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8) *-

paxlee 2007. 5. 19. 17:54

 

            ‘실버 원정대’ 에베레스트에 우뚝 서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조선일보와 월간산, 한국산악회가 공동주최한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의 김성봉(66·한국산악회 부회장) 대장과 이장우(63·대구 거목산악회) 대원이 18일 오전 7시13분(현지시각·한국시각 오전 10시33분)과 9시45분(현지시각), 지구의 용마루 에베레스트 정상(8848m)에 올라섰다. 60세 이상 한국인 고령자가 에베레스트에 오르기는 두 사람이 처음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나설 때 이런 말을 했었다. 주위에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표를 달았지만, 그들은 결국 해내고 말았다. 젊은 베테랑 산악인도 목숨 건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을 한국의 60대 노인 2명이 이루어 냈다.

 

◆김성봉(66) 대장은 다소 늦은 나이에 산바람이 든 산악인이다. 한국등산학교, 코오롱등산학교, 한국산악회 등산학교까지 한국의 3대 등산학교 정규반 과정을 모두 수료하는 열정을 보였다. 타고난 체력이 워낙 뛰어나 “김성봉씨와 같이 다니다가는 무릎 골병 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걸음걸이가 빠르다. 마늘 산지로 유명한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내 체력이 좋은 건 마늘 많이 먹은 덕분”이라고 말한다. 10여 년 전 킬리만자로와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등정했다.

 

김 대장은 출국 한 달 전 부인 김기숙 여사가 혀암으로 대수술을 받는 큰 일을 겪고 에베레스트 등정을 포기하려 했지만, “대장이 집안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격려로 등반에 나섰다.

 

◆이장우 대원은 코 밑 수염 때문에 ‘코털’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대원은 해외 등정 기록은 거의 없는 국내파다. 경찰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경북지방경찰청 경감으로 은퇴한 그는 백두대간 단독종주(41일)와 9정맥(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산줄기) 단독종주를 해낸 바 있다. 산악인들 사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다크호스’로 이번 등정에 성공했다.


◆평균 66세 고령팀의 에베레스트 등정

 

60~75세 실버원정대원 8명 중 제4캠프(7900m)에 도착한 사람은 김성봉 대장과 이장우, 조광현(67·해군 UDT/ SEAL전우회 명예회장) 대원 등 3명뿐. 제4캠프는 정상 공격에 나서기 위한 마지막 도착 지점이다. 이들은 지난 16일 제4캠프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냈다. 하늘이 도왔을까. 걱정했던 눈보라와 강풍이 잠잠해졌다. 김 대장 등은 다음날인 17일 저녁 7시 정상 공격에 나섰다.

 

공기 중 산소가 희박해 죽음의 지대로 불리는 제4캠프(일명 ‘사우스 콜·South Col’)에서 정상까지는 표고차(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간 수직 길이) 900여m. 거의 절벽 같아서 로프를 붙잡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길의 연속이었다. 두 대원의 등정은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점점 날이 어두워져 밤이 찾아왔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빙벽을 타고, 깊은 눈길을 헤치고 밤을 새우며 걸었다. 산소통을 짊어진 채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뗐다. 체력이 소진돼 눈꺼풀이 자꾸 감기고,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이를 악물고 걸었다.

 

◆초조했던 베이스캠프

 

해발 5400m에 설치된 베이스캠프에선 남은 대원들이 두 사람의 정상정복 소식을 기다렸다.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나왔다. 베이스캠프의 대원과 스태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했다. 1시간후면 도착하리라 예상됐던 김성봉 대장의 등정 소식이 오지 않았다.

 

김 대장은 정상이 다가올수록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점점 시간이 늦춰졌다. 출발 직후 김 대장과 1시간 거리를 내내 유지하며 뒤따라가던 이장우 대원은 김 대장과의 거리가 더 벌어졌다. 정상을 약 30분 남겨놓고는 포기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장우 대원은 “남은 에너지를 다 태우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12~14시간의 고통 끝에 두 사람은 지구의 맨 꼭대기에 섰다. 그들의 머리 위엔 하늘뿐이었다.

 

◆75세 세계 최고령 기록 도전엔 실패

 

정상에 잠시 머문 뒤 김 대장은 곧바로 하산을 시작하여, 이날 오전 11시15분 지원대원인 유학재씨가 대기 중인 제4캠프로 하산했다. 이장우 대원도 1시간쯤 뒤인 낮 12시쯤 무사히 제4캠프로 귀환했다. 두 대원은 제4캠프와 제2캠프에서 각각 하룻밤을 머문 뒤인 20일쯤 베이스캠프로 내려올 예정이다.

 

베이스 캠프에서 대기 중인 팀닥터 이재승(63·연세대 의대 교수) 박사는 “모진 고행길 끝이지만, 현재 두 대원 모두 컨디션이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근 등반대가 활성화되면서 아마추어 산악인들의 세계 최고봉 등정은 많아졌으나 60대 이상의 단일 원정대가 결성되고 또한 등정에 성공한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세계 최고령 등정자는 지난해 70세에 성공한 일본인 아라야마 다키오씨이며, 실버원정대원 가운데 차재현(75) 대원이 이 기록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눈길을 헤쳐가고 있는 실버원정대. 대원 8명 중 3명만이

       제4캠프(7900m)에 도착했고, 이들 중 2명이 정상에 올랐다. / 실버원정대 제공

 

           - 에베레스트에서 = 한필석 월간산 기자 07,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