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산은 하나의 큰 바다다. 황산 입구의 천도봉을 중심으로 한 남쪽 영역은 전해(前海)라 하고, 그 반대 광명정 뒤쪽을 북해(北海)라 하며, 광명정 좌측의 대협곡과 배운루가 있는 영역을 서해(西海)라 하고, 운곡삭도(케이블카)의 오른쪽을 동해(東海)라고 명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천해(天海)인데, 그 중심에 높다란 망루 같은 해심정(海心亭)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황산을 바다에 빗대어 표현한 연유는 무엇인가. 운해의 장관으로 말미암음일 것이다. 아니면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저 수많은 암봉들의 모습을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읽어낸 것인가. 그렇다. 황산에 오면 산이 바다요, 바다가 산이다. 산이 바다가 되어 장엄하게 뒤채며 절묘한 몸짓으로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로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안으로 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에 출렁이고 있다. 참으로 그 풍류가 멋지고 신선하지 않은가.
암릉길 조망, 그리고 환상의 보선교(步仙橋)
일행은 천해를 떠나 서해대협곡 탐방길에 나섰다. 황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길이다. 길이 아니면, 험준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선 황산 구석구석의 그 아름다운 비경을 조망하거나 탐방할 수 없다. 길이 있음으로 하여 황산의 진면목은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우리의 눈에 담을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 ▲ 해심정(왼쪽). 서해대협곡 절벽에 낸 계단길을 가고 있는 탐승객. 밑은 아찔한 허공이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 황산의 그 기막힌 절경도 절경이지만, 절묘한 솜씨로 만든 탐방로를 보면 그 수공(手工)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이 편하게 비껴갈 수 있는 노폭, 일정한 너비로 만든 탐방길은 파인 곳은 돌을 쌓아 축조하고, 비탈진 곳은 바위를 깎아서 평로를 만들었다. 아찔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 연결하고, 절벽이 길을 막으면 예쁘게 통로굴을 뚫는다. 관망하기 좋은 지점에는 일정한 공간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 같이 자연을 훼손했다거나 무리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그러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삶의 진경이 있는 법이다. 황산의 길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자연스럽게 발현해 놓았다. 황산은 이 절묘하게 만든 탐방길을 통해서 무한진경에 이를 수 있다.
천해에서 보선교(步仙橋)에 이르는 2.8km의 길은 아득하게 높고 날카로운 암봉의 능선길이다. 나는 편의상 이 천해~보선교 구간을 ‘천보암릉(天步岩稜)’이라고 명명한다. 천보암릉은 좌우가 천인단애의 절벽이다. 눈길을 잠시 돌리면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에도 길은 단아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보암릉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좌우의 비경이다. 좌로는 천해의 협곡이요, 우측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서해대협곡이다. 천해의 계곡은 좀 너비가 넓고 밋밋하고 소박하게 흘러내려간 형상이라면, 서해대협곡은 기기묘묘하게 용출한 수많은 암봉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골짜기 절벽이 어우러진 험난한 협곡이다. 파란 하늘을 향하여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와 바위, 그것들이 겹겹이 이어져 가면서 기암절경을 연출하고 있고, 그러한 암봉에 뿌리 내려 시퍼렇게 살아있는 갖가지 형태의 소나무들이 장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러한 풍경은 천해에서 보선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臥石披雲’(와석파운), 지나는 길목의 절벽에 내리 새겨놓은 글이다. ‘누운 돌이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을 가른다’니, 내가 보기에는 누운 바위가 아니라 다 예리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바위뿐이다. 이제 보선교에 이르면 우리는 저 대협곡의 가슴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 ▲ 보선교.
- 보선교(步仙橋), 글자 그대로 신선(神仙)이 거니는 다리다. 천인절벽과 또 하나의 절벽 사이를 연결한, 길이 10여m 정도의 석교(石橋)인데. 아래 부분은 아치형으로 받치고 있고 그 위에 평상의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좌우의 난간은 아름다운 석조물로 조형해 놓았다. 다리 양단의 암벽엔 통로굴을 뚫어서 탐방길이 연결되도록 해놓았다. 그 통로굴을 따라 그대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8.5km) 조교암(釣橋庵)에 이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찔하면서도 절묘한 풍경이다. 정말 신선이나 지날 법한 묘경이다.
아아, 장엄한 서해대협곡
일행은 보선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통로굴로 접어들었다. 여기가 대협곡의 남쪽 입구다. 굴을 지나고 나니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 여기서부터 황산의 진경인 서해대협곡인 것이다. 이제 산릉에서 눈으로 보던 협곡을 온몸으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 날씨는 쾌청하고 햇볕은 뜨거웠다. 시계는 아주 맑아서 상하좌우 협곡의 모든 풍경이 천고(千古)의 순결한 자태로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산봉이 천인단애의 절벽을 이루며 첩첩이 도열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고, 아래로는 끝없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어디에 길이 있다는 말인가. 서해대협곡의 트레킹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은 기암괴석과 괴송이 이루어낸 아찔한 무한비경이다. 그 험난한 절벽을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황산은 ‘길’을 통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의 진체(眞諦)를 드러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서해대협곡은 길을 낼 수 없는 수직의 절벽에 길을 만들어냈다. 길을 절벽의 옆구리에 붙여 놓았다. 특히 천 길 절벽의 중간에 느닷없이 콘크리트 기둥을 수평으로 박아 통행로와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이 구조물의 시공은 어떻게 했을까.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만리장성의 축조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참으로 기막힌 명물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찬탄을 연발하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통행로 계단, 길목에 ‘絶壁深壑, 斷崖絶壁, 注意安全’(절벽심학 단애절벽 주의안전)이라고 오석(烏石)에 노란 글씨로 새긴 경고판도 설치해 놓았다. ‘절벽 깊은 골짜기에 깎아지른 길이니 주의하여 안전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절벽 옆구리를 감고 돌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 건너 암봉 아래 대협곡복무참(大峽谷服務站)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햇볕은 뜨겁고 대원들의 몸도 많이 지쳐 보였다. 각자 지니고 온 물이 다 바닥이 났다. 그리고 일부 대원에게는 몸에 무리가 오는 듯했다. 우선 이당(怡堂) 형께서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고, 죽파(竹坡)와 일송(一松)도 무릎보호대를 장착하며 아프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관절에 많은 부담이 된 것 같았다.
대협곡복무참(보선교에서 1.7km 위치한 산중휴게소)의 화장실은 깨끗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보아 온 황산의 모든 탐방로 주변도 아주 깨끗했다. 길목의 요소요소에 설치해 놓은 쓰레기통은 바위에 홈을 파서 만든 듯이 자연스럽고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황산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다. 관광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쉬고 난 뒤 일행은 휴게소 뒤쪽의 약 20여m 동굴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길은 외줄기 낭떠러지로 쏟아지는 급전직하의 경사, 그냥 아래로 내리꽂는 가파른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암벽의 옆구리에 붙여진 좁은 계단인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은, 길게 쏟아지는 심학(深壑·깊은 골짜기)이었다. 좌우로 올려다보니 아득하게 치솟은 기암거봉이 전후좌우에서 창공을 찌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