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등산(mountaineering )의 역사 *-

paxlee 2006. 12. 12. 21:02

등산(mountaineering )의 역사 [1-1]
 

1. 등산의 역사
옛날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애쓴 것은 스포츠라기보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간 동기는 제단을 쌓거나, 오래 전부터 접근이 금지된 산꼭대기에 정말로 신령이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자신이 사는 고장이나 이웃 마을을 내려다보거나, 또는 기상이나 지형을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시도한 사실이 역사에 기록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18세기에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당시의 과학자였던 자연철학자들이 유럽의 알프스 산맥으로 현장답사 여행을 떠나는 일이 더욱더 많아졌다. 이들 과학자들은 몽블랑 산맥의 거대한 빙하 때문에 프랑스의 샤모니 주변지역에 특별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등산이 스포츠로서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제네바의 젊은 과학자인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가 1760년 처음 샤모니에 가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 산(4,807m)을 보고, 언젠가는 그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그 산의 정복에 이바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였다. 그는 몽블랑 산을 처음 올라가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 일은 26년이 지난 1786년에야 이루어졌다. 그가 내놓은 상금을 받은 사람은 샤모니의 의사인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와 짐꾼으로 고용한 자크 발마였다. 이듬해 소쉬르는 직접 몽블랑 산 정상에 올랐다. 1850년 이후 영국 등반대가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의 안내원들과 함께 스위스의 높은 봉우리들을 잇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등반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험한 운동이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낮은 산을 걸어 올라가는 것도 흔히 등산이라고 하지만,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안전을 위해서 사전에 상당한 경험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지형과 기후조건이 위험한 산을 오르는 것만을 등산이라고 한다. 등산은 오직 자연만을 무대로 하며, 거의 자연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다른 옥외 스포츠와는 다르다. 위험은 등산이 갖추고 있는 고유한 속성으로서, 등산가는 이러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용기와 기지, 기량, 체력, 능력, 정력 등을 힘껏 시험하며 짜릿한 전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등산은 다른 스포츠보다도 집단활동의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각 대원은 모든 단계에서 자신이 속한 등반대의 목적달성을 위해 상부상조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만족에서도 등산의 즐거움을 느낀다.

 

등산의 발전에 이정표가 된 것은 1865년 7월 14일 영국의 화가인 에드워드 휨퍼가 이끈 등반대가 마터호른 산(4,407m)을 처음으로 오른 극적인 사건이었다. 19세기 중엽에 스위스에서는 등반안내인 동호회가 생겼으며, 이들은 중부 유럽 전역의 산봉우리로 오르는 길을 차례로 안내하면서 등산을 인기있는 스포츠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1870년에 이르러 알프스의 주요봉우리들은 모두 정복되었고, 등산가들은 이미 정복한 봉우리로 올라가는 보다 어렵고 새로운 코스를 찾기 시작했다. 알프스 산맥에 그때까지 처녀지로 남아 있던 몇 개의 낮은 봉우리들마저 모두 정복되자, 등산가들은 19세기말부터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북아메리카의 로키 산맥, 카프카스 산맥, 아프리카의 봉우리들, 그리고 결국에는 히말라야 산맥으로 관심을 돌렸다.

 

1897년 처음으로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인 아콩카과 산(6,849m)에 올랐으며, 1898년 북아메리카의 로키 산맥에 있는 그랜드티턴 산(4,124m)을 정복했다.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공작은 1897년 알래스카와 캐나다 국경을 가로질러 솟아 있는 세인트일라이어스 산(5,403m)을 처음으로 올랐고, 1906년에는 동아프리카의 루웬조리 산군(山群)에 속해 있는 마르게리타 산(5,039m)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1913년 미국의 허드슨 스턱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봉으로 알려진 알래스카의 매킨리 산(6,096m)을 정복했다. 보다 위대한 정복으로 가는 길이 차츰 열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요새인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20세기 중엽까지 기다려야 했다.

 

20세기가 지나면서 등산의 정확한 국제적 성격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중국·영국·프랑스·독일·인도·이탈리아·일본·소련 등은 점차 지구에서 가장 큰 산괴(山塊)인 히말라야 산맥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인들은 아예 에베레스트 산을 특정 목표로 정했다. 한편 다른 나라의 등산가들은 히말라야의 다른 높은 봉우리들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소련 등반대는 1933년 지금은 코뮤니즘 봉이라 불리는 스탈린 봉(7,377m)을, 독일 등반대는 1936년 시니올추 산(6,780m)을, 영국 등반대는 같은 해 난다데비 산(7,693m)을 정복했다. 권위있는 등산잡지인 런던의 〈알파인 저널〉에는 1940~47년 사이에 처음으로 정복된 봉우리가 전혀 실려 있지 않은데, 이것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긴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성공한 '첫 등반'은 1947년 르네 디테르를 대장으로 하는 프랑스 등반대의 사토판트 산(6,964m) 정복이었다. 20세기 중엽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등산가들이 잇따라 개가를 올렸다. 프랑스 등반대는 1950년 6월 안나푸르나 제1봉(7,964m)에 처음으로 올랐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반대는 1953년에 낭가파르바트 산(7,998m)을, 이탈리아 등반대는 1954년 K2봉(8,475m)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영국 등반대는 1955년 칸첸중가 봉(8,451m)에, 스위스 등반대는 1956년 로체 봉(8,382m)에 올랐다. 그러나 영국 등반대의 에베레스트 산(8,848m) 정복은 이 모든 성공을 뛰어넘는 쾌거였다.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의 양봉업자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족 등산안내인인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의 꼭대기인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우뚝 섰을 때야말로 절정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이전 30년 동안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시도한 등반대가 7개 팀이었으며, 답사만 하고 돌아간 등반대도 3개 팀이 있었는데, 존 헌트 대령이 이끄는 영국 등반대가 8번째로 마침내 등정에 성공한 것이었다. 1954년 7월 이탈리아 등반대원 두 사람이 K2봉을 정복했다. 오스트리아 등반대는 1954년 다울라기리 봉보다 약간 더 높은 초오유 봉(8,072m) 정상을 밟았다.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 중에는 파상 다와 라마도 있었는데, 그는 해발 3,900m 높이에서 불과 3일만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1955년 5월 프랑스 등반대는 셰르파족 안내인 1명을 포함한 모든 등반대원과 함께 에베레스트 산 옆에 있는 마칼루 제1봉(8,330m)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같은 시기에 찰스 에번스가 이끈 영국 등반대가 흔히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봉우리의 하나로 손꼽히는 해발 8,451m의 칸첸중가 봉에 올랐다.

 

1960년대 등산은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알프스 등반의 황금기에 그랬듯이, 일단 봉우리를 정복하면 등산가들은 점점 더 어려운 코스를 찾는 데 역점을 두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보조장비들이 개발되고 등산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깎아지른 듯한 수직 벼랑이나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암벽도 등반하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서 있는 미끄러운 화강암 암벽을 정복하는 데 보통 며칠씩 걸렸으며, 심지어는 1번에 몇 주일씩 걸릴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 미국 등반대는 북아메리카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큰 바위덩어리인 엘카피탄 산의 남동쪽 벼랑에 도전하여, 90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무려 27일 만에 정복하기도 했다.

2. 등산의 기술

완벽한 등산가는 걷기, 암벽등반, 눈과 얼음을 정복하는 기술에서 모두 탁월해야 하지만 등산의 이 3가지 측면은 서로 전혀 다르다. 게다가 하나의 범주 안에서도 변화의 폭이 넓기 때문에 아무리 가장 노련한 등산가라 할지라도 모든 측면에서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훌륭한 등산가는 그 균형을 잘 유지하여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이나 접근방식과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이다. 걷기는 모든 등산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등산은 결국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옮겨가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산을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의 진입로나 낮은 비탈의 샛길을 천천히 그리고 끈기있게 몇 시간이고 걸어 올라가는 것이 등산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코스이다.

 

울퉁불퉁하거나 미끄러운 오르막길 또는 내리막길을 오랫동안 걷는 것은 등산가들에게 훌륭한 훈련이 되며, 비탈길을 몇 시간씩 오르내릴 수 있는 능력은 등산가의 지구력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암벽등반은 걷기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하나의 스포츠이다. 암벽등반의 기본요소는 흔히 현장에 있는 벼랑에서 배우게 되는데, 그곳에서 동료들과의 공동작업과 로프 사용법, 암벽등반의 필수조건인 통제력과 리듬의 조절을 몸에 익히게 된다. 로프와 고정장치 및 스냅 고리라고도 하는 카라비너(고정장치에 끼워서 로프를 걸 수 있게 만든 금속고리)가 주로 안전을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텐션 클라이밍에서는 예외가 생기는데, 여기서 선두는 신중하게 배치된 고정장치와 로프를 건 카라비너로 몸을 지탱한다.

 

선두가 또 다른 고정장치를 박기 위해 천천히 위로 올라갈 때는 동료들이 로프에 매달린 선두를 받쳐준다. 선두는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여 암벽을 정복한다. 고정장치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아껴서 신중하게 사용한다. 고정장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로프나 쇠줄에 부착되어 있는 조그만 성형(成形) 금속조각인 촉(쐐기)은 바위틈에 손으로 끼워서 고정시킨다. 쇠못인 피톤은 한쪽 끝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망치로 바위틈에 박아넣는다. 금속막대인 볼트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망치로 박아넣은 다음, 바위 밖으로 드러난 볼트의 끝부분에 고리를 건다. '프렌드'는 회전장치가 달린 촉의 일종으로 바위틈에 자동적으로 들어맞도록 되어 있다. 고정장치는 손잡이나 발판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암벽등반가들은 손과 발만 있으면 암벽을 오를 수 있다. 특히 발이 대부분의 역할을 한다. 등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암벽등반을 하려면 팔과 어깨가 굉장히 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튼튼한 팔과 어깨가 필요한 것은 '오버행'이라고 하는 경사가 60℃가 넘는 암벽을 통과할 때뿐이다. 대체로 손은 균형을 잡는 데 사용하고, 발은 몸을 지탱하는 데 사용한다. 등산가는 벼랑 위로 몸을 끌어올리는 데 손과 팔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균형은 등산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등산가는 체중을 되도록 직접 발에 싣고, 바위가 허용하는 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있어야 한다. 특히 곧추선 자세를 취하면 등산의 5번째 요소인 두 눈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벼랑을 올라가면서 신중하게 주위를 관찰하면, 애써 기어올랐다가 발판을 찾지 못해 다시 내려오는 헛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가는 보통 몸의 3부분(두 손과 한 발, 또는 한 손과 두 발)이 바위에 달라붙어 있도록 해야 한다. 몸이 바위에서 떨어지면, 안전율도 0%로 떨어지기 때문에 붙잡을 곳을 잡기 위해 펄쩍 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등반시의 규칙적인 움직임은 경사의 난이도에 따라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리듬을 몸에 익히기는 어렵지만 일단 리듬을 익히면 꽤 훌륭한 등산가가 될 수 있다. 등반이 어려울수록 몸을 지탱하기 위해 두 손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손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원통 모양의 파이프 같은 침니에서는 두 손을 양쪽으로 뻗어서 양쪽을 누른다.

 

너럭바위에서는 미끄러운 바위를 손바닥으로 누르면 바위를 붙잡는 데 필요한 마찰이 생길 수 있다. 보통 가파른 암벽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위에서는 아래쪽에 있는 발판을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등산가들은 대개 손을 아래로 힘껏 뻗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빨리 내려가는 방법은 '라펠'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2중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인데, 한쪽 끝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로프를 몸에 감고, 한 손으로 로프를 원하는 만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하면서 암벽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면 된다. 로프를 다루는 것은 눈이나 얼음이나 암벽 위에서 똑같이 필수적인 기술이다. 암벽등반을 하려면 경사면을 오르고 라펠을 하기에 충분한 길이의 로프가 필요하다.

 

로프는 생명줄로서 잘 간수하고 신경을 써야 하며 로프를 잘 다루는 사람은 등반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로프를 다루는 기술은 배우기가 어렵고, 주로 경험을 통해 익혀왔다. 등산가는 고정장치와 카라비너를 잘 배치하고 로프를 꿰어 최대의 안전을 보장할 뿐 아니라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로프가 꽉 끼어서 움직이지 않게 될 우려가 있는 바위틈과 로프가 걸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있는 노두(露頭)나 관목을 피하는 것도 로프를 다루는 기술에 포함된다. 표면이 거칠거나 모서리가 날카로운 바위에 로프를 걸치면 안 된다. 이런 곳에 로프를 걸고 잡아당기면, 마찰 때문에 로프가 손상되거나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가면서 로프를 끊어버릴 우려가 있다.

 

등산할 때 헬멧을 쓰면 불편하기도 하고 시야나 기동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주로 헬멧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눈과 얼음의 상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등산가들이 부딪치는 중요한 위험요소가 된다. 훌륭한 등산가라면 눈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깊이 갈라진 틈)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눈사태의 조짐을 미리 알아차려야 하며, 그밖에도 방심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눈밭이나 얼음밭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눈과 얼음 속에서는 높은 산을 오르는 데 필요한 보조기구로서 얼음을 깨는 피켈을 사용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손잡이 한쪽 끝에 곡괭이와 손도끼가 마주 달려 있고 반대쪽 끝에는 대못이 달려 있는 이 피켈은 얼음을 깎아서 계단을 만들고, 크레바스의 유무를 조사하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고, 필수적인 몸의 균형을 잡고, 로프를 고정시키는 등 다양하게 쓰인다.

 

아이젠(장화 밑창에 고정시킬 수 있는 스파이크 창)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비로서 눈과 얼음으로 덮인 가파른 비탈과 피켈로 깎은 계단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아이젠은 눈이나 얼음에 박히기 때문에 장화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밑창에 아이젠을 달면 굳이 계단을 만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비탈을 올라갈 수 있다. 지독히 험난한 눈과 얼음에서는 아이스피톤과 카라비너를 사용하는데, 피톤은 눈이나 얼음에 박히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덮인 긴 비탈을 올라가는 지루한 등반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천천히 리듬에 맞춰 걷는 것이 필요하다. 눈이 단단히 얼어붙은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등산의 모든 단계에서처럼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올라갈 때는 상황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등산 거리, 날씨의 상태, 태양열이 눈과 얼음에 미치는 영향, 눈사태의 위험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 스포츠의 기본조직체는 등산 클럽이나 암벽등반 클럽이다. 등산가가 있는 나라에는 모두 등산 클럽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1857년에 창설된 영국의 '알프스산악회'가 아마 가장 유서깊은 단체일 것이다. 등산 클럽은 알프스 산맥 주변국가들과 영국 및 북아메리카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규모가 큰 등산 클럽에서는 주요 등반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클럽에서 연례보고서나 정기보고서를 발표하고 잡지나 기관지를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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