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533. <인터넷 언어 대폭발… 투항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paxlee 2022. 6. 26. 08:12

인터넷 언어 대폭발… 투항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소셜미디어 이후 문자 소통 대세들은 멍멍이 ‘댕댕이’, 귀엽다 ‘커엽다’
텍스트 변형하는 언어유희가 유행으로 “생성·변화하며 새 언어 만들어져”
오랜 전통이냐, 새로운 세태냐, 누구의 文法 따를지 선택해야 한다.

 

그레천 매컬러 지음 |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448쪽 | 1만9000원

 

최근 국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회사 업무용 문서에 ‘머구’라는 말을 쓴 20대 신입사원 사연이 소개됐다. 머구는 대구를 인터넷에서 재미있게 표현하는 방식. 이른바 ‘야민정음(인터넷 표현 규칙을 정리한 문서)’식 표기법이다. ‘머구’를 한눈에 알아봤다면, 당신은 아마도 인터넷에 성공적으로 ‘이주(移住)’한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커엽다’(귀엽다) ‘댕댕이’(멍멍이) ‘머통령’(대통령) 등의 표현이 TV 예능 자막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등 이미 일부 어휘는 일상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비빔면을 만드는 한 식품회사는 젊은 층을 노려 ‘네넴띤’으로 제품명을 표기한 한정판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로 미국 언어학회가 주는 ‘2021 언어학·언어·대중상’을 수상한 저자는 이런 언어의 변칙에 대해 중세 유럽의 수도사나 종교 재판관 같은 태도를 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언어의 특징이라는 것. 인터넷을 만나 그 속도가 빠르고 범위가 광범위해졌을 뿐이다. 기술 문명의 발달은 언어의 변형 생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은 언어가 전파되는 속도와 방식을 규정한다. 예컨대 영어의 ‘헬로(Hello·여보세요)’는 전화기 보급을 위해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말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만든 ‘벨 텔레폰 컴퍼니’(1877년)에 맞서 당대 미국 최대 전신 사업자였던 웨스턴 유니언은 발명가 에디슨을 고용해 더 성능 좋은 전화기를 개발한다. 또 전화기 보급을 위해 ‘수화기를 들 때는 헬로라고 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벨이 택한 어휘는 뱃사람들이 쓰던 ‘아호이(Ahoy·여어)’라는 말. 결과는 신생어 헬로의 완승(完勝)이었다. 이후 헬로는 일상어 지휘까지 획득했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 영국 BBC 텔레비전 시리즈에 아침에 출근하면서 ‘헬로’라고 인사하는 신입사원을 못마땅해하는 기성 세대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언어는 예나 지금이나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장(場)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 시대 언어 생활의 특징을 ‘텍스트의 폭발’로 규정한다. 책 제목 그대로 ‘인터넷 때문에’ 이전에 겪지 못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SNS로, 문자 메시지로, 톡으로 매일 글을 쓰면서 벌어지는 일. 음성 언어로만 가능했던 ‘실시간 상호작용’이 인터넷 덕분에 문자로 가능해졌고, 이 행위에는 거의 전(全) 인류가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비격식 문어(文語)’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한국어만 인터넷에서 변형·파괴되며 몸살을 앓는 것이 아니었다. 세대와 함께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이 언어의 속성. 저자는 “베끼고 따라 쓰며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거의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 성경이나 법전, 문학 작품들로 대표되는 언어의 구(舊) 권력은 힘을 잃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누구의 문법(文法)을 따를지 묻는다. ‘당신이 문자 메시지에 구두점을 찍는 방법을 선택할 때 염두에 두는 상상 속 권위자는 누구인가? 옛 영어 선생님이나 사전의 규칙인가? 아니면 온라인 또래 집단, 당신이 글로 전달한 말투에 그들이 보이리라 예상되는 감정적 반응인가.’ 정답은 없다. 선택은 세대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젊은 세대가 성장하면서 부모 세대의 언어 습관을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언어 자체는 그 상호작용의 그물망(네트워크) 속에서 탄생하고 변형하고 사멸해 간다. 저자는

 

“언어의 그물망엔 우리 각자를 위한 공간이 있다. 마음껏 즐기고 따라 쓰고 베끼고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라”고 권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는 모두 영어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도 꽤나 유용할 듯하다. 예컨대 미국 채팅에 등장하는 ‘lol(laughing out loud)’의 경우, 초창기엔 ‘크게 웃는다’는 의미를 가졌으나, 요즘은 딱 한국식 ‘ㅋㅋ’라고 한다. ‘sounds lol good’(그거 ㅋㅋ 좋은데) 이런 식으로 쓴다. 대문자 ‘LOL’을 쓰면 웃음의 정도를 강조할 수도 있다.

 

전화를 놓고 벌어지는 세대 갈등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문자 메시지 답장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정 없이 전화를 거는 것은 이들에게 끔찍한 간섭으로 느껴진다”고 귀띔해준다. 한국의 MZ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전화하기 전에 문자로 시간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이 에티켓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인류는 이런 변화를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활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각종 문장 부호를 만들었다. 영국 철학자 존 윌킨스는 반어법으로 인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문장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반어법을 쓸 때는 뒤집힌 느낌표를 쓰자”(1668년)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의 인터넷 세대는 가용한 언어적 수단이 훨씬 많다. 이모티콘을 이용해 표정과 몸짓을 표현하고, 장난스러운 낙서까지 동원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새로운 상형(象形) 문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원제 ‘Because internet:Understanding the New Rules of Language’.]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 / 202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