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

paxlee 2019. 7. 12. 05:45

 


"삶에 쉼표가 필요할 때" [1-1]




저자 장영은님은 5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사퇴하고 428일간 6대륙 44개국을 여행한 후 이 책을 출판하였다. 영은님은 7살에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동생과 살면서 어머니께서 누누이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없이 자란 아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해"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여 특성화 공등학교에 진학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공부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정부에서 실업율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대기업에서 고등학교 졸업생을 선발하는 제도가 발표 되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고졸 대기업에 응시하는 문제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대학 진학만 생각하였기에 머뭇 거렸다. 어짜피 대학에 가드라도 취업은 해야 한다면 취업부터 하는 것이 더 빠른 성공이 이루어 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금융공기업에 지원서를 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준비를 하였다. 전국에서 5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입사하고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하루가 모자랄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기도 하면서 업무를 파악하는 일은 학교에서 배우기만 하던 나는 이제 내 스스로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엑셀과 씨름하는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고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대학 졸업장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 진다면, 학위를 딴 후에 사회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3년차가 되어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었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 하였다. 6시가 되면 야근하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면서 저녁도 못 먹고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몸은 녹초가 되곤 했다. 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이었다. 일요일에도 과제를 하느라 친구는 만날 엄부도 못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인정 받고 싶었다. 화려한 학벌의 직장동료들 틈에서는 부족해 보였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부려움을 사기도 하였다. 단비같은 점심시간에 김밥으로 때우며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한 학기가 끝나고 과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사내 승진 시험까지 통과했다. 직급은 대졸직원과 동등하게 되었다. 비로서 차거운 눈동자 앞에서도 당당해 질수 있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회사일에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기계처럼 회사에 출근했다가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에 지처가고 있었다.


어느날은 으슬으슬하게 추위가 느껴지고 근육통이 생겨 병원에 갔드니 대상포진 이라했다. 겨우 24살에 5,60대가 걸린다는 대상포진 이란다. 홍역까지 겹쳐서 몸이 말이 아니었다. 소화가 않되 소화제를 달고 살았고, 편두통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하루는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였다. 건강에 적신로가 오자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해 질줄 알았는데,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동기들과 바람이나 쐬고자 옥상에 올라갔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여의도 전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미로와 같은 이곳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나는 어린 나이에 좋은 회사에 입사하면 행복해 질줄 알았어, 이럴줄 알았으면 취업부터 하는게 아니었는데,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나를 거처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미안해 할까?" 동료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가 너무 따뜻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위로 하던 동료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영은아, 나는 네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고 있어, 죽을 용기로 차라리 세상에 나가서 뭐라도 해봐, 우리가 경험한 세상은 이 건물안 뿐이잖아. 바깥 세상이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철이 없다고 돌을 던져도 나는 항상 너를 응원을 할게" 그녀의 목소리가 꽁꽁 얼어붙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조금은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연봉 5000만원에 5년차의 안정적인 금융공기업 직장인에서 퇴직을 하고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공의 길을 가기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그때 회사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은 자격증을 따서 사무실을 차리거나, 이민을 가는 경우였다. 팀장님에게 그만 두겠다고 말씀 드렸드니, 어느 정도 알고 계셨는지 덤덤하게 알겠다고 수긍을 해 주셨다. 팀장님은 나에게 "장 조사역, 내가 금융산업에서 근무한지 어느세 20년의 세월이 흘렀어, 일이 참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성과도 인정도 받았지,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이일을 좋아 했던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때가 있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더라도 이길이 맞나 싶을 때가 올거야. 그러니 매순간 후회없는 선택을 하게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테니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듯 했다. 팀장님은 20년간 몸담은 분야와는 전혀 다른 우리 팀으로 발령받아 오셨다. 말씀은 안하셨지만 위의 말씀 속에 현재의 심정을 표현해 주신것이다. 


홀로 나를 키우신 엄마의 허락을 받는 것이 벽에 부딪혔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착하고 순한 여자라고 하셨다. 아빠와 헤어진 후 차겁고 앙칼진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는 나와 남동생에게 언제나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며 채찍질을 했다. 나의 퇴사를 엄마에게 말씀드렸을 때 반응은 노발대발하며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하셨다. 오랜시간 동안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눈 하나 꿈적하지 않으셨다. 결국 나는 엄마를 이해 시키는 것을 포기 했다. 퇴사를 한 후 통보만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말 잘듣는 딸로 살아 왔지만, 이제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엄마는 대화를 거절 하셨다. 엄마는 딸을 원망하고, 딸의 마음을 이해 못 해주는 엄마가 야속했다. 냉기가 감도는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날 날만 기다렸다. 여행을 떠나는 당일 형식적인 인사만 한채 집을 나섰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한테 온 메세지 였다. "건강이랑 함께 기다리고 잇겠음, 잘 다녀와" 이 문자속에 그래도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어 홀가분하게 떠날수 있었다. 나도 "알았어. 잘지네, 엄마 나 불행한 효녀 보다는 행복한 불효녀로 살아 갈게요. 잠시만,아주 잠시만, 훗날 꼭 떳떳하게 이날의 결정이 참 잘한 것이었다고 말 할수 있는 딸이 될게요. 사랑해요" 라는 답장을 보냈다.




직장을 다니며 휴식이 필요할 때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아직 신입일 때 주말을 합처도 휴가 일수는 고작 4박 5일 이었다. 이 기간에 다녀 올수 있는 곳은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등 동남 아시아가 고작이었다. 필리핀의 바다가 아름답다고 해서 항공권과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예약했다. 여자 혼자 필리핀 여행을 검색해 보니 총기사고 발생이 빈번한 곳이라 위험하다는 글이 많았다. 그러나 여행의 매력에 더 이끌려 비행기에 올랐다. 호텔에 도착 하기까지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긴장을 하였지만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낯선 언어, 건물, 음식, 모든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들은 혼자 여행온 20살 짜리 나를 보고 한국에서 온 꼬맹이 여행자라고 불렀다. 회사에서는 고졸 사원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회사 밖에서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고 동경의 눈길을 받았지만, 이곳에서는 보이는 것 만으로 판단 되었다.


필리핀에서 돌어온 뒤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기록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다. '꼬맹이여행자 세상에 흔적을 남기다.' 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오늘 행복하지 않아도 내일은 행복 할거라고 믿으며 하루를 희생해 나가는 삶, 나는 그 삶에 쉼표를 찍고 싶었다. 세계일주 여행 이것을 실현하기로 했다. 나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전 했다가 실패해도 되는 학생 신분인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라도 괜찮다. 여행으로 많은 것이 바뀔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동안은 가장 나 다운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배낭을 매고 떠났다. 장영은님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기까지 1부로 묶고, 본격적인 여행기는 2부에 따로 묶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