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3 *-

paxlee 2011. 6. 25. 23:27

 

                          [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고산 등반법 1-3

강풍이 몰아치는 사우스콜, 캠프4

캠프3까지 3~4번의 운행으로 하룻밤 자고 내려왔다면 등정을 위한 고소적응은 끝났다. 이때쯤이면 체중이 3~5kg 줄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체중을 출국하기 한 달 전까지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출국에 임박해서는 체중을 3kg 정도 늘려서 가면 고소적응이 끝나는 시점에 적절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4~5일 쉬는 것보다는 페리체(4,270m)나 딩보체(4,410m), 더 낮게는 팡보체(3,930m)나 디보체(3,710m)까지 내려간다. 숲속에 머물며 풍부한 산소, 충분한 음식물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강한 후 베이스캠프로 올라가 등정 시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일기예보를 분석하여 ‘날을 잡는다.’

▲ 로체 사면의 빙벽을 올라 캠프3로 향하는 등반가들
캠프3에서 옐로밴드와 제네바스퍼를 올라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사우스콜까지는(7.925) 6~8시간 걸린다. 도착한 날 밤에 바로 정상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에 운행은 새벽에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캠프4에서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운행부터 산소를 사용하는 것이 등정률을 높일 수 있다. 산소호흡기 게이지는 ‘1.5~2.5’로 맞춘다.

마지막 캠프는 영하 20도에, 티베트 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텐트는 심하게 흔들리고 텐트 밑에 잡석들로 누운 자리는 편하지 않다. 정상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잠을 잔다기보다는 눈을 감고 있는 정도다. 산소사용은 ‘0.5~1’ 게이지가 적당하다.

세계최고봉 정상

▲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 개념도.
등정 시도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운행을 시작한 지 평균 4~5번째 운행에서 이루어진다. 정상까지는 10~12시간 소요되는데 다음날 정오경까지 정상에 서지 못한다면 하산시간을 고려해 중간에서 포기하고 되돌아서야 한다. 밤 9~10시경에 출발하는데 준비시간이 2시간 정도는 걸린다. 좁은 텐트 안에서 물을 끓여 차를 마시고 옷을 입고 장비를 착용하는 모든 행동이 힘들고 지겹기까지 하다. 시린 손과 강풍에 파르르 떨리는 텐트플라이 소리에 정상으로 향해야 할 자신의 의지는 점점 사그라진다. 여기에서는 경험 많은 등반가나 등반셰르파의 마음도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쪽의 정상보다는 아래쪽으로 무언가 자꾸 당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하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이때 동료의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함께 가자, 정상까지.”

텐트를 나서면 이미 발코니 8,500m 로 향하는 불빛이 야간의 비행기 활주로 유도등과 같이 줄을 잇고 있다. 랜턴 불빛에 비치는 근거리의 앞만 보고 걷는다. 정신은 몽롱하고 마치 잠결에 꿈을 꾸는 것 같다. 단지 내 몸에서 진정 살아 있는 신체기관은 손과 발이 무지 시리다는 느낌뿐이다. 얼음 언덕을 올라 고정로프에 어센더를 끼우고 앞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오른다. 산소마스크로 숨쉬는 쉐쉐 소리만이 들린다. 코에서 올라 온 습기로 고글에 성에가 끼여 성가시게 한다. 장갑으로도 잘 닦이지 않는다.

드디어 발코니. 동쪽 티베트 고원으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얼마나 기다리던 햇빛인가. 모두들 눈 위에 앉아 한동안 빛을 즐긴다. 이곳에서 몇몇이 포기하는 1차 지점이다. 2차는 남봉 근처다. 남봉으로 향한다. 태양이 떠올라 추위는 가셨지만 반대로 빛에 의한 몸의 열기로 더위를 느끼고 졸음은 더 쏟아진다. 열 걸음 헤아리고 숨을 헐떡이고 또 다섯 걸음 헤아리고 머리를 처박는다. 도대체 언제 이 오름짓이 끝날까! 깊은 호흡을 하고 자신에게 숨어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망이자 오기다. 정신력이자 의지다.

남봉에 올라 정상 쪽을 바라본다. 이제 그래도 끝이 보인다. 그러나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힐러리스텝(Hilary Step)이다. 남봉에서 쓰던 산소통은 눈에 박아놓고 셰르파가 운반해 온 새로운 산소로 교환한다.

10여m 길이의 힐러리스텝은 초등 당시보다는 덜 어렵다. 그곳에서 30분  더 가자 오색 룽다가 더미를 이룬 정상이다. 정상은 단지 정상이다. 기쁨을 느끼기에는 하산길 걱정이 부담스럽다.

고통의 하산

고산등반 사고의 절반 이상은 하산 중에 일어난다. 1996년 남동릉에서의 대참사도 힐러리스텝에서 오르는 등반가와 정상에 선 후 내려오는 사람들이 만나며 생긴 병목현상으로 하산시간이 더욱 지연되며 거기에 악천후까지 덮친 결과였다. 극심한 체력소모로 후들거리는 다리는 안정된 아이젠 워킹을 방해한다. 자신의 아이젠이 반대편 신발에 걸려 실족,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된다.
등정 당일 마지막 캠프까지 하산하고 다음날 캠프2까지, 3일째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한다. 체력이 된다면 이틀 만에 하산한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위험한 지대는 일단 벗어난 셈이다. 그러나 귀국하여 자신의 몸이 다시 해수면고도에 적응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잊혀지고 아름다웠던 풍경과 기억, 그리고 목표를 이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 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 원정 앞서 해야 할 일은 가족의 이해 얻기

어떤 이는 말한다. “어떤 분야든 10여 년을 매진하면 전문가의 수준이 된다”고. 그렇다면 필자는 고산등반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노멀루트든 새로운 루트를 시도하든지 간에 원정등반 출국에 임박해서는 안전하게 귀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불안감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이며 또 이것은 가족, 직장 등 사회적인 관계의 무게에 따라 더 가중된다. 그 첫 번째가 가족이다. 내 꿈을 좇아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러 간다고 하면 한국적 정서의 가족 내에서 반기는 사람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히말라야 등반 장면에서의 눈사태, 코밑에 주렁주렁 고드름을 달고 힘겹게 오르는 등반가, 그리고 사망사고 소식 등에 가족들이 반기기는커녕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하여 대꾸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히말라야로 떠나는 등반가는 눈물을 등 뒤에 두고 떠난다. 이것은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다. 올해 봄 시즌 아벨레 블랑(Abele Blanc·57세)은 8,000m급 14좌의 마지막 봉 등정을 위해 안나푸르나(8,091m)에 여섯 번째 시도를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떠날 때 당신 가족의 태도는 어떤가. 특히 부인은?”

내가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짧게 대답했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I’m happy, My wife unhappy)”

가족의 이해를 얻기란 쉽지 않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철저한 준비, 매일의 체력훈련 등 노력하는 모습에 조금씩 긍정적인 태도로, 그리고 고산등반에 대한 많은 대화로 자연스럽게 걱정과 불안감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가족은 서서히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의 어떤 등반가는 이러한 벽이 너무 크자 가짜 사고소식을 전하고 병원에 드러누워 깁스하고는 입원기간 두 달 동안 몰래 원정 출·귀국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한국 원정대들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출국 비행기에 오르면 원정의 절반은 끝났다”다. 그만큼 준비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세계 최고봉은 그래도 가볼 만한가? 결정은 자신 몫이지만 경험자로서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있다. 그 체험은 당신의 DNA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지도 모른다.

 

-  글=김창호·월간山 기획위원·몽벨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