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632. <집값 올린 벽화...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의 삶>

paxlee 2022. 8. 3. 09:39

집값 올린 벽화...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의 삶

 

뱅크시가 2020년 12월 영국 브리스톨의 한 주택 외벽에 그린 벽화. 경사를 이용해 노인이

재채기하는 바람에 행인이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뱅크시 인스타그램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는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그림 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2020년 10월 뱅크시는 영국 노팅엄의 한 건물 외벽에 ‘훌라후프를 하는 소녀’를 그려놓았다. 단순한 낙서 같았던 이 그림이 알고 보니 뱅크시의 작품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건물 주인은 작품을 최소 6자리 액수, 즉 10만 파운드(약 1억6000만원)에 팔아 논란이 됐다. 뱅크시는 작품을 그대로 두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두 달 뒤 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의 한 주택 외벽에 노인이 재채기하는 모습의 벽화를 그렸다. 기울기 22도의 가파른 경사를 이용한 이 그림이 그려진 후 해당 주택의 가격은 수십억 원이 올랐고, 1년 뒤 새로운 집주인은 그림을 다른 곳에 팔았다.

 

영화 '뱅크시'의 한 장면. 뱅크시가 박물관에 도둑 전시를 하는

모습(위), 대영박물관에 몰래 전시한 돌. /마노엔터테인먼트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주드 로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뱅크시 작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영화 ‘뱅크시’는 그가 영국 브리스톨의 담벼락을 스프레이로 물들이던 어린 시절부터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된 현재의 이야기들을 동료 아티스트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적한다.

 

영화는 뱅크시라는 이름을 알린 그의 기행으로 시작한다. 뱅크시는 대영박물관에 잠입해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갔다. 이외에도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도 도둑 전시를 진행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한 걸 알 수 있지만, 며칠 동안 사람들은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 예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2018년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망가뜨리기도 했다.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을 든 소녀’가 104만2000파운드(약 16억6600만원)에 낙찰되는 순간 뱅크시는 작품 액자에 장치해 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작동시켜 그림을 분쇄했다. 미술 역사상 이런 퍼포먼스를 벌인 사람은 뱅크시가 처음이었다. 돈으로 예술을 구매하는 미술 시장이 덧없음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뱅크시 당했다(Bansky-ed)’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 그림은 이후 18배 높은 301억원에 다시 낙찰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 '뱅크시'의 한 장면. 뱅크시가 스스로 파쇄시킨 자신의 작품.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예술계와 세상을 놀라게 한 뱅크시의 도발적인 기행의 뒷이야기를 담았다. 뱅크시와 기행을 함께한 동료 아티스트는 “우리는 그저 재미로 했는데, 뱅크시는 뭔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뱅크시다운 삶의 총체를 담은 영화는 단순히 뱅크시의 일대기 뿐 아니라 현대 미술의 변화와 한계를 명확하게 짚어준다. 동시에 그의 예술과 소위 ‘테러’라고 불리는 예술 행위에 대해 설명한다.

 

뱅크시표 행위 예술의 과정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뱅크시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얼굴 없는 아티스트가 된 이유에 관한 각자의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뱅크시의 탄생과 현재를 담은 스트릿 아트 다큐 ‘뱅크시’는 오는 11일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가영 기자. 조선일보 / 2022.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