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해외산행] 중국 황산 (2) *-

paxlee 2007. 12. 17. 21:38

 

                            [해외산행] 중국 황산

 

황산은 하나의 큰 바다다. 황산 입구의 천도봉을 중심으로 한 남쪽 영역은 전해(前海)라 하고, 그 반대 광명정 뒤쪽을 북해(北海)라 하며, 광명정 좌측의 대협곡과 배운루가 있는 영역을 서해(西海)라 하고, 운곡삭도(케이블카)의 오른쪽을 동해(東海)라고 명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천해(天海)인데, 그 중심에 높다란 망루 같은 해심정(海心亭)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황산을 바다에 빗대어 표현한 연유는 무엇인가. 운해의 장관으로 말미암음일 것이다. 아니면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저 수많은 암봉들의 모습을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읽어낸 것인가. 그렇다. 황산에 오면 산이 바다요, 바다가 산이다. 산이 바다가 되어 장엄하게 뒤채며 절묘한 몸짓으로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로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안으로 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에 출렁이고 있다. 참으로 그 풍류가 멋지고 신선하지 않은가.

암릉길 조망, 그리고 환상의 보선교(步仙橋)

일행은 천해를 떠나 서해대협곡 탐방길에 나섰다. 황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길이다. 길이 아니면, 험준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선 황산 구석구석의 그 아름다운 비경을 조망하거나 탐방할 수 없다. 길이 있음으로 하여 황산의 진면목은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우리의 눈에 담을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 해심정(왼쪽). 서해대협곡 절벽에 낸 계단길을 가고 있는 탐승객. 밑은 아찔한 허공이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황산의 그 기막힌 절경도 절경이지만, 절묘한 솜씨로 만든 탐방로를 보면 그 수공(手工)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이 편하게 비껴갈 수 있는 노폭, 일정한 너비로 만든 탐방길은 파인 곳은 돌을 쌓아 축조하고, 비탈진 곳은 바위를 깎아서 평로를 만들었다. 아찔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 연결하고, 절벽이 길을 막으면 예쁘게 통로굴을 뚫는다. 관망하기 좋은 지점에는 일정한 공간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 같이 자연을 훼손했다거나 무리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그러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삶의 진경이 있는 법이다. 황산의 길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자연스럽게 발현해 놓았다. 황산은 이 절묘하게 만든 탐방길을 통해서 무한진경에 이를 수 있다.

천해에서 보선교(步仙橋)에 이르는 2.8km의 길은 아득하게 높고 날카로운 암봉의 능선길이다. 나는 편의상 이 천해~보선교 구간을 ‘천보암릉(天步岩稜)’이라고 명명한다. 천보암릉은 좌우가 천인단애의 절벽이다. 눈길을 잠시 돌리면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에도 길은 단아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보암릉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좌우의 비경이다. 좌로는 천해의 협곡이요, 우측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서해대협곡이다. 천해의 계곡은 좀 너비가 넓고 밋밋하고 소박하게 흘러내려간 형상이라면, 서해대협곡은 기기묘묘하게 용출한 수많은 암봉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골짜기 절벽이 어우러진 험난한 협곡이다. 파란 하늘을 향하여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와 바위, 그것들이 겹겹이 이어져 가면서 기암절경을 연출하고 있고, 그러한 암봉에 뿌리 내려 시퍼렇게 살아있는 갖가지 형태의 소나무들이 장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러한 풍경은 천해에서 보선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臥石披雲’(와석파운), 지나는 길목의 절벽에 내리 새겨놓은 글이다. ‘누운 돌이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을 가른다’니, 내가 보기에는 누운 바위가 아니라 다 예리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바위뿐이다.  이제 보선교에 이르면 우리는 저 대협곡의 가슴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 보선교.
보선교(步仙橋), 글자 그대로 신선(神仙)이 거니는 다리다. 천인절벽과 또 하나의 절벽 사이를 연결한, 길이 10여m 정도의 석교(石橋)인데. 아래 부분은 아치형으로 받치고 있고 그 위에 평상의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좌우의 난간은 아름다운 석조물로 조형해 놓았다. 다리 양단의 암벽엔 통로굴을 뚫어서 탐방길이 연결되도록 해놓았다. 그 통로굴을 따라 그대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8.5km) 조교암(釣橋庵)에 이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찔하면서도 절묘한 풍경이다. 정말 신선이나 지날 법한 묘경이다.

아아, 장엄한 서해대협곡

일행은 보선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통로굴로 접어들었다. 여기가 대협곡의 남쪽 입구다. 굴을 지나고 나니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 여기서부터 황산의 진경인 서해대협곡인 것이다. 이제 산릉에서 눈으로 보던 협곡을 온몸으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 날씨는 쾌청하고 햇볕은 뜨거웠다. 시계는 아주 맑아서 상하좌우 협곡의 모든 풍경이 천고(千古)의 순결한 자태로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산봉이 천인단애의 절벽을 이루며 첩첩이 도열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고, 아래로는 끝없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어디에 길이 있다는 말인가. 서해대협곡의 트레킹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은 기암괴석과 괴송이 이루어낸 아찔한 무한비경이다. 그 험난한 절벽을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황산은 ‘길’을 통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의 진체(眞諦)를 드러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서해대협곡은 길을 낼 수 없는 수직의 절벽에 길을 만들어냈다. 길을 절벽의 옆구리에 붙여 놓았다. 특히 천 길 절벽의 중간에 느닷없이 콘크리트 기둥을 수평으로 박아 통행로와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이 구조물의 시공은 어떻게 했을까.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만리장성의 축조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참으로 기막힌 명물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찬탄을 연발하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통행로 계단, 길목에 ‘絶壁深壑, 斷崖絶壁, 注意安全’(절벽심학 단애절벽 주의안전)이라고 오석(烏石)에 노란 글씨로 새긴 경고판도 설치해 놓았다. ‘절벽 깊은 골짜기에 깎아지른 길이니 주의하여 안전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절벽 옆구리를 감고 돌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 건너 암봉 아래 대협곡복무참(大峽谷服務站)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햇볕은 뜨겁고 대원들의 몸도 많이 지쳐 보였다. 각자 지니고 온 물이 다 바닥이 났다. 그리고 일부 대원에게는 몸에 무리가 오는 듯했다. 우선 이당(怡堂) 형께서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고, 죽파(竹坡)와 일송(一松)도 무릎보호대를 장착하며 아프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관절에 많은 부담이 된 것 같았다.

대협곡복무참(보선교에서 1.7km 위치한 산중휴게소)의 화장실은 깨끗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보아 온 황산의 모든 탐방로 주변도 아주 깨끗했다. 길목의 요소요소에 설치해 놓은 쓰레기통은 바위에 홈을 파서 만든 듯이 자연스럽고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황산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다. 관광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쉬고 난 뒤 일행은 휴게소 뒤쪽의 약 20여m 동굴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길은 외줄기 낭떠러지로 쏟아지는 급전직하의 경사, 그냥 아래로 내리꽂는 가파른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암벽의 옆구리에 붙여진 좁은 계단인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은, 길게 쏟아지는 심학(深壑·깊은 골짜기)이었다. 좌우로 올려다보니 아득하게 치솟은 기암거봉이 전후좌우에서 창공을 찌르고 있다.

      푸른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 햇살은 성가시게 따갑고 우리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래로는 내려가는 발끝이
      위험천만이고, 위로는 쏟아질 듯 높은 절벽이 우리를 압도하
      고 있는 것이다. 길옆에 영어와 독일어와 불어를 곁들인 ‘峽谷
      地帶 當心落石’(협곡지대 당심낙석·험악한 협곡지대이니 마땅
      히 낙석에 조심)이라는 석판이 눈길을 끌었다. 이 길목에선 상
      투적인 주의가 아닌 절실한 말이었다.

      이렇게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수백 미터 걸으면서 대협
      곡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에도 간간히 피어 있는 소담한 야생화는 피곤한 길손의
      눈길을 끌었다. 보랏빛 넝쿨에 핀 개나리 꽃잎 모양 같은 것,
      팬지꽃처럼 생긴 분홍 꽃, 그리고 무리지어 피어있는 하얀 꽃
      무리들. 그 티 없이 맑은 기운이 상큼하게 가슴에 와 안긴다.

▲ 서해대협곡에서 배운정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온갖 형상의 기암들을 지척에서 만난다. 탐승로를 그렇게 기암들을 돌아볼 수 있게 냈다.
무릎 관절이 아픈 사람에게는 내리막은 지옥이다. 일송과 죽파, 그리고 이당 형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때때로 아픔으로 호소하기도 하다가 그냥 말없이 견디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안쓰러운 산행은 계속되었다. 황산은 그냥 황산이 아닌 것이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아래로만 내려가던 산길도 다시 가파른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가파른 계단길은 예의 암벽을 끼고 오른다. 오늘 일정은 배운루(排雲樓)를 거쳐 숙소인 서해빈관(西海賓館)까지 가는 것이다. 내려온 것을 보상이라도 하라는 듯 오름길 또한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사정없이 위로만 치고 올라가는 팍팍한 길,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곳에 만들어진 계단길, 그 경사가 가슴에 와닿도록 가파른 길, 아래로는 천길 벼랑이요, 위로는 아득한 산봉이 이마 위에 쏟아지는 길이다.

햇볕이 뜨겁고 숨이 차고 땀이 흐른다. 이제 깊은 협곡을 벗어나 고도를 높여 올라만 가는 길이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산 중턱 어디쯤 쉼터 역할을 하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뜨거웠다. 여기서 잠시 대협곡의 장관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하였다. 모두들 같이 늘어서서 추억의 사진도 한 방 찍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협곡복무참에서 2.6km 지점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환하로구(二環下路口·두 번째 갈래길의 아래쪽 입구), 여기서 좌측으로 가든 우측으로 가든 0.5km를 가면 이환상로구(二環上路口·위쪽 입구)에서 만난다. 일행은 두 갈래 길이 만나는 지점의 전망대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쉬었다.

길은 천인절벽의 옆구리를 타고 계속 오른다. 황산은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이 절묘한 계단길이 유별나고 기찬 명품이다. 오르기도 아찔하고 쳐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길,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행은 또 일환하로구에서 갈래길이 만나는 지점인 일환상로구까지 힘겹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왔다.

약 1km 오르고 산봉을 하나 넘으니 대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대에 이르렀다. 따가운 빛살을 뿌리던 여름해도 많이 기울어졌다. 산곡에는 곳곳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서해대협곡 북쪽 입구에 이른 것이다. 아, 드디어 대탐험이 끝나는 지점이다. 낙락장송이 부드러운 그늘을 만들고 그 사이로 아득하게 펼쳐진 대협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운루 절벽에서 서해대협곡 조망

아아, 서해대협곡! 그 장엄한 규모에 놀라고, 갖가지 기이한 형상에 놀라고, 천 길 낭떠러지에 설치한 인공의 절벽 계단길에 놀라고, 줄곧 찬탄과 경탄 속에서 탐사를 마쳤다. 한국인인가 보다. “어이, 몸서리나는 계단길!” 바람결에 흘러드는 행인의 소리도 들린다. 너무 힘들어 그냥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의 온몸에 저 장엄한 황산의 정기가 살아서 출렁이고 있지 않은가.

배운루 절벽 위 전망대는 서해대협곡을 조망하는 데 최적의 명소다. 대협곡을 가운데 두고 두 줄기 장대한 암봉이 기묘한 절경을 연출하면서 춤을 추듯 내달리는 모습이 지친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그런데 맞은편에 우뚝하게 솟은 저 봉우리가 무엇인가, 광명정(光明頂)이다! 천해에서 바라보던 광명정이 남쪽 부분이라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광명정은 그 뒷면이겠다.

백구(白球)의 기상관측소는 여전히 하얗게 떠있고, 그 오른쪽 절벽 위에 곧추선 바위가 바로 비래석(飛來石)이다. 그 주위에 아직도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다 뭔가? 배운루 앞 낭떠러지 안전철망에 걸려있는 수많은 자물쇠! 왜 하필 자물쇠가 여기 이렇게 많이 걸려 있는 것인가. 연인끼리, 부부끼리 이곳에 오른 후 평생의 반려자로 헤어지지 말자는 언약으로 열쇠로 자물쇠를 채운 후, 그 열쇠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열쇠가 없으니 자물쇠를 열 수도 없는 것, 결국 둘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평생을 해로할 수밖에 없다. 그래, 철석같이 굳은 마음으로 변치 말고 살아야지. 인간의 아름다운 소망일 것이다.

배운루에서 숙소인 서해빈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숙소에 이르렀을 즈음 태양은 서서히 서쪽 산너울 가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황산의 석양은 그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다. 그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도 며칠 안 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 그윽한 장관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참으로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제 저녁 황산시에 들어올 때는 잔뜩 흐린 하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심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하늘은 청명했고 시야는 더없이 맑고 깨끗했으므로 황산의 절경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안복(安福)을 누렸다. 어찌 하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어느덧  구름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발하며 황산의 태양이 지고 있다. 청명한 고지의 산중에 내리는 석양은 곱다. 얼마 전에 다녀온 몽골 태초원에서 뜨는 해는 장엄했고, 지금 황산에서 지는 해는 그윽하고 아름답다. 한국의 초가을 같은 선선한 바람결이 부드럽다. 더구나 험난한 대협곡의 탐방을 무사히 끝마친 성취감과 안도감이 은은히 스며든다. 장하고도 멋진 여정이었다. 열병 같은 뜨거운 고행을 끝내고 난 후 맛보는 이 넉넉하고 상쾌함이란 감동의 절정을 음미해 본다. 

서해빈관은 산중 관광타운이다. 즐비하게 지어놓은 건물에는 호텔 객실, 대형 식당, 슈퍼마켓, 가라오케 노래방 등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술과 음료수 등도 살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발 마사지도 편하게 받을 수 있다.

낮에 그렇게 뜨겁던 더위의 위세도 해발 1,600m 이상 되는 산중에서는 자취 없이 물러가 버렸다. 지정된 객실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고 밖에 나오니 선선한 바람결이 쾌적하다. 온몸에 실린 황산의 노독도 씻은 듯이 날아가 버렸다. 꼭 한국의 가을 바람결처럼 부드러운 감촉이다. 경내는 많은 산행객들로 왁자한데, 사위는 서서히 어둠 속에 잠겨든다.

황산의 별은 총총하다. 자정을 넘기자 대원 몇 사람은 객실로 들어갔다. 야심한 별밤이다. 얼마 전 몽골의 초원에서 보던 별과는 달리 산중의 별은 또 다른 느낌이다. 여기가 고지의 산중이므로 주위의 어둑한 산너울 위로 뜨는 별, 깊고 그윽한 분위기가 좋다. ‘아, 하늘엔 우리들의 별이 빛나고 우리들 마음에 뜨는 소중한 사람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아, 저기 아기별도 예쁘게 반짝이네!’
  / 글·사진 / 오상수 / 월간 산 [458호] 2007.12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