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30주년 헌정 등정 (3) *-

paxlee 2007. 5. 8. 22:27

 

             

                 에베레스트에 우뚝 세우는 새로운 역사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한국인 최초로 정상에 섰던 고(故) 고상돈씨의 쾌거 30주년을 맞아 후배들이 나섰다. '한국 산악계의 대업을 위한 헌정(獻呈)'이라는 기치를 걸고 오늘 인천공항에서 '박영석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출국한다. 한국일보사가 후원하는 원정대는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남서쪽 절벽에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 길은 한국인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떨치는 '코리안 루트'가 될 것이다.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던 1977년은 유신 말기의 암울한 시기였다. 성사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해 9월 15일 고상돈씨는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고 외쳤다. 이 한 마디는 의기소침했던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겼다. 그 자신감은 한국인의 세계 도전에 커다란 힘이 됐다. 그 뒤 이어진 남극ㆍ북극을 비롯한 세계의 극지에 대한 도전과 탐험은 모두 에베레스트 등정의 영향이었다.

 

이번에 원정대가 개척하려는 남서벽 루트는 수직 2,500m의 검은 암벽으로 눈조차 피해간다는 험로이다. 1953년 영국의 힐러리 경이 처음 정상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개척된 15개 루트 가운데 남서쪽 능선을 거쳐간 경우는 2개 팀 뿐이다. 그 기록도 어려운 암벽 코스를 우회한 것이다. 원정대가 새로 고안한 '공격형 절벽 캠프'는 그 자체만으로 등반사에 획기적인 기록을 더하게 될 것이다.

 

박영석 대장은 2005년 북극점 원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히말라야 8,000m이상 14좌 및 7대륙 최고봉을 정복하고, 3극점(남극ㆍ북극, 에베레스트)에 도달했다.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남서벽에 두 번이나 도전했던 그의 경험을 우리는 믿는다. 고상돈씨는 장도에 오른 지 76일 만에 정상을 정복했다. 이번엔 그 기간이 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외침이 다시 전해지기를 기다린다. 온 국민과 함께 장도를 축하하며 건승을 기원한다.

 

- 한국일보 사설에서 (3월 31일)-

 

* 최대 난코스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 만든다

 

 ->1977년 9월 15일 마침내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세계의 정상에 올라섰다. 새벽 4시 30분 공격캠프를 출발해 8시간 20분간의 사투를 벌인 끝이었고, 7월 12일 원정대가 장도에 오른 지 76일만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국영화감독협회 남산 시사실로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이 한 두 명씩 찾아와 자리에 앉았다. 조명이 꺼지고 영화 한 편이 방영됐다. 30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당시 원정대원이면서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김운영(74) 대원이 6mm카메라로 촬영하고 국내에서 김수용 감독이 편집한 영화 <정상에 서다>이다.

 

김영도(83) 당시 원정대장을 비롯해 77원정대원들은 지난 날 투혼의 현장으로 되돌아 간 듯 뜨거운 감회에 젖어 들었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1시간 30분짜리 영화가 끝나고, 77원정대원들은 "30년 전 당시의 등정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열악한 장비 속에 일궈낸 위대한 승리였다"며 "이번에 후배들이 도전하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도전도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 77 등정 이후 한국 산악계 급속 발전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국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김영도 대장의 일기(<에베레스트 77' 우리가 오른 이야기> 중에서)는 "지난날 우리는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 그 흔한 매스컴도 우리의 스폰서인 한국일보를 제외하고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다루지 않았다. 출국 인사를 했을 때 에베레스트가 알프스에 있는가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베레스트가 마나슬루 보다 높으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원정대는 남 보란 듯 세계의 지붕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고, 유신체제 아래 척박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자신감'이라는 큰 선물을 선사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산악계에 굵고 깊은 큰 획을 남겼다. 한국이 처음 히말라야에 도전한 것은 1962년 경희대 산악부(대장 박철암)의 다울라기리2봉 정찰등반이었다. 71년 로체샤르 도전에서는 등정은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해발 8,000m 위의 땅을 밟았다.

 

이러한 도전을 발판 삼아 77년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뤄졌고, 이후 한국 산악계는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87년 허영호(52)가 2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면서 본격 고봉 등정시대를 열었다. 허영호는 마나슬루 단독 무산소 등정, 7대륙 최고봉 등정과 지구 3극점 도달의 기록을 세웠다. 허영호 이후 철인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85년 히말라야에 처음 도전한 엄홍길(47)은 이후 15년 동안 히말라야 8,000m 이상급의 봉우리를 일컫는 14좌를 완등했다.

 

박영석(44)은 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초고속으로 최고봉을 밟아나간 그는 97년 한 해 동안 8,000m급 고봉 5개를 등정했고 2001년에는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93년에는 지현옥(99년 안나푸르나 등반중 실종ㆍ당시 41세)이 한국여성등반대 대장으로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 현재 5개 능선에 15개 루트 개척

 

77년 정상에 오른 고상돈 대원은 에베레스트 남동릉을 통해 올라갔다. 1953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 발을 디딘 영국원정대의 힐러리가 오른 초등코스다. 피라미드를 닮은 에베레스트 산은 서릉, 북릉, 북동릉, 남릉, 남동릉 등 5개의 능선이 뻗어있다. 이런 지형의 산에 현재 15개의 등반 루트가 개척돼 있다. 등반이 가장 어렵다는 남서벽은 해발 6,500m의 웨스턴 쿰 제2캠프에서 정상까지 수직고도 2,000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졌다. 경사가 급해 눈도 쌓이지 않는 검은 암벽이다.

 

남서벽을 제일 처음 오른 이들은 1975년 영국 크리스 보닝턴 팀이다. 이후 러시아 팀이 새로운 길을 냈고 지금까지 이 2개의 코스만 뚫려있다. 박영석 대장은 "남서벽에 새로운 길을 내고, 또 산을 횡단등반하는 것은 에베레스트에 처음 오를 때부터의 꿈이었다"고 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4번 등정에 지난해 횡단등반까지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이번 도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원정대는 남서벽 신루트 개척을 위해 비장의 새로운 장비를 준비했다. 수직 절벽에 칠 수 있는 박스형 텐트다. 절벽에서 내려오지 않고 벽에 버티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절벽 한복판에 구축하는 공격캠프에서 원정대는 한국 등반사에 또 하나의 신기원을 활짝 열어 젖힐 것이다. 


 

 - 한국일보 (3월 14일) 이성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