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설봉 등정의 꿈’ 폭풍설에 사라지다 [1] *-

paxlee 2010. 6. 28. 22:09

 

 

                                 ‘설봉 등정의 꿈’ 폭풍설에 사라지다 [1]

         [롤왈링 히말라야 트레킹] 테시랍차 크로스 2 -
         시미가온~베딩~테시랍차~타메~콩데~루클라 트레킹

저녁 8시경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눈이다. 새벽 3시경 눈이 그치고 하늘에 간간이 별이 보인다. 눈이 발목을 덮을 정도로 쌓였다. 이런 경우 대개 포터들이 춥고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기 마련이다. 한데 반응이 뜻밖이다. 키친 보이인 템바 셰르파는 모닝 티를 건네주며 “아름다운 아침”이라 말한다. 양효용씨는 “그림대회에 나간 꿈을 꾼 걸 보면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 차가운 냉기만 흐르는 설봉 파르차모.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들이 크레바스를 피해 테시랍차로 오르고 있다. / 자칼 발자국을 따라 툴롬보 캠프로 향하는 일행.
혀가 빠지도록 진을 빼는 퇴석지대와 절벽 길

오늘은 트레킹 전 구간 중 가장 험난한 사태지역과 힘겨운 퇴석지대를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도 새롭게 쌓인 눈은 히말라야를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백옥 같은 설원을 이룬 초롤파 너머 초부체 남벽에는 구름이 솜사탕처럼 붙어 있다. 그 뒤로 비그페라고사르와 비그페라고눕은 거대한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초롤파 캠프를 출발하자마자 급사면을 올려친 지 1시간 만에 해발 4,800m 높이의 테라스 지형에 올라섰다. 벌써 표고 200m 이상 올라왔다. 헉헉대는 우리와 달리 사다는 자그마한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내일 오를 세락과 그 뒤로 테시랍차에서 등반할 파르차모(Parchamo·6,273m·일명 Parchamuche) 설릉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이게 뭐야! 다시 내려간단 말이야?”

사다 다와는 테라스형으로 띠를 이룬 산중턱에서 다시 퇴석 빙하로 방향을 튼다. 기껏 올린 고도를 다시 내린다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초반에는 내려갈 만했으나 밑으로 내려설수록 험해진다. 위에서 툭 하면 돌멩이를 굴려 놀라게 하고, 발을 디딘 땅이 주저앉으면서 균형을 잃을 때마다 100여m 아래 돌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왜 지형도에 초롤파를 가로지르는 길이 험하다고 표시돼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캠프를 출발한 지 4시간이 지나 다시 빙하로 내려섰을 때의 고도는 4,620m. 200m 이상 올라섰다 하여 좋아했는데 원위치한 셈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둔덕이 형성되어 있는 퇴석 지대는 보기만 해도 질리게 했다. 잡석과 흙이 얼음과 뒤섞인 언덕을 50m를 올라가면 50m를 내려서고, 30m를 올라서면 또다시 30m를 내려선다.
 
그렇게 진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쭉 뺀 템바 셰르파가 엉뚱한 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30분 이상 까먹고, 템바 조와 나머지 사람들이 1시간 가까이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걷다가 다시 모인 게 오후 1시. 해발 4,700m. 결국 5시간 넘게 걸은 게 고도 100m를 올린 셈이었다.

퇴석지대의 부연 빙하호수 물을 떠 네팔식 라면을 끓여 허기진 뱃속에 집어넣는다. 눈발이 날린다.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차갑게 식은 김밥과 샤베트 같은 사과를 먹다가 따뜻한 라면 국물이 들어가자 속이 데워지는 느낌이다.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화이트아웃도 일어나 주변이 흐릿해진다. 산정 위에 떠다니던 구름이 점차 내려오더니 빙하와 거의 맞닿은 듯하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덧옷을 푹 뒤집어쓴 채 수많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퇴석지대를 걷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 4시, 해발 4,800m대에 올라서자 포터들이 싸락눈을 피해 오버행 바위 아래 앉아 있다. 주변에 캠프 사이트도 많고 곳곳에 쓰레기도 널려 있다. 여기가 쿠나 캠프(Kuna Camp)? 카트만두의 대행사에서 만들어준 일정표에는 오늘 쿠나 캠프에서 자기로 돼 있는데 사다(셰르파의 대장격)든 쿡이든 지명에 대해 잘 모르고 빙하에 안내판이 서 있지 않으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 산악인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린다고 등반 전문지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핀잔 받곤 하는데 외국 트레커 역시 주변 정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히말라야 오지를 다니는 현장을 확인한 듯해 씁쓸하다.
“아니, 세락이 아닌 절벽 길이잖아!”

오후 3시경 “로프를 깔기 위해 먼저 가겠다” 했던 사다 다와가 세락 뒤로 이어지는 설사면 끝에서 손을 흔들어댄다. 테시랍차로 가는 길은 어마어마한 세락 왼쪽 바위절벽으로 나 있었다. 좌측으로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절벽 길은 수직벽은 아니더라도 미끄러지는 순간 100여m 아래 빙하로 떨어지는 위험한 구간이다.
▲ 1 초롤파 캠프에서 너덜지대를 오르는 일행과 다와(왼쪽). 2 얼음빙하에 수많은 바윗덩이와 흙이 뒤섞인 퇴석지대. 3 테시랍차를 오르는 사이 구름이 오락가락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주었다.
고정볼트에 설치해놓은 로프에 의지해 20m쯤 트래버스한 후 짤막한 크랙과 절벽 길을 따라 40m쯤 오르자 능선 마루 같은 바위지대. 멋진 조망대다. 일행 4명도 컨디션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포터들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몸 움직임이 더디고 텐트를 치는 데 여느 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바람이 휭휭 불어대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텐트 안은 아늑하기 그지없다.
 
바닥이 한쪽으로 쏠려 몸이 흘러내리기는 하지만 눈보라를 피해 따뜻한 침낭 속에 드러누울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싶다. 사다가 텐트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며 포터들이 아프다고 한다. 비상약통을 들고 가짜 의사 노릇 하러 왕진을 나선다. 그래봤자 머리 아픈 사람에게는 두통약, 콧물 흘리면 감기약, 무릎이나 허리 아프면 파스를 붙여주거나 소염진통 효과가 있는 크림을 발라주는 정도에 약값을 따로 받는 것도 아니니 악덕 의사는 아닐 게다.

저녁을 먹고 나자 눈보라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지고 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이틀 후면 테시랍차에서 파르차모 등반이 시작되는데…. 설사면? 설벽? 세락? 루트를 상상하는 순간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트레킹 8일차, 잠자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도 모처럼 푹 잘 잤다. 어젯밤 9시에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쯤 일어나 오줌 한 번 누고 새벽 5시50분까지 잤으니 9시간 가까이 잔 셈이다. 양효용씨는 카페인 성분이 강한 밀크티와 티를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컨디션이 나빠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컨디션이 좋아도 여기보다 700m 이상 더 높은 테시랍차에 올라서면 상태가 나빠질 텐데 걱정이다.
‘설표 발자국’ 따라 1951년 힐러리가 넘은 테시랍차 향해

오늘은 험한 바윗길로 시작한다. 눈과 얼음이 박힌 골짜기를 50m쯤 올라선 뒤 커다란 바윗덩이가 군데군데 얹혀 있는 바위지대로 올라선다. 고도 100m를 금세 올린다. 힘들어도 어제에 비하면 낫다. 더욱이 어제처럼 도중에 밑으로 내려설 일도 없는 구간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비그프레아고샤르 사면에서 거대한 눈사태가 쏟아진다. 상단부의 세락이 무너지면서 설벽 중단부의 거대한 눈턱을 내려쳐 큰 눈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눈사태는 후폭풍과 함께 상어이빨처럼 튀어나온 세락지대를 거쳐 설사면으로 흘러내리더니 막을 내린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을 되찾고 또다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설산의 풍광을 보여준다.

우리보다 앞서 테시랍차로 오른 손님이 있는가 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인가? 짐승 한 마리가 고운 설사면에 발자국을 차분히 남기며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다 다와는 양손을 고양이 발톱처럼 만든 뒤 양쪽 귀에 갖다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자칼 발자국이라 알려준다. 그럼 털이 하얗다는, 히말라야에만 산다는 설표(雪豹)? 설표는 티베트 일원의 고산지대에서 간혹 발견되기는 하지만 네팔 히말라야에서는 카메라에 잡힌 적이 거의 없었다.

어제는 거친 퇴석지대를 걸었지만 햇살이 내리쬐지 않아 그런 대로 견딜 만했지만 오늘 따가운 햇살 아래 설원을 걷다보니 금세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살짝 온다. 오전 10시경 해발 5,300m 높이의 모레인 지대에 닿자 다와가 “여기가 오늘 야영지인 툴룸보(Tulumbo)”라며 “오늘 아예 테시랍차까지 올려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2시간이면 가능하단다. 2시간…. 그럼 정오면 테시랍차에 올라선단 말인가. 다와는 한 술 더 떠 “그렇게 하면 하산길이 훨씬 수월하다”고 강조한다.

좋다. 가자. 오른쪽에 치솟은 파르차모가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한데 설원이 가도가도 끝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 되어 가는 것 같다. 다와를 불러댔으나 거리가 멀어 들리지 않는지 앞으로 쭉쭉 내뺀다. 그러고 보니 어제 분명 다와가 경험 많은 사람들이나 하루에 올려칠 수 있다는 테시랍차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표범 발자국을 따라 설사면을 헤쳐 나아가다가 바위지대에서 쉬고 있는데 황원선씨가 다가오더니 사람이 죽어 있다고 한다. 이미 지나온 눈길 오른쪽 설사면의 무너진 텐트 속 침낭 안에 시신이 있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분명 홀로 테시랍차를 넘었거나 넘기 위해 잠을 자다 심한 고소증에 끝내 목숨을 잃은 사람이다 싶었다.

설사면이 끝난 뒤 바윗덩이가 불안하게 얹힌 사면으로 접어들자 포터들이 쉬고 있다. 그 중 한 명 왈, “작년 가을 프랑스 트레커 중 한 명이 쿠나 캠프에서 하루에 테시랍차로 오르려다 심한 고소증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옴 라마 셰르파(Om Lama Sherpa)에게 “얼른 좇아가서 사다에게 오늘은 툴룸보에서 자겠다고 전하라”고 하자 급경사 너덜지대를 쏜살같이 올려친다.
 
옴 라마는 샤크파 카르카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청바지를 엉덩이에 살짝 걸쳐 입고 허리춤에 장난감 칼도 차고 있는 등 도시 청년 분위기를 한껏 뽐냈다. 한데 트레킹에 합류한 이후 하루하루 지날수록 얼굴이 새카매지고 옷이 엉망이 되더니 여느 포터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200m 넘게 올라섰다 내려온 사다 다와 셰르파를 보니 괜히 미안하다. 양효용씨가 머리가 좀 아파 내일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이 부근에서 머물렀으면 한다고 핑계를 대자 사다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 그냥 있으면 위험하니 포터를 서너 명 붙여줄 테니 테시랍차를 넘어서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이런, 농담이었는데.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아예 하산할 뻔했네.

텐트를 치고 고추장으로 국물을 낸 떡국 한 그릇씩 먹고 나니 오후 2시. 양효용씨와 최준회씨는 컨디션을 잃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속을 따뜻하게 해주면서 컨디션 조절도 해주는 밀크티마저도 싫단다. 반면 ‘야크 황’ 황원선씨는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후배들 눈치를 살피다 떡국을 반 그릇쯤 더 퍼 담는다. 황원선씨는 식욕뿐 아니라 걷기도 잘 걷고 평지든 오르막이든 입담까지 끊임없어 이번 트레킹에서 ‘워킹 토킹(walking talking)’이란 별명이 붙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후 3시쯤 되자 눈보라가 몰아치고 까마귀들이 깍깍대며 기웃거린다. 파란 하늘을 향해 치솟은 파르차모도 모습을 감추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저지대에서는 할 일이 많다. 마실도 다니고 포터들과 잡담도 나눈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지면 점점 말이 적어지고 표정도 굳어진다. 식사시간이 괴롭기도 하다. 매 끼니마다 그 나물에 그 반찬이고 보니 어떨 때는 식사시간이 지긋지긋하고, 괜히 일 잘하는 쿡까지 미워진다. 머리가 살짝 띵해진다. 그래도 맥박수가 1분에 80회면 정상이다.

화이트아웃으로 주변이 잘 보이지 않더니 해가 넘어가자 둥근 달이 떠오른다. 내일이 기대된다. 해발 5,750m 높이의 테시랍차는 어떻게 생겼고, 6,273m 높이의 파르차모는 얼마나 멋지고 험하게 생겼을까? 달이 점점 높이 떠오르면서 퇴석 빙하 일원의 설봉들이 우뚝 우뚝 일어선다. 우리의 장도가 성공하기를 기원해주는 것일까.
▲ 1 드라그케르고 설산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지만 푹푹 빠지는 설사면을 따라 테시랍차로 오르는 길은 힘겹기만 하다. 2 테시랍차 아래 너덜지대에서 설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3 독수리 둥지를 연상케 하는 해발 5,000m 캠프. 4 테시랍차에서 쿰부히말을 등지고 기념촬영한 황원선씨. 5 설산은 눈으로 보기만 하면 아름답지만 다가서면 목숨을 앗아갈 만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비그프레아고샤르 남면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 글·사진 한필석 부장 / '월간 산'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