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547. <신호는 단순하다>

paxlee 2022. 7. 3. 06:54

신호는 단순하다

 

                         박광석 전 기상청장

 

"신호는 단순하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색깔과 진동으로…."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첫 회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부분이다. 여기서 신호는 이중적이다. 우박이나 집중호우와 같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의 조짐에서부터 사내 연애의 파경을 알려주는 단초까지.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나비효과'도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한 기상모델을 연구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날씨처럼 나비효과가 큰 영향을 미치는 '복잡계(Complex System)'는 완벽하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너무나 거대하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완전히 통제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날씨 예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날씨 예측은 언제나 체계적인 관찰에서 시작된다. 기상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근저에 깔려 있는 인과관계를 규명한다. 대기 흐름과 온도 변화로부터 기상 현상의 원리를 밝혀낸다. 밝혀낸 원리와 이론을 바탕으로 인과관계의 연쇄적인 고리를 수식화해 거대한 알고리즘의 집합체로 구현한 것이 '모델'이다. 관측된 온도, 바람, 기압 등 독립변수들을 모델에 입력해 시뮬레이션하고 예측값을 산출한다. 이를 분석해 미래의 기상 상황을 예측한다.

그렇다면 모델의 예측값은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날씨 예측모델도 경향적 편차(bias)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모델은 현실보다 온도를 높게 예측하고, 또 다른 모델은 낮게 예측하기도 한다. 비의 양을 많이 전망하는 것이 있는 반면, 적게 예측하는 것도 있다. 비나 눈이 오는 시간도 서로 달리 전망하기도 한다. 모델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날씨 예측을 위해서는 모델이 산출한 결과값을 실제 관측 자료와 비교하고 끊임없이 보정해야 한다. 인간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인간의 판단에는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통찰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시급하게 날씨를 예측해야 하지만 모델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주거나 실제 상황이 모델의 예측값과 다르게 나타날 때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통찰력은 면밀히 관찰하는 힘이다. 또한 멀리 내다보는 능력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기상예보 분야에서도 전문적인 지식이 쌓이지 않으면 예보관의 통찰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상을 관통하는 흐름을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지식이 발효되고 숙성돼야 지혜의 눈이 열린다.

신호는 단순하다. 제때 알아채지 못하면 엄청난 결과를 치르게 된다. 단순한 기미조차도 면밀하게 관찰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미세한 조짐에서도 변화의 단초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비단 날씨 예측에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닐 것이다.

 [매경춘추] [박광석 전 기상청장] : 2022.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