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629. <민화에 담긴 삶의 찬가>

paxlee 2022. 8. 2. 08:12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

 

21세기는 온라인을 통해 정보 접근이 가능한, 지식 독점이 사라진 네트워크 시대다. 현대인의 삶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눈만 뜨면 온·오프라인을 통해 활자나 이미지를 접하며 산다. 매일 듣고 보는 말과 글이나 이미지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잔소리처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냄새처럼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이미지를 되돌아보고, 우리의 문화적 자존감을 생각해보고, ‘생의 찬미’를 글과 그림으로 읽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전시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9월 25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생의 찬미’ 전시 전경 / 김옥렬


이 전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고(길상), 명심해야 할 중요한 문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며(책가도와 문자도), 개인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기록화) 뿐 아니라 감상화로 이상적인 산수풍경을 통해 의식을 고양하고자 전통회화의 미의식이 담긴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 등 4가지 주제에 6개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첫 관문은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만든 영상 <승화>다. 이 영상은 동서남북 사방위를 상징하는 4명의 처용이 등장하고, 춤과 함께 관람객 역시 처용이 돼 벽사에 동참함으로써 나쁜 기운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 민화와 현대의 창작 민화로 꾸민 이번 전시는 이 시대의 ‘채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은 벽사와 길상의 마음가짐 시각화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의 경계는 존재한다. 한 사회에서 생활관습에 따라 제작된 대중예술이자 생활예술이 바로 민화다.

민화는 ‘학문으로 정의되지 못한 야생어’(조자룡)로 ‘우리 겨레의 미의식과 정감이 가식적으로 표현된 옛그림’(김호연)이자, ‘실용적인 생활화’(이우환)다. 민중의 삶이 민간 신앙과 연관돼 전해지는 과정에서 민속적이면서 실용적인 생활화 특징을 보이던 민화는 한 국가의 민족 신앙이나 소원 그리고 일상생활과 정치,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한 교화, 주거 공간의 미화를 위한 장식 그리고 민중의 미의식에 직결되는 그림을 아우른다. 따라서 민화는 민족의 신앙, 소원, 일상생활과 정치,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한 교화, 주거 공간의 미화를 위한 장식, 민중의 미의식에 직결되는 작품들을 통칭한다.(<한국 민화논고> 참고)

국립미술관의 이번 ‘생의 찬미’전은 채색화의 주제나 재료보다 ‘역할’에 주목한다.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어떤 그림들이 나쁜 기운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안녕을 기원하고, 삶을 기록하고, 명심하기를 바라는 문구를 담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민화, 즉 채색화가 접근할 수 없었던 곳, 삶과 분리된 무균실과 같은 폐쇄적인 장소, 일명 백색공간인 현대미술관 전시장 안에서 담아내는 전시임을 밝힌다.

이번 전시는 장수와 부귀영화가 담긴 민화, 주술적이기도 한 기능으로 인해 민예품과 장식화로만 다뤄졌던 채색화를 통해 ‘한국 회화사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자, 잊고 있었던 회화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자각이다. 한국의 채색화와 교감하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시대, 벽사와 길상 사이에서 서툴더라도 그림일기라도 그리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내 삶의 찬가’일 것이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