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10. <산촌 절골에서>

paxlee 2020. 10. 14. 06:10

산촌 절골에서 (2020.10. 9~10.)

 

한쪽 방에는 전기로 물을 데워서 순환시키는 매트가 있어서 전기를 꽂으면 따뜻하다.

뒷쪽 방은 향토방이라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때야 잘수 있는 방이라 저녁에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군불을 넣었다. 꿀뚝에 연결해 놓은 환풍기를 돌리면 불꽃이 깊숙히 안으로 빨려

즐어간다. 처음에 불을 붙이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일단 불이 붙으면 나무가 잘 탄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은 따뜻헤 진다. 방 바닥이 따뜻해지는 감도를 봐가면서 나무를 한번 더 넣었다.

 

저녁은 여동생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였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이것저것을 꺼내어

맛있는 저녁을 준비 하였는데, 지난번에 대구 친구가 가져온 큰 조기가 세마리나 있다고

하면서 꿉고, 얼가리 배추와 갓을 뽑아 생채를 만들고 된장을 끊이고 하여 저녁이 진수

성찬은 아니지만, 남자들이 해 먹는 맛과는 천지 차이라고 하면서 맛있게 멋있게 먹었다. 

 

한번 넣은 나무가 다 타고 다시 한번 더, 나무를 넣었드니, 향토방이 본격적으로 뜨거워

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굴불까지 때놓았으니, 잠자리는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고향 친구가 고구마를 캔다고 대구 친구가 가드니, 고구마를 한봉지 가져고 올라 왔다.  

저녁을 먹고 아궁이 불에 고구마를 꾸었다. 그 맛이 삶은 고구마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밤 늦게까지 고향 이야기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고향을 찾아와 함께 즐기는 시간은 우리가 살아온 그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자주 만나자는 약속을 하였다., 너와 나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마음과 다른 현실은 희망사항이 될지는 모른다.

 

토요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여동생과 주인 친구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 남고,

셋이서 아침산책을 출발하였다. 6시가 되었는데,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도 백토재를 향해 올라갔다. 백토재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동쪽에 먼동이 트는 빛이

밝아 온다. 백토재까지 셋이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이다.

 

백토재에 토착해도 해가 올라오지 않았다. 한 친구는 고개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둘이는

동관2리 백두대간 비조령 아래 마을까지 다녀 오기로 하였다. 형님이 여기까지 왔으니,

벡토재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내려 가라 연락하고, 우리는 평온 절골 삼거리를 지나 갈골

고개를 넘어 매바위를 지나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아침 산책은 약 8km를 걸었다.

 

평온, 절골, 화북으로 향하는 삼거리를 지나서 올라가다가 형님이 이 골짜기에 밤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집 가까이는 밤알이 작아서 줍지 않았는데, 이곳에 알밤은 굻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그곳으로 비닐봉지를 하나씩 가지고 알밤을 주으러 갔다. 골짜기를

올라 갔드니, 길에 알밤이 억수로 많이 떨어져 있는데, 벌레먹은 밤알이 아주 많았다.

 

노인회장이 산밤은 10개를 주으면 8개는 벌레먹은 밤이라고 하드니, 역시 벌레먹은 밤이

많았다. 알밤이 이렇게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을 처음 만나 신나게 알밤을 주었다. 나는 10개

를 주으면 8~9개 정도는 벌레먹은 밤 이었다. 그래도 워낙 많아 줍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한송이에 한알이 들어있는 밤이 대체로 벌레가 먹지 않았다. 밤알도 굻어서 신나게 주웠다.

 

밤을 한 봉지씩 주워서 오다가 화북에 올갱이 국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문이 닫혀있다. 그래서 두부를 직접 만드는 집에 두부 전골이 맛있다고 

그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집은 역시 두부 전골도, 청국장도, 비지장도 맛이 꿀맛 이었다.

배불리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쉬었다가 절골로 돌아왔다. 고향의 맛과 정이 넘치는 날이다.

 

오는 길에 이번에는 노인회장의 허락을 받아놓은 고추밭에서 풋고추를 따기로 하였다. 농약을

제때에 쳐서 병에 걸리지 않아 고추가 아주 많이 달렸다. 이제 더 이상 고추가 붉지 않으므로

풋고추를 따 가라고 하였기에 우리는 잠시동안 비닐봉지에 풋고추를 하나 가득 따서 담았다.

고추를 따는 재미는 서로가 소통하는 고향 언어의 뉴앙스가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도시 생활과 산촌생활을 거듭 하면서 '코로나 19'로 찌들어가는 생황을 겨우 지탱하고 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