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100대 명산 덕유산(德裕山 /1,614m )을 가다.[4-2] *-

paxlee 2011. 3. 22. 21:21

 

-* 100대 명산 덕유산(德裕山 /1,614m )을 가다.[4-2] *-

 

종주산행/향적봉~중봉~무룡산~삿갓봉~봉황산(남덕유산)

 ◇ 삿갓봉에서 북쪽으로 힘차게 움틀거리는 덕유의 등뼈를 내다본다.


 길은 나아가고 사람은 에돌아온다 

 

향적봉에서 남덕유까지 북에서 남으로 능선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향적봉과 삿갓재대피소를 거쳐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는 2박 3일 여정의 봇짐은 온전히 걷기에 소용되는 것들뿐이다. 잘 걷기 위해 필요한 먹을 것들, 그리고 달고 깊은 잠자리를 위한 최소한의 것들. 배낭 헤드의 조임끈을 당기면서 번잡한 일상이 가방 하나로도 충분히 압축된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새삼 즐겁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몸만으로 살 수 있는 삶은 정직하다. 덕유산 종주에는 몸으로 사는 즐거움 그 이상이 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첫날밤을 위해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곤돌라를 탔다. 덕유산은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무주군 설천면 일대의 산 일각을 허물어 사람들에게 내주었다. 스키가 미끄러져 가는 눈밭 위로 육중한 배낭을 멘 중등산화의 무거운 발자국을 찍으며 가로질렀다. 급경사의 스키 슬로프 위로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마음이 불편하다.


곤돌라에서 내려 20여분 걸으면 덕유산 정상이다. 땀 흘리지 않고 고도를 높인 사람들이 떼로 드나드는 향적봉(香積峰·1614m)은 수심이 많다. 향기로운 나무가 쌓인 듯 많다는 산정엔 향기롭지 못한 사람의 발자국만 쌓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륵부처가 세상에 오는 날 누워 있던 나무가 벌떡 일어나 향기를 내뿜는다고 믿었던 그 봉우리의 이름이 서글프다. 해거름에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나무계단을 오르면, 지는 해와 돋는 달 사이로 고즈넉하게 몸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달이 왼쪽 머리 위로 떠오르는 만큼 오른쪽으로는 해가 기운다. 향적봉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선 굵은 덕유의 등줄기를 내려다본다. 그 뒤로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의 산줄기가 가로 놓여 있다는데 사위가 어두워져 분간하기 힘들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의 능선과 능선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는 멋은 지리산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가슴에 와 쌓인다. 석양에 비치는 어머니의 산은 그림자처럼 드라마틱한 선의 율동이 정겹게 다가온다.

바람과 추위를 견딘 인내의 화원 ‘덕유평전’


향적봉대피소는 지는 해와 돋는 해를 붙잡으려는 사진가들이 연일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잠들기 전까지 뭇별들 아래 카메라는 마냥 오래도록 눈을 열고 서 있었다. 검푸른 산 그림자가 한꺼풀씩 그림자를 벗고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느껴진다. 이튿날 향적봉 일출은 구름에 갇혀 밋밋했다. 대신 멀리 구름바다 위로 섬처럼 봉긋 떠오른 지리산 천왕봉이 반가웠다. 지리산과 덕유산. 출중한 맏이 때문에 자잘한 마음고생이 많았을 속 깊은 둘째를 보듯, 덕유산을 다시 본다.

 

이 산은 너른 품새로 보나 역사적 의미로 보나 허투루 봐 넘길 산이 아니지만, 지리산 가까이 있어 늘 저평가 되는 느낌이다. 분단 이전에 각광 받던 금강산 그늘에 가려 찾는 이의 발길조차 뜸했던 설악산처럼. 배낭의 어깨끈을 조이고 본격적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은 원광대학교 산악부 문상균·김진성 씨와 전북대 김은미 씨다. 이들도 덕유산 가까이 살면서 종주는 처음이었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 본연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는 것은 고즈넉한 산길을 오래도록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중봉을 지나 덕유평전까지 완만한 산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지고 있었다. 좁은 산길 양옆으로는 목덜미까지 두툼한 눈이불을 뒤집어 쓴 조릿대 푸른 잎이 겨울산 흑백의 수묵화 위에 색을 보태고 있다. 죽은 듯 말라 있는 겨울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만개한 꽃처럼 잔가지들을 활짝 펼쳐놓았다. 그 끝에는 예외 없이 어린아이 젖꼭지처럼 봉긋봉긋 솟아오른 잎눈이 매달려 있다. 저 단단한 껍질을 열어 젖힐 봄바람은 멀고 먼 적도의 바다 한가운데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리라.

 

길 위에서 고개를 들면 둥그런 산줄기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풍경 속,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고사목들이 도드라지게 아름답다.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아고산대(亞高山帶) 식물보호에 관한 표지판이 눈에 띈다. 보호를 구호로 외치는 것은 그만큼 훼손이 심했다는 뜻이다. 아고산대란 비바람이 잦고 궂은 날이 많은 고지대에 키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선 철쭉이나 진달래·눈향나무·시로미 등 키 작은 떨기나무들이 조릿대·원추리·산오이풀·동자꽃 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철따라 형형색색의 꽃잔치가 벌어지는 덕유평전은 바람과 추위를 견뎌낸 풀과 떨기나무들의 인내로 일군 산상화원(山上花園)이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불러모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스스로 화를 부른 꼴이 되었다. 덕유평전(德裕平田) 역시 지리산의 노고단과 세석평전과 함께 훼손된 생태계 복원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나마 눈이 많은 산이어서 겨우내 두툼한 눈이불을 뒤집어쓴 채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군데군데 눈밭 위로 삐져 나온 마른 풀들을 바라보며 봄부터 가을까지 덕유평전에 이어지는 꽃들의 영화와 그 그늘을 생각한다. 중봉에서 멀리 무룡산까지 탁 트인 능선 위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은 고흐의 그림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처럼 아름답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고즈넉한 길 위에 한 점 풍경으로 스며들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풀꽃들을 헤집고 난 길은 아무리 작고 좁은 길이어도 폭력이 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걸음이 무겁다. 하염없이 걷고만 싶은 욕심에 눈이 먼 다리들, 부디 소리 없는 바람처럼 조용히 스쳐 지나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 삿갓봉 정상에서 남덕유를 향해 희디 흰 눈꽃 터널 사이로 부서질 듯 시리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힘든 줄 모르고 걷는다.



겨울을 넘어 봄날로 간다

둘째 날의 목표는 삿갓재대피소까지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연거푸 넘어가는데 남쪽을 향해 올라가는 북쪽 사면은 눈밭이고 남덕유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남쪽은 봄날이다. 미끄러운 눈밭을 딛고 올라서서 얼었다 녹은 검붉은 흙이 질척이는 길 위로 내려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꼭 초콜릿 녹은 것 같아요.”
김은미 씨의 비유가 가장 적절했다. 그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단단한 아이스크림 같은 길과 초콜릿 녹은 길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동엽령을 지나고 무룡산을 넘는다.

 

길은 무릎께부터 어깨 너머 그리고 머리 위까지 층층이 다른 겨울나무의 숲 사이로 길게 이어진다.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햇살을 향해 곧게 키를 키우는 산아래 나무들과 달리, 고지대의 나무들은 키는 작아도 사방으로 자유롭게 가지를 뻗고 있다. 키가 작고 굴곡이 많은 나뭇가지가 목재로 효용가치는 떨어지겠지만 나무에게는 더 행복한 모습처럼 보인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덕유산의 겨울나무들은 굴곡 있는 모양새가 꽃보다 더 아름답다.


가지가지마다 얼음꽃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릴 때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크리스털 부딪히는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눈도 매서운 바람도 소식 없는 푸근한 겨울날이 빠르게 저물고 있었다.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인 무룡산 정상을 오르는 길이 가장 가팔랐다. 겨우 점심 한 끼를 덜어내고 1박 2일분의 짐이 고스란히 남은 배낭은 여전히 묵직하다. 무룡산 너머 헬기장에서부터 내려가는 길에는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계단이라기보다는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나무판을 가로질러 놓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길옆으로 흙을 덮은 가마니들도 터져버린 것이 많다. 육십령부터 장수덕유산∼월성재∼삿갓봉∼무룡산∼동엽령∼송계삼거리까지 백두대간이 지나는 덕유산 등줄기는 길이 뚜렷한 만큼 발길에 무너진 상처도 많다. 길옆으로 누운 풀들 위로는 바람의 흔적도 거칠다. 무룡산 산정을 향해 치고 올라오는 바람의 길을 따라 한쪽으로만 머리채를 눕힌 풀들을 보며 어서 녹녹해진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산은 한번에 다 보여주질 않아?

 ◇ 덕유산의 일출. 수많은 산줄기 넘어 솟은 가야산, 그 옆으로 동이 터 온다. <사진제공 허의준>

 

 ◇ 덕유산 고사목과 산자락을 뒤덮은 운해. <사진제공 허의준>


무룡산과 삿갓봉 사이의 삿갓재대피소는 육십령으로 오가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많이 찾는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힘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밤늦도록 술과 마주하며 잠들지 못하는 향적봉대피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외진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반가운 친구 만나듯 하나하나 주워들며 묵묵히 앞서 걸어가던 일행의 막내 김진성 씨는 배낭을 내려놓기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덕유산에 와서 눈을 못 봐서 섭섭했겠네요. …산이 그렇게 한번에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아요.”

 

덕유산 종주가 처음이라는 말에 대피소 직원은 무심하게 말을 던진다. 새벽녘 바람 소리에 잠을 깼다. 대피소 이층 침상 위에서 침낭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창 밖이 심상치 않다. 어둠 속을 뒤흔드는 황소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동이 틀 때까지 선잠을 잤다. 밤새 바람이 울부짖으며 한 일은 경이로웠다. 운무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삿갓봉 품속으로 들어가니 상고대가 활짝 핀 별천지가 열렸다. 겨울나무를 뒤흔든 세찬 골바람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서릿발 그대로 눈부신 꽃이 되었다.


길 위에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조각조각 떨어져 내린 상고대가 떡시루에 소복하게 얹은 쌀가루처럼 탐스러웠다. 고개를 들면 눈꽃이 핀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산기슭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올라온 수증기가 겨울나무들 사이를 훑으며 순식간에 안개에서 구름으로 탈바꿈했다. 바람은 겨울나무 언 가지 위에 꽃을 피우고 산정에 올라 부지런히 하늘을 여닫는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 삿갓봉 정상까지 제법 가파른 눈길을 치고 올라가는데도 힘에 부치는 줄 몰랐다.

 

전날 산행으로 몸이 풀린 탓도 있겠지만 희디흰 눈꽃 터널 사이로 부서질 듯 시리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통각도 마비가 된 것 같다. 삿갓봉에 올라보니 덕유산 주능선의 서쪽 사면만 하얗게 눈꽃이 피었고, 해가 드는 동쪽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햇살을 그대로 통과시켜 산의 속살까지 붉게 드러내고 있었다. 뒤로는 멀리 향적봉부터 덕유평전을 지나 무룡산까지 지나온 길들이 아스라히 멀고 눈앞에는 새로운 길들이 움틀거린다. 삿갓봉부터 남덕유산까지는 산허리를 가로질러 오르내리는 길들이 이어지는데 마치 요지경 속을 걷는 듯하다.

 

산을 오른쪽으로 돌 때는 꽁꽁 얼어버린 눈 길 위를 걷다가 고개 하나를 너머 왼쪽으로 산을 돌 때는 금세 봄기운이 완연한 풋풋한 흙길을 만난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중에서.


겨울산에서 걷는 일은 예민하게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한 걸음씩 신중하게 내딛어야 한다. 눈과 얼음의 길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별 수 없다. 스틱으로 먼저 앞을 지지하고 나서야 겨우 발을 뗀다.
한 걸음 내딛기 전에 우선 의심하고 디딜 때는 확신을 담아 힘껏 체중을 실어 주어야 한다. 순간순간 회의와 안도가 교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이젠을 차지 않은 문상균 씨의 걸음이 가장 진지해 보인다. 발끝으로 바닥의 눈과 얼음을 잘 읽어야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런 진지한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결국 자기 안에 숨겨진 세계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길고 긴 덕유산 겨울 종주의 미덕이 거기 있다.

겨울나무와 바람의 애끓는 사랑


월성재에서부터 마지막 준령을 넘어설 즈음, 해는 마지막 목적지인 남덕유의 산정 위로 올라서고 그새 상고대는 흔적을 감추었다. 자정 너머부터 산기슭을 치고 올라온 강한 바람이 나뭇가지 위에 잠시 얼어붙었다 흔적도 없이 떠난 것이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서기 전까지 짧은 순간 동안 불을 지르듯 확 피었다가 기약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겨울나무와 바람의 애끓는 사랑'이라고 할까. 어차피 가둘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치려는 것인지.

 

상고대도 사라지고 눈부신 풍경 속에 취한 듯 걸어오던 두 다리에 ‘약발’이 다 떨어질 무렵, 괴력의 사나이들이 무서운 기세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취재진이 이틀 동안 걸어온 길을 한 나절에 주파하고 남덕유산에서 늦은 점심 요기를 할 요량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은, 한국산악회 부산개인택시기사연합 회원들이라고 했다. 새벽 여섯 시에 향적봉을 출발해 어둠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30분을 허비했다는데도 남덕유를 넘기 전 우리를 앞질렀다. 물 만난 고기들 마냥 팔딱이는 걸음걸음이 놀라웠다.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의 길은 외길이다. 그렇지만 산은 어떻게 걸어왔느냐에 따라 수많은 갈래의 다른 길들을 낳고 있다. 하물며 같은 시간에 그 길을 함께 걸은 일행들끼리도 저마다 다른 산길을 넘었을 것이다. 오래 걷는다는 것은 몸은 길 위에 있어도 정신은 저마다 다른 세계로 파고드는 것 아닌지. 덕유산 너른 품에서 길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사람은 자꾸만 자기 안으로 에돌아가고 있었다.

 ◇ 덕유산의 꽃 상고대는 겨울나무와 강한 바람의 애끓는 사랑의 열매다.



덕유산의 너른 품 같은 사람 향적봉대피소 관리인 박봉진 씨

향적봉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봉진(46세)씨는 1978년도부터 남원산악회에서 산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7년부터 구천동에 들어와 살다가 2000년 1월 아예 향적봉에 둥지를 틀고 덕유산의 사람이 되었다. 덕유산에서 조난자가 생기면 구조대보다 으레 산에 사는 그가 먼저 달려간다. 산에서 살면서 산을 닮아 가는 탓일까. 박봉진 씨는 덕유산 너른 품처럼 진중한 사람이다. 그는 사진가들의 요람인 향적봉대피소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남부끄럽다며 어렵게 사진들을 내보였다.

 

이번에 소개된 <100명산 갤러리>는 세련된 기교보다는 산에 깃들여 사는 사람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순박한 사진들이다. 그는 단지 사진만 찍기 위해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야생화를 뽑아다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작품 욕심만 앞섰지 산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보며 사실 사진 찍는 일에 많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박봉진 씨는 그런 인위적인 사진 욕심보다는 산 욕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 올 8월 중순에는 남원의 후배 산악인들과 칸텡그리 원정을 떠날 기대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덕유산 산길과 거창의 문화유산 가이드

덕유산의 주릉은 남쪽 육십령에서 북쪽 소사고개까지 35.9㎞,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주릉에서 1.6㎞ 떨어져있다. 계곡은 북쪽 구천동이 예로부터 유명하고, 서쪽 칠연계곡(안성계곡)은 고요하다. 남쪽 거창 지역은 월성계곡과 위천 물가에 수승대와 갈천 임훈의 유적이 흩뿌려져 있다. 산행을 할 경우 향적봉대피소에서 1박 하는 것을 적극 권한다. 가야산을 정점으로 펼쳐지는 일출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한편 1997년 무주리조트가 향적봉에서 15분 거리인 설천봉까지 곤돌라를 설치했다. 산꾼들은 되도록 자체하고, 노인과 아이들이 이용하면 좋겠다.


주릉 종주


북쪽 정상 향적봉에서 중봉~백암봉(송계삼거리)~동엽령~무룡산~삿갓봉~월성재~봉황산(남덕유산)까지 길이만 20km가 넘는 덕유산 종주는 지리산, 설악산과 더불어 대표적인 종주 코스로 사랑 받는 곳이다. 이 가운데 봉황산~송계삼거리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 길로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뚜렷하게 길이 이어져 있어 초행이어도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체력에 따른 적절한 시간 안배로 종주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향적봉에서부터 남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덕유산 줄기를 종주하는 길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수월하다. 특히 봉황산~영각사 구간이 가파르고 지루한 철계단이 이어져 웬만한 건각들도 고되기 때문이다. 향적봉까지 오르는 것은 삼공리 매표소에서 백련사나 오수자굴을 거쳐 오르거나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까지 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 있다. 향적봉 대피소와 삿갓재대피소를 이용해 2박 3일의 종주 일정을 짠다면 여유 있게 산행할 수 있다.

봉황산(남덕유산)


경남의 산꾼들은 황점에서 삿갓재 또는 월성재로 올라 봉황산을 경유하여 영각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애용한다. 황점∼삿갓재는 황점매표소에서 마을길로 올라가야 하고, 황점∼월성재는 매표소에서 남령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100m 가다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간다.
산행 시간은 삿갓재가 1시간 30분, 월성재는 2시간 잡는다.

칠연계곡(안성계곡)


덕유산 서쪽의 대표적인 계곡으로 향적봉으로 오르내리는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용추폭포는 칠연계곡 매표소 전에 있고,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왼쪽 계곡을 건너면 칠연의총 합동묘가 있다. 계곡은 소나무와 계류가 어울려 그윽하다. 1.2㎞ 가면 길이 갈리는데, 왼쪽 구름다리를 건너 2시간 오르면 주릉 삼거리에 붙는다.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300m 가면 칠연폭포가 쏟아진다. 폭포는 연달아 7개의 담과 폭포가 장쾌하다. 계곡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은 향적봉을 정점에 놓고, 구천동과 칠연계곡을 연결시킨다.

           

                        - 글 김선미 기자 / 사진 남영호 기자 / 협찬 도이터코리아 / 월간 마운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