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네팔 낭파라 라운드 트레킹 (2) *-

paxlee 2012. 9. 15. 21:56

 

                  [네팔 트레킹]

 

로지와 호텔만 해도 70여 호의 큰 타운으로 변신한 남체

하늘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분주히 오르내리는 헬기들이 아침부터 굉음을 울린다. 땅에는 무거운 건축용 목재나 로지에서 판매할 음료와 식재료를 포장한 100kg이 넘는 짐을 지고 오르는 짐꾼들, 자글자글 주름이 진 그들의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마른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짐 진 사람들의 얼굴은 셰르파족이 아니다. 고산등반 셰르파를 제외하고 이제 더 이상 셰르파족들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

외국 관광객과 트레커들이 몰려들어 지갑을 열고 가는 쿰부나 안나푸르나 지역은 네팔에서도 많은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야크를 치고 감자를 경작하던 셰르파족은 자기 집을 개조해 호텔과 로지, 가게를 운영한다. 등짐으로 올려야 할 물품은 아래쪽 평원이나 힐에 거주하는 라이, 구룽, 타망족이 대신 나르고 있다.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가는 길의 텡보체 사원 위로 솟은 파릴랍차(6,017m).
 
사가르마타국립공원 연도별, 월별 탐방객 인원수를 보면 10월이 가장 많은데, 1998년 5,987명에서 2011년에 1만39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세태를 풍자한 얘기로 현대의 네팔에는 세 가지 종교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힌두이즘(Hinduism 힌두교), 다음이 부디즘(Buddhism 불교), 셋째는 근자에 탄생해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갖게 한 투어리즘(Tourism 관광산업)이라고 네팔인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이제 디디도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살짝 숙여 “나마스테(Namaste)”라는 인사말에 익숙해지고, 마니석을 지나칠 때면 ‘옴마니밧메훔’이라 진언도 읊조린다. 걷고 있는 일행 중 웅추는 남체바자르에서 로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일행을 위해 루클라까지 마중을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중턱쯤에서 웅추의 막내 여동생이 밀크티와 콜라 등 간식을 싸들고 내려왔다. 아직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는 거리여서 그 정성이 고마웠다.

숨이 깔딱깔딱 둔덕배기로 오르면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와 조우한다.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눕체와 로체 사이의 바위와 눈의 거대한 벽이 계곡 앞을 막고 있었다. 그 위로는 에베레스트의 피라미드 정상이 치솟아 있었다. 그것은 3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나 우리보다 5,500m 위였다.

남체바자르 마을의 어귀에서 그곳의 촌장이 우리를 환영했다. 마을의 크기에 무척 놀랐다. 1951년 에베레스트 등반의 남측 접근로, 일명 쿰부 아이스폴이라고 불리는 빙하 계곡을 정찰했던 에드먼드 힐러리는 저서 〈High Adventure〉에 ‘경사를 계단식으로 만든 곳에 60여 호의 집과 화려하게 채색된 큰 불교 사원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망태기 모양의 경사지에 남향으로 앉은 남체바자르(Namche Bazaar·3,440m)의 좁은 길목을 들어서자 우리를 환영한 것은 화려한 등산복을 파는 가게, 유명 브랜드 커피집 간판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하드록 음악이었다. 남체바자르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예부터 쿰부지역 교통의 십자로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티베트의 소금, 버터, 가축의 모직물이, 남쪽 낮은 곳의 곡물, 향료, 목재가 서로 거래되던 곳이다. 지금도 토요일에 난장이 열린다. 힐러리의 첫 방문 당시 남체는 60여 호였으나 지금에는 원정등반대 트레커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인 로지와 호텔만 해도 70여 호의 큰 타운이 형성되었고 물가 또한 4년 전 방문에 비해 많이 올랐다.
▲ 팍딩으로 가는 민가의 구멍가게.
▲ 단페(Danphe) 암컷은 연한 갈색을 띠고 수컷은 화려한 무지개색을 띠어 무지개꿩 혹은 비단꿩으로도 불린다. 조류이나 뇌조처럼 날지 못한다.
 
마을의 아래쪽 중앙 광장에는 1953년 5월 29일 텐징 노르게이와 에드먼드 힐러리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날을 기념하는 에베레스트데이 남체축제(Everest Day Namche Festival) 준비가 한창이다. 천막을 치고 국내외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열리는 남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를 출발해 로부체(4,930m)~페리체(4,252m)~텡보체(3,867m)~남체까지 42.195㎞를 달리는 텐징-힐러리 에베레스트 마라톤(Tenzing-Hillary Everest Marathon)이다. 고소적응과 훈련을 위해 뛰는 선수들도 보인다.

전쟁으로 고향 등지고 새로운 땅 찾아온 셰르파들

남체에서 하루를 쉬며 가까운 셰르파 마을을 찾아 나섰다. 샹보체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호텔 에베레스트뷰(Hotel Everest View)로 먼저 갔다. 에베레스트가 보였다 사라지고, 북쪽으로 보이는 셰르파족의 성산 쿰비율라(Khumbi Yul Lha·5,765m)가 신비로움을 숨기려는 듯 구름에 덮였다.

나무 숲속의 비탈길을 따라 쿰중마을로 내려간다. 돌담 위에 노간주나무로 향불이 피워져 있다. 가이드 템바는 집주인 아들이 이번 시즌 에베레스트로 등반을 떠난 다음날부터 매일 향을 피워 무사기원을 빈다고 했다. 셰르파족은 대승불교인 라마교를 믿어 부처를 가장 높은 신으로 모신다. 그 다음으로 불교 현자, 고대 힌두교 신, 그리고 현지 티베트 신 등 여러 종류의 신들을 모신다. 어떤 신은 하늘이나 세상 모든 곳에 있다. 산에 사는 신같이 어떤 신은 한 장소에 산다. 쿰부의 네 산에는 신이 산다고 이들은 믿는다. 초모룽마(에베레스트), 초오유(8,201m), 체링마(가우리샹카르), 그리고 쿰비율라다.

다른 세 봉우리는 흰 눈을 이고 하늘 위로 솟아 있어 그 외관상으로도 신의 거처임을 느끼게 하지만, 거무튀튀한 색깔의 바위산 쿰비율라가 신으로 추앙받는 것에 대해 여기에 정착해 삶을 영위하지 않은 외지인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쿰비율라산의 남쪽 발치에 위치한 쿤데(Khunde)와 쿰중(Khumjung)마을을 돌아보면 의구심은 해소된다.
▲ 단페(Danphe) 암컷은 연한 갈색을 띠고 수컷은 화려한 무지개색을 띠어 무지개꿩 혹은 비단꿩으로도 불린다. 조류이나 뇌조처럼 날지 못한다.
 
이곳 원주민의 할아버지에서 그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 오는 얘기에는 이들 셰르파(Sherpa)족은 티베트 동부 캄(Kham) 지방에서 왔다고 한다. ‘셰르’는 동쪽을, ‘파’는 사람들, 즉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조상들이 원래의 정착지를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신빙성 있는 기록은 없으나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티베트 고원을 서진해서 팅그리에서 남쪽으로 히말라야 대산맥의 능선이 툭 갈라진 눈 덮인 고갯길을 넘어왔다. 전설 속 낭파라고개(5,716m)다. 동토의 고갯마루를 넘어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너른 땅을 찾은 곳이 바로 쿰비율라의 품에 안긴 쿰중과 쿤데였던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한 고소적응차 하루 더 머무른 남체를 나선다. 에베레스트 원정대 2팀과 김재수 대장은 모두 아래로 내려갔다. 가이드와 포터 1명을 포함한 우리 일행은 이제 4명으로 줄었다. 말썽이었던 카고백은 잘 도착했고, 짐을 분리해 다시 두 개로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운행계획은 복잡해졌다. 낭파라고개에 갈 때 필요한 캠핑장비와 식량은 웅추가 포터 한 명을 고용해 27일경 남체에서 출발시킨다. 타메를 거쳐 이틀째 룽덴(Lungdhen·4,380m)에서, 렌조고개를 넘어 온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 이 포터는 반드시 낭파라고개를 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웅추가 고용하기로 하고 고쿄에서 다시 전화 연락하기로 했다.

출발하면서 디디는 어제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어제 저녁 충남고 팀 대원 두 명이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와 우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마신 맥주 반 잔이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고소에서 술은 독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캉주마(Kangjuma·3,550m)에서 텡보체를 거쳐 칼라파타르로 가는 길과 고쿄로 가는 길은 갈라진다. 가파른 바위 언덕을 치고 오르자 멀리 고갯마루 날등에 올라앉은 몽라(Mong La·3,973m)가 사막의 신기루 같다. 잰걸음 한 번에 닿을 것 같은 거리인데 산허리를 감싸고 쭉 뻗어 오르는 길은 지루했다.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디디는 걸으면서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인 랄리구라스는 네팔의 국화(國花)로 히말라야에 3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우리는 걷다가 시간단위로 물을 마시며 쉬었고, 로지가 나타나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쉰다. 전망 좋은 로지에서 블랙티를 마시며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운다. 로지 사우니(안주인)의 어린 두 딸이 ‘아마, 아마’하고 부르며 군것질거리를 달라고 엄마에게 보챈다. 디디가 사탕 몇 알을 쥐어주자 신난 아이들은 아예 마룻바닥에 뒹굴기까지 한다.

창밖으로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4m)이 쿰부의 미봉답게 아름다운 자태로 섰다. 그 정상부에 걸린 얼음 세락의 세로 방향 균열이 지(티베트 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돌로 고가의 보석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유(터키석), 산호로 낀 어머니의 목걸이를 닮았다. 달밧으로 배를 든든하게 하고는 두드코시계곡 바닥에 있는 포르체 탕가(Phortse Thanga·3,680m)까지 약 300m의 고도를 곤두박질친다.

통바(Tongba·3,950m)로 오르는 길에 계곡 저쪽의 포르체마을 주위로는 붉은 랄리글라스가, 걷는 이쪽은 흰색의 랄리글라스가 만발했다. 꽃잎 주위에 더부살이가 흩날린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인 랄리글라스는 네팔의 국화(國花)로 30여 종이 히말라야에 자생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국에도 자생하는 만병초(Rhododendron brachycarpum)와 닮은 것도 보인다.

마른 초지만 있던 몽라의 언덕, 그리고 두드코시계곡으로 고도를 낮추면서 나타난 침엽수림의 숲, 그리고 다시 고도를 높이자 붉은 껍질이 허물을 벗는 자작나무숲,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초원지대. 이렇게 산의 식생은 고도에 따라 하루에도 수 번 바뀌었고 그 모습에 디디는 눈망울을 반짝인다.

그녀는 조경설계가다. 나는 산을 보면 어떤 등반루트가 있고 루트가 날 만한 벽과 암릉을 살피며 분석적으로 보는 반면, 그녀가 보는 산은 풍경 속의 하나였고 사물을 한 컷의 사진처럼 이미지화하여 받아들였다. 쿰비율라의 동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폭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디디는 네팔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생수병이 아닌 폭포 밑의 맑은 계곡물을 마셨다.

짙은 가스가 낀 돌레(Dole·4,110m)에 오후 2시경 도착했다. 차를 마시고 점심을 먹어도 시간은 남는다. 보통은 피곤이 찾아오면 낮잠을 자기 마련, 우리는 안개 속으로 산책을 했다. 일몰이 지고 어둠이 찾아들자 한기가 들었다. 돌레 로지의 안주인은 식당 난로에 마른 야크똥을 피워 주었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 글 | 사진 김창호 몽벨 자문위원·월간산 기획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