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1] -1- *-

paxlee 2010. 7. 28. 09:58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1] -1-

        물레방아, 도리깨질, 야크 기름, 양털옷만으로 활기차게 살아가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들은 힘들다고 비명 지르지 않는다

네팔 서부지역은 독특한 지리적 성격을 갖고 있다. 현대 문명이 스며들기 힘든 고산 오지이면서 티베트와 인도에 접해 있다. 외풍을 거의 타지 않은 관계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히말라야의 풍광과 고산지역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물론 여기에도 변화는 찾아오고 있다. 주팔공항에서 줌라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현재 확장 공사 중이다. 현대 문명은 포장도로를 따라 전파되기 마련이다. 라라 지역, 시미코트 지역에 있는 몇몇 오래된 마을은 아직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현대 문명의 파고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부디 지혜로운 공존을 기대해본다.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정착생활을 한다. 고산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밭농사를 짓고 있다. 칸칸이 구불구불 이어진 밭두렁을 보노라면 일단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고, 개간에 들인 노고를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고도가 높은 상돌포 지역 사람들은 유목생활을 한다. 5월부터 10월까지 농번기에는 산간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양과 야크를 기르다가 춥고 건조한 11월부터는 따뜻한 아래 지역으로 이동하여 겨울을 난다. 온 가족과 가축을 대동하고 5,000m급 고개를 몇 군데 넘어야 하는 그 힘든 이동을 이들은 매년 반복하며 살고 있다.


▲ 저녁 식사 중인 돌포사람들.

정착생활이든 유목생활이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산지대여서 산소가 부족하고, 물이 적어 땅은 척박하며, 기후는 엄청나게 춥다. 사실상 사람이나 짐승, 초목이 모두 배겨나기 어려운 조건이다. 게다가 전기도 없고, 유류를 이용한 원동기도 거의 없다. 전적으로 인간과 가축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 병원과 교육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은 이들에게 너무나 멀다.


하지만 이들은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곡식을 빻고, 도리깨질로 곡식을 털고, 야크 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양털로 실을 만들어 직접 손으로 천을 짜고, 양과 야크 등 가축과 더불어 활기 차게 살아간다. 일반 생필품 정도만 외부에서 공급받을 뿐이다.


장엄한 원시와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 체감


이들의 이동수단은 가축이 유일하다. 말이나 물소, 소는 전천후 자가용이다. 물건 운반은 주로 말이나 쪼빠(야크와 소의 교잡종)를 이용하는데 해발 3,500m 이상에서는 야크를 쓴다. 간혹 양 떼를 이용하여 소금이나 곡식을 운반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마오이스트(공산반군)를 선호한다. 마오의 세상이 되면 일단 배를 곯지 않는 데다가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여겨서다. 특히 여성들은 카스트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마오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폭순도 계곡의 단풍.

경제적으로는 소규모 농업과 목축업이 대부분이다. 고도가 낮은 지역은 물소를 많이 기르고, 고도가 높은 지역은 양과 소, 쪼빠를 기른다. 논농사는 줌라 근처와 시미코트 지역 일부 강가에서만 짓고, 산악지역은 보리·옥수수·콩·기장 등의 밭농사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 일부 시미코트 서쪽 사람들은 국경을 오가며 교역을 하기도 한다.


종교는 이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티베트에서 전래된 티베트 불교와 인도의 힌두교가 이들의 영혼과 육체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주로 힌두교도가 많으며 산악 마을은 티베트 불교가 성하다. 코걸이, 귀걸이, 은팔찌, 은발찌를 하고 다니는 여성들은 힌두교도다. 산간마을마다 넘쳐나는 초르텐과 마니스톤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있어 종교는 곧 생활이다. 그 정도로 종교와 밀착되어 있다.


동물은 살쾡이와 까마귀가 흔한 편이고, 주로 독수리·딱따구리 등 조류가 많이 목격된다. 4,000m 이상의 절벽에 서식하는 히말라야 산양은 돌포 지역에 많고, 여기에서는 시미코트 서쪽 티베트 국경 지역에서 20여 마리를 겨우 볼 수 있었다.


▲ 급류로 흐르는 폭순도 계곡의 물줄기. 멀리 폭순도 호수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다.

식물은 자작나무와 침엽수 군락이 대부분으로, 잘 보존된 지역도 많지만 산불·개간·벌목 등으로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보면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양지 바른 쪽은 거의 농경지로 개발해 경작하고 있다. 해가 들지 않는 북쪽 사면과 오지의 나무들은 그래도 성한 편이다.


하지만 호두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양지가 바르고 물이 풍부한 2,500m대에는 호두나무가 많이 자생한다. 그곳에는 대부분 마을이 들어서 있다. 호두는 이들이 즐기는 간식으로 마을을 방문하면 흔히 돌로 호두를 깨 먹는 남녀노소를 볼 수 있다. 호두를 먹어서인지 모두 피부가 깨끗해서 의료용으로 가져간 피부연고제가 큰 쓸모가 없었다.


네팔 서부 고산지역을 40여 일 넘게 둘러보면서‘장엄한 원시와 그 원시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받아왔던 자잘한 상처와 회한은 그 생명력에 압도되었고, 심신은 따뜻한 위로와 뜨거운 치유를 받았다. 다시금 치열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갈 수 있는 강한 에너지와 용기까지 선물로 받았다. 내가 10여 년간 히말라야를 매년 찾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매력 때문이다.


촬영장비는 린호프파노라마6×17(72, 180, 250mm 렌즈), 캐논EOS5D MARK2, 캐논EOS1DS MARK3(24-105, 16-35, 180mm 마이크로렌즈), 소니 캠코더FX1, 파나소닉 노트북, 보소닉 스토로지, 그리고 장비 충전용으로는 혼다1kW 발전기를 사용했다. 스태프 20명과 말 6필이 40여 일간의 야영 내내 동행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한 스태프들과 순조로운 촬영을 허락한 히말라야의 신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흥분되지만 쉽지 않은 출발


2009년 11월 9일. 드디어 출발이다. 새벽녘에 샤워를 마치고 네팔 카트만두의 숙소 정원에서 등산화 끈을 고쳐 맸다.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심정을 느낀다. 보통의 여행자라면 출발할 때 가벼운 흥분이나 설렘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여행은 다르다. 스태프 10여 명과 장비운반용 말을 대여섯 마리 이끌고, 갖가지 위험이 도사린 4,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그런 악조건에서 40일 가까이 여행하는 데에 감상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치밀한 준비와 불 같은 추진력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마이크로버스에 실리는 짐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전날 촬영장비와 야영장비, 식량을 세밀하게 점검했지만 혹시라도 빠진 것이 있을까봐 재차 살펴보고, 9시경에야 네팔 간지를 향해 출발했다.


카트만두 고개를 통과해 트리슬리 강을 끼고 서너 시간 달렸다. 평야지대가 나타났다. 바나나와 오렌지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9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저녁 6시경에야 룸비니 근처에 당도했다.


만두로 저녁을 때우고 다시 3시간을 달렸을까. 그만 버스 타이어에 펑크가 나버렸다. 조심스럽게 서행하면서 1시간을 더 달렸다. 겨우 업소를 찾아 타이어를 수리하고 네팔 간지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2시경. 포장과 비포장을 넘나들며 버스로 달린 지 17시간 만이었다.


▲ 까그마라 하이캠프에서의 야영. 필자의 촬영트레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예약한 호텔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이미 인적은 끊기고 이정표조차 없는 캄캄한 시가지에 간간이 노새만 오갔다. 노새는 고된 노역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건초와 약간의 소금만 있으면 가혹한 노동도 거뜬히 이겨낸다.


1시간 만에 겨우 예약한 호텔을 찾았다. 그런데 동행한 인원이 너무 많아 곤란하다면서 다른 로지(Lodge:오두막)를 소개했다. 그 로지를 찾아가서 새벽 3시 반경에 겨우 버스의 짐을 풀었다.


대충 닦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번엔 모기가 극성이다. 모기약을 뿌리고, 잡고 또 잡아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버텼다. 더운 아열대 지역이라 여간 고역이 아니다.


새벽 4시가 되자 출근하는 사람과 마차 소리, 자동차 클랙슨 소음이 요란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결국 밤을 새고 말았다.


2009년 11월 10일. 네팔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발전기용 휘발유를 비행기에 실어줄까 내심 걱정했다.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따라항공 매니저와 교섭해보았지만 깨끗이 거절당했다. 내가 계약한 카트만두의 사랑산여행사는 주팔공항에서 살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 눈이 덮여 미끄러운 까그마라를 조심조심 내려오는 말들.

 

- 글·사진 조진수 사진작가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