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1] -2- *-

paxlee 2010. 7. 29. 09:26

 

                         [해외 트레킹 | 네팔 서부 트레킹 1] -2-

        물레방아, 도리깨질, 야크 기름, 양털옷만으로 활기차게 살아가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들은 힘들다고 비명 지르지 않는다

예약한 주팔행 비행기 티켓을 따라항공에 직접 가서 확인했다. 내일 아침 7시다. 네팔에서는 번거롭더라도 항공편을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품을 구입할 겸 네팔 간지 관광에 나섰다.

네팔 간지는 평야지대로 시가지가 혼란스럽다. 우마차와 릭샤(인력거), 삼륜차 등 온갖 운송수단이 뒤섞여 다닌다. 질척거리는 길 위에 노새와 말, 소가 어슬렁거린다. 멧돼지 일가족을 끌고 나온 사람까지 있다. 그 모든 군상이 뿜어내는 열기와 소음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차츰 적응이 되자 도시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나 할까. 신호등은 하나도 없지만 큰 무리 없이 사람과 차, 동물들이 오간다. 열대과일과 이름 모를 거리음식을 팔고 있는 노점상이 많다. 특히 네팔 간지는 인도와 가까운 곳이어서 터번을 두르고 미간에 붉은 티카를 찍은 사람이 많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낯설지만 어디에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동안 시장의 소란과 활기를 즐기며 돌아다녔다. 고산지역으로 들어가면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접할 수 없다.


오후에 로지로 돌아와 한국에서 구입해간 등산화, 재킷, 헤드랜턴 등을 스태프들에게 나눠주었다. 산에서 꼭 필요한 장비들이다. 하지만 카트만두에서 미리 주면 돈이 아쉬워 팔아버리는 스태프가 종종 있다. 현지에서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

 

▲ 우마차와 인력거, 삼륜차 등 온갖 운송수단이 뒤섞여 다니는 네팔간지의 시가지.

 

셰르파·포터들에 한국산 등산장비 지급


지프 두 대를 예약했다. 내일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하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또 모기가 말썽이다. 낮에 주인에게 부탁해서 모기약을 흠뻑 뿌려놓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밤 12경부터는 로지 근처에서 힌두교도들이 종교행사를 했다.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고 경전을 읽고 노래까지 불러댔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 행사가 아침까지 계속됐다. 고요와 정적이 흐르는 산이 그리워졌다. 뒤척이다가 밤을 새고 말았다.


11월 11일. 거리의 소음을 견딜 수 없어 새벽 4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짜파티로 아침을 때우고 서둘러 짐을 챙겨 네팔 간지공항으로 향했다. 새벽 5시 반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어둠에 휩싸여 있고 정문마저 굳게 닫혀 있었다. 경비 중인 공항경찰만이 무뚝뚝하게 우리 일행을 맞았다.


여기에서 그동안 경험한 네팔 공항시스템을 잠시 짚어본다. 네팔은 대부분 산이 높고 길이 험하다. 도보로 이동하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르다.


네팔은 국제공항인 카트만두공항, 포카라공항, 네팔 간지공항, 비란나가르공항 등이 가장 커서 거점이 된다. 이 공항들에서 네팔 산간마을로 가는 경비행기가 운항된다. 네팔 동쪽부터 살펴보면 칸첸중가는 슈케터공항에서 가깝다. 이 공항은 이른 아침에만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다. 해가 뜨면 구름이 몰려와서 활주로 이용이 어렵다.


마칼루로 가려면 텅빈타르공항을 통해야 한다. 이 공항은 안개가 심해서 오후에야 이착륙이 가능하다. 쿰부는 루클라공항에서 가까운데, 이 공항은 활주로 경사가 심하고 일기가 불안정한 게 특징이다.


▲ 1 방한모를 둘러쓴 돌포 처녀. 2 순한 눈매의 돌포 총각.

 

안나푸르나 근처에는 좀솜공항이 있다. 이 공항은 무스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 오전 10시 이후에는 이착륙이 어렵다. 돌포 지역은 주팔공항,네팔 서쪽 지역은 시미코트공항을 이용하면 된다. 그 외의 산간마을에도 작은 규모의 공항이 많다. 그러나 날씨와 승객의 유무에 따라서 운항 계획에 변동이 많다. 사전에 철저히 알아보고 가는 게 좋다.


차량은 공항 진입이 제한된다. 그래서 공항 정문에 짐을 부리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린다. 7시가 넘자 따라항공 매니저가 출근하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네팔에서 항공사 매니저는 상당한 지위를 누리며 권위가 대단하다.


이 공항에는 카트가 없다. 가져간 짐들은 스태프들이 등에 져서 여러 번에 걸쳐 공항청사까지 날랐다. 청사 입구에서 경찰이 보안검사를 한다. 일일이 짐을 풀어 육안으로 세밀하게 검사한다.


전세 낸 경비행기는 14인승으로 무척 낡아 보였다. 시동까지 안 걸려 한참을 고쳐야 했다. 일순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사히 이륙했고, 주팔공항에 안착했다. 준비 관계로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 야영하기로 했다.

 

▲ 군 주둔지에서 만난, 돌포에서 온 야크유목민의 저녁 시간.

 

“카트만두로 돌아가서 비디오 카메라 촬영허가 받아와라”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행사의 사업 파트너 타라를 만났다. 그의 주선으로 석유류와 식료품을 구입하고, 말 6마리와 마부 2명을 고용했다. 이제 네팔 서부지역의 출발점에 섰다. 바람결에 히말의 내음이 묻어났다.


11월 12일. 1년 만의 야영이라 잠자리가 개운치 않았다. 텐트를 걷고 짐을 꾸려 분배하는 스태프들도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모두 베테랑이지만 여행 초기에는 다소 엇박자가 난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새벽 무렵 근처 마을을 둘러봤다. 장대한 산들이 겹겹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경사면에 넓은 계단식 밭이 보였다. 돌과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투박한 가옥이 정겹다. 전형적인 산간마을 풍경이다. 마을 아래로는 강물이 힘차게 흐른다. 폭순도 호수 쪽에서 내려오는 폭순도 콜라(강)와 두나이 쪽에서 내려오는 튜리베리 강이 합쳐진 강이다.


마을 어귀에서 한 무리의 아이가 호두를 따고 있었다. 10여m는 넘을 법한 나무를 향해 아이들이 맹렬하게 돌을 던졌다. 열 살 전후의 아이들로 팔힘이 보통이 아니다. 애를 써야 먹을 걸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놀이를 통해서 터득하고 있었다.


야영지를 떠나 강가의 큰길로 접어들었다. 등짐을 실은 노역마 예닐곱 마리가 내려왔다. 이 말들은 몽골종으로 체구는 작지만 힘이 세다. 지구력이 강하며 거친 풀도 잘 소화시킨다. 우리가 빌린 노역마 6마리도 같은 종류다. 승용으로 사용하는 몽골말은 노역마보다 체구가 더 크다.


폭순도 호수 쪽으로 1시간 반 정도 올라갔다. 슈리갓마을에 있는 폭순도 내셔널파크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사무실 옆 공터에서 점심을 먹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무실 직원이 우리가 소지한 비디오카메라를 발견하고 시비를 걸었다. 공원법상 카트만두에서 촬영허가를 받아와야만 비디오카메라를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명백한 여행사의 실수다. 통사정을 했지만 원칙이라며 막무가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스태프 중에서 한 명을 뽑아 비디오카메라를 주팔로 돌려보내고 여행사와 협의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가 고액의 비용을 내고 허가를 받아와야 해결될 일이었다. 아마도 여러 날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비디오 촬영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타 들어갔다. 여행사의 실수로 빚어진 해프닝이지만 유연성 없이 법만을 고집하는 직원의 태도가 아쉽다.


오후 들어서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칠 기미가 없어 까그니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일찍 숙소를 잡았다. 숙소라고는 하지만 헛간과 비슷한 수준의 창고다. 부디 벼룩과 빈대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산행 첫날부터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내일을 기대해본다.

- 글·사진 조진수 사진작가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