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2010 남아공 월드컵_16강 길목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이야기] *-

paxlee 2010. 6. 22. 12:10

 

         [2010 남아공 월드컵_16강 길목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이야기]

산유국이지만 인프라는 빈약 ‘인생 로또’축구에 올인
나이지리아의 최대 도시 라고스의 일상은 예전과 별반 다름없다. 한국 같으면 거리나 TV에서 월드컵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겠지만 이곳은 의외로 무덤덤하다. ‘수퍼 이글스’라 불리는 자국 선수들을 격려하는 플래카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나이지리아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아프리카 축구의 강자다. 한때는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어느 아프리카 국가보다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코트디부아르의 드로그바나 카메룬의 에투 같은 특출난 스타 플레이어가 출현하지 않자 축구 열기가 예전보다 시들해졌다.

나이리지아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 조별 예선에서 우리와 만날 상대. 6월 23일 B조 예선 마지막 상대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전망을 물으면 이곳 사람들 100%가 “나이지리아가 이긴다”고 답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을 알고 있냐”고 물으면 많은 나이지리아인들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스타 한 사람으로는 나이지리아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나이지리아 사람들에게 “공은 둥글다”고 대답해 준다.

축구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 하더라도 길거리나 동네 공터에 가보면 축구공을 열심히 차는 젊은이들이 많다. 북한 축구대표팀 간판인 정대세가 얼마전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갖고 나서 나이지리아 선수들을 “야생동물 같다”고 말했듯이 아프리카인들은 동양인과는 달리 발목 동작이 매우 유연하고 주력도 좋고 몸도 탄탄하다. 나이지리아의 젊은 선수들은 유럽 리그로 진출하는 것이 지상 목표다. 그들에게 유럽무대는 로또나 마찬가지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은 아프리카 경제가 올해 평균 5.4%, 내년엔 6.4%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시장이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라가 바로 나이지리아이다. 나이지리아는 경제규모(GDP 3410억달러)나 인구(1억5400만명), 영토 크기(92만㎢),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아프리카의 중국’이라 할 수 있다. 

값싼 원유 수출하고 비싼 휘발유 수입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의 인구 대국이다. 53개 국가 중 가장 많다. 남아공과 이집트 등 지중해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전체 아프리카 국가를 합친 것보다 나이지리아의 GDP(국내총생산)가 더 크다. 산유국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도 대단하다.

나이지리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50%는 미국이 가져가기 때문에 미국도 나이지리아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이지리아의 원유 매장량은 362억배럴로 매일 2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출한다.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가 차지한다. 정유생산시설이 없어 원유를 수출하고 정제된 휘발유를 수입하는 특이한 나라다. 정유공장을 건설하여 휘발유를 자급자족하거나 수출하면 좋을 텐데 운영 능력이 문제가 돼 값싼 원유를 수출하고 값비싼 휘발유를 수입해 쓰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원유 생산으로 나라가 망가진 대표적 사례다. 원유 수출로 인한 세 수입이 원유 수출액의 50~60%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원유수출로 나이지리아 정부가 벌어들이는 순수한 외화수입액이 300억달러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돈의 대부분은 정치가들이나 권력자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들어간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가장 잘살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최대 도시인 라고스(현지 발음은 래고스)에도 전기가 하루에 고작 2~3시간 정도만 들어온다. 현지에 진출한 한전 관계자 말에 따르면 설치된 발전소만 제대로 가동되어도 전기가 부족하지 않은데 고장난 발전소를 고치지 않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전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상당수 가구가 가정용 발전기를 돌려 개인적으로 전기를 얻거나, 아니면 전기 없이 지내야 한다. 상수도, 하수도, 도로, 항만 등도 엉망이다.
 
중국인들 시장 선점… 30만명 거주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는 250여종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사회였다.지금도 나이지리아는 국가보다도 자기가 속한 종족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종족 간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에 일어난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 충돌로 수백 명이 죽었고 올해도 1월과 3월 두 차례 충돌로 500여명이 사망했다.

나이지리아는 큰 종족이 3개인데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하우사족은 정치·군사적으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반면 남부 요루바족과 동부의 이보족은 원유 생산지대에 위치해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이보족은 독립을 요구하다 1960년대 비아프라 전쟁을 겪었고 당시 200여만명이 학살당했다. 종교적 분쟁을 막을 목적으로 대통령직을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번갈아 맡기로 합의했지만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다.

나이지리아에는 중국의 진출이 괄목할 만하다. 2000년만 해도 100억달러(약 12조원)였던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역 규모는 연평균 30%의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 1070억달러(약 134조원)를 기록했다. 직접투자액도 2003년 5억달러에서 지난해 100억달러 선으로 급증하였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에도 중국인들이 대거 이주해 현재 약 30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과 나이지리아 간에는 직항이 매일 운항되고 있다. 중국은 주택 건설과 원유 개발 등에 활발히 진출했다. 최근에는 태양광 분야와 통신·IT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에 있는 한 재래시장 모습. photo 곽희윤
사기 치는 걸 크게 문제삼지 않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지리아 하면 먼저 사기를 떠올린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한때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에는 ‘강제로 금품을 빼앗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 남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즉 남을 속여서 남이 넘어가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이지리아에서는 한때 ‘419’라는 말이 곧 사기를 뜻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법을 폐지하였다고 하나 아직도 나이지리아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방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문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하는 사람을 바보로 여긴다. 이와 같은 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당한다. 코트라 라고스 KBC 홈페이지에는 사기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나이지리아 진출은 1980년대 초부터다. 대우건설, 현대중공업 등이 쉘이나 엑슨모빌 등이 발주하는 유전 개발이나 정유시설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석유공사에서도 해상원유개발에 나섰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수년째 시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한국의 직접 진출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 글 / 라고스(나이지리아) = 곽희윤 코트라 라고스 KBC 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