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2] -3- *-

paxlee 2010. 7. 30. 20:36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2]  - 3 -  

       
          까그마라 고갯마루에서 노을 물든 킨자로와 산맥을 보다.
            첵파~까그마라~붕마~슈리갈~
 

       

▲ 라페리패스 뒤편, 3900m고지에서 본 깐지로와 산맥.

 

       

▲ 까그마라에서 본 깐지로와산군의 일몰 풍경.
 

       

▲ 까그마라 하이캠프에서 본 깐지로와 산맥 연봉.
 2009년 11월 13일. 밤새 비가 내렸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축복과 다름없다. 물은 어디에서나 귀한 대접을 받지만 이 지역은 의미가 또 다르다. 여기는 땅이 푸석푸석할 정도로 척박한 반사막 산악지역이다. 늘 물에 목말라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물은 글자 그대로 생명수다.

생명수를 맞으며 새벽에 배변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고된 산행을 계속하다보면 체력의 고갈과 추위, 긴장과 과다한 탈수 등 여러 이유로 종종 배변에 어려움을 겪는다. 배변이 안 되면 컨디션이 저하되고, 결국 변비로 이어져 항문을 상하게 되므로 고통스러운 산행이 되곤 한다. 그래서 트레킹에서 원활한 배변은 또 다른 축복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계곡길을 올라간다. 나무의 키는 30m를 넘고 나이는 족히 100년을 넘어 보인다. 그런 거목들이 빽빽하다. 나무들은 촉촉한 단비를 빨아올려 기세가 평시와 달라 보인다. 그 나무를 감고 올라간 넝쿨식물의 붉은 단풍잎이 참 곱다. 계곡을 휘감는 한 줄기 바람에 단풍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또 발에 차인다.


폭순도 콜라는 수량이 많고 소리가 우렁차다. 수많은 지류에서 모여든 물이어서 사연도 많고 할 말도 많은가 보다. 그 물길에 맞서다 둥글게 깎여나간 바위들과 부러진 거목의 잔해는 광폭한 물의 위력을 묵묵히 증언한다.


▲ 가리방 마을에서 본 히말의 일몰.

첵파마을에서 점심을 먹는다. 예닐곱 가구의 소규모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허리와 정상에 짙은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산을 휘감고 흘러가는 구름은 침엽수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비는 대지를 적시고 나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리고 계곡으로 흘러들어 멀리 인도에까지 그 생명력을 전달한다. 대지 역시 비를 독차지하지는 않는다. 일부를 다시 토해 구름을 만들어 하늘에 되돌린다. 그 장엄한 자연의 순리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우리 일행은 18명의 사람과 말 6마리로 이루어졌다. 산길에서는 부득불 대열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선두가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나온다. 비를 맞아 춥고 지쳐 있는데 다시 길을 찾아가려니 맥이 빠진다.


저녁 무렵에야 렌지마을에 도착해 부근 계곡에 여장을 풀었다. 몸살기가 있어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거친 계곡물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직도 못 풀어낸 사연과 할 말이 남은 모양이다. 한동안 물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잠에 빠져들었다.


11월 14일. 인적이 드문 고산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문득 시간을 잊고 만다. 그러다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침에 야영지 부근에서 돌포 유목민 가족을 만났다.


▲ 산기슭에 평화로이 자리잡고 앉은 네팔 서부의 마을.

텐트가 있어 가까이 가보니 온 가족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와 노인을 포함한 삼대가 장작불가에 둘러앉아 불을 쬐는 광경이 정겹다.“터치타레?(안녕하십니까)”라고 티베트어로 인사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으로, 표정으로 느낄 수 있다.


마오반군과의 전투로 건물 잔해만 앙상


한 시간쯤 걷다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까그마라로 가는 길이다. 다리 건너 언덕 위에 네팔 군인이 주둔했던 터가 보인다. 마오반군과의 전투로 다 파괴되어 건물 잔해만 앙상하다. 근처 언덕에 세워진 전사자의 추모비가 치열했던 전투를 말없이 전한다. 여기에서도 돌포 유목민이 야영을 하다 반갑게 맞으면서 연신 수유차를 권한다. 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이 어쩌다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를 흘렸을까.


계곡을 끼고 한 시간쯤 더 오르자 큰 초르텐(티베트 불탑)이 나타난다. 붕마마을(3,500m)로 규모는 20십여 호다. 밭이 제법 있고 작은 초르텐이 많다. 마침 집을 짓느라 마을사람들이 모여 일하기에 구경을 했다.


이 지역의 집들은 현지에서 조달하기 쉬운 나무와 돌, 흙이 주 재료다. 벽은 두껍고 창문은 작다. 열손실을 줄이고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붕은 나무를 평평하게 깔고, 그 위에 개흙을 두텁게 올려 단단히 다져놓았다. 이렇게 하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막을 수 있다. 이들은 지붕을 농작물을 타작하고 건조시키며 갈무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작은 곰파(티베트 절)가 있어 동네 청년들의 안내를 받아 부처님께 여행의 안전을 빌었다. 부처님은 커다란 목불로 상호(相好)를 파란색으로 단청해 놓은 게 특징이다. 벽면에 비단으로 싼 불경을 층층이 모셔놓고, 불단 위에는 야크 버터로 밝히는 등잔을 10여 개 배열해 놓았다.


▲ 폭순도콜라 옆을 지나고 있는 말들.

붕마마을을 떠나 1시간 거리의 다사마을로 갔다. 이 마을은 물이 풍부하고 양지바른 경사면에 농토가 많다. 특히 히말라야가 바라보이는 명당으로, 역시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다사마을을 떠나 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 야크 카르카(목초지)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 일행이 가자 입구에서 풀을 뜯고 있던 야크들이 선뜻 앞장서더니 길을 인도한다. 녀석들도 우리가 반가운 모양이다. 산간에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만나면 누구나 반갑게 인사한다.


2009년 11월 15일. 기분이 묘하다. 어제 야크를 데리러 야영지에 올라왔던 현지 처녀가 날이 어두워 내려가지 못하고 우리 텐트에서 잤다는 것이다. 평상시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까그마라(5,200m)를 넘어야 하는 날에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니다. 오늘은 일정상 까그마라를 넘어 가이가온마을로 가야 한다.


날씨가 화창해서 출발이 상큼했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벗삼아 40분 정도 산길을 올라 까그마라 고개 초입에 도착했다. 길 옆에는 여행자의 안전을 기원하는 돌탑이 있고, 그 위에 가타(비단 스카프)가 무수히 걸려 있다. 나도 가타를 하나 걸고 일행의 안전을 빌어본다.


1시간 정도 올라가자 눈이 밟히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는 칸지로와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전면으로는 라샤마(6,412m) 설산이 멀리 보인다. 올라갈수록 눈은 많아졌고, 결국 사방이 온통 눈천지다. 눈은 점점 깊어지더니 하이캠프(4,500m) 지점은 무려 50cm에 달한다. 스태프들이 불안해 한다.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일단 하이캠프에 텐트를 쳤다.


3명의 스태프를 뽑아 까그마라 정상의 상황을 파악해 오도록 했다. 스태프들은 오후 늦게야 돌아왔는데 사람은 간신히 갈 수 있지만 말은 미끄럽고 눈이 깊어 갈 수 없다고 전한다. 눈이 사람 가슴팍까지 쌓이고 바람이 강해서 금방 간 길도 묻혀버리는 위험 상황이란다. 큰일이다.


칸지로와산맥의 일몰 촬영에 나섰다. 칸지로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영하 25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촬영에 나설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까그마라 정상이라면 더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있다. 가슴 한편에서 어떻게 하든 고개를 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어난다.


▲ 수만 년 물의 힘으로 깎인 폭순도계곡의 바위.

 

하지만 스태프들과 난상토론을 벌인 결과 철수를 결정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멀리 돌아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인간의 의지가 강해도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 몇 년 전 마칼루에서도 바람이 너무 심해 철수했다. 쿰부 낭파라에서도 눈보라와 추위를 견디지 못해 포기한 적이 있다.


까그마라 넘지 못하고 통한의 회군


오늘 밤을 견디는 일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선 주팔에서 데려온 6마리 말이 걱정이다. 마부는 눈을 깨끗이 치우고, 근처에 있는 굵은 풀을 베어다 말의 잠자리에 수북히 깔아준다. 말에 대한 정성이 대단하다.


사람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옷을 입은 채로 침낭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스태프 두 명과 몸을 붙이고 자야 했다.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게다가 고소증세가 살짝 오고 몸살 기운까지 느껴진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역시 좋은 작품은 하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상응해야 나온다.


 
▲ 담배를 피고 있는 네팔 여인.

 

                       - 글·사진 조진수 사진작가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