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해외산행] 중국 황산 (1) *-

paxlee 2007. 12. 17. 21:15
 
                    [해외산행] 중국 황산
 

황산(黃山)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1,860m의 연화봉(蓮花峰)을 위시한 갖가지 형상의 72봉을 거느리고 있는 암봉군으로,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찬탄과 찬미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황산의 절경은 대시인 이백 등에 의해 칭송되었으며, 명나라 때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은 30년에 걸쳐 중국 천하를 두루 여행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 즉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상(嵩山)의 오악을 보고 온 사람은 평범한 산은 눈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황산을 보고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 수백 길 벼랑 중간을 가로질러낸 서해대협곡 탐승로. 설계에 12년, 시공에 9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登黃山天下无山 觀止矣(등황산천하무산 관지의)’, 즉 ’황산에 오르고 보니 천하에 볼 만한 산이 더는 없구나’라고 했으니, 오늘 황산을 찾은 이 호산아(好山兒·필자의 호)의 가슴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부터 유명한 시인, 화가, 여행객들이 이 산을 그토록 칭송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흔히들 황산의 삼기(三奇)라고 하면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를 든다. 거기에 온천을 추가하여 사절(四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기암절벽과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소나무들이 가관이고, 그 절경 사이로 깔리는, 어느 별천지 선경에나 있을 법한 구름의 바다가 장관을 이루며 시시각각 움직이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낸다.

▲ 황산 들목의 2층 누각인 자광각.
중국의 어느 한 책자에서는, ‘소나무와 바위, 그리고 구름이 어울려 청공(靑空)과 대지(大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들을 변화무쌍하게 보여 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황산은 천하제일기산(天下第一奇山)으로 불리고 있으며, 근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 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드디어 황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추녀 끝이 날아오르는 2층 누각의 자광각(慈光閣)에 이르렀다. 어제 저녁 날씨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날씨는 덥지만 하늘이 파랗게 열려오고 시공은 쾌청했다. 아름다운 황산의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산의 제1기착지인 옥병참(玉屛站)에 발을 내딛었다. 아아, 거대한 바위산의 웅자가 가슴에 달려든다. 그러나 이내 회색의 운무가 산봉을 휘감아 버린다. 햇살을 가로막았지만 비 올 구름은 아니다. 고산 특유의 운무인 것이다.

우선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영객송(迎客松)을 만나러 갔다. 이름 그대로 이 산을 찾은 손님을 영접하는 소나무이니 그 기품이 참으로 당당하고 우아하다. 표고 1,668m 지점에 수령 천년을 넘었다고 하는 이 소나무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옥병봉의 거벽 아래 싱싱한 가지를 옆으로 좌악 펴고 있는 품이 유별나다. 그 모습이 꼭 길손을 영접하는 몸짓으로 보였던 것일까. 그 명명의 연유야 어쨌든 참으로 특별한 품격이 느껴지는 영물이었다.

그 옆에는 옥병루빈관(玉屛樓賓館)이 있어 필요하다면 여기서도 하룻밤 유숙할 수도 있다. 빈관 뒤쪽에 거대한 암괴로 솟구친 산이 옥병봉(玉屛峰)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병풍바위 산이다.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황산의 소나무는 옥병루의 영객송과 송객송(送客松), 그리고 포단송(浦團松), 천해의 봉황송(鳳凰松) 등과 함께 이들은 황산의 십대 명송에 속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암석 위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강인하게 자
       라고 있다. 소나무 씨는 바람에 실려 화강암 틈에 들어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황산의 소나무들은 생장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운 것만큼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한다. 뿌
      리는 줄기보다 수십 배 더 길다. 3m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나무
      도 몇 백 년, 심지어 수백 년 자란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
      명한 영객송은 그 연륜이 천 년이 넘는다.

▲ 황산 10대 명송 중 하나인 영객송(왼쪽). 핸드폰처럼 생겼다는 수기석.
영객송의 기품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사이 하늘을 가리던 운무가 어느 새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니 저 건너 가슴을 치고 솟구쳐 올라가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왔다. 천도봉(天都峰)이다. 황산 최고봉인 연화봉을 위시하여 광명정(光明頂)과 함께 삼대 봉 중 하나다. 지금 저기 가파른 암벽의 계단에 줄지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하얀 쌀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다.

원래 등정은 케이블카가 아닌 제 발로 치고 올라야 하는 것. 저 아래 케이블카 출발점인 자광각에서 오른쪽 산길을 택하여 월아정(月牙亭)과 입마정(立馬亭)을 경유하고, 반산사(半山寺)를 거쳐 천도봉 정상에 올라가는 코스가 정도다. 물론 지루한 계단길이다. 그리고 천도봉에서 노도구(老道口)로 내려와 소심파(小心坡)를 치고 올라오면 이곳 영객송, 옥병루빈관에 이르게 된다. 황산 산행은 계단을 타고내리는 고통을 즐겨야 한다. 나는 오르지 못한 아쉬운 마음으로 그 쪽을 다시 보고, 또 뒤돌아보곤 했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출렁이는 산이다.

▲ 천보암릉.
저 거대한 암봉을 가슴에 채우고 가는 것만으로 자족하고, 이제 올라온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 연화봉을 향하여 가야한다. 가는 길목에 송객송이란 표지가 있어 올려다보니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 덩그렇게 서 있다. 만고풍상을 겪은 허허로운 모습이다. 말없이 서 있는 노송의 환송을 받으며 연화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장엄하고도 기이한 풍광이 시야에 차오른다.

오어봉((鰲魚峰)을 넘어 천해(天海)에 들다

황산 탐방길은 어디를 가나 계단에서 계단으로 이어져 나갔다. 거대한 암봉과 암봉 사이의 좁은 길이거나 절벽을 돌아가거나 가파른 암벽길은 모두 잘 정리된 계단이다. 절벽에 붙여놓은 이 인공의 계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황산의 진경에 들 수 없다. 산길은 산봉을 치고 올라 숨겨진 절경을 찾아가는 통로다. 인위의 품(品)이 자연과도 잘 어울린다.

황산은 천태만상 천하의 기암거봉들이 군웅처럼 모여들어 거기에 청정고절(淸淨孤節)한 소나무가 어우러져 장엄한 비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화봉 가는 길에 운무가 머리를 스쳐가더니 원근의 산봉을 감싸고 지나간다. 서늘한 바람결이 온몸에 스며든다. 아늑하고 신선한 느낌이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앞에 펼쳐지는 황산의 기묘한 진경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기암, 절송(絶松), 그리고 운해가 황산 삼절이라 하더니 허언이 아니다.

▲ 오어봉 백보운제.
얼마 가지 않아 문득 거대한 산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물론 산봉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장대한 규모를 지닌 위용이었다.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이다. 그러나 지금 연화봉 정상은 휴식년에 들어있어 오를 수 없었다. 우회로로 돌아가는 길은 바위에 예쁜 통로굴을 뚫어 편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분명 자연에 인공이 가미되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축조한 솜씨가 놀라웠다.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이건 또 무엇인가. 불쑥 길게 솟구친 바위 덩어리 위에 검지손가락 하나가 돌출된 모양이 특이하다. 소위 수기석(手機石·Mobilephone Stone)이다. 유네스코 지정 지질공원(UNESCO Geopark) 마크가 찍힌 석판 안내문에는 ‘造型奇特的怪石是黃山地質公園一大特色 此巧石形手機’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만들어진 모양이 기이하고 특이한 괴석은 황산지질공원의 한 특색인 바, 이 교묘하게 생긴 모양이 휴대전화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럴 듯하다.

산행은 물 흐르듯 계속 이어져 나갔다. 오늘 따라 길에는 사람이 많다. 진행의 오른쪽은 연화봉이요, 좌측 계곡 건너 맞은편에 솟은 것이 연자봉(蓮慈峰)이다. 가파른 계단길을 한참 올라가니 시야가 탁 트이고 새로운 정경이 가슴을 열어준다.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연화정(蓮花亭)이다. 오른쪽 위로는 연화봉이요, 왼쪽은 낭떠러지 절벽이요, 전방의 발아래는 깊은 골짜기인데, 그 건너편에는 다시 거대한 암봉의 큰 줄기가 뻗어가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일선천(一線天) 암릉에서 이어지는 오어봉(鰲魚峰)인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내리고 돌아가서 그 암봉으로 오르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 위에는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유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로 내려가는 발아래는 백보운제(百步雲梯), 절벽을 뚫어 만든 100개의 가파른 돌계단이 구름 속을 뚫고 오르는 사다리 구실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황산에는 사람이 많다. 가는 곳마다 좌우로 줄을 서서 비껴서 가야 한다. 천하명승 황산을 찾는 내국인은 물론 사해(四海)에서 모여든 탐방객이 많은 까닭이다.

백보운제는 가파르고 좁은 바위계단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초췌하다.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올라오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내려가는 발길도 위태롭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균형을 잃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오어봉(鰲魚峰) 반석 위에서의 조망

연화정에서 바라본 길을 따라 다시 암봉을 오른다. 오어동(鰲魚洞) 표지석이 동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굴 통로를 지나니 왼쪽 위로 오어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 옆 절벽에 ‘大塊文章’(대괴문장)이라고 새겨놓은 긴 붉은 색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저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장엄한 하나의 문장이란 말인가. 아니면 어느 문장가의 바램이었을까?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저 큰 바윗덩어리 같은 무게 있고 선 굵은 문장을 쓰고 싶은, 가슴에 울림이 오는 문구다.

눈앞에는 다시 새로운 천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날아가고 시공은 푸르고 청명했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산빛이 깨끗하다. 저 아래 보이는 숲과 건물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지인 천해(天海)인 것이다. 그리고 건너편에 높고 거대한 산봉은 황산 제2봉인 광명정(光明頂)이다. 오어봉 아래는 전망 좋고 시원한 반석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들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이당(怡堂) 형의 웃음소리가 장쾌하다.

천해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날아갈 듯이 높은 2층 누각이 인상적이다. 천해의 명물 봉황송(鳳凰松)을 배경으로 하여 지은 해심정(海心亭)이다. 그 위 2층 누각에 오르면 천해의 아름다운 장관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천해찬청(식당) 앞을 지나 최고급 산중 호텔인 백운빈관(白雲賓館)에 당도했다. 시간은 정오를 넘긴 12시20분이다.

백운빈관의 둥근 식탁에 오른 음식은 기름지고 푸짐했다. 중국 음식 특유의 향내가 풍기는 먹음직한 식단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천해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심정 앞에서 올려다본 광명정은 커다란 백색 원구(圓球)를 이마에 이고 있는데, 서울의 관악산이나 설악의 중청봉에 있는 것과 같은 기상관측소였다.

광명정에는 명물 비래석(飛來石)이 있다. 오늘 우리 일행은 험난한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을 탐사할 계획이므로 아쉽지만 광명정 등정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사실 천해에서 광명정까지는 겨우 500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광명정은 기상대 시설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광명정에서 산릉을 타고 40분 가면 북해빈관(北海賓館)에 이를 수 있다.

          / 글·사진 / 오상수 / 월간 산 [458호] 2007.12 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