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591. <푸치니의 고향 루카, 오페라 ‘나비부인’이 살아 있는 곳. >

paxlee 2022. 7. 22. 01:59

푸치니의 고향 루카, 오페라 ‘나비부인’이 살아 있는 곳.  

 

루카의 첫 인상은 낮고 견고해 보이는 성벽이다. 성벽에는 둥근 해자(垓字)가 있어 도시가 보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혀있다. 성 안에는 유난히 많은 성당과 오래된 유적들이 있어 고풍이 넘치는 도시다. 결코 크지 않은 이 도시의 골목은 미로 같아, 자꾸만 길을 잃게 한다. 헤매던 골목에서 잘생기고 매력적인 푸치니를 만난다. 손가락에 담배를 낀 푸치니는 유혹적인 미소를 던지고 있다.

루카 성곽.

성벽에 굳게 가려진 도시
루카(Lucca)는 세기의 오페라 작곡가인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고향이다. 루카는 성벽과 나무로 도시를 가리고 있다. 여전히 견고해 보이는 이 성벽은 1504년부터 공사가 시작돼 1648년에 완공됐다. 성벽 모서리에는 둥근 해자가 만들어져 각진 모습이며 성 주위로는 잔디 공원이 펼쳐진다. 길이 4km의 길고 넓은 성벽 위는 시민들의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10개의 성문 중 역에서 가장 가까운, 해묵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산 피에트르 성문으로 들어선다.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따라 터벅터벅 숙소가 있는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큰길, 작은 길에는 눈에 띄는 교회들이 많고 숍, 레스토랑, 주거지 등에는 해묵은 향기가 덕지덕지 배어 있다. 엇비슷한 골목들은 유독 이 도시에서는 숨 가쁘다.

성곽의 해자.
 
길고 긴 역사 도시의 미로 속


루카는 기원전 리구리아 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루카가 역사서의 기록에 나타난 때는 BC 56년. 로마의 행정권을 파악하기 위해 시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이곳에서 회의를 했다. 계속 로마령에 있다가 1799년에는 프랑스에 함락되어 나폴레옹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 바치오치(1805∼1814)가 통치자가 되었다. 이때 시 중심에 나폴레옹 광장이 등장하면서 도시는 대대적으로 개조된다. 나폴레옹이 패한 뒤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긴 역사가 한데 뒤섞인 루카의 도시의 골목은 미로와 같아서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특히 나폴레옹의 여동생이 ‘자기 만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마구잡이로 개조하는 바람에 더 복잡해졌다. 더군다나 호화로운 고딕식 외관을 가진 엇비슷한 형식의 교회당들이 부지기수다. 6세기의 산 마르티노 대성당, 8세기의 산 프레디아노 성당, 12세기의 포로의 산 미켈레 성당, 13세기의 산타마리아 포리스포르탐 성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프레토리오 궁전, 델라 프레페투 궁전을 비롯해 중세풍의 건축물들이 부지기수다. 옛 대공들의 저택들은 현재 국립미술관이 되었다.

 

포로의 산 미켈레 성당.

 

산 피에트르 성문.

빗속에서 만난 푸치니 동상


루카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지 않은 데는 향기 없는 숙소 탓이었다. 일찍 봇짐을 챙겨들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포지오 세콘다가를 빠져나오면서 푸치니의 동상이 있는 광장을 만난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면 낡은 건물 입구에 푸치니의 얼굴이 있다. 루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 속에 남은, 당시 푸치니 가족이 살았던 낡은 4층 건물은 1979년에 복원해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나비부인.

푸치니의 강렬한 시선을 뒷통수로 느끼며 2층으로 올라가면 내부에 오페라 악보, 가족 사진, 투란도트의 의상, 그가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 등을 볼 수 있다. 생가를 나와 매표소, 티켓 판매소, 기념품 샵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 쪽으로 간다. 푸치니의 오페라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파파로티, 마리아칼라스, 나비부인, 푸치니의 얼굴이 그려진 기념품 등. 그의 얼굴은 매우 잘생긴 훈남이다. 광장으로 나와 손가락에 담배를 쥐고 위풍당당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푸치니 동상 옆에서 누구나 그러하듯 기념사진을 찍는다. 푸치니, 나비부인 등의 간판 이름을 단, 근처의 식당에 앉아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푸치니의 인생을 떠올려본다.

 푸치니 동상.

 

푸치니 광장.

4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푸치니


푸치니는 이곳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살았다. 푸치니 가문은 4대에 걸쳐 교회 성가대장 겸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한 명문 음악가 집안. 당시 아버지는 루카 대성당인 ‘산 마르티노’의 악장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푸치니가 5살 때 병사하고 만다. 푸치니 외에도 6명의 형제자매들이 더 있었다. 어머니는 푸치니를 죽은 남편의 제자였던 안젤로니에게 보내 공부시켰고 10세부터 교회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음악적으로도, 학교성적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청년기에는 말썽꾼이었다. 교회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를 고물상에 팔아 담배를 사 피우기도 했다.

18세 푸치니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생긴다. 푸치니는 당대 유명했던 베르디의 공연(1813~1901)을 보기 위해 루카에서 피사까지 18km를 걸어갔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크게 깨우침을 얻게 되고 그날 이후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밀라노 왕립 음악원(현 베르디 음악원)에 입학한다. 푸치니는 35세(1893년)에 완성한 ‘마농 레스코’가 인정받기까지는 약간의 부침을 겪었을 뿐, 살아생전 승승장구했다. 마농 레스코 이후 라 보엠(1896), 토스카(1900) 나비 부인(1904년)등을 발표하면서 푸치니는 당대의 인정받는 작곡가가 되어 평생 유명인으로 살았다. 푸치니의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투란도트>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이자 유작이다. 그는 이 작품을 작업하던 중 브뤼셀에서 64세(1924년)때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푸치니.

작품 만들 때마다 ‘사랑하는 여인’이 필요


많은 예술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작품에 영감을 주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푸치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 수없이 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오페라 속 여인이 탄생했다. 푸치니는 이 여인들을 “나의 작은 정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은 곧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창작의 샘, 영감의 정원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합법적인 부인은 엘비라 제미냐니다. 엘비라는 친구의 부인이자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이 둘이 가까워진 것은 푸치니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루카에 왔을 때다. 어머니의 죽음에 상심하고 있는 푸치니를 따뜻하게 위로해 준 그녀와 푸치니는 사랑에 빠진다. 푸치니의 아이를 갖게 된 엘비라는 당시 6살 난 남편 소생의 딸 포스카를 데리고 푸치니가 살고 있는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로 갔다. 푸치니는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아지던 26세 때부터 이곳에 집을 짓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1886년(27세)부터 엘비라와 동거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둘은 동거인일 뿐이었다.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이탈리아에서는 이혼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이 합법적인 결혼을 하기까지는 18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다. 푸치니의 여성 편력은 끝이 없었기에 엘비라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푸치니 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 그러던 차에 푸치니는 190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상이 너무 심해 누군가 옆에서 간호를 해주어만 했다. 그 무렵 엘비라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이 둘은 긴 동거는 막을 내리고 합법적인 부부(1904년)가 될 수 있었다.

푸치니 박물관 입구.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의 전말을 다룬 영화 <푸치니의 연인>


푸치니 살아 생전에 큰 사건이 있었다. 1909년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푸치니가 ‘서부 아가씨’를 작곡하던 때다. 부인 엘비라는 푸치니와 하녀 도리아가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이라고 오해했다. 이 일로 도리아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다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은 이른바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이라고 해서 당대 최고의 푸치니 스캔들로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다. 결국 시신을 부검한 결과 만프레디는 처녀인 것이 확인되었다. 만프레디의 가족들은 엘비라를 상대로 손해배상 고소를 하였다. 엘비라는 5개월 5일의 감옥생활을 선고받았으나 결국 상당한 금액의 위자료를 주고 그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영화 <푸치니의 연인>(2008)은 그때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의 작품이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피렌체에서는 기차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별미와 숙박: 루카의 골목마다 맛있는 식당이 아주 많다. 푸치니 생가 근처의 푸치니 레스토랑도 매우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는 푸치니가 고향을 떠나 살던 곳이다. 빌라 푸치니는 지금은 푸치니 박물관이 있다. 해마다 여름에는 푸치니 페스티벌이 열린다. 루카에서 25km, 비아레조에서 5km, 피사에서 16km 떨어져 있다.

- 이신화 작가. [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여성조선 5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