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 "커피, 그냥 삼키지 말고 와인처럼 마셔라" *-

paxlee 2011. 9. 24. 21:57

 

              "커피, 그냥 삼키지 말고 와인처럼 마셔라"

세계적 바리스타 폴 바셋의 '맛있는 커피' 즐기는 법
"입에 물고 코로 숨쉬며 음미해야… 커피맛은 온도따라 천차만별
뜨거울 땐 캐러멜 향 나다가 식으면 말린 살구맛·코코넛 맛"

"커피의 맛을 음미하려면 무조건 삼키지 말고 일단 잠시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목으로 넘겨야 맛과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호주 출신 세계적 바리스타 폴 바셋(Basset·33)은 길게 질문을 할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 뭔가를 물어볼라치면 그저 새로 뽑은 커피를 내밀면서 "일단 좀 마셔보고 얘기하라"고 했다. '참 까다롭네'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시키는 대로 했다. 칠흑처럼 검고 진한 에스프레소의 첫 모금을 넘겼다. 뜻밖에도 쓴맛이 거의 없다. 다크 초콜릿을 삼킬 때 느낌과 비슷했다. 단맛과 신맛이 한꺼번에 응축된 맛. 동그래진 눈으로 바셋을 쳐다봤다. 그는 "잠시 후엔 맛이 또 다르다. 온도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폴 바셋씨는“정해진 매뉴얼이나 공식을 믿지 않고 매일 원액을 뽑고 마셔보고 버리는 과정을 새로 해야만 만족스러운 커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전기병 기자

 

2003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한 남자. 폴 바셋은 그래서 '커피의 달인'이란 별명으로도 불린다. 호주 시드니를 시작으로 아시아·유럽까지 카페를 수십여곳 운영·컨설팅하고 있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 한국에서 네 번째 카페를 을지로에 열었다. 18일 만난 바셋은 "커피는 와인과도 비슷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종류를 맛봐야만 한다"고 했다.

―최적의 커피 원두(原豆)란.

"잘 구워진 캐러멜처럼 달콤하고 신선한 향을 내는 것. 개인적으론 볶아낸 지 4~14일 된 원두를 가장 선호한다. 오래된 커피는 시금털털하면서도 쓴 냄새를 풍긴다."

―'갓 볶은 커피'를 강조하는 커피전문점도 많다.

"원두를 방금 볶았다고 다 맛이 좋은 건 아니다. 원두 성격에 따라 볶아놓고 조금 더 숙성시켜야 제대로 된 맛을 낼 때도 있다."

―최적의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공식이 있다면.

"눈으로 지켜보고, 맛보고, 다시 뽑는다.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뽑으려면 먼저 볶은 원두를 갈아 다져 넣고 기계에서 뽑아져 나오는 커피 원액의 줄기를 관찰해야 한다. 덜 잠근 수도꼭지에서 나오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게 아닌, 실처럼 곧게 뽑아져 나오는 게 좋다. 개인적으론 기계에 커피를 넣고 6초 정도 지나 굵고 진한 원액이 1~1.5인치(2.5~3.8㎝) 길이로 곧게 떨어져 내리는 에스프레소를 가장 좋아한다."

폴 바셋이 말하는‘실처럼 곧게 떨어져 내리는’에스프레소. 방울방울 떨어지는 커피보다 풍미가 강하다.

 

―일반인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처럼 들린다.

"많은 훈련과 경험, 그리고 본능이 필요하다. 커피에 있어 완벽한 공식이나 비법은 없다. 나만 해도 매일 아침 이렇게 에스프레소를 뽑아보면서 커피 굵기와 물 온도를 계속 달리한다. 맘에 안 드는 커피는 모두 버린다. 커피 머신 청소도 중요하다. 기계가 얼마나 깨끗하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다."

―커피 맛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은.

"온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식을수록 커피 맛은 대개 더 명료해진다. 뜨거울 땐 캐러멜 향이 나다가 조금 식으면 말린 살구 맛이 나고 좀 더 식으면 코코넛 맛이 나는 식이다."

―그런 걸 처음부터 느낄 수가 있나.

"많이 마셔봐야 한다. 초보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맛을 즐겨보길 권한다. 대개 아침에 깨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온전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우유를 넣어 만드는 '라떼'는 어떻게 즐겨야 할까.

"차갑고 신선한 우유를 충분히 저어준 후 기계에 넣는다. 65~67도 정도에서 거품을 뽑으면 벨벳처럼 부드러운 최상의 거품과 농축액을 얻을 수 있다."

―설탕은.

"제대로 뽑은 커피라면 그 자체로 담백한 단맛을 내기 때문에 굳이 설탕을 넣을 필요가 없다. 한국에선 시럽 같은 인공감미료를 많이 넣던데 커피 본연의 맛을 방해하는 것이라 권하고 싶지 않다. 한국 커피전문점 커피가 대개 맛이 쓰고 신 편이라 그런 것 같다. 대량생산을 위해 강하게 볶은 원두를 쓰면 그런 맛이 난다. 반면 완벽한 커피에선 단맛과 상큼한 신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 글 / 송혜진 기자 / 조선일보 -