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등산광 CEO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 *-

paxlee 2011. 7. 17. 21:41

 

                           등산광 CEO 혼다코리아 정우영 대표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산에 다닌 것”
        지리산을 사랑하는 등산 전도사, 등산학교에서 GPS도 배워

 

“지리산으로 갑시다.”

혼다코리아 정우영(鄭祐泳·62) 대표와 산행 인터뷰를 제안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서울 근교의 가벼운 산행을 염두에 뒀던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예상 답안에 없던 정 대표의 제안 때문이었다. 원고 마감이 목전이라 장거리 산행 취재가 어려운 상황. 이런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북한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했다.

“얼마 전 주주총회가 끝나서 여유가 있어서요.”


▲ 문수사 대웅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 대표. 그는 사찰 순례를 하다 산을 알게 됐다.

북한산 입구에서 만난 정 대표는 지리산을 산행지로 제안한 이유를 별것 아니라는 듯 알려줬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지리산 사랑은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5년도 안 됐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며 여섯 번이나 주능선을 종주했고, 혼자서 지리산을 오른 것도 여러 차례였다. 산행의 재미에 푹 빠진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리산은 혼자서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지리산 도사들에 비하면 하찮은 숫자지만, 올해로 여섯 번째 종주를 마쳤습니다. 사실 작년 다섯 번째 종주 때 무릎을 다쳐서 벽소령에서 하산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후 1년간 재활한 뒤에 완주한 것이라 더 기쁩니다.”


▲ 정우영 대표가 GPS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그는 세석에서 비박을 하며 1박2일로 걷는 지리산 종주를 즐긴다. 여럿이 함께 가기도 하지만 혼자 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가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만난 인연으로 여러 번 산행을 같이한 이들도 있을 정도다. 지리산의 넉넉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5년 사이 지리산 종주만 여섯 번

“집이 멀어서 북한산은 자주 와보지 못했습니다. 이곳 정릉 계곡은 사실 처음이네요. 기대가 큽니다.” 이번 산행 인터뷰는 북한산 정릉 계곡을 통해 능선으로 올라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에서 진행했다. 지리산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산행이었다.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는 변화무쌍한 날씨였지만 능선의 바람은 시원했다. 하지만 경사가 급해지며 정 대표는 땀을 비 오듯 쏟았다.


▲ 보현봉이 조망되는 산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일행.
“워낙 땀이 많은 체질이라서 산에서는 불편합니다. 전에 한 번은 너무 땀을 많이 흘려서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었어요.”

그는 2007년 가을 설악산 공룡능선을 탄 뒤 탈진해 쓰러졌다. 그 때만 해도 조금만 심하게 걸으면 쥐가 나서 고생했는데, 주변에서 아스피린을 먹으면 괜찮다는 말을 믿고 따랐던 것이다. 그게 문제가 됐다.

“아스피린을 먹고 산을 올랐더니 식욕이 떨어져서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땀이 많은데 약 기운에 탈수가 훨씬 심했습니다. 결국 설악동까지 내려오긴 했는데 버스를 타는 순간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속초에서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정 대표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연말이면 시간을 내서 혼자 절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다. 산사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1월 우연히 속리산에 들렀다가 갑자기 문장대가 보고 싶어졌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인데 젊은 대학생들이 못 가고 돌아오더군요. 별 준비 없이 시작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게 정상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설경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 자리에서 산이라는 것을 한번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속리산을 다녀온 뒤 회사 내의 등산동호회인 ‘뫼비우스’와 함께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가끔은 안내산악회를 이용하거나 혼자 가기도 했다. 하지만 몇 차례 산에서 고생을 한 뒤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를 회사로 불러 동호회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도중 기념활영을 한 정우영 대표.

 

“먹는 것부터 배낭 꾸리기, 옷 입기 등 유용한 내용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길 잃고 헤매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독도법은 따로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시작하니 이해가 잘 안 되더군요. 같은 강좌를 두세 번 듣고, GPS 기초교육 두 번에 고급반까지 수강했더니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이제 산에서 GPS를 사용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비법이라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닙니다. 등산학교 시스템은 산을 배우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등산학교를 통해 체계적으로 산에 대해 배운 그는 해외 트레킹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직원들과 백두산을 처음으로 다녀온 뒤 대만 옥산에 도전했다. 그곳에서 고소를 처음 경험했는데 나름대로 견딜 만했다. 그래서 다음 산으로 키나발루를 택해 고도를 높였다.

“고소에서 별 문제 없이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중국의 옥룡설산도 다녀왔습니다. 이제 휴가철이면 늘 해외로 떠날 생각을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킬리만자로도 가볼 생각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산에 다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5년만 일찍 다녔어도 좋은 데 더 많이 가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는 1976년 기아기연공업(혼다모터 출자합자법인)에 입사해 1995년 대림자동차공업으로 회사명이 바뀐 뒤 2000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줄곧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으로 퇴직하는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인물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001년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가 출범하며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대림에서 나와서 쉬고 있는데 혼다에서 함께 해보자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혼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최초로 소형 예초기 엔진을 만든 회사로, 범용 모터부터 발전기, 제트비행기까지 생산하는 종합 모빌리티 회사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 정릉 계곡의 다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정 대표. 홍보실 신범준 팀장, 백경숙 대리가 함께했다.
 
기업 경영과 등산, 인생은 닮았다.

이날 산행에는 홍보실 신범준 팀장과 백경숙 대리가 지원조로 동행했다. 신 팀장은 전직 혼다코리아 산악회 총무로 정 대표가 처음 산에 다닐 때부터 옆을 지켰던 직원이다. 커다란 배낭과 카메라까지 중무장한 그는 일행의 도시락을 모두 짊어지는 희생정신을 보여줬다. 하지만 무리했는지 발목이 접질리는 작은 사고를 당했다.

“산에서 욕심을 내거나 딴생각을 하면 다치기 쉽습니다. 일본에는 기업을 경영하는 데 피해야 할 세 가지를 일컫는 ‘삼무(三無)’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넘쳐도, 무리해도, 굴곡이 심해도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산행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욕심을 내거나 무리하면 부상을 당하게 되고, 산길의 기복이 심하면 체력이 고갈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기업과 등산, 인생은 닮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대남문에서 휴식을 취하며 맛깔스런 도시락과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풀었다. 즐거운 점심시간을 마친 뒤에는 하산을 준비했다. 비봉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문수사를 거쳐 구기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신 팀장의 부상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바위봉우리를 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저는 직원들에게 ‘넘버 1보다는 ‘온리 1이 되라고 말합니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넘버 1’은 늘 도전받는 자리지만, ‘온리 1’은 경쟁 없이 우리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혼다를 수입차 가운데 종합 체감만족도가 가장 높은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런 미묘한 차이가 누적되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판매량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정 대표는 문화, 역사, 정치 등에서 갈등이 많은 한·일 간의 화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아직 이와 관련된 구제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글 김기환 기자 / 사진=정정현 부장 / 월간 산 7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