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어느 독신자의 독백

paxlee 2016. 12. 11. 13:03


어느 독신자의 독백 [1]

사람들이 나더러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그 까닭을 내가 알면 벌써 결혼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생각하고 있었

다. 결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벌써 했을 것이다. 결혼이란 2인 3 같은 것이다. 서로 돕는 것 같지만

그 때문에 절뚝 거린다. 남을 데리고 산다는 것은 손이 네 개라는 말이다. 그 중의 두손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따로 논다. 남과 함께 어떻게 자기 혼자만큼 자유스러울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다" 는 루소의 「사회학계약론」의 맨 첫 구절은

결혼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인것 같았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사인데 개개의 인간은 왜 결혼으로 자유

를 스스로 포기하는가. 결혼이란 반자유(半自由)끼리의 결합이다. 반끼리 아무리 잘 결합해도 합이 절대로 반을

넘지 않는 산술이 결혼의 산술이다. 내 아내나 자식이 아파 들어누우면 내 마음이 아파 어찌 견딜까. 이 또한 부

자유다. 처자가 있는 사람은 수틀리면 당장 직장에서 사표를 던질 자유도 없다. 결혼은 가정에서의 노예화요,

사회에서의 노예화다.


결혼은 가장 큰 약속이다. 나는 약속을 꼭 지키기 위해 약속을 쉽사리 안한다. 나는 결혼을 하면 절대로 이혼하

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이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면 누가 감히 결혼하겠는가. 나는 이혼을 하지 않기 위

해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도 이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군자요. 이혼을 하는 사람은 영웅이요. 결

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은 소인이다. 나는 소인이라 해도 좋았다. 결혼은 선택이다. 하나를 고르기에는 세상

에 여자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선택의 자유가 나를 부자유스럽게 했다. 모든 여자가 내 아내일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아무 여자도 내 아내로 삼지 않는 것이다.


결혼은 책임이다. 이 책임을 무책임임하게 지기 싫은 나는 깍쟁이였다. 결혼은 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하

는 것이다. 냉정한 타산에서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에서라야 한다. 나는 불기가 없었다. 사랑할 힘이 없는 것은

결혼할 힘이 없는 것이다. 나와 결혼을 하지고 하면 절대로 하지 않을 여자만을 처음부터 나는 좋아하고 있었

다. 내가 정 떨어지게 싫은 사람은 나하고 같이 결혼하여 살고 싶어했다. 생각해보면 아무 혈연도 없이 생판 낯

선 여자를 데리고 와서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 이것을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의문이 나를 오늘까지 독신으로

있게 만들었다.

 

어는 독신자의 독백 [2]


나의 결혼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허영이었다. 허영스러운 것은 모조리 나의 결혼 조건이었다. 예

컨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착한 여자를 찾고 있었다. 나는 이국(異國)의 여왕을 사모하는 졸부였다.

이렇게 이상적인 여자가 있더라도 그런 여자가 미쳤다고 나한테 시집을 오겠는가. 나는 결혼하기에는 너무 현

명했다. 독신은 사치다. 마음이 사치스러운 독산자는 독신보다 더 사치스러운 결혼이 아니면 결혼을 안 한다.

결혼은 리얼리즘이요. 미혼은 로맨티시즘이다. 결혼을 하면 꿈이 없어진다. 대신 사욕만 생긴다. 무욕자는

결혼을 안하는 법이다.


결국 나의 이상주의와 완전주의가 결혼의 천적이었다. 이상적이고 완전한 결혼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나의

결벽주의가 가세했다. 결혼이란 속인 들의 속사(俗事)요. 혼자 사는 것은 성직자들처럼 성사(聖事)다. 이런 생각

이었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여성관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결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철학자

뿐이다. 그러나 참된 철학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 뿐아니라 칸트도 니체도 독신이었다.

나는 가당치도 않게 철학자를 흉내 내고 있었다. "여자는 문 밖에 있을 때는 천사요. 문 안으로 들어오면 여우가

된다. 평생 문 밖에 두어야 한다."


"여자는 첫날은 순종하고 둘째 날은 요구한다. 여자와 하루 이상 같이 살 일이 아니다."  여자란 집에 데려다 놓

으면 부엌의 접시나 깨는 것이다." "여자는 자동차 같은 것이다. 편리한 만큼 속을 썩인다. 모든 길거리의 우환

은 자동차 때문이요 집 안의 우환은 여자 때문이다." 나는 여자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공처가(空妻家)는 공처가(恐妻家)다. 악처를 만난 남

편을 보면 얼마나 통쾌한지 몰랐다. 어떤 기혼자는 "남들이 당신에게 결혼을 자꾸 권하는 것을 자기 혼자 아내

한테 당하기가 억울해서다"라고 나를 응원했다.


또 어떤 기혼자는 "결혼을 한 번 해봤드라면 결혼을 안 했을 텐데, 당신은 결혼을 안 해보고도 어떻게 결혼을 하

면 안 되는 줄 아느냐"고 나를 부러워 했다. 이해 못 할 두 사람이 있다. 결혼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다.

남자는 모름지기 결혼을 안 할 일이요 여자는 모름지기 결혼을 할 일이다. 결혼한 여자는 승장(勝將)같고 결혼

한 남자는 패졸(敗卒)같다. 세상에 제일 보기 흉한 것은 결혼을 안 한 여자요.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 것은 결

혼을 안 한 남자다. 세계의 종말은 가스 불에 냄비를 얹어둔 채 잠시 시장 보려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독신

자의 부엌 같은 것이다. 독신자의 종말은 그렇게 올 것이다.


[이 글은 김성우씨의 『떠나가는 배』에서 「독신의 독백」을 인용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