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하는 산악인 오은선씨 인터뷰. *-

paxlee 2008. 11. 29. 21:28

    

         히말라야 8000m급 9개봉 오른 오은선

"頂上 오른 기쁨은 남들이 알아줄 때 더 커져"

 

산악인 오은선(42·블랙야크)씨가 12일 세계 8위 고봉 마나슬루(8163m)를 무산소 등정했다. 그는 1997년 가셔브롬Ⅱ에서 시작해 에베레스트(2004년), 시샤팡마(2006), 초오유, K2(2007)에 올랐고, 올해 마칼루, 로체, 브로드피크 등 4개봉을 등정해 모두 9개봉에 올랐다. 2010년까지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14좌를 완등한다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이다.

현재 14좌 완등을 한 산악인은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씨 등 세계에서 13명뿐이다. 여성 산악인 중엔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이 11개 봉을 올라, 14좌 완등(完登)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오은선씨가 서울 강북청소년수련관에서 암벽을 오르는 훈 련을 하고 있다. 체격은 작지만 잘 지치지 않고, 몸이 가벼 워 눈에 깊이 빠지지 않아 남보다 빨리 산을 오를 수 있다./ 사진 주완중 기자


―정상에 오르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목표를 달성했으니 빨리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죠. 그땐 기쁜지도 잘 몰라요. 너무 추워 사진만 찍고 내려가요. 정상을 정복했다는 기쁨은 하산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요. 집에 도착하면 더 기쁘고 사람들이 알아주면 더 기뻐요."

―하산할 때 사고가 더 많이 나지요?

"올라갈 때 에너지를 20~30%는 남기라고 그래요. 자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힘은 남겨둬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베이스 캠프까지 내려오는 동안에도 긴장하고 거기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않아요."

―단독 등정일 땐 훨씬 더 많이 긴장하지요?

"저 혼자 내려오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요. '줄 잘 잡고 조심해야 돼' '천천히 해야 돼' '맞아, 네 말이 옳아' 이런 식으로 제가 어떤 목소리와 대화를 하는 겁니다. 마지막 캠프가 보이는 순간 그 목소리가 사라졌어요."

오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북한산 인수봉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어른이 되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원대 전산과 입학 후 곧바로 산악부에 가입했지만 가벼운 등산을 하는 정도였다. 2학년 때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을 처음 해본 후 "더 이상 행복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완전히 산에 빠져버렸다.

오씨는 졸업 후 서울과학교육원에서 전산직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93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직장을 때려치웠다. 당시엔 7300m에 있는 중간 캠프까지만 갔다가 하산했다.

"직장에서 남에게 폐 끼치며 산에 다니긴 싫었어요. 젊고 건강한데 입에 풀칠이야 못하겠어요? 유리창이라도 닦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에베레스트 갔다 온 후엔 학습지 교사를 하고 평촌에 스파게티집도 차렸어요. 보기 좋게 실패했죠. 그러고 있으니 가족들이 산에 가서 쉬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등반에 나선 거예요."

오씨는 키 155㎝에 몸무게 50㎏의 작은 체구에 날아다니듯 산을 오른다고 해서 별명이 '날다람쥐'다. 8000m급 등반을 할 때도 중간 캠프 수를 줄여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특기다.

―담력이 남다를 것 같아요.

"천길 낭떠러지가 보여도 다리가 떨려서 못 간다거나 그런 경우는 없어요. 어릴 때도 담이 있으면 그 위로 걸어가고 다리가 있으면 눈 감고 건넜어요."

―등반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합니까?

"너무 힘들면 한적한 데 가서 막 울면서 노래를 해요. 정상 근처까지 갔다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그냥 돌아온 걸 후회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다 갈 때 그냥 갈 걸 그랬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럼 마음이 진정돼요."

오씨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박영석 등반대 대원으로 브로드피크, 마칼루, K2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대원들의 실종이나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히말라야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방향을 돌려 2002년부턴 7대륙 최고봉 도전을 시작해 2006년 마무리 지었다.

―히말라야 등반가의 평균 나이가 35세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더 젊으면 거기까지 갈 돈이 없고 나이가 더 들면 체력과 모험심이 부족해서 못 간다고요.

"유명 산악인들이 14좌 등반을 마쳤을 때가 40대 초반인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제가 서두르는 것도 그 때문이죠. 이제 40대니까 언제 어떻게 기운이 떨어질지 모르거든요."

―최근엔 계속 무산소 등정이었는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요.

"산소가 없으면 더 춥죠. 산소가 있으면 몸의 순환이 잘돼 추위를 덜 느끼거든요. 정상 근처에 갔을 때 머리가 좀 아픈 일도 있고 허벅지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낀 적도 있어요."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냉정하게 돌아서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서요?

"2006년 초오유(8201m) 등반 때는 이상하게 머리가 시리더라고요. 이러면 뇌세포가 빨리 죽을 텐데 싶어서 걱정이 됐어요. 세르파는 100m밖에 안 남았으니 빨리 가자고 하는데 제가 과감히 돌아섰어요. 그렇게 실패하고 나니까 그 다음해엔 경비가 없어서 후배와 둘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압력솥으로 밥해 먹으며 산에 올랐어요."

―여성 산악인이라서 어려운 점이 있습니까.

"남자 후배를 파트너로 데리고 갈 수도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남자 파트너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 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잡음이 싫어 단독등정을 많이 해요."

―산에 올라가기 전에 가장 두려운 게 뭔가요.

"제 자신이 두려워요. 의지가 흐트러질까 봐,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워요. 산이 저를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올라가면 날씨가 나빴다가 내려오면 좋아지는 식으로 엇나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조바심이 나면 무리하게 되고 그러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어요."

―요즘은 점점 더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는 추세인데, 오 대장은 안전한 루트로만 다닌다는 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부분 맞는 얘기죠. 그러나 새 루트를 개척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산악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경우죠. 새 루트를 개척한다 해도 결국은 남이 간 루트와 만나게 돼 있고요."

―등반할 땐 언제가 제일 중요합니까.

"첫 30분에서 1시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워밍업을 해야 하니까 아주 천천히 움직여요. 어느 산을 가더라도 그래요."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게 언제였어요?

"2004년 에베레스트(8848m)에 갔을 때죠. 정상에서 내려와 8300m 지점까지 갔는데, 거기서부터 한 걸음도 못 걷겠더라고요. 그래서 누웠는데 너무 편했어요. 그때 누군가 제 랜턴 불빛을 보고 다가오는 거예요. 다른 세르파였어요. 부축을 받아 대여섯 걸음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다가 기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어요. 세르파가 산소호흡기를 씌워줘 아침까지 죽음 같은 잠을 잤어요."

―산에서 죽을 각오가 돼 있습니까?

"산에서 죽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고 싶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고 싶어요. 날씨가 돌변해 돌풍에 휩쓸려 죽는다거나 안전지대가 갑자기 무너졌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측불가의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안전사고로 죽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더 준비하는 것이고요."

―산 말고 좋아하는 일은 뭐가 있습니까.

"저는 노는 데 별 관심이 없어요. 로또도 안 사요. 산만으로도 삶이 충만하고 보람 있기 때문에 다른 일에 관심이 없어요."

―명예를 추구합니까.

"그게 없으면 안 되지요. 산에 가는 건 온전히 제 힘만 가지고는 안 돼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 삶이 명예로운 삶이 돼야 해요."

―산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했거나 시도해본 적은 없습니까.

"대학 때 산악부에 가입한 이후 제 머리는 산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저도 무슨 생각인가를 하긴 했겠지요. 그런데 남아 있질 않아요. 남아 있는 건 산뿐이에요."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고기보다는 야채와 과일을 좋아해요. 산에 갔다 와서 몸이 허하면 보신탕을 먹고요. 입에서 당기는 음식은 뭐든 꼭 챙겨 먹어요. 달리기, 걷기, 수영, 스트레칭, 요가를 해요. 중요한 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지요. 장기적인 체력관리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 인터뷰 / [강인선 Live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