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산 지리산(智異山 /1,915m )을 가다.
지리산은 크다. 지리산의 ‘큼’은 물리적인 길이와 높이, 넓이 따위가 정도를 넘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서를 가로질러 100여 리에 달하는 주능선과 거기에서 갈래 친 15개의 크고 작은 지능선이 남북을 향해 뻗었다. 부챗살 같은 산줄기의 주름 사이로는 수백갈래의 크고 작은 골들이 흐르고 흘러 섬진강과 낙동강으로 모여든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용틀임으로 우뚝 선 이 산자락은 호남과 영남에 두루 걸쳐 남원과 구례, 하동과 산청, 함양까지 5개 군과 15개 면과 읍에 그 발치를 드리웠다.
덕평봉(1521.9m)과 명선봉(1586.3m), 토끼봉(1534m)을 지나면 전북 전남 경남 3도를 가르는 삼도봉이다. 이어 주능선에 슬쩍 비켜 선 반야봉(1732m)을 지나 노고단(1507m)과 종석대(1356m)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산줄기는 고리봉(1248m)과 만복대(1433.4m)로 짓쳐 흐른다. 백두대간으로 불리는 이 산줄기는 북으로 북으로 이어져 마침내는 이 땅 모든 산하의 조종 백두산에 이른다.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본다. 삼신봉과 연하봉, 제석봉으로 이어져 마침내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이 초록색의 용 등줄기처럼 꿈틀거린다. 때마침 푸른 하늘에도 용틀임 같은 구름이 흘러간다. 사진 양계탁
그보다 더 오래 전 마한의 유민들은 반야봉 아래 달궁에 자신들의 왕궁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지리산은 산자락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오래 전부터 먹여 살렸다. 구례와 남원, 하동은 지리산에서 비롯한 섬진강 덕분에 비옥한 들판이 펼쳐진다. 섬진강은 참게와 은어, 재첩으로도 이름자를 떨치고 있다. 산청군 단성면에는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로부터 붓두껍에 숨겨온 목화씨를 처음 심었던 땅이었다. 또 신라시대부터 이 산자락에는 당나라에서 전해진 차가 심어졌다. 또 고로쇠 수액이 나거나 매화나 산수유, 벚꽃, 철쭉이 필 때면 수많은 인파가 산자락을 찾는다.
탐관오리의 학정과 관군을 피해 숨어든 민초들과 동학군에게 그곳은 푸른 학이 사는 이상향 청학동이었을 것이며, 징병과 징용을 피하고 조국 독립의 열망을 꿈꾸던 항일 결사와 한국전쟁 전후의 빨치산에게 지리산은 온전한 ‘산사람’의 터전이자 변혁의 거점이었으며,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들의 사지(死地)였다. 헐벗고 굶주린 민초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고 또 그들의 최후를 묵묵히 지켜본 지리산은 바로 한국 현대사의 처절한 현장이었다. 모든 게 산이 ‘큰’ 탓이었다.
지리산은 그 이름부터 전래하는 이칭과 별칭이 많다. 백두산에서부터 그 맥이 흘렀다는 두류산(頭流山), 백두산의 맥이 잠시 머무른다는 두류산(頭留山), 중국 전설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方丈山), 한자로도 地理山, 地異山 등이 제 각각 쓰였다.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하고자 명산을 두루 찾아 치성을 올릴 때 백두산과 금강산은 이를 수긍했으나 지리산만은 끝내 거절하여 그 뜻이 다르다는 뜻으로 지리(智異)라 불렸다는 속설도 전한다.
화엄사에는 화엄사각황전(국보 67호), 화엄사석등(국보 12호), 사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 등 국보 3점과 화엄사대웅전(보물 299호) 등 보물 4점이 있다. 화엄사와 같은 해 창건된 연곡사에는 우리나라 부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연곡사동부도(국보 53호)가 있다. 하동의 쌍계사와 칠불사, 유평리 대원사와 천왕봉 아래 법계사, 마천의 벽송사, 남원 산내의 실상사와 백장암 등 신라시대 세워진 고찰들이 빙 둘러 늘어선 지리산 자락에는 총 7점의 국보와 23점의 보물이 있으며, 한때 400여개의 암자가 산 속에 있었다고 전해지니 지리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가람이었다.
어느 비 개인 날 아침, 지리산 일출봉 뒤편에서 바라본 기암기석과 구름의 조화. 사진 강병규
구름바다 위로 황금빛으로 물들어 사그라지는 낙조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엄한 감동으로 남는다. 반야봉 아래 삼도봉은 전남, 전북, 경남 삼도의 경계가 된다. 과거 날날이봉이라 부르던 것을 격이 맞지 않는다며 바꾸어 부르고 있다. 그곳에는 삼도를 구분하는 삼각형의 커다란 황동 표지탑이 있다. 삼도봉에서 남으로 뻗어가는 헌칠민틋한 산줄기가 바로 그 이름도 흔연한 불무장등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이 우람한 산줄기는 통꼭봉(904.7m)과 황장산(942.1m)을 불끈 돋우고 화개에서 잦아든다. 경상도 말로 장등이는 큰 덩치를 이른다.
온통 바위로 무장한 천왕봉에는 사시장철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천왕봉에서 해돋이 광경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된다는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능선 종주의 마지막을 천왕봉 일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한 발 한 발 상봉을 향하는 발걸음은 진지한 수행자의 그것이어야 한다. 발걸음 하나 역시 그들이 쌓아가는 작은 덕에 다름 아니다.
천왕봉에 선 그들이 온 천지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봤다면 이제는 다음 대를 위해 다시 덕을 쌓을 일이다. 그러나 설령 해를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 아쉬워하지 말자. 발아래 깊이 잠든 세상이 여명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그 신통방통한 광경은 언제나 펼쳐질 것이며, 남한 내륙의 최고봉에서 맞는 신새벽의 신선한 공기는 오직 그곳을 오른 그들만의 차지일 테니.
철쭉이 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신록으로 물드는 산길을 지나는 등산객들의 행렬. 장터목으로 넘어가는 언덕과 제석봉 일원에 아직 빛바랜 철쭉이 남아있다. 사진 강병규
- 글 윤대훈 기자 /·사진 강병규 사진가 양계탁 기자 / 월간 마운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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