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2 *-

paxlee 2011. 6. 24. 22:18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2   

 

빙하 위의 베이스캠프

8~9일간의 긴 도보 캐러밴을 끝내면 얼음 빙하 위에 잡석으로 뒤덮인 베이스캠프다. 첫 느낌은 ‘장엄하다’가 아닌 ‘황량하기 그지없다’다. 그러던 차에 로라고개(Lho La·6,026m)에서 세락이 무너지며 일으킨 후폭풍의 날가루가 날려 온다. 그렇게 에베레스트는 차갑게 첫 인사를 건넨다. 전 세계에서 모여 든 각국의 등반가들과 네팔 현지 스태프를 포함해 매년 평균 30여 개팀 1,000여 명이 머무는 빙하 위는 하나의 커다란 타운이 된다. 응급진료소, 빵을 구워 파는 베이커리 대형텐트가 오픈하고, 술을 팔러오는 원주민 장사꾼도 있다.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인 뿌자(Puja)를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캠프1으로 등반 전, 아이젠부터 산소호흡기의 레귤레이터와 마스크까지 세심히 다시 한 번 체크한다. 등반 중에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

힘든 등반 후의 휴식이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베이스캠프에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머무른다. 긴 시간 동안 베이스캠프에서 생활은 따분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준비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대원들이 낮잠을 즐기는데 금물이다. 낮에 자면 밤에 잠을 설치게 되고 다음날 운행이 엉망이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러시안 룰렛’ 같은 쿰부 아이스폴을 넘어 캠프1

남동릉의 첫 관문인 아이스폴의 루트 개척은 정부산하기관인 사가르마타 환경보호위원회(SPCC)에서 루트를 만들어 두며, 원정대 한 팀당 미화 3,000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그 위쪽은 각 상업등반대를 이끄는 매니저들이 모여 루트 개설에 대해 협의를 하고 각 팀에서 고정로프와 등반 셰르파를 갹출하여 공동작업을 해왔다. 올해부터 네팔 정부는 캠프2에서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매년 설치하는 안건을 입안했고 빠르게는 내년부터 아이스폴과 마찬가지로 팀당 또는 한 명당 얼마를 징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티베트 측 북동릉은 이미 이러한 형태를 갖추었다.

베이스캠프부터 캠프1(5,900m)까지는 평균 5~6시간 소요되고 캠프사이트는 가파른 얼음 등성을 올라서 플라토로 진입해 크레바스 사이에 설치된다. 아이스폴 지대를 운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무너지는 빙탑에 매년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직업으로 등반하는 셰르파들조차도 아이스폴 운행 횟수를 최소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햇빛이 뜨는 낮시간에 혼돈의 아이스폴은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운행은 새벽 4~5시경 일찍 시작한다. 크레바스를 건너는 알루미늄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긴 것은 10여m 되는 것도 있다. 양쪽으로 설치된 고정로프에 더블로 확보하고 손으로 위로 당겨 균형을 잡으며 건넌다. 훈련이 필요하다. 상업등반대가 베이스캠프에서 이 훈련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본다.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

베이스캠프부터 캠프2(6,400)까지는 약 5km 거리이고, 6,400m 캠프2까지는 평균 4~5시간 걸린다. 대체적으로 눈의 평원으로, 한 시간가량은 몇몇의 사다리를 건너 눕체(7,861m) 북면 방향으로 루트가 나 있으며 그 후는 크레바스가 없는 설면이다.

캠프2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발치에 위치하며 로체 사면으로 나 있는 루트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면 루트를 등반하는 전진베이스캠프(ABC) 역할을 한다. 요리사가 상주하여 식사를 제공하며 화장실은 플라스틱 드럼통에 수거, 베이스캠프로 가져 내려오게 된다.

캠프2에 도착하면 또 한 번의 고소증이 온다. 고소증은 해수면고도에 생활하는 사람이높은 곳에 올랐을 때 저기압·저산소증으로 나타난다. 고도에 따른 산소분압률은 5,5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높이에는 50%이며 정상인 8,848m에는 33%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저기압과 저산소로 인한 증세는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단계는 고산병(acute mountain sickness)으로 두통·불면증·현기증·피로·메스꺼움·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두 번째 단계는 고도로 인한 뇌부종과 폐부종으로, 여기까지로 악화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산소 결핍으로 2단계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손상된다. 2006년 <미국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Medicine)> 2월호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높은 고도에 노출된 등반가일수록 뇌 손상이 컸으며 손상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다.

▲ 캠프3로 오르는 로체 사면에는 인위적인 낙석·낙빙이 떨어진다.
2009년 마나슬루를 등반하던 이탈리아 등반가는 8,000m급 서너 봉우리를 무산소로 오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6,400m 캠프2에서 캠프3(6,900m)로 운행을 나섰다가 고소증세가 나타나 동료들의 도움으로 캠프2로 내려왔고 휴식을 갖는 도중 몇 시간 후 사망했다. 필자는 사망한 등반가를 텐트 안으로 들이는 일을 도왔는데 마치 잠자는 모습이었다. 고소증세에 따른 결과로 죽음이 자기 근처에 와 있어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또한 고산등반을 마치고 귀국 후 자기 휴대폰 번호, 집 현관 전자키 비밀번호 등도 기억하지 못하며 등정 후에는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도 보였다.

그러면 이러한 고소증을 완벽하게 예방할 방법은 없는가? 한마디로 없다. 다만 평균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를 뿐이며 각 대원의 폐활량이 다르듯이 고소증이 나타나는 고도나 증상의 경중도 모두 다르다. 고소증에 관한 연구를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영국의 연구실이 설치되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연구 중이던 의사는 지금까지 고소의학의 연구수준은 아주 낮다고 했다.

서양 등반가들의 경우 아스피린을 상시 복용하는데 이는 적혈구의 증가로 응고되는 피를 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필자도 약을 복용하는데 상당한 거부반응이 있었으나 작년부터 정상등정 전에 아스피린을 먹는다. 다이아목스 등 이뇨제 계열, 혈액순환계의 도움을 주는 비아그라 등이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상업등반대에서는 캠프3부터 운행과 수면 시에 산소를 사용하는데 이 산소를 과신하면 안 된다. 산소공급을 하더라도 8,000m 높이에서는 저기압에 계속 노출되어 부종 증세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고도를 높이고 20~25일간 업다운을 한 후 8,000m대에 진입하는 것이 좋다. 또 충분한 수분 섭취, 수면이 필요하며 체온을 잃지 않게 주의한다.

캠프2에서 저녁노을이 지는 은빛 로체 페이스는 아름답다. 그러나 단단한 얼음으로 된 빙벽을 5~6시간 오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평평한 사면의 빙하 내원을 2시간 오르면 빙벽이 시작된다. 얼음은 단단해 아이젠이 잘 박히지 않는다. 미리 아이젠 피크를 잘 갈아 놓을 필요가 있다.

빙벽을 올라 로체 페이스 상의 캠프3

이곳은 정체 현상이 벌어진다. 아침 일찍 캠프3에 짐을 올려놓고 내려오는 셰르파와 오르는 등반가가 겹치게 된다. 복잡하게 엉켜 자기확보의 실패로 추락사하는 사고가 잦다. 항상 자신의 몸을 안전에 곳에 두고 타 등반가를 배려한다. 어센더를 옮겨 끼울 때에는 이중 자기확보를 해야 한다.

고산등반에서 신체가 필요한 첫 번째 요소가 수분과 음식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식물을 소화해 에너지를 만드는 데에는 또 많은 산소가 소모된다. 배가 부르지 않게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며, 조금씩 자주 먹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호흡은 곧 운행 방식이다. 들숨과 날숨은 스쿠버다이빙의 호흡과 같다. 긴 날숨에 짧은 들숨 그리고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게 꾸준히 운행하는 습관을 국내 산행 때부터 길러야 한다.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하게 된다. 좁은 캠프사이트는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며, 야간에 화장실 처리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모로 된 텐트슈즈는 눈 위에서 신발만큼 마찰력을 갖지 못해 대변을 보러 나갔다가 미끄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매년 평균 한 건씩 발생한다. 텐트 주위로 확보용 보조로프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잡석으로 뒤덮인 캠프4 사우스콜.
고소에서의 텐트 생활은 힘들다. 좁은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운행 준비를 해야 한다. 얼음을 녹여 물을 만드는 시간은 지루하다. 걸이식 스토브와 코펠이 편리하다. 수면 시에는 머리 보온에 특히 신경을 쓰고, 텐트 문의 지퍼를 3분의 1 정도 열어놓아 산소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아침에 두통에 시달린다.

필자의 경우 고소에서의 음식물은 간식을 제외하고는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는다. 베이스캠프에서 된장국, 북어국, 미역국을 끓일 재료를 생야채와 함께 한 끼분씩 포장해 가지고 간다. 고소에서 조리 시간도 줄이고 입맛에도 딱 맞다. 그리고 베이스캠프 위로의 운행에서는 끓인 뜨거운 물만 먹는다. 사실 아이스폴이 있는 웨스트쿰의 운행에서 한낮에는 매우 덥다고 느낀다. 그러 나 기온은 언제나 영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6년 파키스탄에 위치한 울타르Ⅱ(7,388m)를 초등정하고 마지막 캠프에 내려온 일본 등반가는 차가운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급사한 사례가 있다. 무조건 뜨거운 물을 마셔야 한다. 보온병은 필수품이다. 물이 밋밋하다면 좋아하는 차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해 즐긴다.
               
              -  글=김창호·월간山 기획위원·몽벨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