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9. <고향 사람들과 절골에서 >

paxlee 2020. 10. 13. 05:37

고향 사람들과 절골에서 (2020.10.09.)

 

지난주에도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절골로 향해 내려 갔다.
서울에서 형님과 여동생, 나 이렇게 셋이서 매부가 기흥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친구 신해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넷이서 시끌벅적 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한글날 공휴일이어서 도로에 올라서니 생각
보다 길이 많이 막혔다. 친구가 다른 도로로 옮겨 갔다가 그기도
막힘은 여전하여, 다시 먼저 가던 길로 올라서서 앞차를 따라갔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이 밀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늦을 것 같다.

 

기흥에서 안성쪽으로 가는 지방도로 인데 차들이 엄첨 밀렸다.
그래도 한 30분쯤 달리니, 조금 숨통이 튀였다. 안성남 IC에서
평택~단양행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달렸다. 금왕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기름을 넣고, 금왕,음성 IC를 빠져나와 지방도로를 달렸다.

 

괴산을 지나 송면을 향하는 길에 괴산 '산막이옛길'을 만나는 곳을
지나 달려갔다. 대구 친구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벌써 화령을 지나고 있다고 하면서 도착 예정 시간을 물었다. 우리는
아직 1시간 30분은 가야 하니, 도착하면 청소부터 해 놓으라고 했다.

 

화북을 지나, 백두대간 비조령을 지나, 절골에 도착하였드니, 2시가
넘었다. 여동생이 찰밥과 국, 반찬을 준비해 와서 찰밥은 김에서 싸서
먹어면 맛있다고 하여 김을 꺼내놓고,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고향 한 마을에서 성장한 사이라 모두가 서로를 잘알아 부담이 없다.

 

대구 친구가 하는 말, 군대 이야기를 하는데, 배꼽이 빠질만큼 웃엇다.
6,25 사변으로 한참 전쟁이 불꽃을 틔길때, 적군이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날, 소대장이 갱상도 사람이라 모두 '수구리' 라고 명령 했다.
그 말이 완전 사투리라 알아 듣지 못한 병사들은 총을 맞아 죽었는 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한 병사가 왜 알지도 못하는 말로 해서
병사들이 죽게 했느냐고 항의를 해서, 그럼 그말은 이제 안쓰꾸마!
그리고 다시 총탄세레가 퍼부우니, 이번에는 '아까 맹크로' 명령했다.
이번에 '아까 맹크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 병사가 맞아 죽었다고.

 

지방 사투리는 못알아 듣는 말들이 많다. 지금같이 도시와 지방의 나들
이가 일반화 되지 않은 50년대, 60년대는 특히 지방 사투리가 일반화
되어 억수로 웃기는 말들이 많다. 고향 사람들 만이 알아듣고 즐기는
언어는 서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고향 사람임을 반드시 알아 본다.

 

우리는 쉼을 가진 다음 산으로 밤을 줏으러 갔다. 산밤이라 밤알이 너무
작았다. 산에 올라 가면서 밤나무 밑을 기웃겨렸으나, 밤알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곡에 내려와 얼음을 몇송이 따가지 왔는데, 한 친구가 따로 가드니
제법 굵은 알밤을 제법 많이 줏어와 밤을 삶아서 까먹는 재미가 솔솔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