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알피니즘, 그들은 왜 오르는가 [1] *-

paxlee 2012. 11. 2. 22:11

 

          알피니즘, 그들은 왜 오르는가 [1]

 
         “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자기다움을 느낀다”
 
          한국 산악인들이 고산에 가는 큰 이유들
 

대한산악연맹(회장 이인정)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한국 알피니즘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심포지엄 ‘알피니즘, 그들은 왜 오르는가’를 개최했다. 9월 14일 오후 3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 심포지엄에는 300여  명의 산악인들이 참석,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주제 발표를 한 김창호(몽벨 기술자문역·서울시립대 OB), 박경이(대한산악연맹 이사·고려대 체육과 강사), 조용헌(불교민속학 박사·원광대 동양학 대학원 교수) 세 사람의 발표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왜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거나 신체를 손상해 가며 고산등반을 하는 걸까? 그간 국내외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왜 사람들이 위험한 스포츠를 하는지를 밝혀보고자 했다. 가장 많은 건  심리학적 접근이고, 뇌신경학적 연구와 개인 체험적 연구가 있다.


학문적 연구는 서양에서 먼저 이루어졌고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주로 심리학자 스포츠사회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암벽등반을 포함한 지상모험스포츠,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항공모험스포츠, 스쿠버다이빙과 같은 수중모험스포츠 참가자들을  포함하는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말하는 결과로는 다음과 같다.


▲ 9월 14일 열린 알피니즘 관련 심포지엄. 많은 산악인들이 참석,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인간이 탐험을 시작한 동기와 같은 맥락에서 어떤 호기심 차원이 있다. 또 모험스포츠 참여자들은 객관적·주관적 위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대한 자신의 유능함을 시험해 보기 위한 장으로 모험스포츠에 참여하고 있거나 자신들만의 독특한 행동양식, 규범이나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모험스포츠 참여 시 자신이 선택한 활동에 대한 강한 정체성 확인이나 소속감, 자기실현, 그리고 소속감의 혜택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결과도 있다.


학자들은 주로 감각추구 성향,  최적각성이론, 반전이론, 몰입이론, 운동중독, 동기이론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 도전하는 행동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개인의 성향 차이에 주목했는데,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감각추구 성향이라는 인간의 심리 특성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각성추구 성향이 있는데 둘은 유사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감각추구 성향은 신체 및 사회적 위험을 무릅쓰고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나 감각을 추구하려는 개인적 욕구로서 새로운 상황이나 위험에 도전하는 행위를 측정하거나 설명하는 기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험스포츠 참가자는 일반스포츠 참가자보다 각성추구와 감각추구 성향이 높다.


도전과 기술이 조화 이루었을 때 큰 행복감 느껴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은 경험의 변화를 강하게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더욱 많은 능력과 대처기술을 학습하려는 경향이 있고 도전적, 창의적 및 진취적 행위를 하는 경향이 높다. 한편 이들은 위험평가를 낮게 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너무 위험스러워 보이는 상황을 등반가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게 평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낮은 감각추구자들보다 위험한 상황을 좀더 효과적으로, 간단히 대처한다.


주커만은 감각추구 성향을 ‘신체적, 사회적, 법적, 그리고 재정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다양하고 신기한, 그리고 복잡하고 강한 감각이나 경험을 추구하려는 욕구’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감각추구자는 적정한 자극 혹은 흥분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을 추구하며 동일한 자극과 경험이 반복될 때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따라서 이러한 감각추구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적정한 각성수준이 더 높으며 도전을 즐긴다. 이들은 등산이나 서핑, 급류타기 등 신체적으로 위험한 활동을 좋아하고, 낯선 장소 여행, 약물경험, 여러 사람과의 성경험 등을 통해 감각추구 성향을 만족시키려 한다.


몰입이론은 상당히 유명한 이론이며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도전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유스러움과 긍정적 정서 등의 발생을 촉진시켜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몰입으로 느끼는 행복감, 즐거움은 강한 내적동기가 되어 계속적으로 스포츠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 설악산 조난 10동지 40주기 추도회. 먼저 간 악우에 대한 감정 또한 주요한 등반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많은 등반가들이 몰입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어떤 때 몰입이 찾아오고 행복감을 느끼는가. 도전과 기술 사이에 서로 균형을 이루는 활동이 되었을 때라고 한다. 만약 등반자가 8,000m 벽등반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수준인데 트레킹피크를 오르는 상태라면 지루함을 느끼겠고, 도전과 기술 사이에 서로 균형을 이루는 활동이 되었을 때 몰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반가는 자기의 경험이 쌓이고 기술수준이 향상되면 더 고난도의 도전과제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이 부족한 초보자가 5.11을 등반하면 불안한데 열심히 트레이닝해 기술수준을 높이면 플로의 상태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도전하고 등반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감각추구의 특성이 높으면 열중하게 되는 것일까. 동기와 정서를 빼고 감각추구 성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각성과 정서의 관계로 설명하려는 이론도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최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정수준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각성이라 함은 특정시간에 개인이 스스로 격앙되었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모험스포츠가 높은 각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과정에는 불편함이 따르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는 비교적 모험요소가 덜한 스포츠에서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러너스하이(Runners’ High)란 통상 30분 이상 달릴 때 얻어지는 도취감, 혹은 달리기의 쾌감을 말하며 러닝하이(running high), 조깅하이(jogging high)라고도 한다. 러너스하이는 마라톤뿐만 아니라 스키·서핑·레슬링·축구 등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이때의 느낌은 마약 같은 약물을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 또는 그 상태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악인의 정서로는 좀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만, 운동중독 차원에서는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단순히 뇌에서 마약보다 강한 물질인 베타엔돌핀이나 오피오이드 펩타이드 증가로 황홀경에 빠지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다시금 맛보고자 운동을 계속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물질은 통증에 대한 민감성을 감소시켜 황홀감과 중독성 행동 성향을 가져온다. 위대한 산악인으로 손꼽히는 쿠쿠츠카나 크리스 보닝턴 등도 이런 이야기를 그들의 저서에서 하고 있다. 그러므로 ‘클라이머스하이’라는 용어도 증명될 날이 있을 것으로 본다.


알더퍼의 이알지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등반하는 이유도 존재욕구나 관계욕구, 성장욕구로 설명할 수 있다. 동기를 내적동기와 외적동기로 구분할 때 내적동기는 더 지속적으로 운동에 참가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내적동기의 예를 들자면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즐거움이나 몰입 등이 있다.


▲ 에베레스트를 등반 중인 실버원정대.

최근 들어 자결성(自決性·self - determination) 이론으로도 스포츠 참여동기를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유능함과 자결성을 느끼려는 본능적 욕구를 갖는 존재라는 것이다. 감각추구 경향이 높은 사람은 이러한 욕구가 유난히 강하다고 할 수 있다.


1985년 노르웨이 에베레스트 원정대원 7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가 있다. 역시 개인 성향의 차이에 주목했고 원정등반가들이 다른 비교집단보다 감각추구척도(Sensation Seeking Scale), 경험추구(Experience seeking) 그리고 권태감정( Boredom Susceptibility)의 평균 점수에서 다른 모든 집단의 점수보다 매우 높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간 뇌신경과학과 장비가 발달하면서 뇌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심리학자들도 이런 장비를 사용해서 인간의 욕구와 성향들을 뇌를 통해 밝혀내고 있는 시대다. 감각추구 성향도 이런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요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최근의 어느 미국 박사학위논문을 보면, 익스트림스포츠 참가자들의 체험을 현상학적으로 해석했다. 단순한 설문지나 검사도구를 이용해 통계를 내는 양적연구 방법이 아니라 익스트림스포츠 참가자들과 오랜 시간 심층면담과 참여관찰을 해서 그들의 체험을 분석·해석하고 기술한 연구다.


참가자들은 마음의 속삭임으로부터 오는 휴식(이완)을 말하고 있다. 사회·문화적인 것을 초월하는 자유뿐만 아니라 진정한 통합 등에 영향을 주는 심오한 내적 변화를 말하고 있다. 또한 참가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데, 향상된 감각적·정신적 및 육체적 기량, 시간이 천천히 가는 인식, 원시상태로 돌아감, 떠 있거나 날아다니는 느낌, 그리고 자연 세계와의 깊은 친밀감 등을 말하고 있다.


<마운틴 익스피리언스>라는 리처드 미첼교수의 단행본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중 3장 ‘왜 사람은 산을 오르는가’는 특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미첼 교수는 등반가들이 펴낸 책 60여 권을 읽고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시대별로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배경으로 산에 가는지를 정리했다.


먼저 간 악우들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도 크게 작용


조영미씨는 심층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통해 암벽등반 동호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연구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암벽등반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등반자 스스로가 느끼는 재미와 즐거움, 격렬하고 힘든 훈련의 경험, 체력과 건강의 향상이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유지할 기회를 얻고 일상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암벽등반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자기다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산악인들만의 특징적인 이유로 먼저 간 악우들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 있다. 이 부분이 좀더 깊은 고찰이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8,000m 거봉 등정 위주의 등반가 3명과  6,000~7,000m 거벽등반 위주 등반가 3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많은 사례를 대상으로 설문지나 측정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깊이와 본질을 추구하는 질적연구로 진행했다.


8,000m봉 등정을 추구하든 거벽 알파인등반을 추구하든 하나의 문화적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에 왜 오르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생생한 체험을 근간으로 하는 현장 중심의 실제적 연구가 되어야 한다. 간단한 단답형 설문지나 인터뷰로는 표층적인 판에 박힌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범주화한 것 중에서 특징은 두 그룹 간에 분명히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산악인들의 음주 문화와 집단의 결속력 등을 보면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이 매우 강하고 전우애에 버금가는 진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큰 등반 동기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 연구대상자 중 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일 중요한 동기로 ‘사람’을 들고 있다.


대한민국 산악계의 주목할 만한 등반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업체에서 후원을 받는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등반도 하나의 스포츠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등반을 스포츠로 본다면 스포츠의 특성대로 도전, 경쟁, 기록, 보상 같은 개념들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산악계의 오피니언리더들이 산악문화를 이끌어왔는데. 현재 산을 오르는 분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차원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글·박경이 대한산악연맹 이사·고려대 체육과 강사 -

        - 대한산악연맹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