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히말라야 14개 봉우리 *-

paxlee 2006. 12. 28. 20:46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1. 에베레스트 (초모룽마) Everes 8850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初登) 순위 : 2 (1953년) 
첫 등반가 : 힐러리, 텐징 (영국 원정대)
 
1852년 영국 측량 부대에 의해 발견된 에베레스트산의 이름은 측지학자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에서 따왔다. 본디 이름은 네팔명은 '사가르마타'이고
티벳트어(중국어)로 초모룽마, '세계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영국 원정대는 1921년부터 1953년 사이 10번 도전 끝에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인)와 셰르파
노르게이 텐징에 의해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 고상돈 산악인이 1977년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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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2 8,611m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초등 순위 : 4 (1954년) 
첫 등반가 : 콤파뇨니, 라체델리 (이탈리아 원정대)
 
히말라야에서 2번째로 높은 봉우리. 영국 측량대에서 측량된 산으로
2번째로 측량되, K2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지금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현지에서는 k2를 '초고리'라 부른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중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파러마두오롬 깍아지른 모습의 경사 때문에 등반 성공률이
50%정도로 지극히 낮아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로 손꼽히고 있다.
초등은 1954년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가 7월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시도를 해서 L. 라체델리와 A.콤파뇨니가 초등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김병준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아부루찌 릉으로 
정상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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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칸첸중가 Kanchenjunga 8598m
 
위치 : 시킴 히말라야(인도)
초등 순위 : 7 (1955년) 
첫 등반가 : 조지 밴드, 조 브라운 (영국 원정대)
 
가장 먼저 알려진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로 K1이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다.
칸첸중가는 8,586m로 세계 3위의 고봉이다. 칸첸중가는 티벳어로
'5개의 큰 눈의 보고'라는 뜻이며, 네팔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산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은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합니다.
주봉은 1955년 찰스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조지 밴드와 브라운에
의해서 초등이 되었는데, 칸첸중가 정상으 성역을 밟지 말아달라는
현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정상을 몇 걸음 앞둔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었다고 한다. 성역으로 간주되는 칸첸중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은 영국 원정대의
이같은 신사적인 행동은 알피니즘의 구현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87-88 동계 칸첸중가 원정대(부산 대륙산악회)가 캐러번 도중
대원 1명이 사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정에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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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로체 Lhotse 8,516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9 (1956년) 
첫 등반가 : 라이스, 루흐징거 (스위스 원정대)
 
로체는 에베레스트의 위성봉으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다른 8,000미터 봉에 비해
등반이 자주 이뤄지지는 않으나 성공률이 매우 낮은 험준한 봉우리입니다.
초등은 1956년 에글러가 지휘하는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월 18일
이루어 졌는데, 루이징거와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해서 정상에 도달하였다.
로체라는 이름은 이들에 의해 붙여졌으며, 로체는 '남쪽 봉우리'라는 뜻이다.
로체 남벽루트는 오르기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데,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8,000m급 14봉 모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크츠카도 이고 로체 남벽을 오르다 추락사
하였다. 로체는 에베레스트아 인접하여 로체봉 단독 등정보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결하는 종주등반의 등정이 지도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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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칼루 Makalu 8463 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6 (1955년) 
첫 등반가 : 프랑코 (프랑스 원정대)
 
1921년 처음 알려졌다. 뉴질랜드, 미국, 프랑스 세나라가 경쟁을 하였으나,
우수한 장비와 계획적인 등반으로 프랑스가 손쉽게 정복하였다.
마칼루는 그 모양으로 인해 '검은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칼루팽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네팔 히말라야에 위치한 마칼루는 오래전부터
여러 원정대가 관찰과 촬영을 거듭했으나 195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반이 시도되었다.
처음 등정을 시도한 미국 원정대(원정대장 시리)는 7,056m 지점에서 후퇴하였고,
프랑코의 프랑스 원정대가 북릉으로 7,880미터 지점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1955년 봄 다시 J. 프랑코는 9명의 전대원을 3개팀으로 나뉘어
5월 15, 16, 17일에 아무런 사고 없이 연속으로 정상에 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가을 한국산악회의 허영호씨가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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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오유 Cho Oyu 8201 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8 (1954년) 
첫 등반가 : 티히, 파상, 요할라 (오스트리아 원정대)
 
초오유는 '여신이 거처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네팔쪽의
남면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면은 비교적 완만한 사면으로 형성되어있다.
1954년 오스트리아의 티치가 이끄는 등반대에 의해 초등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들은 네팔과 티벳간의 교역로이자 남체 바잘에서 가까운
난파라(Nanpa La, 5716m)를 넘어 북서릉을 통해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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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13 (1960년) 
첫 등반가 :  딤베르거 등 5명 (스위스-오스트리아 원정대)
 
다울라기리는 인도어로 '흰 산'이란 뜻이다. 여러 나라가 8번 도전 끝에 정복하였다.
사방이 낭떨어지로 험준한 얼음 요새는 뒤늦게 스위스,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해 
정복되었다.1949년 최초의 항공사진 촬영 이후 1950년에서 1959년 사이에
프랑스, 스위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가 교대로 일곱 번에 걸쳐
원정을 했으나, 모두 8,000미터선 아래서 실패하였다.
1960년에는 막스 아이젤린이 조직한 스위스 원정대가 북동릉을 경유하여
5월 13일에 초등에 성공하였다. 다울라기리는 잦은 악천후에 따른 급격한 기후
변화로 위험한 산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남벽은 1977년
라인홀트 메스너의 실패 이후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는
극도로 위험한 벽으로 등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합동대에 의해 가을에 등정에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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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나슬루 manaslu 8163 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8 (1956년) 
첫 등반가 : 이마니시 등 3명 (일본 원정대)
 
마나슬루는 인도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차례의 원정대를 보냈다. 중간에 마을 주민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1956년에 3차 원정대에 의해 정복되어, 당시 패전국의 설움을 안고 살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1950년-55년 사이에 영국 원정대가 최초로 정찰한 후 일본 원정대가 4회에 걸쳐

마나슬루 등반 루트를 찾아냈다. 마나술루는 인도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다.

1956년 5월 9일 마키대장이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와

셰르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마나슬루는 한국 산악인에게는 비극의 산으로 인식되어 있다.

1972년에 김정섭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가 노말 루트로 등반을 하던중,

6,95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셰르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 사상 최악의 사고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후 1976년 봄 대한산악

연맹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다시 실패하고, 1980년 봄에 이르러서야 동국대 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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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낭가파르바트 Nanga Parbat 8,126m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초등 순위 : 3 (1953년) 
첫 등반가 : 헤르만 볼 (독일 원정대)
 
1895년 히말라야 8천m급 봉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등반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1953년 정복까지 무려 31명의 희생자를 냈다.
독일은 6차례의 원정 끝에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산중의 왕" 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은 히말라야산맥의 8,000m 이상 고봉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다른 거봉들과 떨어져 있어 정상 부위의 바람과 눈보라는
다른 어떤 봉우리보다도 강하다. 가파르밧의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으로 나눠져 있으며, 8,000m이상의 14봉을 세게에서 최초로 완 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이곳에서 동생을 잃었다. 특히 남동벽의
루팔벽은 수직 4,500m의 거대한 직벽으로 등반인들에게
그 위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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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안나푸르나 Annapurna 8,091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1 (1950년) 
첫 등반가 : 에르조그, 라슈날 (프랑스 원정대)
 

안나푸르나는 등반 역사상 히말라야 산맥 중에서 최초로 등정된 8,000m봉이다.
1950년 이전까지 안나푸르나는 거의 탐사된 일이 없었는데,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본래 공격목표였던 다울라기리의 등반로를 정찰하기 위해 안나푸르나로

진입했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변경, 부적절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감행, 6월3일에 정상정복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짜릿한 성공과 달리

하산 때,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었는데 당시 흥분제를 과다복용해

자기통제에 실패한 에르조그와 그의 파트너 라슈날이 크레바스에 떨어지며

눈사태에 휩쓸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하산 중 많은

대원들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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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셔브룸 1 (히든 피크) Gasherbrum 1 (Hidden Peak) 8,068m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초등 순위 : 12 (1958년) 
첫 등반가 : 세닝, 클린치 (미국 원정대)
 

가셔브룸 1봉은 히든피크 라고도 불린다. 1861과 1887년에 고드윈 오스틴 소령과

영 허즈밴드 소령에 의해 처음으로 가셔브룸 1봉에 대한 정보가 알려졌으며,

K5 라는 측량명도 가지고 있다. 히든피크는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된

최초의 8,000미터봉이다. 1975년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홀트 메스너와 패트 하벨러는 8월 10일 가셔브룸 1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 등정은 최초로 무산소 등정으로

이루어진 알파인 방식이었다.

지금은 가셔브룸 1봉에 대여섯 개 이상의 독립된 루트와 변형루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충남산악연맹의 박혁상 대원이 등정에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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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브로드 피크 Broad Peak 8,047m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초등 순위 : 11 (1957년) 
첫 등반가 : 딤베르거, 불 (오스트리아 원정대)
 
팔첸 캉리로도 불리우는 브로드 피크는 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탐험대의 정찰 때,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1957년 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슈무크, 디엠 베르거,
빈터슈텔러 4인조가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이들은 고소포터와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은채 장비를 3개의 고소캠프에 운반하기 위해 6,950미터
높이를 여러번 오르내렸다.
브로드피크는 우리나라 산악인이 가장 늦게 오른 봉우리로
1995년에 스페인 바스크 원정대와 합동으로 등반한
엄홍길과 전남 광주의 빛고을 원정대가 몇시간 차이로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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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셔브룸 2 Gasherbrum 2 8,035m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초등 순위 : 10 (1956년) 
첫 등반가 : 라르히 등 3명 (오스트리아 원정대)
 
K4의 측량 부호가 붙여진 가셔브룸 2봉은 가장 쉬운 8,000미터 봉으로 꼽힌다.
1956년에 1934년의 정찰을 토대로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모라벡의 지휘 아래 남서릉을
경유하여 가셔브룸 2봉의 초등에 성공했다. 가셔브룸 2봉에는
5개의 독립된 루트가 있는데,모두 가셔브룸 계곡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여름에 성균관 대학교 산악회와
울산 합동대에 의해 초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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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시샤팡마 (고사인탄) Shisha Pangma (Gosainthan) 8,013m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초등 순위 : 14 (1964년) 
첫 등반가 : 쉐칭 등 10명 (중국 원정대)
 
시샤팡마란 티벳어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한다. 8,000m 이상의 고봉 중
유일하게 중국측에 속해 있어서 가장 늦게 등정이 이뤄졌다. 중국원정대는
대륙이 공산화 된 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 1962년,
1963년 3회의 정찰 끝에 1964년 등정을 시도해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 야북캉가길라 빙하를 넘어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시샤팡마 등반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극심한 기상변동에 따른 강풍인데,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벳고원의 폭풍은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곧장 불어와
바람을 피할  곳 조차 없어 등반가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 등정의 또 다른
난관은 7,700m 부근에서 2회에 걸쳐 나타나는 경사 50도의 설벽이다.
이 벽을 넘어서면 20도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지나 순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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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랴야 8,000m 이상 14개봉 완등자 >-
 
1. 라이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 / 1944년 이탈리아 출생.
2. 예지 쿠쿠츠카 (JERZYY kukuzka) / 1948년 폴란트 출생.
3. 에라르 로레탕 (Erhard Loretan) / 1959년 스위스 출생.
4. 카를로스 카르솔리오 (Carlos Csrsolio) / 1962년 멕시코 츨생.
5. 크리스토프 비엘리키 (Krzystof Wielicki) /1950년 폴란드 출생.
6. 훠니또 오이아르자발 (Juani Oiarzabal) / 1956년 수페인 바스크 출생.
7. 세르지오 마르티니 (Serigio Martini) / 1950년 이탈리아 출생.
8. 엄홍길 / 1960년 한국 경남 고성 출생.
9. 박영석 / 1963년 한국 서울 출생.
10. 알베르토 이누라떼기 (Alberto Inurrategui) / 1968년 스페인 출생.
11. 한완용 / 1966년 한국 전주 츨생.

- 출처 : blog.chosun.com/manduso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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