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536. <가수 이장희,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가장 행복>

paxlee 2022. 6. 28. 03:30

“음악·사업도 잘됐지만…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가장 행복”

■ M 인터뷰 - 18년동안 울릉도 생활… 가수 이장희

지난 11일 ‘울릉천국’에서 만난 가수 이장희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배경으로 “울릉도가 최고”
라며 엄지척을 하고 있다. 그는 머리를 빡빡 민 것은 “울릉천국에 이어 두 번째로 잘한 선택”
이라고 말했다.

그건 너·한 잔의 추억 등 히트
1970년대 풍미하다 돌연 은퇴
美 레스토랑·라디오방송 성공

울릉도에 반해 2004년에 정착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꼽아
자신만의 정원‘울릉천국’가꿔

애주가 답게 밤새 술 마시다가
깨어나지 않고 가는 게 내 바람
작고한 송해 선생님이 롤 모델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동안, 나는 바로 부딪쳐 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공을 맛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등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어 낸 이장희(75)가 가수와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비결에 대해 지난 11일 문화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이장희를 만나러 울릉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고단한 여정이었다. 11일 오전 0시 30분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4시 강원 동해시 묵호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6시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9시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30여 분 후 그의 안식처가 있다는 평리에서 내렸다. 15분여간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산 중턱에 자리한 4만2900㎡의 드넓은 평원 ‘울릉천국’이 펼쳐졌다. 오는 2025년 예정대로 민간 항공이 운행하면 지금보다는 좀 더 편리하게 자주 이장희와 울릉천국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그 시각 이장희는 등산을 가고 없었다. 그는 매일 울릉천국과 이어진 울릉천봉(원래 이름은 석봉인데 그는 이렇게 불렀다)까지 왕복 1시간 30분 정도 산을 오르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그를 기억하는 팬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떠올린다. 20대 시절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 코밑에 난 흉터를 가리려고 오랫동안 콧수염을 길렀으나 지금은 깎아 없애고 머리도 빡빡 밀었다.

먼저 요즘 사는 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하죠. 하하하. 행복은 마음속에 있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거고. 하하하.” 그는 유난히 웃음소리가 컸다. 질문하면 대답보다 큰 웃음이 먼저 나왔고 대답하고 나서 또 웃었다. 넉넉하고 호탕했다. 그는 “인생은 선택”이라면서 “어릴 때부터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더없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울릉도에 정착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울릉도가 왜 좋으냐고 물었다. “산과 물이 있어서 좋다”면서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다,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러시아, 북한 사이 동해 한가운데 있고, 무엇보다 경치가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일과가 궁금했다. 보통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난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마당에 잔디를 깎고, 화단에 있는 꽃에 물을 주고 가꾼다. 우유에 시리얼로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PC로 업무를 본 뒤 등산을 다녀오는 것으로 오전 일과가 끝난다. 점심 식사는 찌개를 끓여 먹거나 바나나와 사과, 귤을 믹서기로 갈아서 먹고 부족하면 떡을 한 조각 먹는다.

오후 일과는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한다고 했다. 요즘 그는 원더리움(WONDRIUM)이라는 미국의 한 유료 교육 프로그램 사이트(wondrium.com)에 심취해 있다. “유명 인사들의 강연에서부터 철학, 역사, 여행, 음악, 정원 가꾸기에 이르기까지 관심 분야를 탐구하고 있다”며 사이트에 접속해 설명해 줬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이 사이트를 즐겨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와인 마시며 보내고 10시쯤 잠자리에 드는데, 매일 등산을 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한다”고 했다.

이장희는 1947년 경기 화성시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천자문을 익힐 정도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서 캠핑하는 걸 좋아했다. 여행은 삶의 큰 부분이라는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도 몇 개월에 걸쳐 세계 일주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한다. 그는 “여행을 즐기려면 이런저런 핑계에 발목 잡히지 말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중학생 때 두 살 많은 삼촌의 친구인 가수 조영남을 만나면서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매료돼 노래를 부르게 됐다. 독학으로 작사·작곡을 익혀 주옥같은 노래를 숱하게 남겼다. 1세대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명문 서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음악이 좋아서다.

그는 대부분 히트곡을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만들었다. “한 곡을 작곡하기 위해 몇 달씩 작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오래 붙잡고 있다고 좋은 노래가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천재라고 말한다. 그런 평가에 대해 그는 ‘둔재’라며 겸손해했다.

“천재가 아니라 둔재죠.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하하하. 음악에 재능이 있다기보다 음악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 순간에 미쳐 살았지요. 일주일간 벼락치기로 연세대 생물학과에 진학한 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장희는 지난 11일 예정에 없던 지역 주민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어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를 열창했다. 노랫말이 그의 75년 삶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1971년 최인호가 작사한 ‘겨울이야기’로 데뷔해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74년 최인호 소설을 영화화한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 주제가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한 잔의 추억’은 한국 최초로 영화 OST 앨범으로 제작돼 영화만큼이나 대박이 났다.

그러나 1975년 8월 가요정화운동 때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불 꺼진 창’ 등 히트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건 너는 책임 전가, 한잔의 추억은 음주 조장, 불 꺼진 창은 불륜을 조장했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해 12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됐고,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무렵 그는 음악 생활에 회의를 느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주위에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즈막히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로 시작하는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에서부터 ‘진정 그대가 원하신다면/ 그대 위해 떠나겠어요’ 하고 시작하는 조영남의 ‘사랑이란’도 그가 만들어 준 노래다.

이 밖에도 ‘그대 주저하지 주저하지 말아요/ 기다리던 때가 온 것뿐이에요’로 시작하는 방미의 ‘주저하지 말아요’도, ‘좋은 걸 어떡해 그녀가 좋은 걸/ 누가 뭐라 해도 좋은 걸 어떡해’로 시작하는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떡해’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이장희가 키운 슈퍼 그룹도 있다. ‘사랑과 평화’다. 그 유명한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는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는 불후의 명곡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노래들은 활동 규제로 인해 대부분 동생과 아들 이름으로 발표됐다.

가수 은퇴 후 사업가의 길을 걸은 이후 손대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거뒀다. 처음 시작한 의류 사업은 물론 미국으로 건너가 시작한 레스토랑, 한인 라디오 방송국까지 큰 성공을 거뒀다. 1992년 ‘LA 폭동’ 기간 중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활약했고, 폭동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한 ‘라디오 코리아’에 격려차 방문한 조지 H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방송에서 인사말을 하도록 하기도 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교민사회의 융화단결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장도 받았다.

그는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 원칙이 있다. ‘재주 있는 사람보다는 성실한 사람’을 쓴다는 것이다. 또 사람을 쓸 때는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 그들과 많은 토론을 한다. 덕분에 사업을 시작하고 1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사업도 인간관계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생활에서도 회의를 느껴 1988년 한국에 잠시 돌아와 설악산 흔들바위 인근 계조암이라는 암자에서 3개월을 기거했다. 그때 달밤에 계곡 물소리와 촘촘히 박힌 별빛에 둘러싸여 자연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돈, 명예, 노래, 사랑…. 수많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자유’와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1996년 친구의 권유로 처음 울릉도를 찾았다. 지금과 달리 도로 사정도 좋지 않던 때였다. 열흘간 도보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의 아름다운 경치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이듬해 현재 울릉천국이 된 이곳의 농토와 100년 된 집을 구매했다. 그 후 매년 미국에서 돌아와 보름가량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2004년 울릉도에 정착했다. 화단을 가꾸고 바다로 흘러나가는 샘물을 막아 연못을 만드는 등 그만의 정원을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2010년 친구 아내인 MBC 국장의 권유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이듬해 설 특집 ‘세시봉 콘서트’에 출연, 울릉천국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1월 방송된 MBC 설 특집 ‘이장희 스페셜-나는 누구인가’에서 이장희는 오랜만에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며 7080세대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23년 만에 열린 콘서트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인 배우 윤여정이 사회를 맡았다. 또 가수 송창식과 개그맨 전유성 등이 게스트로 출연해 무대를 빛냈다. 지난해 국민문화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그는 애주가다. 레드와인을 즐겨 마신다. “1년에 360일은 술을 마셔요.” 한마디로 매일 마신다는 얘기다. 인터뷰 도중에도 와인 두 박스가 배달돼 왔다.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인터뷰 이후 정원에서 와인을 나눠 마셨다. 이어진 만찬에선 소맥(소주+맥주)도 몇 잔 들이켰다. 별채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용도가 뭐냐고 물었더니 ‘술 마시는 방’이라며 또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작고한 송해 선생님이 롤 모델”이라고 했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건강하게 장수하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밤새 술 마시다 다음 날 깨어나지 않고 가는 게 나의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화장해서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에 뿌려 주길 이미 부탁해 놓았다”고 했다.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 주오’로 끝나는 그의 노래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 떠올랐다.

1988년 미국에서 살 때 죽음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이혼의 아픔을 겪은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최근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밝혀 귀가 번쩍 뜨였다.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알고 지내던 평범한 여성인데, 일이 있어 잠시 미국에 갔다”고만 말했다. 어떤 여성인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도, 말을 이어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행복하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이날 예정에 없던 지역 주민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선사했다.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어,
내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있어,
친구여, 확실하게 해 두고 싶은 게 있어,
내가 확신하며 살았던 내 삶의 방식을’로 시작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였다.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랑도 해 봤고,
웃기도 울기도 해 봤어,
실패도 실컷 맛봤지,
그리고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그 모든 것이 재밌고 즐거운 추억이었어’.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내 지나온 날이 보여 주듯,
난 당당히 시련을 받아들였고,
내 방식대로 해결했어,
그래, 그건 내 방식이었어’.

노랫말이 이장희의 75년 삶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그는 좌우명 ‘내 멋대로 살자’처럼 그의 방식대로 살아온 ‘자유인’이자 ‘자연인’이다.

- 울릉도=글·사진 박현수 기자. 문화일보 / 2022년 06월 24일(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