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1 *-

paxlee 2011. 6. 23. 20:34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1

 
“6,000~7,000m봉 등반부터 경험하라”
         네팔 쪽 쿰부 아이스폴~사우콜~남동릉 루트

1989년부터 고산등반을 시작한 필자는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등반을 지속하고 있으며,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8,000m급 봉우리만 13번 등정했고 7,000~5,000m급 6개 봉우리를 세계 초등정했다. 에베레스트 남동릉은 2007년 봄 시즌에 8,500m의 이른바 ‘발코니’까지 올랐으며, 2008년 로체(8,516m) 등반 때 또 한 번의 경험을 했다(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벽 루트는 7,500m 캠프3을 거쳐 7,800m까지 루트가 같다).

고산등반은 잘 닦인 경기장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경기와는 다르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원정등반을 구성하는 함수 속의 변수들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등반으로 끄는 자석 역할을 한다고도 하지만 경험자나 첫경험자 모두에게 불안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이 지척이다. 자신에게 숨어 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어 최고봉으로 오른다.

에베레스트 초등정 루트 남동릉 그리고 친환경 등반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한국 내 원정등반 대행사에 신청서를 제출, 계약선금 일부를 지불했다면 첫걸음을 디딘 것이다. 이미 유럽의 엘부르즈(5,642m)나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를 오른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없다면 반드시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3,000m부터 7,000m 이하의 고도에서 자신의 신체 변화가 어떠한지 잘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출국 전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폐렴을 앓은 경험이 있는지, 충치나 치통·편두통·치질·위궤양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높은 고도에서는 반드시 재발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에베레스트 등반 전에 경험 있는 산악인이나 원정대행사에서는 8,000m급 봉우리 등반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적절한 산은 초오유(8,201m)다. 여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단계적으로 올라가면서 등정의 기쁨으로 열정은 더 커지며, 실패했을 경우에 그 원인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보면 초험자의 경우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까지 전체 준비기간은 2~3년으로 상정해야 한다.

1938년 틸만(B. Tilman) 대장이 이끄는 영국원정대의 제7차 등반까지는 티베트 측 북릉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이 이루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히말라야 등산은 일단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자 히말라야 주변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즉 티베트는 중공의 점령지가 되었고 철의 장막으로 가려지고 말았다. 그 대신 남쪽 지역인 네팔은 새로이 개국해 지금까지 미지였던 네팔 히말라야의 광대하고 고준한 지역에 새로운 등산대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힐러리스텝.
이렇게 되니 자연 에베레스트도 북쪽으로는 불가능하게 되고 남쪽인 네팔에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남쪽 루트를 처음으로 탐사한 것은 1951년 가을 십튼을 대장으로 한 소정찰대였고, 1952년은 스위스대가 봄·가을 두 번의 등정을 노렸으나 남봉 직전인 8,595m의 고도에서 되돌아섰다. 드디어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반의 영광은 영국대가 차지하게 되었다. 존 헌트(John Hunt)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9개의 캠프를 올리며 5월 29일 힐러리(E. Hillary)와 텐징 셰르파(T. Norgay)가 정상에 올랐다.

남동릉 루트 등반은 현재 4개의 캠프를 설치해 사우스콜(South Col·7,925m)의 마지막 캠프에서 등정 시도를 하게 된다. 출·귀국 기간의 총 원정일수는 두 달여, 베이스캠프 체재일수는 35~40일이다. 남동릉은 북릉~북동릉에 비해 아이스폴의 붕괴 등 객관적 위험은 높지만 등반길이가 짧고 등정률은 높다.

에베레스트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는 오명이다. 친환경등반에 관한 등반 참가자의 행동강령은 히말라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동경선언에서 채택한 이 슬로건이 적절할 것 같다. ‘발자욱만 남기고 사진만 가져오기(Leave nothing but footprint, Take nothing but Picture)’

에베레스트는 사가르마타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야생동물 보호는 물론 오염으로부터 환경보호에도 애쓰고 있다. 원정대에 적용된 강제규정은 각 팀당 4,000달러의 환경보호예치금을 예치하고 만약 등반 중 규칙을 어기면 정부연락관의 심의를 거쳐 예치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쿰부계곡 캐러밴

4월 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1,280m) 트리뷰반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기온은 따끈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다. 현지대행사 직원들이 나와 화환이나 카타를 대원 각각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정겨운 인사말 “나마스테(안녕하세요)”가 네팔 히말라야 첫 인상으로 남는다.

카트만두에서는 3~4일 체재하면서 부족한 장비와 식량을 구입하고 도보캐러밴을 위한 포장작업을 한다. 그리고 박타푸르·파탄·보드나트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적 등지로 하루 정도 관광을 나가는 것도 좋다. 쇼핑천국인 타멜(Thamel) 거리는 대여섯 곳의 한국식당을 포함해 카페·식당·토산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카트만두는 교통체증과 매연,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이국의 풍치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방해한다. 등반가에게 관심이 있는 산악등반장비점도 많은데 캠핑·트레킹·고산등반에 필요한 각종 고급브랜드의 품목을 고루 갖추고 있어 한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출국해 비행기를 타면서 자기 몸관리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한기, 카트만두 호텔에서 에어컨으로 인한 감기, 물과 음식을 갈아먹어 배앓이와 설사 등이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어 팀 내에서 적어도 한두 명은 편도선이 붓거나 감기 기운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아이스폴 지대의 대형 크레바스는 사다리를 이용해 건넌다.
남쪽 베이스캠프는 웨스트 쿰(West cwm)으로도 불리는 쿰부아이스폴(Khumbu Ice Fall) 기슭 5,350~5,400m 고도 지점의 쿰부빙하에 위치한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버스로 카트만두에서 지리(Jiri)를 들러서 남체바자르까지 도보로 6일을 걸어간다. 그곳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다시 5일 정도가 걸린다. 옛날에는 고소적응에 효과적인 이 캐러밴 루트를 따랐으나 요즘의 통상적인 루트인 두 번째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루클라(Lukla·2,840m)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여 비행해, 그곳에서 팍딩(Phakding·2,610m)~남체바자르(Namche Bazar·3,440m)까지 2일 정도 도보로 행진해 첫 번째 루트를 따라 가는 것이다.
 
남체바자르에서 페리체(Pheriche·4,270m)나 딩보체(Dingboche·4,410m)까지는 2일 정도, 로부체(Lobuche·4,910m)~고락셉(Gorak Shep·5,150m)을 거쳐 베이스캠프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된다. 걷는 길가에는 민가를 개조해 숙식을 할 수 있게 만든 로지가 많다. 공동 짐은 야크와 소를 이용해 운반하며 대원 개인 짐은 포터들이 등짐으로 나른다.

구름 사이로 나는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산 중턱 루클라 비행장에 가까워지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며, “쿵!” 하고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숨을 죽이던 기내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안전하게 착륙한 기장과 부기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현이다.

산자락으로 휘휘 도는 허리 길을 따라 도보 캐러밴의 시작이다. 산자락엔 봄꽃들이 붉고 밭에는 푸른 보리가 한창이다. 고개를 들면 순백의 미봉들 탐세르쿠·아마다블람·촐라체가 비경을 드러낸다. 쉬는 날 저녁 무렵 포터들이 막걸리와 비슷한 창(Tsang) 한 사발을 들이키면 으레 네팔민요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비단 두건이 바람에 날리네)”를 흥얼거린다. 노래에 춤이 빠질 수 있으랴.

대부분 첫 번째 고소증세는 1,000여 m 고도를 하루에 올리는 남체바자르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포터들은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걸으라고 주문한다. 또 남체바자르에서는 하루 휴식하며 적응을 한다. 이날 샹보체(Syangboche)나 쿰중(Khumjung)마을 방향으로 고도를 300~400m 올렸다가 내려오는 것이 좋다. 고락셉 전에는 퇴석모레인 빙하를 건너게 되는데 길의 흔적은 분명한데 가스가 끼고 흐린 날에는 길을 잃기 쉬워 혼자 운행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한국 푸모리원정대 대원 한 명이 실종, 사망한 예가 있다.
▲ 웨스트쿰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가 운행하는 대원들 뒤로 보인다.
도보 캐러밴에서는 배낭 안에 보온용 덧옷, 물통, 간식, 양산 등 운행에 꼭 필요한 물품을 넣어 최대한 무게를 가볍게 하고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다. 캐러밴 동안에는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다. 낮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긴팔 긴바지를 입고, 햇빛이 따갑다면 접이식 양산을 쓰고 걷는 것도 좋다. 물은 자주 마신다. 해가 지면 한기에 대비해 도톰한 방한복을 입고 수면 시에는 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 안에 넣고 잔다.

2007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로부체에 도착한 우리 대원 한 명이 밤 9시경에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의사가 동행하지 않았던 원정대는 급히 페리체에 있는 응급진료실로 옮겼고 다음날 헬리콥터로 카트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급성맹장염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몇 시간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다 한다. 동료들의 적절한 대처가 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  글=김창호·월간山 기획위원·몽벨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