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589. <품위 있는 노인>

paxlee 2022. 7. 21. 08:44

품위 있는 노인

 

 

조지 휘팅(George A. Whiting)이 작사하고 월터 도널드슨(Walter Donaldson)이 작곡한 ‘마이 블루 헤븐(My Blue Heaven)’은 1927년에 처음 음반으로 발매된 이래로 현재까지 수없이 재생되는 노래다. 폴 화이트맨(Paul Whiteman)과 그의 악단이 연주하고 빙 크로스비(Bing Crosby)가 노래한 버전(version)과 진 오스틴(Gene Austin)이 노래한 초기 버전이 유명하고, 이후로 수많은 가수와 밴드가 연주했다.

 

광복 이전에 발매된 노래 중 이 노래의 번안곡으로 총 6곡을 찾았다. 가사지와 음원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1929년에 홍문희가 발표한 ‘푸른 하늘(청공)’과 1935년에 김연월이 발표한 ‘청공’은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이다. 마찬가지로 음원은 없으나 김해송이 1936년에 발표한 ‘청공’은 음반 가사지로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1935년에 권영걸이 발표한 ‘즐거운 내 살림’은 음원과 가사지로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에 비해 1935년에 오리엔탈합창단이 발표한 ‘여로의 황혼’은 제목만으로는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최근에 발견된 음반의 음원을 듣고 나서야 이 노래가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음반에는 ‘스츄와드 김’과 ‘로쓰 최’란 이름이 더 적혀 있고, 음원을 들어보면 실제로 스츄와드 김이 노래를 이끌고, 로쓰 최가 “랄랄라”로 화음을 맞췄다. 이 음반을 발매한 포리돌 음반회사의 전속 가수 등을 고려할 때, 스츄와드 김은 김용환으로, 로쓰 최는 최창선으로 추정할 뿐이다. 원곡과 마찬가지로 ‘마이 블루 헤븐’의 번안곡들은 가정이나 고향을 행복이 넘치는 곳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노래들이 원곡에 충실한 번안곡이라면 최근에 발견한 강석연의 ‘에로를 찾는 무리’는 원곡과 다른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다. 1932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당시 음반 광고를 위해 제작한 음반 소책자 덕분에 곡조가 ‘마이 블루 헤븐’이라는 것을 알았다. 추파를 던지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에게 “젊은 홍안(紅顔) 백발 되면 양로원이 제격이오”라며 교훈적인 내용으로 끝나는 이 노래는 번안곡의 상상력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에도 번안과 표절 논쟁이 있었다. 영국의 대중음악 학자 키스 니거스(Keith Negus)는 ‘창의적 복제와 모방의 영감’이라는 강연에서 음악가들은 언제나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복제했다며, 원전과 복제의 결합은 변환을 낳는다고 했다. 창작자의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그 방법은 여전한 과제다.

 

[이은화의 미술시간] 이은화 미술평론가. 2022-07-21.

 

https://www.youtube.com/watch?v=qvrCjcjTc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