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55]

paxlee 2020. 2. 19. 22:56

 

나는 걷는다. [Ⅱ- 2]   


6. 메흐디와 모니르의 환대.

에몰라에서 도로 아래쪽에 있는 대상숙소를 발견했다.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거대한 문 입구에 서있던 여자 아이는 차도르 속에 얼굴을 감추고 내가 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안을 봐도 되겠니?" 아이는 대답도 않고, 베일을 날리며 도망쳤다.숙소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 둘이 요리를 했다. 언니가 동생을 나무란다. 둘은 날 보드니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재빨리 차도르를 썼다. 두 여자에게 묵어 갈수 있는지 물었다. 여자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후 오토바이가 도착 하드니, 두 남자가 내렸다. 나를 보드니 죽일듯한 표정을 지었다. 늙은 여자는 손가락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권~~!"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며 멀리서 소리쳤다. 나는 여권대신 여권 사본을 보여줬다. 서로가 경계의 눈초리로 대치 상황에서 안뜰로 향한 방에서 한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나왔다. 방에서 나온 여자에게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설명을 했다.


그래도 서로 냉냉한 분위기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오늘 밤 묵어 가겠느냐고 제의 했을 때, 나는 거절하고 종종 걸음을 치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가 식당에 들렸을때 "그들은 도둑들이에요, 다 털리고 옷만 겨우 결치고 나올수도 있었다고요" 나는 주린 배를 채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식사후에 트럭 운전사들이 낮잠을 자는 곁방에서 잠을 잤다. 북쪽의 산과 남쪽의 사막사이 중간 비탈길에 있는 샤루르는 통행량이 많았다. 1km쯤 더 진행 했을때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다가 오더니 "오토바이로 가더라도 다음 오아시스까지 갈수 없어요" 라고 말해 주었다. 5km 가량 걸었을때, "우리 공장에 와 보실래요?" 나도 모르는 살이 거무스레한 눈을 한 젊은 여자가 바로 옆에와서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서렸다. 지친 나는 몸을 씻고 요기를 한 뒤 자고 싶었다. 여자는 친절하게 권하면서 멜론 장수가 도로 가장자리에 설치한 천막 진열대 뒤에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난 아무것도 살수없고 들고 갈수도 없다는 말을 했다.


"팔려는게 아니라. 그냥 보여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여자가 너무 거리낌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기 때문에 갑자기 불신이 사라졌다. 여자를 따라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나는 메흐디와 영어로 얘기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메흐디는 도자기 공장 사장이었다. 모리르는 그의 아내이고, 키가 크고 건장하며 환한 미소가 매력있는 니히르는 회사를 경영했다. 도로에 있던 나를 알아본 사람은 마리였다. 교감, 더위, 솔직하고 너그러운 환대, 메르디는 식사 대접에 그치지 않고, 공장을 안내하고, 이슬람 사원을 구경하면서 사원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도시의 예술학교를 다녀와서 니히르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가해서 배부르게 먹은 뒤 집 주인의 딸 히스티의 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처럼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는 비자의 기간내에 이 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떠났다.


7. 아편 중독자

네시경, 다리 밑에서 신성불가침의 휴식 시간을 보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나를 지나쳐 갔다가 멈추드니, 운전사가 우정어린 제스터를 보였다. 이틀전 자기 아이스 박스를 탈탈 털어서 물을 주었던 메흐메트였다. 그는 메세드에 가는 길이었다. 다섯살 짜리 딸과 부인을 태우고 있었는데, 금발로 염색한 부인은 누렇고 치근이 보이는 미소만 짓지 않는다면 매력있게 보일수도 있는 얼굴이었다. 메흐메트는 아이스박스에서 멜론을 꺼내서 위엄있고 당당한 동작으로 자르드니 큰 조각을 건네 주었다. 우리가 트럭의 그늘에서 목을 축이고 있을때, 그의 부인은 트럭 운전사들이 차에 가지고 다니는 가스버너에 불을 붙였다. 이란의 트럭은 움직이는 집과 같아서 그안에서 자고, 얼음을 가지고 다니며, 그 얼음으로 차를 끓였다. 나는 메흐메트와 얘기를 나누며 부인을 지켜 보았다.

 

여자는 연필을 이용해 종이를 만들드니 가운데를 '세로판 테이프로 붙이고 불위에 철사를 올려 놓았다. "집 사람이 타르야크를 피려고 하는데, 한대 필래요?" 난 '피다'라는 말을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후 타르야크가 아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몸에 아주 안좋은 거에요" 내가 말했다. 여자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체 미소를 지었고, 그제야 여자의 치아가 왜 그렇게 누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치드니 말했다. "난 모르핀이 더 좋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리를 바라 보았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서 내가 조금전에 준 플라스틱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입에 종이로 만든 실린더를 넣드니 철사위에 아편방울을 들이 켰다. 그리고 가스 위에서 하얕게 달궈진 다른 철사 위에있는 마약을 들이 켰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희뿌연 김이 펴지는 가운데, 그녀는 종이 튜브로 마역을 빨아 올렸다.

 

그들은 환희의 첫 단계에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짜증과 연민이 교차했다. 결국 그들과 헤어지기로 하고 에브니를 들고 작별 인사를 한뒤 도로 위로 몸을 던졌다. 트럭은 45분 후 이란의 모든 트럭이 장착된 싸이렌을 요란하게 울리고 커다란 체스터를 보이며 떠나갔다.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오기도 하였지만, 보람도 있었다. 나는 대상 숙소에 도착했다. 대상 숙소는 훌륭했다. 테라드가 앞뜰로 향하고 방 스무개와 안쪽에 방 마흔개가 있었는데, 아바스 양식으로 만든 아주 고전적인 이 건물은 2세기 반을 꿋꿋하게 견뎌냈다. 건물에 주름 무늬를 만든것은 비가 아니었다. 안뜰 중앙에 있는 네모난 작은 저수조는 카나트의 물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카나트는 저수조 까지만 달았지만, 그래도 나무가 몇 그루 있는 것으로 봐서 물줄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둥근 지붕은 지진에도 잘 견뎌냈다. 마구간 규모는 어마어마 했다.

 

안뜰의 구석에 온전한 상태이 빵굽는 화덕 두개가 아직도 사용할수 있는듯이 보였다. 순례자에게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미라보 사원의 네 벽중 메카방향의 벽이 있는 벽감(壁龕=건축물의 벽에 움푹 파놓은 장식벽장)도 있었다. 안뜰로 향한 테라스 달린 방 하나를 골라 방을 쓸고 치웠다. 나는 하룻밤을 여기서 자기로 했다. 여기에 놓여있던 바지 하나를 입어 보았는데, 바지 자락이 무릎에 닿았다. 이걸 입고 있으니 시원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상과 같은 생활을 했다. 예전의 상인들은 각자 이런 방을 차지하고 테라스에 물건을 전시해 상점처럼 이용했다.


8. 이란의 공포정치.

집 세체가있는 리반드에서 쉬어가려고 했는데, 식당 주인이 너무나 적대적 이어서 15km 만 더 가면 되는 에미르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여기도 여관이 없고, 길에서 만난 세사람은 내 질문에 어찌 할바랄 몰랐다. 사브제바르에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루에 50km를 걸어서 오후 5시경에 사브제바르에 도착했다. 그런데 호텔은 만원이었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어떤 여자가 대학입시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곳 사브제바르 대학은 이란에서 형편없는 대학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가족과 자식들이 대입 시험장에 몰리는 이유는 대학교 수준 만큼이나 시험 수준도 낮아 우선 입학을 한후 테헤란의 다른 대학으로 편입 할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에브니를 끌고 다른 호텔로 가고 있는데, 내 뒤를 바짝 쫓아오던 사람이 "날따라 오시오" 조금 살찐 젊은 이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날따라 오시오, 경찰에서 왔소" 테헤란에서 경찰 도둑을 만난 이후 내가 평복차림의 경찰을 불신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그에게 "경찰? 당신이 경찰 이라고? 제복도 안입었잖소" "제복은 안 입었어도 경찰이고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신분증 있소?"  그는 전세가 역전 되는걸 눈치채고 협박을 하려고 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드니, 그는 "난 경찰이오, 따라 오시오"  "싫소, 당신은 경찰리라고 하지만, 증명하지 못하잖소,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제복이나 신분증이오. 잘가시오. 만약 날 찾고 싶다면, 이 호텔로 오시오."  그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경찰본부요" 나는 에보니를 끌고 자리를 떴다. 그는 나의 팔을 잡았다. 그는 동료 경찰에 알렸다. 그는 나의 길을 막았고, 무장한 군인들이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두 경찰에 포위돼 경찰서로 갔다. 그들은 제복입은 경찰에게 내 에브니를 맡겼다. 우리는 경찰서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젊은 경찰은 거의 공손에 가까운 친절한 태도로 사과를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손을 꼭쥐고 서있는 내쪽으로 한 경찰이 다가왔다. 젊은 경찰이 차를 권했다. 나는 여권을 찾기위해 주머니를 뒤지면서 그의 악수를 피했다. "'내게 뭘 원하죠?"  "단지 이것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정말 차를 마시지 않을 건지 말이오" 그는 동료와 사무실 전등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서류를 뒤적 거렸다. "당신 비자는 이제 유효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난 웃으며 여권을 꺼내서 난 그에게 이란 땅에 들어온 날짜가 5월 14일이고, 유효기간 3개월이고, 내 비자의 만기일은 8월 13일이고, 지금은 7월 13일 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곳에선 어떤 날자는 기독교력이고, 어떤건 이슬람 력이 서로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이 두가지를 혼동하고 있었다. 그는 계산을 해 보드니 내 말에 동의하고 부하에게 내가 호텔을 찾을수 있도록 도와 주라고 했다. 나는 에보니를 찾아 호텔로 돌아왔다.


9. 순례자.

이란에서 가는 곳마다 사원이 많았다. 투스 마을에 있는 페르도우서 시인의 사원은 시인 하피즈, 하이얌과 함께 이란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집 <샤 나메(Shah Nameh) 이 서사시는 아랍인의 침입을 받기전 페러시아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가장 독특한 장소는 이맘레자의 사원이다. 파무르의 넷째 아들인 샤르흐의 아내가 지은 가우아르 샤드 사원의 터키옥색 지붕은 시인의 유골을 안치한 황금롬 사원을 어느곳에서나 잘 보였다. 사원에 들어 가려면 입구에 카메라와 여권을 맡기고 간단한 몸 수색을 받아야 했다. 선견지명이 있는 내 가이드는 혹시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며 우리가 있던 곳의 이름을 페르시아어로 적어 주었다. 지나친 걱정이라고 했지만, 한꺼번에 10만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기도 하기위해 들어오는 20㎡나 되는 첫번째 본당에 들어서자, 가이드의 걱정이 이해 되었다. 건물 전체의 크기는 6만㎡ 라고 한다.


사원은 매혹적인 푸른색의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고, 신도들은 시아파 수장의 이름과 코란 구절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흰 대리석 바닥에 긴털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사원의 장식도 인상 깊었지만, 볼걸리는 셔츠을 입은 남자와 차도르를 두른 여자가 황금돔을 향해 서두르거나 늑장을 부리지 않고 몰려가는 모습 이었다. 한 부부와 그들의 아기가 그늘진 양탄자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천복(天福)의 이미지였다. 좀더 먼곳에선 선채로 기도를 올리느라 지쳐 보이는 여자가 검은 차도르 안에 맑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감정을 억제하며 비틀거렸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뮬라가 촘촘히 줄지어 앉은 신도들에게 코란의 말씀을 설교했다. 나는 길을 잃었고 미로같은 곳에서 방향을 잡을수가 없었다. 맨발은 타일 위에서는 타는듯 하다가 양탄자 위에 오르면 다시 시원해 졌다.


기도 시간이 다가오자 분수 주위에서 신도들이 몸을 씻느라 분주했다. 공간, 열정, 성소등 모든게 엄청났다. 푸른 가우마르 샤드 사원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최면상태에 빠진 남자 하나가 코란을 품에 안고 경배하고 있었다. 본당안이 꽉차자 복도까지 사람들의 행렬이 넘쳤고, 점점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어 졌다. 몇 미터를  더 해치고 나가서 이맘레자 묘지가 있는 10m 앞까지 왔다. 묘지위 천장을 뒤덮은 거울과 색 유리가 빛을 반사했다. 벽은 희색과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돼있어 푸른색과 돋은 새김으로 된 글씨가 대조를 이루었다. 금과 은 창살로 보호된 틀 주위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격앙된 분위기 탓인지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납골함으로 다가가 손을 대고 어러 만지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묘지를 이중으로 보호하는 유리판 사이로 봉헌물을 들이 미느라 안달이었다.


신도가 아닌 이들도 볼수 있도록 허락한 이곳에 매료됐다. 이런 종교적 열정은 매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돈을 봉헌한다. 이슬람 사원에 사람들은 자의로 공장과 집과 예술품과 모든 재산을 바쳤다. 사원안에 있는  두 박물관은 쉰번째 귀중품만을 전시할수 있었다. 아스탄은 최소 600개의 회사기관, 대기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란과 두르크메니스탄 국경 근처에 있는 사라흐스에 면세 활용 지역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수없는 현상이다. 재산중 대부분은 기부금이나 봉헌물로 생긴 것이지만, 특히 전리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부는 가톨릭교회가 거대한 평신도회를 통해 유럽을 장악하고 그들의 법을 군주에게 부과해 대리로 통치하게 했던 13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일군 것과 비견할만 하다.


10. 국경.

나는 끔찍한 카라큼 사막 횡단에  대비해 텐트를 하나샀다. 바보같이 테헤란에서 그렇게 힘들여 입수한 카메라를 결국 잃어 버렸다. 하지만 메셰스는 아바스아바드가 아니니 새 카메라를 살수 있르리라. 이란에서 위인이나 성인을 모신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는 건 일상의 일이나, 이것은 뮬라의 폭력적이고 숨통을 죄는 권력과 거리를 둘수 있기 때문이다. 묘지가 신성한 곳이 되는 이유는 강요된 숭배보다는 선택된 숭배를 하는 것 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묘지위에 도구를 전시해 고인이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나타냈다. 이란 사회는 엄격한 도덕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상생활에서 남성은 티셔츠를 입는 등 어느정도 파격이 허용 되지만, 여성은 온몸을 감싸야 한다. 남성은 바지를 두게 입는데 속의 바지는 잠옷으로 사용된다.


이란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상이 궁금해졌다. 터키나 아랍의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 여성은 종요한 일을 맡고 있다. 대부분의 이란 여성은 한가지만을 바란다. 차도르와 스카프와 마그나에 늘 벽장안에 처박아 버리는 것이다. 종교 때문에 차도르를 쓰는 이란 여성의 수는 서구에서 기독교의 차도르를 쓴 수녀의 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외국으로 떠나는 여성은 비행기에 올라 타자마자 거추장 스러운 이 악세사리를 잊어 버린다고 한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여성의 위상은 종교에서 처럼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다. 이슬람 법은 네명까지 아내를 둘수 있도록 허룡하지만, 중혼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이란 여성이 아무런 생각없이 일부 다처제를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뮬라만이 중혼을 남용한다. 대학에서 여힉생이 남학생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이슬람 혁명은 계층의 차이를 소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 시켰다.


돈이 모든 문을 여는 열쇠다. 군 복무의 병역의무를 마치지 못한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다. 구태여 군복무 1년 반을 보낼 필요는 없다. 1200만 리알을 주면 군대에서 국가의 병역의무를  충실히 이행 했다는 확인서를 발급해 주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꿈도 꿀수없는 액수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런 증서를 사는 경우가 많다. 18개월간 1600리알을 번 중학교 교사 하나는 이 증서를 구입한 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투자회수'를 할수 있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는 코란의 법률을 무조건 감내하지 않는다. 지난 봄에 야영을 떠난 젊은이들에게 닥친 불행한 일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수 있다. 이들은 산에서 술 몇 병을 가지고 올라갔다가 현장에서 코미테(경찰)요원에게 체포 돼 고발 당했다. 재판장의 판사는 뮬라였고, 어느 누구도 이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젊은 이가 희생을 자쳐해서 자기 혼자 술을 가져가 마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일로 유명해 졌고, 벌금은 모금운동으로 거둔 돈으로 낼수 있었다. 이 재판으로 젊은이는 영웅이 됐고 모금운동에서 볼수 있듯이 젊은 이들은 똘똘 뭉쳐 체제에 저항했다.


오후 1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자 타오르는 태양 때문에 목이 말라 입을 물통에서 떨러질줄 몰랐다. 등과 팔은 익어버리는 것 같았다. 에브니는 납덩어리 처럼 무거웠다. 오르막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나는 다리를 질질끌며 걸었다. 남은 2km를 가려면 한시간 가량 더 걸어야 했다. 처음 나타난 집은 식료품 가게였다. 시원한 청량음료를 두개나 사서 마셨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앞으로 식당이 두개 나오는데, 두번째가 더 나아요" 라고 도장을 파는 사람이 말했다. 처음식당 앞에 이르니 더 걷는 걸 포기하고 테라스 위에 놓인 침대 타흐테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했다. 나는 몹시 피곤해서 음식이 오기전에 잠이 들었다. 내가 자고 있으니 종업원은 두시간 후에 내가 잠에서 깨자 음식을 다시 가져왔다. 음식은 불결해 보였지만 주저하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운뒤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뱍 다섯시에 거뜬하게 일어났다. 피로가 풀린 장딴지로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갔다. 아침 8시경 잠시 앉아서 경치를 감상했다. 멋진 경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