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그리스의 비극 *-

paxlee 2010. 3. 6. 23:02

 

             그리스의 비극

 

만성 재정적자로 나라빚 눈덩이..... 만연한 부패와 탈세....

만만디 정부에 파업 일삼는 노조..... 등등,

허약한 재정, 高실업 불구…연금·세제 개혁은 '제자리'
EU 지원에 급한 불 껐지만 경제 회생까지는 갈 길 멀어...

그리스 재정 위기로 단일 통화 유로의 미래도 시험대에 올랐다. / 로이터

'유럽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가 어쩌다 '유럽 위기의 발원지'가 됐을까?

최근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발(發) 재정 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차 여진(2009년 2월 동유럽 금융위기), 2차 여진(2009년 11월 말 두바이 위기)에 이어, 이른바 3차 여진이 이달 초 남유럽 그리스에 몰아닥친 것이다.

그리스를 비롯해 재정이 취약한 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까지 국가 부도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 국가의 첫 글자를 따 PIGS, 또는 이탈리아까지 보태 PIIGS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EU가 11일 정상회담을 열고, 그리스에 대한 지원 방침을 논의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막대한 그리스의 재정 적자는 가뜩이나 취약해진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줬다.

■미적대는 정부와 강성 노조가 부채질한 위기

그리스의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는 '만성 질환'이다. 지난 2001년 유로에 가입할 당시에도 이미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었다. 하지만 '응급 상황'으로 급격히 악화된 건 지난해 10월 그리스 정부의 예상치 않은 '양심선언' 때문이다. 그리스는 지난해 10·4 조기 총선으로 집권 신민당이 패배하고, 사회당이 정권을 잡았다. 신임 게오르그 파판드레우(Papandreou)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는 지난해 10월 20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경제·재무장관회의에서 "올해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당초 목표치(GDP의 3.7%)를 3배 이상 초과하는 12.7%가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리스 경제를 떠받치는 관광·해운산업이 타격을 입고 세수가 줄었는데도, 총선을 앞두고 재정을 펑펑 쓴 데다, 전(前) 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를 숨겨왔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충격적인 수치에 이틀 뒤 영국계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스에 대한 세계 금융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상황이 견딜만했다.

진짜 위기는 이로부터 석 달 반이 지난 이달 초에 터졌다. 세계 금융시장에 남유럽발 재정 위기와 국가 부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세계 증시 동반 급락을 불렀다. 그 주범은 사태 수습에 굼뜬 그리스 정부와 '솜방망이 개혁'조차 발목 잡는 그리스의 강성 노조였다. 〈일지 참조〉

그리스 신임 정부는 피치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전(前) 집권당이었던 야당 탓으로 돌리면서,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재정 감축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12월 초 피치사는 "그리스 정부의 연금 개혁안 및 재정 삭감계획이 지속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며 신용등급을 A-에서 BBB+ 등급으로 다시 떨어뜨렸다. 유로존(16개국)에서 국가신용등급이 A 밑으로 떨어지기는 그리스가 처음이었다.

최근 엄청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로 인해 그리스 경제에 국가 부도 위기가 고조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남유럽발 재정 위기’의 불씨가 번졌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아테네 교외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고대 파르테논 신전 뒤편 언덕까지 불이 번지는 모습. / AP

증시가 급락하고, 독일 국채(10년물) 대비 그리스 국채의 스프레드가 230bp로 확대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파판드레우 총리는 비로소 사회보장지출 10% 삭감을 포함한 재정 감축안을 다시 내놨다. 하지만 좌파 단체를 비롯, 노조가 시위를 벌이며 "부자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라" "총선 공약을 잊지 마라"고 정부에 반발했다. 이번에는 신용평가사 S&P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달 중순 그리스 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재정 적자를 GDP의 2.8%로 낮추겠다"는 재정 건전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80억달러에 달하는 국채 발행을 추진했다. 연 6.3%의 높은 금리에 국제 투자자들이 솔깃했지만, 중국이 그리스 국채 인수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국제금융시장에 나돌면서 그리스 국채 수익률이 급등(채권 가격 하락)하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이 그리스의 국가 부도 가능성에 베팅하면서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 프리미엄도 치솟았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투기꾼들을 비난했지만, 그리스가 위기에 몰린 건 방만한 재정 운용 탓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2월 초 총리는 월 2000유로 이하의 공공 근로자까지 공공 부문의 임금 동결에 포함시키는 등 더 강도 높은 재정 감축안을 내놨다.

2월 3일 EU가 그리스 정부의 재정 건전화 방안을 승인하면서 위기가 진화되는 듯했으나, 그리스 공공노조 ADEDY가 총파업(2월 10일)을 선언하고, 민간 최대 노조 GSEE도 대규모 파업(2월 24일 예정)을 결의하자,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면서 이른바 'PIGS 사태'가 확대됐다.

■제일 행복한 그리스 노인들

그리스는 한국보다 국토(13만2000㎢)는 넓지만 인구는 4분의 1에 불과하다(2008년 기준 1123만명).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GDP의 70% 이상을 서비스업이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그리스 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산맥은 관광산업과 해운업이다. 한 해에 그리스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덕에 관광산업이 GDP의 15%를, 선박왕 오나시스로 상징되던 해운업이 GDP의 4.5%를 차지한다.

1981년 EU(당시는 EC)에 가입했고, 2001년 단일 통화 유로에 가입하면서 바야흐로 봄을 만끽했다. 유로의 우산 아래, 그리스는 저금리의 유리한 조건으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됐고, 2004년 올림픽을 계기로 투자가 활성화되자 그리스 경제는 4% 안팎의 성장을 이어나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2009년 -1.1%)로 돌아섰지만, 유로화의 우산 밑에서 폭풍우는 피하는 듯했다. OECD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그리스 국가 보고서에서도 "그리스 경제는 글로벌 위기의 초기 충격에 상대적으로 잘 견뎌왔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에, 오랫동안 누적된 부패와 비효율적이고 허약한 재정 체력을 갖고도 흥청망청하다가, 뒤늦게 불이 옮아 붙은 것이다. 실제로 유로 가입 이후, 국제시장에서 더 유리한 조건으로 부채를 끌어다 쓰면서 2003년 재정 적자가 GDP의 6.1%, 2004년 7.8%까지 높아졌다. 2005년 EU는 "2007년까지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축소하라"고 '옐로 카드'를 내밀었다.

현재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재정 구조는 1980년대에 사회당이 집권하던 시절 도입한 사회주의 정책들로 인해 굳어진 것이다. 당시 사회당 정부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캐나다, 프랑스, 일본, 포르투갈 등은 대개 40년 일해야 연금을 수령한다.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35년 일하면 연금을 타고,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무려 95.7%에 달한다. 게다가 독일, 이탈리아, 영국 같은 나라들은 평생 벌어들인 소득을 평균해 연금을 지급하는데, 그리스는 소득이 가장 높은 은퇴 직전 5년간의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나이 들어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드는 구조다.

게다가 만연한 부패와 탈세, 비효율적인 행정으로 인해 세금 거둬들이는 실력은 OECD 평균 이하다.

세금을 탈루하는 지하경제도 GDP의 25~37% 규모로 추정된다. 자영업자가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해 징세율도 낮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에는 GDP의 13.6%나 되는 310억유로의 세금을 목표치 대비 덜 거뒀다.

한편, 비효율적인 공기업의 적자를 메워주거나 자본을 보전해주는 데 GDP의 0.8%, 사회보장기금의 적자를 메워주는데도 GDP의 3.2%(2007년)가 소요될 정도다. 1990년에도, 2000년 이후에도 연금이나 세제 개혁 등에 나섰지만 개혁은 부진하고, 나랏돈만 줄줄 새나갔다.

■높아진 소버린 리스크

3000억유로의 빚더미에 앉아 있는 그리스 정부는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만 500억유로가 넘는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신규 차입, 만기 연장 등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가 부도설이 나돈 것이다.

그런데 재정 적자나 국가 부채가 심각한 국가는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리스가 '재정 위기'를 촉발시킨 이유에 대해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훨씬 더 대담한 조치를 내놓은 아일랜드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리스가 내놓은 재정 지출 삭감안 등은 너무나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아일랜드가 지난해 12월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연금에도 과세하는 조치를 발표하자 국채 수익률이 하락(채권가격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그리스는 은퇴한 공무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겠다는 식의, 느리고 소극적인 정책을 내놔 시장의 불신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모건 스탠리의 경제분석가 스피로스 안드레오풀로스는 "그리스 정부가 귀한 시간을 너무 놓쳐버렸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국가 부도 위기에, IMF에 손 벌리느냐, EU에 지원받느냐를 놓고 결국 EU가 급한 불을 꺼주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의 만성질환까지 해결된 건 아니다.

지난해 GDP의 12.7%에 달하는 재정 적자 가운데, 순수 재정 적자(세출·세입의 차이)는 GDP의 7.7%이다. 나머지 5%는 막대한 국가 부채로 인한 이자 비용이었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재정 적자를 GDP의 8.7%로 떨어뜨리고, 2011년(적자 5.6%), 2012년(2.8%), 2013년(2.0%)에 계속 줄여나가겠다"고 EU에 약속했지만, 한 번 불어난 엄청난 나랏빚과 이자 비용은 2013년까지도 거의 그대로다.

그리스 재정 위기를 계기로, 세계 금융시장에 '국가 부도 위험(sovereign risk)'이 새로운 숙제가 됐다. 대표적인 '닥터 둠'(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재정 적자가 큰 나라들의 재정 건전화 작업이 지연된다면, 심지어 국제금융시장이 미국일본마저도 경계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글 / 강경희 Weekly BIZ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