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1년 성과 살피지만 와인메이커는 50년 내다본다”
- 호주 최고급 와인 그랜지 생산하는 펜폴즈 피터 게이고 수석 와인메이커 와인 40년까지 보관 가능하나 15년 정도면 문제 생길 수 있어 이 시기에 리코르킹 통해 점검 합격 땐 와인 가치 크게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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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의 최고급 와인업체인 펜폴즈의 피터 게이고 수석 와인메이커가 오크통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까브드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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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홍콩 콘래드호텔 7층 헤네시룸. 호주의 최고급 와인 그랜지(Grange) 1965년산 1병을 들고있던 50대 남성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It died(죽었어요).” 그는 그랜지 생산업체인 펜폴즈(Penfolds)가 오래된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교체해주는 리코르킹 클리닉(re-corking clinic)에서 와인이 변질됐다는 평가를 받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그랜지는 세계 최고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가 1976년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부여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레드와인이다. 1965년 빈티지의 값은 보존상태만 좋다면 750달러(약70만원)를 넘는다.
- 펜폴즈의 리코르킹 클리닉은 고객들이 소장한 15년 이상된 고급 와인의 보존상태와 등급을 평가해주는 행사로, 1991년부터 시작됐다. 와인의 건강검진이란 뜻에서 클리닉이라 부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 와인업체들도 고객이 원할 경우 코르크마개를 교체해주지만, 매년 정기적으로 대규모 클리닉을 여는 곳은 펜폴즈뿐이다.
- 리코르킹 과정은 와인이 공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하게 진행된다. 먼저 와인을 개봉하자마자 에어콤프레서(air compressor)로 와인병에 질소가스를 충전한다. 질소가 와인의 공기접촉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테이스팅(tasting)에 필요한 소량(전체 와인의 2~3%)을 와인잔에 따른 후 임시 코르크마개를 씌워둔다.
- 시음과 평가는 와인메이커(winemaker•와인개발 및 품질담당자)의 몫이다. 합격 판정을 받은 와인에는 평가한 와인메이커의 서명과 리코르킹 날짜가 적힌 새로운 라벨이 붙는다. 또 펜폴즈 로고와 리코르킹 연도가 찍힌 새로운 코르크마개로 밀봉된 후 붉은색 캡슐이 씌워진다.
- 반면 불합격한 와인은 추가 라벨 부착없이, 회사 로고나 연도가 찍히지 않은 민무늬 코르크마개와 초록색 캡슐로 봉인된다. 테이스팅에 쓰인 소량을 보충하는 토핑(topping)에는 같은 브랜드의 최신 빈티지 와인이 쓰인다.
- 이날 테이스팅을 맡아 와인을 머금었다 뱉기를 250차례나 반복한 피터 게이고(Peter Gago) 펜폴즈 수석(chief) 와인메이커는 “불합격한 와인은 마시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에서 거래되긴 힘들다”면서 “리코르킹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와인은 값이 더 뛰기 때문에, 부정유통을 막기 위해 합격•불합격 와인의 표시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와인업체에서 CEO보다 더 중요하다는 수석 와인메이커로서, 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피터 게이고는 “CEO는 1년 단위의 경영성과를 보지만, 와인메이커는 10~50년 후를 보고 와인을 만든다”고 말했다.
―위클리비즈는 그동안 미셸 롤랑(Michel Rolland), 제스 잭슨(Jess Jackson) 등 와인업계의 유명 컨설턴트나 오너(owner)들을 인터뷰했다. 와인메이커 인터뷰는 처음인데, 와인메이커에 대해 소개해달라.
=“와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포도를 으깨서 액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와인메이커는 특별한 임무를 맡는다. 1년 안에 마셔야 하는 와인이 아니라, 수십년 지속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즉 잠깐 동안의 유행을 좇는 음료가 아니라, 스타일과 개성, 지속성이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와인메이커의 역할이다.”
―와인을 보는 와인메이커의 시각이 CEO와 좀 다를 것 같다.
=“결국 차이점은 시간의 틀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CEO는 주식시장에서 1년 단위의 성과를 보지만, 와인메이커는 10~50년 후를 본다. 서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는다.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펜폴즈는 1844년부터 163년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앞으로 163년 뒤에도 와인업계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와인메이커 관점에서 좋은 와인은 어떤 와인인가?
=“좋은 향기와 풍미가 지속되며, 여운이 남는 와인이다. 이런 와인은 오늘 바로 마시기에도 좋고, 보관해뒀다가 20년 후 마시기에도 좋기 때문에 소장자를 행복한 선택의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행복한 선택의 고민이란?
“와인을 지금 마셔서 즐길까 아니면 조금 더 보관하면서 즐길까 고민하는 것이다.”
―와인을 선택하려는 소비자에게 팁을 준다면.
“좋은 평가를 받는 비싼 와인이 대체로 품질이 좋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나 다른 소비자들의 의견을 추종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자신에게 맞는 개성있는 와인을 골라야 한다.”
―초심자들이 그런 안목을 갖추기 힘들다. 이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와인은?
“아무래도 우리 회사 제품을 제일 잘 아니까….(웃음) 펜폴즈의 입문단계(entry-level) 와인으로 쉽게 마실 수 있는 쿠능가힐(Koonunga Hill) 시리즈나 토마스 하일랜드(Thomas Hyland) 시리즈를 추천한다.”
―15년 이상된 와인만 리코르킹을 하는 이유는?
“경험적으로 15년 이상 된 와인들 중 보관상태가 안 좋은 것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관만 잘하면 30~40년까지도 보관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15년이 지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163년의 역사라면서 1991년부터 리코르킹 클리닉을 시작한 이유는?
“고객들에게 애프터서비스(after service)를 할 만큼 회사가 성장했고, 고급와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랜지를 만든 초대 수석 와인메이커 막스 슈베르트(Max Schubert)는 첫 작품인 1951년 빈티지가 혹평을 받은 후 본사 경영진들의 생산중단 명령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그랜지를 만들었다. 당신도 슈베르트처럼 경영진 몰래 만드는 와인은 없나?
“있다.(웃음) 하지만 말할 순 없다. (그는 이 대목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비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단지, 결코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무인도에 와인 1병만 가져가야 한다면 어떤 와인을 선택하겠는가?
“(몇초간을 고민한 후) 가득찬 와인 1병 대신 여러 종의 와인을 조금씩 가져가고 싶다. 음악 애호가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보면 재즈, 클래식 등 여러 장르를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나는 샴페인도 좋아하고, 부르고뉴 와인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와인지식의 부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호주도 40년 전에는 와인 초보생이었다.(웃음) 하지만 지금 호주 사람들은 더 이상 와인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냥 마시고 싶은 와인을 마시면 된다. 모든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친근한 방법으로 다가가라. 두 가지 와인을 놓고 ‘나는 이게 좋아 또는 저게 더 좋아’라는 식으로 비교해보는 방법도 좋다. 와인브랜드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품종으로 접근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화이트와인의 경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샤르도네(Chardonnay)•리슬링(Riesling) 중 자신에 맞는 품종을 고르는 것이다. 빈티지에 따라 ‘젊은(young) 와인이 좋아’ 또는 ‘오래된(old) 와인이 좋아’식으로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이 마셔 볼수록 많이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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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나지홍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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