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10년 10월 10일 관악산 이야기 *-

paxlee 2010. 10. 10. 22:04

      

                         10년 10월 10일 관악산 이야기

 

산행일시 / 2010, 10, 10. 일요일 09:30.
모임장소 / 전철 2호선 낙성대역 구내.
산행회원 / 소나무 외 9명. 다우산방. 
산행코스 / 서울공대-서울대능선-국기봉-연주대-관악사지(중식)-관악산중계탑-주능선-팔봉능선-무너미고개-

               서울대앞.

   

 - 관악산 연주대 단체사진 -

        

2010년 10월 10일 10시쯤에 서울공대 뒤쪽으로 연결된 관악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10월의 가을 날씨는 맑고 청명하였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구름도 없는 하늘엔 햇볕이 따사롭게 내려쬐고 있었다. 그러나 관악산에서 서울을 조망해 보는 시야는 짙은 연무에 뒤덮혀있어 깔끔한 맛은 없었다. 10월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산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서울대 구내 동산을 걸어오르는 길은 흙길이어서 발 걸음이 가볍고 편해서 좋았다. 그러나 능선길에 다가서면 바위에 암벽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므로 숨길을 헐덕이며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가야 하였다.

 

이 코스는 다른코스보다 멀지않아 정상으로 오르는데, 시간은 절약 할수 있으나, 경사가 가파르고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므로 무척 오르기 함든 코스로 분류한다. 마지막 국기봉을 올라서면 시야는 더 없이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 국기봉을 멋 모르고 따라 올라가다가는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 만큼 오그기도 힘들고 내려가는 길도 까다롭다. 정상 연주대에 올랐다가 내려와 기상청 안내소가 개방되었다 하여 그곳에 들려 구름사진를 보면서 일기예보를 하는 과정을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관악사지로 내려가 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 점심시간은 좀 색다른 맛난 특식을 준비 하였다. 영민님은 밥을 짓고, 앵두님이 만두빗은 것을 가져오고, 미풍님이 떡국용 떡을 가져오고, 그리고 여러분이 라면을 가져와 모두가 맛난 음식을 입이 즐겁게 마음이 훈훈하게 별식을 배불리 먹고 마시며 유쾌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후식도 빠뜨리지않고 과일과 커피까지 들면서 그곳에서 1시간 여 동안 산행의 멋과 중식의 맛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장소를 정리하고 송신탑을 넘어서 아기자기한 주능선의 암벽길을 걸었다. 팔봉능선으로 접어들어 관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을 하나 둘 넘어갔다.

 

첫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암벽은 직벽에 가까운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팔봉에서 가장 긴장하면서 올라야 하는 스릴이 있고 암벽의 재미가 솔솔한 코스이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코스도 거친 암벽길이다. 하나를 넘어가면 또 다른 암벽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섯번째 봉우리를 넘어서면 팔봉코스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왕관바위가 있는 곳이다. 그 다음은 칼날같은 칼바위 코스를 지나서 내려가면 마지막 암벽이 솟아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 뛰어서 옮겨가 그 암벽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건너편 삼성산을 바라보는 시야는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그 넓은 계곡을 바라보면 마음은 그 만큼 넓어지는 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 바위는 타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 암벽사이에 아주 좁은 굴을 통과해 가야하는데, 우리는 그 굴을 해산굴이라 부른다. 산파가 먼저 통과하여 해산굴을 통과해 나오는 사람을 향해 남자요, 여자요, 하면서 산파역할을 하고, 또 한 분은 그 옆에서 해산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이제 팔봉을 모두 넘어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냇가에 도착하여 찬 물에 족탁을 하고 무너미고개을 넘어 내려가는 그 길도 길고 멀어서 1시간 이상을 걸어야 서울대 앞에 이르게 된다. 오늘 관악산 산행은 공대뒤 능선으로 올라가서 주능선을 걷다가 팔봉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암벽길 이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즐겁게 산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함께 산행해 주신 님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관악산의 단풍 -

관악산(冠岳山) 이야기

 

관악산(冠岳山/631m)은 경기 5악(五岳) 중의 하나이다. 가평의 화악산(華岳山/1468m), 포천의 운악산(雲岳山/935m), 파주의 감악산(甘岳山/675m) 과천의 관악산, 그리고 개성으 송악산(松岳山/488m)을 경기의 5악이라 부른다. 산 이름에 악자는 '큰 산', '위엄이 있는 산'이란 뜻이 었으나, 지금은 '바위가 많은 산'이란 뜻으로 일커러지고 있다.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불러왔는지 모르지만, 바위산은 관악산보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바위가 더 장엄하고 수려하다. 서울의 5악이라 하면 아마도 북산산(836m), 도봉산(740m), 수락산(638m), 불암산(508m), 그리고 관악산(641m)이다. 서울의 5악은 전국의 어느 산과 겨루어도 암벽의 장쾌한 모습은 아름다고 수려하다.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戀主庵) 이야기

 

연주대와 연주암은 조선조 태종대왕 때, 양녕대군이 왕위를 셋째 동생 충녕대군(세종)에게 양보하고, 관악산 연주대에 머물면서 동생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셩을 편안케하고, 성군이 되도록 빌면서 '임금(主)을 생각(戀)'하며 지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긍정적인 유래가 있고, 왕위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생 충년에게 양보한 양녕대군이 이 곳에 머물면서 늘 '임글(主)자리를 빼앗긴 것을 원통하게 생각(戀)'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부정적인 유래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양녕대군이 자신에게 주어진 세자자리를 숭녕대군에게 물려주고, 마음을 달래려고 연주대에 머물면서도 끝내 달래지 못해 끝내 양광(거짓 정신병자 행세)을 하면서 주류천하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관악산의 화성(火星)에 대하여

 

조선조 초기에 한양천도(漢陽遷都)가 결정된 후 궁궐터를 잡을 때, 현 궁궐터가 관악산의 화성(火星)이 문제라 하여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관악산과 궁궐 사이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고, 이를 보완하여 광화문 앞에 두개의 해태상을 배치하여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는 처방으로 반대를 물리치고 현재의 궁궐이 세워졌다고 한다. 관악산은 전형적인 화성형상의 산이라 하는데, 오성(五星)원래 5개의 행성 즉,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을 할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산의 형상이 화성(火星)은 불꽃이 하늘로 치솟은 형상의 산(관악산, 가야산, 설악산)있으며, 수성(水星)은 산등성이가 물결처럼 파상(波狀)형상의 산(지리산, 덕유산)이고, 목성(木星)은 나무처럼 하늘로 치솟은 형상의 산(용문산 백운봉), 금성(金星)은 산정이 둥글게 종(鐘)을 엎은 듯한 형상의 산(마이산), 토성(土星)은 산정이 땅처럼 평평한 형상의 산(선자령, 오서산, 장안산)이 있다고 한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풍수지리설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선인들의 지혜로 이해를 하고 싶다.

 

남태령(南泰嶺), 여우고개 이야기

 

서울과 과천의 경계에 있는 ‘남태령’은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갯길로 옛날엔 여우가 자주 나타나 ‘여우고개’ 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그런데 18세기 말,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났던 정조 임금이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수원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됐다. 이때 정조가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엉겹결에 “남태령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자가 “이 고개 이름은 원래 여우고개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고 질책하자 이방 변씨는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지만 신하로서 임금께 그 같은 상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만나는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고 했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이에 정조가 이방 변씨의 예의 바름과 기지를 칭찬해 이후부터는 이곳을 ‘남태령’ 이라 불렀다.

 

월치전(越峙錢) 이야기

 

남태령이 여우고개로 불리던 조선조 때는 숲이 우거져 짐승과 도둑 떼가 많아서 시골 사람이 과천을 지나 여우고개를 넘어 동작나루를 건너 남대문으로 도성에 들어가는 데, 네번의 세금을 내야 통과가 되었다고 한다. (1) 과천에서 세전(貰錢)/ 도둑과 짐승이 많은 남태령을 무사히 넘게 해 달라고 굿판을 벌리는 세금으로 먼 시골에서 온 사람에게는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2) 남태령 고개에서 월치전(越峙錢)/개인적으로 남태령을 넘지 못하게 통제하고 일정 수를 모아 군사들이 호위하여 넘겨주고 받는 세금으로 여자는 2배를 받았다. (3) 동작나루에서 도진세(渡鎭稅)/ 한강을 건너는 배 싻 외에 일종의 한강통과세로 받는 세금으로 임산부는 1.5배를 받았다. (4) 남대문에서 입문세(入門稅)/ 남대문을 통과해서 도성안으로 들어가는데 세금을 받았다.

 

과천현관 송덕비문(頌德碑文) 이야기

 

조선조 때 지방수령 중에서 과천현감이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져있다. 서울이 가깝고, 오가는 고관들을 접촉하기가 쉽고, 세전과 월치전, 등 세금징수가 많기 때문에 제물을 많이 모아 뇌물을 상납하여 조정의 좋은 자리로 영전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과천현감이 영전하여 서울로 떠나게 됨으로 아전들이 잘 보이려고 송덕비를 세우곘다며 비문을 어떻게 할까 문의하였드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여 현관감이 서울로 더나는 길목 여우(남태령)고개에 송덕비를 세웠다. 현감이 지나는 시간에 맞추어 제막식을 하고 가시라고 아뢰었다. 잠시 행렬을 멈추고 송덕비 앞으로 가 둘러친 포장을 벗겨 본즉 비문에는 '今日送此盜(금일송차도)/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구관사또가 껄껄 한번 웃고, 그 옆에 한줄 쓰는데, '明日來他賊(명일래타적)/내일 다른 도적놈이 올터인데. 구관사또는 떠나고 , 남아있던 아전이 또 한 줄을 더 보태 쓰는데, '此盜來不盡(차도래부진)/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지나가던 행인이 보고 또 한 줄 더 보태어 쓰는데, '擧世皆爲盜(거새개위도)/ 세상에 모두 도둑놈 뿐이구나' 이런 송덕비가 있었다고 한다. 

 

관악산 남근석(男根石) 이야기

 

관악산에는 묘하게 생긴 바위가 온 산을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다. 관악산출판사에서 발행한 '관악산 관광 등산지도'에는 구석 구석 숨어있는 묘한 바위들의 이름이 붙여져있다. 그 중에서 남근석이 5개이고, 여근석이  4개인데, 2개는 여근석이라 하는데, 2개는 장미꽃이라 한 것이 또 묘한 뉴앙스를 풍긴다. (1) 안양유원지에서 삼성산으로 오르는 중턱에 제1남근석이 있고, (2) 철쭉동산~깔딱고개~국기봉으로 오르는 중턱에 제2남근석, (3) 삼성산 서편에 제3남근석, (4) 제4야영장에서 연주대로 오르는 길 우측능선에 제4남근석, (5) 제1남근석에서 삼성산 쪽으로 100m 쯤 오르면 또하나의 남근석이 존재한다.

 

- 카페 '중년의 친목' 관악산 이야기 참조 -       - 사진제공 / 다우산방 아우게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