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등산의 역사 *-

paxlee 2006. 12. 21. 20:20

                           등산의 역사 [1-2]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인간은 아직 산의 아름다움을 몰랐다.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산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1358년 아스티의 로탈리오가 로쉬멜론(3,537m)에 오른 것이 알프스-히말라야산(山) 지대에의 최초의 등산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등산 동기는 신앙상의 일로 그 곳에 교회를 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프랑스의 샤를 8세의 시종인 보프레는 그르노블에 있는 해발고도 2,125m의 몽테귀에 올랐다. 그는 정상에서 미사를 드릴 목적이었으나 오늘날에도 어렵다고 하는 암벽등반이었다. 1521년에는 에스파냐의 코르테스가 부하인 몽타느 등을 시켜 멕시코의 화산 포포카테페틀(5,451m)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것은 화약을 만드는 데 사용할 황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18세기에 들어와서 벨랑과 당뒤미디 등이 알프스의 4,000m 가까운 산들을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이 목사들이었다. 1760년 스위스의 자연과학자 H.B.소쉬르가 프랑스의 샤모니를 방문하고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의 첫 등정에 상금을 걸었다. 1786년 샤모니의 의사 M.파카르와 수정(水晶) 채취를 하는 J.발마가 그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알프스 등산의 막이 올랐다.

 

19세기에 접어들자 유럽 알프스의 등산은 더욱 고조되었는데, 1811년 융프라우(4,158m), 1829년에는 핀스터라르호른(4,275m)이 정복되고, 1857년 세계 최초의 등산단체인 영국산악회(알파인 클럽)가 런던에서 창립되었다. 알프스의 황금시대라고 불린 것이 바로 이때이며, 등산기술도 급속도로 진보하였고, 1865년 영국의 등산가 E.휨퍼가 등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던 마터호른(4,478m)을 등정함으로써 알프스의 황금시대는 끝이 났다.

 

그 동안에 알프스의 4,000m급 고봉들은 모두 정복되어 더 이상 오를 산이 없어지자, 한 번 정복된 산이라도 측능(側稜) 또는 벽면(壁面) 등 보다 험난한 코스를 오르는 등정, 겨울등산, 안내자 없이 오르는 등정 등을 되풀이하여 시도하였다. 동시에 새로운 산들을 찾아 카프카스·안데스 등에 눈길을 돌렸는데, 카프카스의 최고봉 엘브루스(5,630m)는 1874년 영국의 글로브, 안데스의 최고봉인 아콩카과(당시 7,035m, 현재 6,960m)는 1897년 영국의 피츠제럴드대(隊), 뉴질랜드의 쿡산(3,754m)은 1894년,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5,895m)은 1889년, 알래스카의 매킨리남봉(6,191m)은 1913년에 각각 정복되었다.

 

인도와 티베트 국경에 솟아 있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는 18세기경부터 그리스도교의 선교사, 인도의 측량국 직원들이 드나들었으나, 순수한 등산을 목적으로 히말라야를 방문한 것은 영국의 그레엄이었다. 그는 1883년 가르왈과 시킴에 있는 7,000m 가까운 여러 산을 올랐다. 1895년에는 영국의 뛰어난 등산가 A.F.머머리가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8,125m)를 도전하였으나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1892년에는 영국의 카라코람 원정대가 파이어니어피크(6,888m)를 정복하였고, 1899년 영국의 프레시필드는 칸첸중가를 일주하였다.

 

1907년 영국의 롱스타프는 가르왈 히말라야의 트리술(7,120m)에 등정하였는데, 이것이 7,000m 이상의 고봉에 대한 세계 최초의 등정이다.

1909년에는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공작이 조직한 대규모 등반대가 발토로 빙하(氷河)로 들어가 세계 2위봉 K2(고드윈오스턴산:8,611m)를 시험 등반하였는데, 초골리사(7,654m)의 7,500m까지 올라 고산등반의 신기록을 세웠다.

 

8,000m급 고봉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데, 1921년에 영국대는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제1차 정찰대를 보낸 것을 비롯하여 22, 24, 33, 35, 36, 38년 등 7회의 등정을 시도하였으나 정상 가까이까지 갔으면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이 밖에도 K2·칸첸중가·낭가파르바트·히든피크의 여러 고봉을 공격하였으나 역시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1950년에 프랑스대가 네팔을 통하여 안나푸르나의 주봉(8,078m)을 처음으로 등정하였다. 이 등정은 인류 최초의 8,000m급 고봉의 등정이었고 가볍고 강한 나일론 제품의 텐트나 로프 등을 처음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가 되었으므로 에베레스트는 남쪽의 네팔 쪽에서 등반로를 찾게 되었고, 1952년 봄과 가을에 스위스대가 쿰부 빙하를 돌파하여 남동 능선을 타고 정상 가까이까지 이르러 등정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듬해인 1953년 봄, 영국은 J.헌트를 대장으로 대등산대를 보내어 5월 29일 대원 E.힐러리가 셰르파 텐징과 함께 마침내 지구상의 최고지점에 올라섰는데, 이것은 히말라야 등산의 황금시대를 장식하는 쾌거였다.

 

그 후 7차례의 등정 성공이 있었으며, 이 중에는 1977년 9월 15일 한국의 김영도(金永棹)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등반대의 고상돈(高相敦) 대원이 정상에 오름으로써 세계 대열에 들게 되었다. 세계의 8,000m 급 고봉은 14좌(座)가 있다. 또한 8,000m급 고봉을 정복한 첫 기록인 1950년 6월 3일의 안나푸르나 등정 이후 14좌가 모두 정복될 때까지는 1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히말라야 등정 성공의 원인으로는 산소기구와 장비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비해 대폭적으로 개량된 점, 고산에서의 인체생리의 실체가 밝혀진 점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200좌 가까운 7,000m급도 이미 100좌 이상이 등정되었으며, 이후의 과제는 보다 어려운 루트를 통한 등정, 또는 산소기구 없이 오르는 등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등산 역사는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훌륭한 기록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 출처 : 네이브 백과사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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