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현재의 행복한 삶에서 죽음이라는 불청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 화가 났고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죽음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죽음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면 절망하게 된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라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모든 인간의 앞길에는 고뇌와 죽음과 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한 후에 알게 되었다.
어느날 그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무엇을 해도 허무하고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에 고민하고 좌절하다가 어느날 농부를 만났다.
그는 그 농부를 통하여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농부의 이 한마디에
그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선하게 사는 것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농부의 삶은 단순한 삶이다. 땅에 의지하여 그냥 살아 갈 뿐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밭을 갈며 자연의 흐름대로 살아간다.
그런 농부의 삶은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한 것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삶의 모습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죽음도 삶의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농부의 자연스런 삶, 흐름대로 사는 삶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 볼수 있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였을 때 죽음은 삶에 있어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수 없고, 애처롭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있습니다.
태어나 죽지 않고자 하나, 그 방도가 결코 없습니다.
늙으면 반드시 죽음이 닥치는 것입니다.
뭇 삶의 운명은 이런 것입니다.
결국 익은 과일처럼 떨어져야하는 두려움에 처합니다.
이처럼 태아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현명한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 버립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죽음을 기억하라"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모순어법이다.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죽음을 기억하는 만큼 더욱 소중해지는 현재와 오늘을 말한다.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진다.
한 순간 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순간에
층실한 삶은 영원한 삶이라 볼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의미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밤까지 살라!" "시간과 함께 하라"
시간은 흘러 간다.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는 이 변함에 대하여 거부하고 싶어한다.
지금 행복한 자는 영원히 이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만다. 상대방으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기대하지만 조건이 바뀌먼 식어 버린다.
늙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도 늙어 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며 산다면 변화를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며 살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간과 함께 더불어 살면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가차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지나간
상처를 치유해주는 치유의 힘이자 신의 선물이 되어 줄것이다.
- "톨스토이의 마지막 메세지, 변화를 수용하는 삶에서"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
'지평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마미술관 로댕의 키스 (0) | 2017.08.27 |
---|---|
6개월의 시한부 인생 "미 비포 유" (0) | 2017.08.23 |
풀꽃의 의미 (0) | 2017.06.11 |
백제를 꽃피운 무령왕릉 (0) | 2017.05.28 |
벡제 역사문화 투어 (0) | 2017.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