길, 박영석의 뒤를 이을 고산등반가로 인정받아 온 박무택 등반대장은 사고 이튿날 홀로 등정 길에 나선 오은선에 의해 세컨드 스텝 위 해발 8,750m지점에서 발견되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 ▲ 60대 8명으로 구성된 실버원정대가 출국에 앞서 발대식을 하고 있다. 66세의 김성봉 대장이 등정에 성공했다.
- 박무택과 함께 캉첸중가(2000년), K2(2000년), 에베레스트(2002년) 등 여러 고봉을 등정하며 혈육처럼 가까이 지내온 엄홍길은 이듬해 2005년 봄 계명대산악회원으로 구성된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시신수습 등반에 나서 박무택의 시신을 찾았으나 시신을 베이스캠프로 내리고자 하는 원래 계획이 2차 사고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판단에 등반로를 벗어난 장소로 옮긴 뒤 돌멩이로 묻어놓는다. 같은 시즌 남동릉으로 정상을 공략한 한양대 원정대(대장 김종민)는 대원 4명이 정상에 서는 데에 성공한다.
2006년 봄은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가장 많은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해였다. 동국대산악회 팀(대장 박영석), 부산산악연맹 팀(대장 홍보성), 대전산악연맹 팀(대장 윤건중), 제주산악연맹 팀(대장 장덕상), 제주 설암산악회 팀(대장 이창백), 전남대산악회 팀(대장 백두인) 6개팀은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루트로 도전해 13명이 등정에 성공하고, 네팔 쪽 남동릉 루트로 등반한 중동고산악회 팀(대장지훈구), 천안산악연맹 팀(대장 황순광), 양산합동대(대장이상배)는 5명의 등정자를 배출했다. 993년 남동릉 루트로 등정한 바 있는 박영석 대장은 이 등반에서 남동릉으로 하산하는 횡단 등반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2007년 봄 시즌에는 에베레스트 남동릉으로 3개 팀 19명이 도전해서 6명이 등정에 성공한다. 공개 모집을 통해 대원을 선발한 김성봉 대장과 7명으로 조직된 한국산악회 실버원정대는 전 대원이 60세 이상으로 김성봉 대장(66)과 이장우 대원(63)이 등정했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1년 뒤 이장우 대원은 탈진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힐러리스텝 구간에서 뒤돌아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성봉 대장은 현재국내 최고령 등정자로 기록되고 있다.
전문등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실버원정대에 참가한 대원들이 원정에 앞서 한 해 동안 암빙벽 등반을 배우고, 전지훈련 삼아 에베레스트 부근의 트레킹 피크인 임자
체를 등반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쳤을 뿐 아니라 등정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베이스캠프에 들어선 이후 제컨디션을 유지한 대원이 몇 안 되고, 대원들 간의 협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원정을 끝마친 1년 뒤에 이장우 대원의 등반 내용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산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 ▲ 30년만에 에베레스트를 방문한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이 남서벽 원정대원들과 페리제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2007년 봄.
- 2007년은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때문에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은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하며 지난 30년의 추억을 되짚기도 하고 베이스캠프에 캠프를 구축한 여러 원정대를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뜻깊은 해를 맞아 성과도 좋았지만 끔찍한 인명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한국도로공사 노조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박상수 대장의 희망원정대는 로체 서벽과 에베레스트를 동시에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김미곤과 윤중현은 최초로 에베레스트-로체 개인 연속 등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양손가락장애인 김홍빈은 이 두 사람과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허영호는 자신의 등정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등반에 나서 개인 통산 3회 등정으로 엄홍길과 함께 한국인 에베레스트최다 등정 기록을 세웠다.
같은 시즌에 남서벽 원정대는 신 루트 개척을 목표로 박영석 대장과 7명의 대원이 도전했다. 남서벽 신 루트 구간은 쿰부빙하 상의 제2캠프(6,500m)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2,000m가 넘는 거벽으로, 박영석 대장에게는 1991년과 1993년에 이은 세 번째 도전이었다. 그러나 셰르파들의 스트라이크와 악천후로 지연되던 등반은 오희준과 이현조 두대원이 제3캠프(7,900m)에서 머물고 있던 중 눈사태에 휩쓸려 1,00m 아래 빙하로 추락하면서 비통하게 막을 내렸다.- 이런 사고 속에서도 에베레스트 북릉~북동릉 루트로는 2개 팀 21명이 도전해 11명이 등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김해 플라잉점프 원정대는 김재수 대장과 10명이 등정해 단일 팀 최다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등반에서 송귀화는 59세로 한국 여성 최고령 등정자가 되었으며, 고미영(2009년 여름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추락사)은 스포츠클라이머에서 고산 등반가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었다. 경남 양산의 이상배는 그동안 네 차례에 걸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청소등반대에 참가한 다섯 번째 원정에서 등정에 성공했다.
2008년은 중국 당국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베이징 올림픽성화 봉송을 이유로 갖가지 제재를 가함에 따라 티베트 쪽뿐만 아니라 네팔 쪽 등반도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네팔 쪽은 제3캠프(6,800~7,000m), 티베트 쪽은 제2캠프(7,700m)를 끝으로 성화 봉송 팀이 등정에 성공하기를 기다려야 했고, 결국 5월 8일성화 봉송 팀이 등정에 성공한 이후에 등정이 시도되었다.
- ▲ 2009년 박영석 팀이 개척한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실선).
-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경기도연맹 팀(대장 남상익), 전북연맹팀(대장 현권식),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원정대(대장 손영조)는 봄 시즌 7명이 등정에 성공했고, 홀로 원정대를 꾸린 김영미는 경기도연맹과 함께 등정해 오은선에 이어 한국여성으로 두 번째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하는가 하면, 개인적으로 원정대를 꾸린 정인권씨가 등정에 성공했다. 원정대들은 로체에서도 개가를 올렸다. 경기도연맹 팀은 대원 3명이, 전북연맹 팀은 대원 2명이, 그리고 한산 전북지부 팀은 대원 1명이 로체 등정에 성공했다.
2007년 봄, 촉망받는 산악인 오희준과 이현조 대원을 눈사태 사고로 잃은 박영석 남서벽 원정대는 기후가 안정적인 봄 시즌 대신 눈이 많은 가을 시즌 등반에 나섰다. 이는 벽에 눈이 많이 붙어 있으면 등반이 훨씬 수월하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원정은 순탄하게 이어져 해발 8,400m 높이의 제5캠프까지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엄청나게 불어대는 강풍에 텐트를 설치하는 데에 실패하고, ABC(6,400m)에 강풍이 몰아쳐 본부텐트가 파손되는 등 악천후가 지속돼 등반을 접어야 했다.
2009년 세계 최고봉 최난벽에 한국 루트 탄생
2009년은 에베레스트에 ‘코리아 루트’가 탄생했다. 인천연맹 원정대(대장 전병만)는 대원 3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고 같은 날 로체 정상에도 대원 2명이 등정에 성공하는가 하면, 인천대 원정대(대장 유주면) 대원 2명이 정상에 올라 단일 대학으로서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리는 가운데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의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박영석 대장이 대원 3명과 함께 정상에 올라섬으로써 남서벽에 신 루트를 내는 데에 성공한다. 박영석 대장 개인으로는 다섯 번째 남서벽 도전이었고, 1993년 등반에서 남원우, 안진섭 대원이 추락사하고,2007년 오희준, 이현조 대원이 눈사태사고를 당한 바 있기에 더더욱 감격스러운 쾌거였다.
- ▲ 2007년 남서벽 등반중 사고를 당한 고 오희준 대원과 이현조대원 (오른쪽).
- 2010년 에베레스트 원정은 이상기온에 의한 악천후의 연속으로 시즌 막판에 이루어졌으나 도전한 3개 팀 모두 등정에 성공한다. 정승권등산학교 바름산악회 원정대(대장 윤왕용), 제천 국제한방엑스포 성공 기원 원정대(대장 허영호), 창립50주년 기념 동아대원정대(대장 성기진) 3개 팀은 여느 해와 달리 5월 중순까지도 등정자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5월 17일 오전 8시40분 허영호 대장과 아들 재석씨를 시작으로 오후 12시 동아대팀의 장재용·김남구 대원에 이르기까지 3개 팀 9명이 정상에 서면서 성공리에 끝났다. 허영호 대장은 이 등반으로 4회째 등정을 기록하는가 하면, 아들 재석군과 함께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렇게 1977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부터 시작된 한국에베레스트 원정은 지난해 봄까지 73개팀, 119명(2회 이상등정자 중복 합산)이 세계 최고봉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그중 허영호가 4회 등정(1987년 동계 4등, 1993년 횡단등반,2007년 남동릉, 2010년 남동릉)으로 한국 최다 등정을 기록하고 있고, 엄홍길(1988년 남릉, 2002년 남동릉, 2003년북릉~북동릉)과 박영석(1993년 남동릉, 2006년 횡단등반,2009년 남서벽 신루트), 이 3회 그리고 이인(1997년 북릉~북동릉, 2002년 남동릉), 박무택(2002년 남동릉, 2004년 북릉~북동릉 등정 후 하산 중 탈진사), 김재수(1990년 남동릉,2007년 북릉~북동릉) 등의 산악인이 2회 등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사이 목숨을 잃은 산악인도 여러 명이다. 1986년 크로 니산악회 남서벽 원정대 셰르파가 등반도중 추락사를 처음으로 2007년 남서벽 원정대 대원 2명이 사망한 사고에 이르기까지 대원 8명이 목숨을 잃고, 등반을 도와준 셰르파 4명이 사고를 당했다.
에베레스트에는 2009년 박영석 원정대의 남서벽 신 루트를 포함해 18개 루트와 5개의 변형루트가 개척돼 있다. 그러나 등정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원정대들은 노멀루트로 등반에 나섰다. 1995년 남서벽 보닝턴 루트로 한국 초등에 성공한 경남연맹 원정대, 2009년 남서벽에 새 길을 낸 박영석원정대 정도만 난도 높은 루트를 택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원정대들은 특별한 등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네팔 쪽 남동릉이나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노멀루트를 따랐다. 더욱이 1990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상업등반대가 2000년 들어 대폭 늘어나면서 정상까지 로프가 깔리는 것은 물론, 대원과 셰르파가 짝을 지어 등반을 펼치면서 등정률뿐 아니라 안전도 역시 높아졌다는 게 전문 산악인들의 판단이다.
아마추어 가세로 세계 최고봉 등정 붐 더욱 뜨거워질 듯
2011년은 모처럼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한국 산악인이 없는 해다. 그렇다고 에베레스트를 향한 한국 산악인들의 행렬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내년 봄에는 서울 농대산악회가 창립50주년을 기념해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봄 안나푸르나 등정으로 12개 고봉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김창호(몽벨 기술자문·서울시립대 OB)씨 또한 가을 시즌 초오유 등반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내년 봄 14개 거봉 무산소 등정을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소속이 없거나 혹은 아마추어로 활동해 온 등산인들 가운데에도 세계 최고봉을 오르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까지 가세한다면 에베레스트를 향한 행렬은 더욱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게 산악계의 전망이다. 1977년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반대에 참가했던 김병준 전 대한산악연맹 감사의 말마따나 이제 에베레스트는, 특히 노멀루트는 전문산악인의 손을 떠나 아마추어 산악인들을 위한 도전의 대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및 웹사이트 <역동의 히말라야>, <산악연감> 2008(제9호)·2009(제10호)·2010(제11호), <다이내믹 부산 2006 에베레스트 원정 보고서>,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
- 글·한필석 월간 산 부장 / 월간 산 6월호 -
'산악인의 발자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2 *- (0) | 2011.06.24 |
---|---|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1 *- (0) | 2011.06.23 |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한국등반사 [2] *- (0) | 2011.06.19 |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한국등반사 [1] *- (0) | 2011.06.18 |
-* 김재수 대장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궤적 *- (0) | 2011.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