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네팔 낭파라 라운드 트레킹 (1) *-

paxlee 2012. 9. 14. 21:45

 

                                        [네팔 트레킹]

     

    쿰부 히말과 롤왈링 히말의 조망대 고쿄리, 낭파라 라운드 트레킹

     

한국 최고의 고산등반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김창호씨가 네팔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오로지 고산 등반만을 위해 드나들었던 네팔 쿰부히말, 롤왈링히말 등지를 아내와 더불어 보름간 돌아보았다. 수많은 등반을 통해 쌓아온 그의 네팔에 대한 식견은 남다를 것인즉, 그의 네팔 트레킹 얘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 쿰부 히말의 두드코시계곡 원두에는 히말라야에 한국인이 첫 진출한 1962년 이래 세계 초등정의 꿈을 이룬 고줌바캉(7,806m)이 있다. 이를 시발로 지금까지 한국은 7,000m급 8개 봉우리를 초등정했다. 마체르모 근처를 걷고 있는 뒤로 왼쪽의 초오유(8,201m)와 마니석 장대 우측의 너른 정상이 고줌바캉1봉이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로의 들머리 루클라공항으로 가는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5월 22일 이른 아침, 태양을 마주하고 동쪽으로 30여 분 비행하자 북쪽으로 가우리샹카르(Gauri Shankar·7,135m)를 비롯해 롤왈링 히말의 산봉들이 수묵화로 나타난다.

옆에 앉은 5명의 탑승자는 한국에서 출국한 김재수 대장(8,000m급 14좌 등정자)과 동행자, 그리고 우리 부부 2명과 가이드다. 김재수 대장은 남체바자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7일간의 일정이다. 우리 둘은 신혼여행. 통상 허니문투어의 여행 트렁크 속에는 해변리조트에서 필요한 수영복과 얇은 셔츠가 챙겨졌을 테지만, 25kg씩 무게가 나가는 우리 카고백 2개에는 텐트, 침낭 등의 야영장비와 동계용의 두꺼운 우모복에 아이젠까지, 그리고 직접 취사해서 먹을 4일치의 식량이 꾸려졌다.

디디(‘아가씨’라는 의미의 호칭)와 나는 처음 이 여행을 구상할 때 무언가 색다른 일에 함께 도전하기로 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기간은 15일. 디디는 고쿄리(Gokyo Ri·5,357m)에 올라 에베레스트를 보고, 나는 쿰부 히말(Khumbu Himal)에서 렌조고개(Renjo Pass·5,360m)를 넘어 롤왈링 히말(Rolwaling Himal)로 연결해 낭파라고개(Nangpa La·5,716m)까지 갔다 오는 라운드 트레킹으로 잡았다. 쿰부 히말에 네 번째 방문인데도 나는 그동안 원정등반 일정에 쫓겨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답사하는 의미도 있었다.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본 쿰부 히말과 롤왈링 히말의 파노라마. 이번 트레킹은 고쿄리에서 렌조고개를 넘고 낭파라고개를 연결하는 라운드 트레킹이었다.
자원 풍요롭지만 정치 불안 때문에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나라

경비행기보다 느린 헬기의 속도는 롤왈링 히말의 더 많은 은빛 설산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나하나 산 이름을 불러본다. 쉬바의 삼지창을 닮은 저것은 멘룽체(Menlungtse·7,181m), 정상부가 둥근 초부체(Chobuche·6,685m), 쐐기 모양은 타카르고(Takargo·6,771m), 독수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산세는 리쿠출리1봉(Likhu Chuli 1·6,719m), 한 굽이 능선을 돌자 눔부르(Numbur·6,958m)와 카탕(Khatang·6,790m), 카료룽(Karyolung·6,511m)의 연봉을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본 장엄한 파노라마는 한 시간여 만에 끝이 나고 헬기는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계곡 깊숙이 들어간다. 아침 햇살이 들지 않은 루클라(Lukla ·2,843m)다.

싸늘한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카트만두 호텔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카고백이 왜 여기에 내려진단 말인가. 우리 짐이라야 달랑 카고백 2개인데, 가이드 템바를 쳐다보며 웃음밖에 안 나왔다. 수십 명의 로컬포터들을 대동하는 대규모 원정대에서도 이런 일은 없던 터였다. 일은 터진 것, 수습이 먼저였다. 잘못 온 짐은 이곳 루클라에 맡기고 카트만두 호텔에 남겨진 카고백은 남체바자르에서 하루 더 머무는 동안에 모레까지 올려 보내라고 연락을 취했다.

우리가 타고 간 헬기는 곧바로 계곡 위로 날아가서 서울농생대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오영훈 등반대장과 서정환 대원을 싣고 내려왔다. 에베레스트 남봉까지 올랐다 내려온 정환은 폐수종 기운이 있다고 했다. 이들과 차를 마시며 등정소식과 5월 19일 등정 중에 일어난 각국 원정대 조난·실종 사고의 과정을 들었고, 그중에는 충남고 OB팀 대원도 한 명 있었다. 충남고 팀은 8,400m 높이의 발코니 근처에 실종된 대원의 시신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고, 수습을 위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출국 전 나는 서울농생대 팀이 정상 등정일을 잡을 때 기상예보를 받아주는 역할이어서 베이스캠프의 오 대장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또 충남고 팀의 김영일 등반대장으로부터도 같은 내용의 통화를 했었다. 축하의 말도 건네지 못하는 이 어색한 분위기. ‘왜’라는 질문이 소용없는, 논리적 사고로 판단할 수 없는 곳이 바로 8,000m 위의 세상이다.

▲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내려온 서울농생대 팀을 루클라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김재수, 오영훈 등반대장, 서정환 대원, 그리고 김창호.
오늘은 루클라에서 쉬엄쉬엄 세 시간 정도 걸어 팍딩(Phakding·2,610m)까지다. 7,000~8,000m급 설산의 빙하에서 발원한 임자계곡(Imja Khola)과 두드코시계곡(Dudh Koshi), 보테코시계곡(Bhote Koshi)의 강물이 모여 흘러내리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나, 200m가량 높이를 낮추며 내려가는 숲길이라 고소적응에도 좋다. 돌로 지은 민가 근처에 바나나가 자라고 있다.

20대 초반에 히말라야를 동경하던 나는 네팔이라는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곧장 빙하와 눈의 세상이 펼쳐지리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행 캐러밴 도중 바나나를 본 생경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디디는 2년 전 나와 함께 인도 라다크의 스톡캉리(Stok Kangri·6,153m)를 등정한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히말라야를 이해하고 있었고, 또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높은 고도에 대한 적응에도 걱정은 없었다.

후텁지근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 팍딩을 출발한다. 계곡은 바위 협곡으로 바뀌어 마치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오르는 풍경이다. 종종 네팔의 어느 산골로 트레킹을 가면 원주민들 중에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돈을 벌러 왔던 사람들이다. 한국인은 꿈을 찾아 네팔로 가고 네팔 사람들은 꿈을 찾아 한국에 온다고 했다.

현재 네팔은 가난과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있다. 우리가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번잡해야 할 타멜 거리는 한산했다. 마오이스트들이 한정기간 노동자 전체 파업을 하는 빤다(Panda) 기간이었다. 근무해야 할 낮 시간은 정전으로 매일 도시는 마비되었고 필요한 전력을 수급하려는 곳은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네팔은 한국보다 많은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2009년 카트만두에서 캉첸중가로 가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네팔 땅의 풍요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토지는 네팔인들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해발고도 30여m의 테라이(Terai)평원으로부터 8,000m 높이의 흰 설산까지 천연의 자연경관을 품어 ‘동양의 스위스’로 부상할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보였다. 그러나 내일의 희망을 약속할 수 없는 나라, 정치적 안정과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네팔인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은 5월 말, 예년 같으면 여름 계절풍 몬순이 시작될 때다. 오전 9~10시가 지나면 계곡에는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자욱하게 흘러들어 오후에는 으레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올해는 음력 3월 윤달이 끼어서인지 계곡에 걸린 폭포는 말랐고 질퍽거려야 할 길도 마른 먼지가 피어오른다.

▲ 이제 더 이상 셰르파족들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 대신 남체바자르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은 라이, 구룽, 타망족이 등짐 운반하고 있다.
벵카르(Bengkar)부터 조르살레(Jorsale)마을 가는 콩데(Kwangde) 쪽 산허리는 얼마 전 산불로 많은 수목이 붉게 말랐다. 원인 모를 발화로 산불은 1주일 동안 계속 됐고 이때 피어오른 연기 때문에 맑은 날에도 위험천만인 루클라공항으로의 로컬항공은 산불기간 동안 결항되었다고 했다. 또 겨울 시즌 강풍으로 인해 가파른 사면의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뿌리째 넘어졌다.

몬조에서 사가르마타국립공원(Sagarmata National Park) 입장료(1,000루피/1인)와  트레커 정보관리제도(Trek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20달러/1인, 사진 2장) 비용을 내고 운행을 계속한다.

두드코시계곡의 양쪽 절벽 사이 50m 높이에 아찔하게 매달린 출렁다리를 건너면 남체바자르까지 고도 500여m를 올라야 하는 된비알이 나타난다. 곧 고소증세가 슬며시 찾아오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오르는 힘든 길을 원정대는 ‘남체 페이스’, 트레커는 ‘깔딱고개’라고 부른다.

        - 글 | 사진 김창호 몽벨 자문위원·월간산 기획위원 / 월간산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