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네팔 낭파라 라운드 트레킹 (3) *-

paxlee 2012. 9. 19. 21:44

 

                       [네팔 트레킹]

설산고봉의 중앙에 풍덩 내던져진 느낌

다음날 아침도 날씨가 좋다. 앞으로 계속 배낭 속 우산을 꺼내지 않기를 바랐다. 아침 7시 출발해 냇물을 건너려는 순간 관목 숲에서 단페(Danphe)가 먹이를 쪼고 있다. 암컷은 연한 갈색을 띠고 수컷은 화려한 무지개 색을 띠어 무지개꿩 혹은 비단꿩으로도 알려진 단페는 조류지만 뇌조처럼 날지 못한다. 야생인데 가까이 접근해도 경계하는 눈치가 없다. 단페는 네팔 국조(國鳥)다.

한 시간가량 완만한 초원지대를 올라서자 라바르마(Lhabarma·4,330m) 앞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 초오유(Cho Oyu·8,201m)와 고줌바캉(Ngojumba Kang-Ⅰ·7,743m), 갸충캉(Gyachung Kang·7,952m)이 대장벽을 이루었고, 등 뒤의 남쪽으로는 말안장 모양의 캉테가(Kangtega·6,779m)와 뾰족한 탐세르쿠(Thamserku·6,623m)가 가로막아 설산고봉의 중앙에 풍덩 내던져진 느낌이다. 다리에 힘이 솟구친다.

▲ 초오유와 정상부가 평평한 바위 봉우리는 갸충캉(7,952m)이다. 그 사이에 고줌바캉(7,762m)의 세 개의 도드라진 봉우리들, 맨 우측은 훙치(7,036m)봉이다. 고쿄리에서 북쪽으로의 전망.
 
걷기에 좋은 트레일을 따라 루자(Luza· 4,360m)를 거쳐 오전 10시경 시냇가 넓은 초원지대의 마체르모(Machhermo·4,470m)에 도착했다. 고소적응에 따른 수순으로 보자면 이곳에서 하루의 운행을 접고 내일 고쿄로 가는 것이 좋으나 우리는 컨디션도 최상이었고 남은 시간도 충분해 고쿄로 밀어붙였다.

옅은 구름이 차올라 서쪽 계곡 원두로 보여야 할 카조리(Kyajo Ri·6,186m)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캬조리 북동벽은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루트가 완성되지 않은 난벽이다. 한국에서는 2003년 성균관대산악회 카조리 원정대(대장 원종태)가 시도했으나 5,500m 지점에서 무너진 낙석 사고로 대원 한 명이 사망했고, 2011년 가을 카조리 원정대(대장 유학재)는 북동벽을 2피치 등반하고 기상악화로 철수한 기록이 있다.

팡가(Phangga·4,480m)에서 삶은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고줌바캉빙하의 말단의 바위 통로를 빠져나가 첫 번째 호수 롱가풍가초(Longapunga Tso·4,710m)를 지나면서 우모복을 덧입는다. 두 번째 호수 타우중초(Taujung Tso·4,728m)를 거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세 번째 호수 고쿄(GokyoTso·4,734m)에 도착했다. 호숫가 언덕에 양철지붕을 얹은 로지가 다닥다닥 붙었고 호수 남쪽으로 파릴랍차(Pharilapcha·6,017m) 북벽이 나타났다.
▲ 셰르파족은 쿰부의 네 산에 신이 살며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신성하다고 믿는다.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중앙의 멀리 마칼루(8,485m) 우측의 촐라체(6,440m)와 타워체(6,501m). 고쿄리에서는 8,000m급 4개의 봉우리와 5,000m~7,000m급 50여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쿰부 히말에서 가장 으뜸가는 곳으로 꼽힌다.
 
네팔 정부는 2002년 유엔이 정한 ‘산의 해’를 기념하고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아 등반이 금지돼 있던 131개 봉우리를 새롭게 개방해 네팔 내에는 총 326개 봉을 등반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기존의 18개 트레킹 피크(Trekking Peak)에 2002년 가을 15개 봉의 등반허가권을 네팔산악협회(NMA)에 위임해 네팔의 트레킹 피크는 총 33개 봉이 됐다. 이로써 개방된 봉우리에 각국의 초등정 경쟁에 열을 올렸다. 아직도 미지의 봉우리들이 다수 남아 있다.

쿰부 히말 서쪽과 롤왈링산군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국내 산악계는 조용했다. 그 후에 낮지만 난이도 높은 등반을 추구하는 한국원정대가 2010년 겨울에 찾아들었다. 한국산악회 파릴랍차 북벽 원정대의 유학재 대장과 황기룡·신동석은 2008년에 열린 ‘인디펜던스데이(Independence Day)’ 루트 바로 왼쪽에 4일 동안 새로운 루트를 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산하던 다음날 아침 황기룡 대원은 갑작스런 복통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27일 이른 아침 쿰부 히말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전망대 고쿄리(Gokyo Ri·5,357m)에 올랐다. 찬바람 속에서 2시간가량의 발걸음 후 디디도 정상에 섰다. 걸음걸음 힘겨움을 일순간 날려버릴 장엄한 파노라마가 우리를 맞이했다. 8,000m급 4개봉을 포함해 50여 설봉이 360도로 펼쳐졌다.

▲ 멀리 산 사면과 고줌바캉빙하의 말단 사이의 바위 통로를 빠져나가면 고쿄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호수가 이어진다.

 

광기어린 욕망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길은 죽음

6·25전쟁 후 먹고살기 팍팍한 시절에도 한국산악인들은 히말라야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 당시 8,000m 봉우리는 시샤팡마를 빼고는 모두 등정되었다. 한국원정대가 히말라야로 첫 도전한 산은 다울리기리Ⅱ봉(7,751m) 정찰대로 1962년이었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히말라야의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려는 한국인의 꿈은 20년이 흐른 1982년 대전쟈일클럽의 김영한 등반대장과 2명의 셰르파가 고줌바캉(7,806m) 정상을 등정함으로써 이뤄졌다.

초오유 동쪽에 고줌바캉이 바라보인다. 어려운 시절 히말라야에 온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 이후 한국등반대는 지금까지 7,000m급 이상의 봉우리 초등정은 총 8개 봉우리를 기록했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1827)는 인간과 산이 만날 때 위대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위대한 일에는 많은 희생도 따랐다. 히말라야를 오르다 생을 마감한 선후배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또 내가 만났던 세계적 등반가들 토마스 휴마르(Tomas Humar)는 랑탕리룽에서, 세르게이 사모일로프(Sergei Samoilov)는 로체에서, 오사무 다나베(Osamu Tanabe)는 다울라기리1봉에서 죽었다.

산악인들이 끊임없이 한계상황을 추구하고픈 광기어린 욕망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루클라에서 만났던 오영훈 대장은 이번 에베레스트에서의 조난사고를 목도하고는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등반가라 할지라도, 또 자신의 팀이 무사히 정상 등정을 하고 죽음의 지대를 벗어나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오기까지는 자신이 모르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줌바빙하를 타고 밀려온 구름이 산을 숨겨버렸고, 곧 우리가 선 곳도 화이트아웃이 되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쪽 고줌바캉과 캬충캉의 상부 빙하에서 세락이 무너져 우르릉 소리가 들려왔다. 산은 산 자신의 생각, 산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 글 | 사진 김창호 몽벨 자문위원·월간산 기획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