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이야기

-* 추억을 나누는 좋은 친구, 와인(wine) *-

paxlee 2011. 8. 29. 21:54

 

                     추억을 나누는 좋은 친구, 와인(wine)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최고의 와인은 무엇일까? 로마네 콩티? 앙리 자이에 리시부르? 소믈리에 이준혁은 그의 신간 <와인과 사람>을 통해 와인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15명의 명사와 함께한 와인 인터뷰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를 만나 직접 들어보았다.

 

                                            ▲ 배용준과 소믈리에 이준혁.

와인은 사랑과 같다.
그것이 찾아왔을 때 알아차려라

신간 기획자가 배우 배용준 씨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함께 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배용준 씨는 수년 동안 많은 와인을 마시고 나서야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의 종류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사와 인생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책을 출간하면 어떨지 제안해주셨어요. 처음에는 부담감에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도 나누고 참여한 명사들의 이름으로 인세를 유니세프 코리아와 환경운동연합에 전액 기부할 수 있다는 것에 용기를 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출간 파티에서는 서울 옥션의 도움으로 명사의 애장품 경매도 진행했는데 이 수익금 역시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일을 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출간 파티에 서브된 와인 중에서 특별한 와인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인가요? 아기 다다시가 1985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에세조에 매료되어 와인과 사랑에 빠진 걸 보면 누구나 운명의 와인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운명적인 와인은 10년 전에 처음 박스로 구입한 스페인 와인 1996 토레스 마스 라 플라나였습니다. 얼마 전 이 와인이 한국에 다시 수입되었는데 지인들과 함께 정말 맛있게 마셨습니다.

잊지 못할 와인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인지요? 아직은 독자들이 와인을 마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100%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와인 비즈니스도 하시는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님이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와인과 함께한 최고의 순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답변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서 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멋진 인연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에 저 역시 동감합니다. 굳이 특별한 순간을 소개하자면 지난해 배용준 씨와 부산에서 2005 로마네 콩티 호리존탈 테이스팅을 했던 경험이 기억에 남고, 아내에게 와인과 함께 프러포즈한 것도 추억으로 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가 와인에 대해 잘 모르기에 맘 놓고 고가의 와인을 선택했습니다(웃음). 그때 1995 샤토 르 팽(Chateau Le Pin)을 마시며 분위기를 잔뜩 잡았습니다.

1 배우 백윤식에게 매치한 와인은 그의 열정과 닮은, 스페인 와인의 전설이라 불리는 1994 베가 시실리아 우니코 리제르바. 2 제임스 본드의 샴페인으로 알려진 볼랭저(1990 Bollinger R.D). 남성적인 샴페인으로 손꼽히며 강한 보디감과 견고한 구조감을 자랑한다. 3 와인 만화책 <신의 물방울>의 저자인 기바야시 유코와 기바야시 신 남매. ‘아기 다다시’ 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와인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것이 그들의 큰 기쁨이다. 4 평소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맛을 즐긴다는 사진작가 배병우. 하지만 이탈리아 레드 와인의 강렬하고 깊은 맛도 그의 작품과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와인에는 깊은 철학이 있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자마자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서 당분간 그곳에서 거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WSET 어드밴스드 서티피케이트 소믈리에(Advanced Certificate Sommelier) 자격을 취득하고, 레콜 뒤 뱅 드 보르도 마스터 코스(L’ecole du vin de Bordeaux Master Course)를 수료한 유명한 소믈리에가 왜 다시금 배움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더 넓은 세계에서 견문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시장이 형성된 미국, 그리고 미국의 중심인 뉴욕에서 다시 한 번 몸으로 부딪히고 싶었습니다.”

 

그는 와인은 아무리 배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은 와인에 대한 세금이 높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20달러 정도면 매우 훌륭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뉴요커들은 프랑스인처럼 완전히 와인에 매료된 것은 아니지만 점심시간에도 샴페인과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와인 마시는 아톰’에서는 뉴욕에서 경험한 와인과 레스토랑에 대한 소개가 자주 업데이트되어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각각의 명사에게 어울리는 와인을 매치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선택하셨습니까? 프랑스 보르도, 브루고뉴, 독일, 미국 등 지역별로 최고의 와인을 먼저 선택했고, 와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명사를 매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세대 배우 김현중 씨는 신세계 호주의 와인 1998 펜폴즈 그랜지를 선택했고, 발레리나 김주원 씨는 화이트 와인의 전설로 불리는 1996 코르통 샤를마뉴 도멘 장 프랑수아 코슈 뒤리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준익 감독은 영화계에 데뷔한 해의 빈티지인 1986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배우 백윤식 씨는 드라마 <서울의 달>로 스타덤에 오른 해의 빈티지인 1994 베가 시실리아 우니코 리제르바(Vega Sicilia Unico Reserva)와 매치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명사는 어떤 분인가요? 물론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처음에 인터뷰했던 배병우 사진작가가 직접 만들어주신 삼치 초밥과 전어 구이 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 세계 최고의 디저트 와인 2005 에곤 뮐러 샤르초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Egon Muller Scharzhofberger Riesling Trockenbeerenauslese)를 최고의 프랑스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함께한 배우 최강희 씨와의 만남도 유쾌했습니다. 자택으로 직접 초대해주신 첼리스트 정명화 부부와 나눈 즐거운 저녁 식사와 밤새도록 와인과 맥주, 소주를 함께한 이준익 감독님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믈리에님도 블로그를 통해 맛집을 소개하고 계시고 요리를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독자들에게 와인과 잘 어울리는 맛집을 추천해드리자면 스테이크 레스토랑 ‘더 반’과 이탤리언 레스토랑 ‘부티크 블루밍’, 한식 레스토랑 ‘개화옥’ 등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도 요리에 관심이 많지만 배우 배용준 씨도 요리를 대단히 잘하십니다. 얼마 전에 늦은 밤까지 와인을 즐기던 중 배가 출출하던 차에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주셔서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1 시간이 지날수록 와인처럼 향기가 짙어지는 부부, 첼리스트 정명화 & 서울관광마케팅 구삼열 대표. 2 최강희, 이 사랑스러운 여배우에게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 어울리지 않을까? 3 로버트 파커에게 1백점을 받은 한국인의 와인, 2007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빈야드. 그 주인공은 바로 다나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를 미국 현지에 설립한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이다.

 

와인은 오래된 것을 새롭게 한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와인은 모두 48병이다. 명사 15명과 어울리는 명품 와인 12명, 그리고 자주 즐기기 부담스러운 고가의 와인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와인 36병으로 구성되었다. 차선의 와인은 대부분 3만원에서 10만원 사이라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다. 그는 독자를 위해 여름에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몇 병 추천해주었다. 더운 여름에는 아무래도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2007 카테나 알타 샤르도네(Catena Alta Chardonnay), 2006 디어버그 샤르도네(Dierberg Chardonnay) 등이 소개되어 있다.

 

샤르도네는 가장 유명한 화이트 와인 포도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의 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출시된 뒤 바로 마실 수 있는 것부터 50년 이상 장기 보관 숙성할 수 있는 와인까지 다양한 맛을 낸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준혁 소믈리에는 특히 프러포즈를 위한 와인으로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추천했다. 2002 헤르만 된호프 오버호이저 브뤼케 리슬링 아이스바인(Hermann Donnhoff Oberhauser Brucke Rissling Eiswein), 2005 샤토 리외섹(Chateau Rieussec) 등이 그것이다. 주로 디저트와 함께 곁들이는 디저트 와인은 사랑스러운 향기와 낭만적인 맛으로 누구라도 반할 만하다.

 

또 여름철에는 차가운 샴페인도 좋은데, 1990 볼랭저 R.D.와 함께 NV 루 뒤몽 크레망 드 부르고뉴(Lou Dumont Cremant de Bourgogne), NV 샤토 수셰리 크레망 드 루아르(Chateau Soucherie Cremant de Loire)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샴페인은 “승리했을 때는 샴페인을 터뜨릴 가치가 있고 실패했을 때도 필요하다”는 프랑스의 미식가 장 브리야사바랭의 명언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패배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샴페인으로 심기일전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의미 있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레드 와인은 샤토 라플뢰르와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로마네 콩티라고 언급한 걸 기억합니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코르통 샤를마뉴를 좋아한다고 하셨지요? 수많은 와인 중에서 이 와인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기에게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묻는 것과 똑같습니다. 샤토 라플뢰르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일품인 와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타닌이 돋보이는 와인이지요. 로마네 콩티는 가격을 떠나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전통을 살려 와인 메이커가 만든 특별함이 있는 와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마네 콩티보다 라 타슈(La Tache)를 더 좋아합니다. 코슈 뒤리의 코르통 샤를마뉴는 청초하면서도 화려하고 거기에 순수함까지 돋보이는 와인입니다. 아쉽게도 세 가지 와인은 모두 고가라서 자주 즐기지는 못합니다.

와이너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방문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너무나 좋은 곳이 많습니다. 와이너리 투어를 떠날 때면 항상 그 지역을 둘러보고 특산물과 함께 와인을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매번 투어를 다녀오면 살이 많이 찌곤 합니다. 처음 와이너리 여행을 떠나시는 분께는 프랑스 보르도를 추천하고 싶고 와인 애호가에게는 부르고뉴와 독일 모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팁 하나를 말씀드리면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영어보다는 현지어로 인터뷰하면 더욱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현지어를 못한다면 통역을 도와주시는 분과 함께 가시면 좋을 것입니다.

책에는 15명의 명사와 소믈리에님이 이야기한 주옥같은 와인 관련 명언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이유는요? 모든 인터뷰가 특별했지만 배용준 씨의 말씀에 마음 깊이 공감했습니다. 와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기에 와인을 한 병 오픈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 추억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이준익 감독님이 소주는 다소 충혈된 상태로 만들지만 와인을 사람을 침착하게 만든다고 한 이야기도 공감했습니다.


 

흔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후회하게 된다고들 한다. 와인을 너무 좋아해 아예 소믈리에가 된 이준혁 씨에게 소믈리에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와인을 알리고 전파하는 일이 정말 행복하며, 와인을 통해 알아가는 기쁨을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는 있다. 그의 추천대로 꼭 고가의 와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과 와인 한잔을 나누며 늦여름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 글 / 이소영 / Life Sty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