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설봉 등정의 꿈’ 폭풍설에 사라지다 [2] *-

paxlee 2010. 6. 29. 21:35

 

                                 ‘설봉 등정의 꿈’ 폭풍설에 사라지다 [2]

 

코발트빛 하늘에서 폭설 퍼붓더니 폭풍까지 몰아닥쳐

기대했던 대로 이튿날 날씨가 쾌청하다. 파르차모 정상부에 날리는 설연과 코발트빛 하늘, 그리고 아침 햇살이 정말 잘 어우러진다. 오전 7시 키친보이가 가져온 밀크티 한 잔씩 마시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먹고 자고, 일어나면 걷고-. 황원선씨는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라며 툴툴댄다.

급경사 너덜지대를 한달음에 올려친다. 1시간 만에 표고 130m를 올린 뒤 설사면으로 접어들었다. 한참 뒤에 출발한 사다 일행은 어느 샌가 우리를 앞지르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들 역시 금세 추월해 나아간다. 어느 틈엔가 햇살이 파르차모를 넘어 설사면에 내리쬔다. 그래도 바람과 눈보라에 따뜻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쏜살같은 속도로 고도를 높이면서도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주변 경치도 감상하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오전 11시25분, 드디어 룽다가 날리는 패스가 내려다보이는 테시랍차 설릉에 올라선다. 눈앞에 또 다른 히말라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파니요티파(Paniyo Tippa·6,696m)에서 텡캉포체(Tengkang Poche·6,500m)를 거쳐 콩데리(Kongde Li·6,186m)로 이어지는 설릉이 날카롭게 솟구쳐 있고 그 뒤로 탐세르쿠(Thamserku·6,608m)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버티고 서 있다. 쿰부히말의 명봉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파르차모는 테시랍차 설릉에 거대한 산이 하나 얹혀 있는 듯 웅장하고 위압적이다. 초반부는 띠를 두른 듯 청빙지대를 이루고 그 위로는 프런트포인팅으로나 등반이 가능할 정도로 급경사 설벽이 이어지는 데다 이후로도 정상부까지 급경사를 이뤄 등반중 돌풍이라도 불면 추락 가능성이 높다 싶다.

스태프와 포터들은 파체르모 맞은편에 우뚝 솟아오른 텡라기타우(Teng Ragi Tau·6,949m·일명 Angole)의 거대한 절벽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오늘의 캠프지다. 절벽 위쪽에 포터들이 텐트를 치고 아래쪽에 식당 텐트와 멤버용 텐트 2동, 그리고 사다와 쿡이 사용할 텐트를 설치하고 점심을 먹는 사이 하늘이 급변하더니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바람은 돌풍이다 싶을 만큼 강하게 불어댄다.

그런데도 다와는 점심을 먹자마자 청빙을 이룬 파르차모 하단부에 고정로프를 깔겠다고 나선다. 등반도 좋지만 강풍에 혹 무슨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다와가 캠프를 출발한 이후 바람은 더욱 강해지더니 폭설로 바뀐다. 바람이 밑에서 위로 올려쳐 텐트를 뒤흔들어댄다. 포터들은 눈보라에 견디다 못해 텐트를 절벽 아래 설사면으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오후 3시 반경, 다와는 온몸에 눈을 뒤집어쓴 게 꼭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난 모습으로 돌아와 “바람이 너무 강하고 위험해 도저히 로프를 깔 수가 없었다”고 상황 설명을 한 뒤 설사면으로 내려가 포터들이 텐트 치는 일을 돕는다. 그러고 한 시간쯤 지나 다시 텐트를 찾아와 “고소증 때문에 머리가 아파하는 포터들이 많다”며 “등반을 포기하고 내일 일찍 하산하면 어떻겠냐” 묻고는 “3일 전 모레인 빙하를 걸을 때부터 오후면 날씨가 나빠지더니 결국 이런 최악의 날씨를 만난 것 같다”며 “하산을 결정하면 캠프지 아래쪽 절벽지대에 지금 당장 로프를 깔아놓겠다”고 한다.

오늘 밤 등반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산하는 게 더욱 큰 문제다. 하산이 아니라 ‘탈출’이라는 표현이 맞는 상황이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텐트를 무겁게 눌러대고 위에서 흘러내린 눈이 텐트 벽을 밀어붙이면서 공간을 점점 좁혀온다. 히말라야 설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렇게 기대를 실망으로, 아름다움을 위험한 상황으로 역전시켜놓고 말았다.

1951년에도 이랬을까. 그 해 봄 에드먼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접근로를 찾던 중 테시랍차를 택했고, 테시랍차를 넘어 초오유로 접근해 산소통을 테스트하고 현지 적응훈련을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눈보라가 몰아쳤을까? 이런 척박한 환경을 60여 년 전 시원찮은 장비로 등반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옛날 산꾼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겨난다.

오후 6시, 오늘 저녁은 네 명이 함께 먹지도 못한다. 두 명씩 지내는 텐트로 음식 배달이다. 그래야 된장찌개에 뻔한 반찬인데도 꿀맛이다. 반면 양효용씨와 최준회씨는 식욕뿐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아니 지긋지긋해한다. 식당 텐트에 마실 나가보니 눈을 녹여 물을 만들고 있다. 캠프 주변에 있는 포카리(작은 호수)가 눈에 덮여 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다 못해 내일 아침을 간식과 밀크티 한 잔으로 끝내겠다 하니 쿡과 키친보이들이 즐거워한다. 포터들 주겠다고 머리 아픈 데 먹는 약을 가져갔던 다와도 고맙다 한다.

 


▲ 1 텡라기타우 남벽 아래 위치한 테시랍차 캠프. 2 테시랍차 캠프에서 폭설과 강풍에 주저앉은 텐트를 포터들이 걷고 있다. 3 해발 5,750m 높이의 테시랍차에 올라 기뻐하는 일행. 왼쪽부터 최준회·황원선·양효용씨.
모자 쓰지 않고 잠잘 수 있다는 생각에 몸 가벼워져

사실 오늘 밤 파르차모 등반은 그 누구라도 불가항력이다. 정오를 조금 넘어 내리기 시작한 눈이 어두워진 뒤에도 내리고 있으니 설악산이라 할지라도 산행은 미련하고 위험한 행동인 것이다. 그나저나 마지막 텐트 생활을 또 어떻게 보내나 걱정이다. 지금이 7시. 내일 아침 6시까지 11시간 동안 텐트 안에서 뭉개야 하는 것이다.

포터들 텐트에서 장중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간 들어왔던 우리의 아리랑 같은 ‘렛삼피리리’가 아니라 ‘셰르파의 노래’였다. 한 명이 한 소절을 먼저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부르곤 한다. 폭풍설 속에서도 네팔 사람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온몸이 눈에 젖어 있고 몇몇은 고소증으로 머리가 아프다 하는 데도 저들은 척박함과 어려움을 여유로움으로 받아넘기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의 익스트림 트레킹은 내일이면 끝이다. 다와가 절벽지대를 내려서려면 안전벨트가 있어야 한다지만 그래봤자다 싶다. 내일 저녁이면 열흘 만에 샤워도 하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잠을 잘 수 있다 생각하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지금 컨디션을 잃은 두 사람은 분명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렇지만 타메로 내려가 쿰부 히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히말라야가 그리워질 것이다. 

[테시랍차 트레킹]


나 가온 이후 타메에 닿을 때까지 캠핑생활해야


테시랍차 트레킹은 히말라야 오지를 들여다본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여행 코스라 할 수 있다.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로 향할 때 인상적으로 보이는 가우리상카를 지척에서 보고 이후에도 롤왈링 빙하를 오르는 사이 좌우 앞뒤에 치솟은 6,000m급 설봉들을 바라보면 히말라야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빙하호수인 초롤파의 풍광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여기에 쿰부 히말 지역에 비해 옛 모습이 살아 있는 셰르파들의 마을과 목초지인 카르카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트레커들에게 잘 알려진 쿰부 히말이나 안나푸르나 일원처럼 로지 시설이 잘돼 있지 않기 때문에 캠핑 장비를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시미가온, 베딩, 나 3개 마을에는 로지가 한두 집 있으나 그 밖에 지역에서는 캠핑을 해야 한다.

트레킹 기점은 수리도반(Suri Dobhan·1,030m). 카트만두에서 노선버스가 다니지만 대개 버스나 지프를 대절해 접근한다. 현재 라마바가르(Lamabagar)에 진행 중인 수력발전소 공사를 위한 진입로 공사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돌라카에서 람마라바르까지 도로 공사 중이다. 기자가 답사한 4월 초 현재 수리도반까지 길이 나 있지만 람마바가르까지 계속 도로를 뚫고 있다. 단, 포장이 전혀 안 돼 먼지가 엄청나게 날리므로 배낭을 덧씌울 커버와 마스크를 지참하는 게 바람직하다.

트레킹 코스는 지형도에 표기된 것처럼 초롤파를 지나면서 사뭇 거칠어진다. 거리를 두고 티숍 2곳이 있는 초롤파 오른쪽 계곡에서 캠핑을 한 다음 호숫가로 초롤파를 가로지르는 게 아니라 일단 약 200m 위쪽 테라스형 지대까지 올랐다 다시 퇴석빙하로 내려서야 한다.

퇴석지대가 끝나기 직전 캠프지가 나타나고 이어 짤막한 설사면을 거쳐 설릉을 가로지르면 거대한 세락 팀에 다다른다. 여기서 세락 좌측의 암벽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절벽 초입부에서 왼쪽으로 트래버스하다가 짤막한 크랙을 타고 오른다. 확보할 만한 지점에는 고정볼트가 박혀 있다.

독수리 둥지를 연상케 하는 5,000m 캠프에서 약 100m는 암벽지대이지만 이후 테시랍차 아래까지는 설원으로 이어진다. 가을철에는 퇴석지대로 변하는 구간이다. 패스 아래에 닿기 전 포카리가 바로 옆에 있는 캠프사이트가 있지만 그보다는 패스 직전의 퇴석지대 캠프장이 이튿날 산행을 위해 좋을 듯싶다.  

패스 구간은 봄철에는 아이젠이 필요 없을 만큼 경사가 약하다. 패스를 넘어서면 가장 낮은 쪽에 퇴색된 오색 룽다가 걸려 있고 그 아래 좌측 절벽 아래 캠프지가 있다. 패스 트레킹만이 목적인 경우 패스 아래 캠프에서 일찍 출발하면 그 날로 첫 번째 마을인 티용보(Thyongbo·4,230m)까지 내려설 수 있다.

파르차모 등반이 목표라면 오전에 패스 너머 캠프에 도착한 다음 위험 구간에 고정로프를 깔아놓는 게 바람직하다. 고정로프는 200~400m 정도 필요하다. 하단부는 봄철에는 청빙지대가 형성되지만 가을철에는 평범한 설벽으로 변한다 . 파차르모 등반은 평균 6~8시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스 너머 바위절벽은 로프 하강을 해야 하는 구간이다. 초반부 20m는 트래버스 이동이 가능하고, 이후 30m 구간은 자일 하강을 해야 한다. 이후 급경사 설사면(가을철엔 너덜지대)을 내려선 다음 2시간쯤 내려서면 5,000m 높이의 캠프에 도착하고 이후 풀과 관목이 군데군데 자라는 산길을 따라 2시간쯤 더 내려서면 티용보에 닿는다. 티용보에서 로지가 여럿 있는 타메까지는 약 2시간, 그리고 타메에서 남체바자르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장비 대행사를 통할 경우 개인 장비만 지니면 된다. 우모복과 덧옷, 침낭은 기본이며, 5,000m 트레킹에 준하는 보온의류와 장비를 챙기면 된다.  봄철에는 쿠나 캠프를 지나면서 설원지대를 거치고 테시랍차를 오를 때 역시 설사면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중등산화 이상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그러나 눈이 적은 가을철에는 일반 트레킹화로도 가능할 듯싶다. 출발할 때 현지 대행사에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트레킹 적기


수루무체에서 만난 현지인이 꼽는 트레킹 적기는 10월로 외국 트레커들 역시 이 시기에 롤왈링을 찾는다. 현지인은 한 해에 한 팀 정도의 한국인이 롤왈링을 트레킹한다고 전해주었다.

트레킹 절차


테시랍차 트레킹은 파르차모를 등반하든 안 하든 트레킹 피크 퍼미션을 받아야 하고 쿰부 히말을 통과할 때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한다. 현지인들과 뒤섞여 좁고 열악한 노선버스를 타고 트레킹 기점인 수리도반까지 가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따라서 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롤왈링 트레킹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문의 네코트렉(Ne-Ko Treks & Expeditions). 한국어에 능통한 앙 도르지 셰르파 사장은 한국 트레커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 글·사진 한필석 부장 / '월간 산'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